0146 <-- 구렁이 오메인 -->
늑대 용병단을 찾아온 신전의 사람들에 대한 것을 드낙은 대문을 지키는 경비병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드낙은 가슴이 쿵쾅거리는 것을 느끼며 경비병을 나무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택 경비병이 신전 사람들이라고 그냥 안으로 들여보내다니? 아무리 신전의 위상이 신성력 하나로 크게 높다고 해도 너무했기 때문이다.
“경비병이 신전 사람이라고 멋대로 들여보내도 되느냐!”
어린 모습이었지만 유목민족의 피가 섞여있는 드낙이었다. 그들 가문이 괜히 목장일을 하는 게 아니었고, 타고난 방목기술을 가지고 있는 집안이다. 산골에서 살면서 가축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은 그 가문의 조상을 생각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아버지가 목수면 아들도 목수가 되는 세상이기 때문이었다.
몸만 보면 그냥 어른이나 다름없었다.
더군다나 단련을 통해서 전사의 육체를 지닌 드낙은 그간의 명성까지 겹치고 〈찌꺼기〉까지 기세를 냈고, 경비병은 고개를 들지도 못했다.
“죄, 죄송합니다.”
“진정하십시오. 신전의 앞길을 막을 수 있는 것은 귀족뿐임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어떻게 평민이 신전의 일을 방해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신전이 하는 일은 항상 남을 위해서가 아닙니까. 진정하시지요.”
직접적인 화를 받지 않은 〈총관 베르벤〉이 드낙의 어깨에 살포시 손을 올렸다. 주름으로 가득한 그 손을 차마 내치지 못한 드낙이었다. 또한 베르벤의 말에 마음이 차갑게 식은 탓도 컸다.
‘그놈의 신분. 진짜 요즘 왜 이러지? 뭐 하나 드디어 눈에 보이는 성과를 얻자마자 정말로 개떼처럼 달려드는구나.’
드낙의 볼이 부들부들 떨렸다. 당장이라도 그림자처럼 어둠 속에 녹아들어 야밤에 기사든 마법사든 죽여서 닥치는 대로 〈검은 문〉을 획득하고 싶어졌다. 그만큼 평민의 신분으로 빛을 반짝 보자마자 곳곳에서 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후우우···”
심호흡을 하고 나서야 그 흥분감은 사라졌다. 하지만 드낙은 쉽게 현관으로 가지 못했다. 마음을 다스리고 화를 삭이는데 시간을 허비하는 것처럼 총관과 경비병에게 보이게 만들었다.
‘화를 내서 오히려 다행이다.’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괜히 찾아온 것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이다.
‘신전은 왜 나를 찾았는가.’
흑마법? 아니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찾을 수 있을 리가 없다. 흑마법의 발현은 마력의 성질 변환이라고 할 수 있다.’
수인을 맺고 난 뒤에야 푸른 마력이 검붉은 불꽃으로 변한다. 그 말은 흑마법을 사용하지 않으면 평범한 마력에 불과했다.
드낙이 흑마법을 구사할 수 있다는 그 어떤 의심도 할 수 없으므로 아니었다. 그것을 의심하는 것은 그저 떠보는 것에 불과했다.
‘나는 안전하다.’
속으로 자신에게 혐의가 없고, 있더라도 떠보는 정도의 의심만 있을 것이라 스스로를 다독였다. 강하게 쇠사슬로 조이듯이 마음을 강하게 먹었다.
일신에 대한 안전이 보장되자 다른 곳으로 생각이 뻗어나갔다.
‘이스핀과 도렌이 병문안 가서 사고를 쳤나?’
이스핀은 충분히 의심스러웠다. 출신성분이 범죄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도렌을 형제로 여기고, 나름 생각이 있는 이스핀이다. 신전 사람이 올 정도로 큰일을 터트릴 놈이 아니었다.
삼류 건달이 신전에서 죄를 저지른다? 법원 앞에서 범행을 저지르는 도둑놈이나 다름없었다. 서민의 집은 털어도 변호사 사무실은 못 터는 게 범죄자였다. 누구보다도 강자에게 약한 것이 범죄자들이다.
또한 의리가 있는 것이 이스핀이었다. 그 때문에 드낙이 그가 범죄자 출신임에도 받아들여서 믿어주고 있기도 했다.
‘이스핀을 믿는다. 그는 그럴 놈이 아니야.’
누구보다도 현실적 감각이 풍부한 이스핀이었다. 도렌 또한 잘 챙겼을 것이다.
