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45 <-- 줄줄이사탕 -->
성기사 열다섯. 사제 다섯을 모은다는 것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다. 〈빛의 신전〉에 찾아오는 병자들과 굶주린 이들을 생각하면 이미 신전에 있는 이들의 인력을 사용하는 것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렇기에 〈전령 오메인〉은 최대한 빨리 이곳에 온 것이기도 했다. 그가 얻어낸 정보로는 다음 목표물은 〈횃불 성채〉가 확실시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
고민하는 그를 보며 아직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성기사와 사제들이 침묵했다. 누구 하나 자리를 뜨지 않았다. 하찮은 전령이라고 하기에는 신전에서의 〈빛의 전령〉은 쥐고 있는 영향력이 매우 컸다.
성기사 중에서도 특출난 자만이 〈빛의 전령〉이 될 수 있었다.
홀로 강도 일백은 쉬지 않고 쳐죽일 괴물들이 〈빛의 전령〉이었고, 최소한의 인원으로 흑마법사와 맞서 싸울 수 있는 자였다. 신전에서 본다면 〈빛의 전령〉이 장군이었다. 장군이 정보 하나 쥐고 해당 지방으로 가서 신전을 방문하여 성기사와 사제를 징발하는 것이 신전의 방식이었다.
이 부분에서 흑마법사의 간악한 짓을 막지 못한다면 귀족이나 왕족 같은 기득권이 토벌에 나서고, 거기에 실패한다면 성전대를 비롯한 연합군이 형성된다.
역사에 한 획을 그을 사건이 빛의 전령에서 탄생한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번 정보는 의심스러운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너무 노골적이었고, 빠르게 입소문이 퍼졌습니다.”
“보통 귀족들이 움켜쥐고 있는 것을 푼 것이 아닙니까?”
“자주 해본 놈이 잘 안다고, 귀족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에 대부분이 수긍했다. 빛의 전령만큼 여기에 대해서 잘 아는 것이 없었다. 라리엔 사제는 자신의 마음을 추스르기 바빴다.
“너무 급하게 이루어진 정황이고, 사실 정보라는 것도 어느 귀족이 흘렀는지 알법도 한데 용의주도합니다. 각각의 정보에 대한 경중도 차이가 나고···”
게실리안 지휘관과 버팔로 나이트의 소문 뿌리는 방식은 서로 달랐다. 귀족의 입장에서 정석이 게실리안 지휘관이었다면 버팔로 나이트는 따뜻함이 좀 묻어나는 정보였다.
그 차이성 때문에 〈전령 오메인〉은 의심을 하고 있었다.
〈흑마법사의 간악한 술수〉가 아닌가 하고.
그저 운이 따라주지 않고, 돌발적인 상황이 발생한 것만으로도 다른 곳으로 순식간에 몸을 빼는 능구렁이들이 흑마법사였다. 그들을 토벌하는 일은 무척이나 어려웠고, 토벌했다는 것도 곧 거짓으로 밝혀지기도 한다.
하도 흑마법사가 아닌 하수인 혹은 애먼 사람을 잡다 보니 흑마법사를 잡아도 현상금이 없어질 정도가 되어버렸다. 그만큼 사회문제가 컸던 때가 있었다.
그 위험을 파헤치기 위해서는 하나하나 짚고 넘어가야 했으며, 귀족의 정보가 아닌 다른 이의 정보도 들어야 했다.
다행히도 이 두 가지를 모두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이 있었다.
“〈늑대 용병단〉이 이곳 〈횃불 성채〉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은 흑마법사의 움직임에 항상 있었기에 해당 상황을 잘 알고 있으며, 무엇보다도 흑마법사의 하수인으로도 보입니다.”
“어째서 그렇습니까?”
〈전령 오메인〉은 늑대 용병단을 의심하고 있었다. 용병단이 흑마법사를 목격하고 살아남았다니? 거기에 일각수를 보고도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웠다. 믿기 힘든 일이었고, 일각수의 가죽과 고기를 하사받은 것 또한 이상했다.
하나같이 보기 힘든 일을 행하는 늑대 용병단은 오메인에게 있어서 가장 거슬리는 돌멩이였다. 지금 그들이 횃불 성채에 있을 때 한 번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오메인의 의심에 리라엔 사제가 팔을 뻗고 나섰다.
“그들은 신뢰 있고 마음이 따뜻한 자들입니다.”
드낙이 경황없이 매우 늦은 시간에 신전을 찾아올 정도였다. 그 모습이 크게 인상이 깊었던 것이 리라엔 사제였다. 물론 용병다운 면모도 있었지만.
“위선은 누구나 한 번쯤은 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좋은 기회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오메인의 속에 있는 깊은 의심을 느낀 라리엔 사제는 피비린내를 맡은 표정을 지었다. 이해를 바라지 않는 저 엄격한 눈을 보니 반박하고 싶은 생각도 사라졌다. 진절머리 쳤다.