‘세아? 말도 안 되는 소리지.’
신전과 최근에 접점이 있는 세아에게 생각이 뻗어나갔지만 그 이상으로 뻗어나가지는 못했다. 드낙은 탐정이 아니었다. 세아를 통해서 신전이 이곳에 왔다는 정황조차도 〈빛의 전령 오메인〉이 가렸기에 경비병도 세아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흑마법사를 자주 상대하다 보니 전령 오메인 또한 음흉했다. 누가 흑마법사인지, 빛의 사제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치밀한 계획이었다.
‘나는 죄가 없다.’
드낙은 자신을 다독이며 현관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그늘에 자신을 대문에서부터 지켜보던 성기사가 있었다. 그가 고개를 깊이 숙이자 드낙도 따라서 숙였다.
“제법 오래 대문에서 계시더군요.”
성기사의 말에도 드낙이 웃으면서 말했다.
“집주인 허락도 받지 않고, 들어오셔서 저도 모르게 화를 냈습니다. 베르벤 총관 덕에 제 잘못을 알고, 제 주제를 알아서 흥분을 삭힌다고 늦었습니다.”
“아···”
성기사가 괜히 눈을 피했다. 명백히 자신들이 가해자로 보이게 드낙이 자신을 스스로 낮추며 자학했기 때문이다.
1층의 집무실은 회의하기에 딱 좋았다. 그곳에 기다리던 〈빛의 전령 오메인〉이 드낙이 들어오자 그를 단번에 훑었다.
지나치게 어린 얼굴.
그에 반해서 풍겨오는 기세는 평범한 전사 이상.
떡 벌어진 육체는 단련을 얼마나 했는지 기사를 연상시킬 정도로 다부졌다.
‘보통 인물이 아니군.’
소문이 오히려 약해 보일 지경이다. 의심이 한층 더 깊어졌다.
벌떡.
그가 의자를 소리 내어 밀며 일어나 드낙을 크게 환대했다.
“소문을 참 많이도 들었습니다. 저는 〈빛의 신전〉에서 〈빛의 전령〉을 맡고 있는 오메인이라고 합니다.”
〈빛의 전령〉이라는 소리에 총관의 표정이 급격하게 굳었다.
‘빛의 전령이 왜 이런 곳에?!’
하지만 드낙은 그 표정을 볼 수 없었다. 오메인이 직접적으로 그를 크게 칭찬하며 자리로 이끌었기 때문이다. 드낙이 〈전령〉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눈 감아도 알 수 있었다. 신전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은 아니었지만, 〈빛의 전령〉은 또 처음 들어보는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드낙은 방심하지 않았다.
‘뭔가 심상치 않네.’
그의 눈에는 신전 사람들의 인원수가 들어왔다.
‘많아도 너무 많다.’
사제라는 족속들이 신전을 나오기 힘들다는 것을 알았기에 이렇게 3명의 성기사와 2명의 사제 그리고 전령 오메인까지. 총 6명의 신전 사람들이 드낙을 보러고 온 것이다.
뭔가 있었다. 하지만 그게 뭔지를 드낙은 모를 수밖에 없었다.
‘그저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긴장하기 시작하는 드낙에게 오메인은 바닥에 있는 목함을 거침없이 꺼내들었다. 그것이 그가 준비한 〈덫〉이었다. 대놓고 드낙의 집을 수색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심증밖에 없는데 닥치는 대로 가구를 뒤지는 것은 귀족의 논리이지 신전의 논리가 아니었다.
‘신성력을 품은 목걸이. 그것도 제법 담긴 힘이 강한 물품.’
갑작스러운 신전의 방문. 현관에서 지켜보는 성기사. 드낙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그저 여기로 태연하게 오는 것뿐이었고, 만약 그가 흑마법사의 하수인이라면 반드시 〈흑(黑)의 양피지(羊皮紙)〉를 보유하고 있을 것이다.
드낙이 꺼림칙해서 다 태워버린 그 양피지는 보유하는 것만으로도 힘을 주는 것이었다. 당연히 평범한 마력도 악마에 의해 변질된 마력이 되어버린다. 그 양피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대로 탄로 날 것이다.
‘간악한 흑마법사가 하수인을 챙길 리가 없지.’
신성력과 악마의 변질된 마력이 서로 부딪쳐 상쇄된다는 것을 모를 것이 분명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하나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거기에 대한 약소한 선물입니다. 〈사악멸(邪惡滅) 목걸이〉와 같은 이름의 반지 2개입니다. 이 반지는 용맹하게 기사를 따랐던 단원들에게 주고 싶습니다.”
드낙은 꺼림칙했다. 척 봐도 뭔가 있어 보이는 목걸이와 반지였다. 애초에 마법 장비의 가격을 알고 있었기에 더욱 경계심이 삐져나올 수밖에 없었다. 반면 이스핀과 도렌은 눈이 사탕을 보는 아이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이런 큰 가치를 지닌 것을 왜 저희들에게 주는 겁니까?”
“앞서 말했듯이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어서입니다. 자 목걸이부터 착용하시지요.”
드낙은 목걸이를 거부하며 말했다.
“먼저 부탁할 내용을 듣고 싶습니다.”
철두철미한 드낙의 수비적인 태도에 〈전령 오메인〉의 눈이 빛났다. 하지만 싱글벙글 웃는 상으로 눈을 가리며 말했다.
“실은 흑마법사와 접촉을 두 번이나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왕국 야영지〉에서의 강도 토벌과 〈세 개의 강가〉에서의 일백야수 토벌에서 말입니다.”
“예. 그렇습니다만.”
정확하게 의뢰 내용을 짚기까지 하는 모습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속으로는 비명을 질렀다.
‘모든 걸 조사하고 찾아왔구나!’
사회의 밑바닥을 자처하는 모습과는 다르게 엄청난 힘을 쥐고 있으며 영향력 또한 뛰어나서 귀족에게 쥐어진 정보마저도 신전이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등으로 식은땀이 주륵하고 흘러내렸다.
무시무시한 권력의 힘. 또한 그 권력을 웃는 모습으로 이렇게 온화한 분위기에서 보여준다는 것부터 신전의 노하우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때 경험했던 것을 듣고 싶습니다. 아주 자세히 말입니다.”
드낙은 땀을 닦으며 말했다. 여름이었기에 땀을 흘러도 괜찮다는 것이 정말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 괜찮습니까?”
“상관없습니다. 흑마법사를 멸하는 것이 빛을 따르는 신전의 가장 중요한 업(業)입니다.”
드낙은 그제서야 조금 안심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목걸이를 착용했는데, 당연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목걸이의 효과는 정확히 어떤 겁니까?”
드낙의 말에 대답하며 전령 오메인은 반지를 챙겨 이스핀과 도렌에게도 착용시켜주었다.
“흑마법에 대한 큰 저항을 부여해주는 겁니다. 그들과 대적할 때만 쓸모가 있죠.”
“어느 정도로 저항을 부여해줍니까?”
“사람 몸만 한 흑마법 공격에 직격을 당해도 괜찮을 정도입니다. 물론 목걸이만 그 정도입니다. 반지의 경우에는 머리만 한 크기의 공격만 막아줄 겁니다.”
드낙이 감탄사를 내뱉었다.
“너무 대단한 물건인데, 정말로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 받아도 되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오메인은 아쉬워하면서도 막힘없이 대답했다. 그 정도로 좋은 것이 아니면 직관적으로 상쇄효과가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야기를 듣기 전에 다른 성기사들과 사제님들은 차라도 한 잔 하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늑대 용병단의 집도 구경도 하며 시간을 보내시면 좋을 것 같은데, 드낙 용병단장님의 생각은 어떻습니까?”
“저는 상관없습니다.”
드낙은 그렇게 말하면서 드디어 신전의 노림수를 깨달았다. 시어머니가 무릎이 쑤시다고 궁시렁 거리면 며느리가 무릎에 대한 안부를 묻기보다는 빨래를 걷어오는 눈치로 살아가는 사회가 바로 한국 사회였다.
‘이 개새끼들이 나를 흑마법사의 하수인으로 의심하고 있구나!’
정말로 설마 그러겠나 싶으면서도 도둑이 제발 저린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진실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보고 드낙은 속으로 크게 고함을 내질렀다. 그러면서도 크게 안심했다.
‘그때 양피지를 모두 불태우지 않았다면 지금 무슨 꼴을 당했을까?’
소지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을 주는 흑의 양피지! 그것을 버린 것이 이렇게 도움이 되다니. 세상일은 역시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이내 드낙은 정신을 바짝 차렸다.
'지금이 더 중요하다.'
아직 모든 상황이 끝난 것이 아니었다. 드낙이 머리를 굴렸다.
========== 작품 후기 ==========
5203자
하루 지나기 전에 어서 글 한그릇 먹고 가시오!!!! 내 오늘 3그릇이나 준비했단 말이오! 그렇지, 그렇지, 쭉쭉 들이키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