“늑대 용병단과 안면이 있는 사람 중에 아시는 분이 있습니까?”
누구 하나 말하지 않자, 오메인은 한 명씩 지목해서 물었다. 자신의 이름이 거론되자 부담감을 느끼고 최소한의 책임감마저 느낀 성기사가 하나같이 똑같은 이름을 말했다.
“세아 자매님이 그곳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강도가 들어서 부상을 입어서 신전에서 작은 은혜를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아··· 그런 가슴 아픈 일이 있었습니까? 상태는 어떻습니까?”
“앞니가 분질러지고, 피멍이 들어있지만 움직일 수 있어서 신전을 나갔습니다. 일당이 제법 높은 곳이라 하루도 쉬기가 겁난다고 했습니다.”
“돈까지 그렇게 주는 용병단은 흔하지 않을 텐데, 그럴만합니다. 더더욱 의심스럽군요.”
돈을 벌려고 용병단 일을 하는데 돈을 쓰는 것처럼 보였다. 〈전령 오메인〉은 자신의 촉이 꿈틀거리는 것을 느꼈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세아 자매님을 데려와서 남은 부상마저 완전히 치료하십시오. 그 길로 그대로 늑대 용병단의 용병 하우스를 방문하겠습니다.”
“예? 하지만 신성력의 분배는 만인에게 공평히···”
리라엔 사제가 반발했지만 받아들어지지 않았다.
‘늑대 용병단의 말을 듣고, 그들의 하우스를 수색할 수 있다면 확신을 가질 수 있다.’
〈빛의 전령 오메인〉이 싸늘한 눈을 했다. 지금까지 수없이 흑마법사들의 발자국을 좇았던 오메인이었다. 이번에 그의 촉은 늑대 용병단을 가리키고 있었다.
*
상인과의 장기적인 거래를 위해서 〈총관 베르벤〉을 따라 드낙이 걸음을 옮겼다. 당초 오기로 했던 세아는 신전에서 자신을 완치해준다는 말을 들어서 서둘러 그곳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주일마다 밀빵을 봉사한 것이 편애를 받은 듯했다.
‘이래서 선행을 하나.’
〈신성력〉을 지닌 신전에게 물질적인 도움을 주는 것도 나빠 보이지 않았다. 한 번도 보지 못한 주님의 은총을 기대하는 것보다는 신성력을 믿고 현실적인 도움을 주는 것은 결코 나빠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큰 유혹이었다.
“결국 둘이서 가게 됐네요."
이스핀과 도렌은 드낙에게 하사받은 비전을 수련하는데 여념이 없었다.
도렌의 경우에는 엄지와 검지 사이에 있는 곳에 굳은살이 배기고, 피가 나고 물집이 잡혔다. 이스핀의 경우에는 검을 쥐었을 때, 엄지의 하나 있는 관절에 굳은살이 생기고 있었다.
찌르기를 하면서 검의 가드 부분이 자꾸 그 엄지 관절을 비비거나 충격을 주고 때렸기 때문이다.
‘굳은살만 잘 숨기면 된다.’
비전을 사용함에 있어서 그것을 들키는 것은 시체를 확인했을 때뿐이었다. 그것도 제법 노련한 기사여야 했다. 전투 중에 누가 무슨 비전을 사용하는지 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도둑이 제발 저리는 생각이었다. 또한 비전을 하사받는 것만으로도 전투에 대한 경험, 흐름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훈련도를 높일 수 있어서 전체적으로 수준이 향상된다.
드낙이 이스핀과 도렌을 노예들의 부대장으로 삼으려고 한 이상, 그 두 사람에게 비전을 전수하는 것은 필수적인 일이었다. 신분 상승의 벽을 계속해서 체감하고 있는 드낙은 조급해하고 있었다.
‘세력을 내가 만들어야 한다. 이스핀과 도렌은 그 첫 타자다.’
이스핀과 도렌은 앞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드낙이 그렇게 만들 것이고, 또 확실하게 뒤를 받쳐주고 있었다.
〈총관 베르벤〉과 함께 가장 먼저 향한 곳은 남쪽 상업지구였다. 그곳은 특히나 많은 물량이 오고 가기 때문에 하는 김에 용병 하우스에 식료품을 배달할 수 있을 짐꾼들이 많았다.
상인도 부담이 적을 것이라는 계산이 깔려있었다. 드낙은 그 설명을 들으면서 베르벤에 대한 평가를 높여나갔고, 총관 또한 믿음을 받음으로써 자신의 직장을 굳건히 다지는 기회로 삼았다.
‘이렇게 급여가 후한 곳은 찾기 힘들다.’
10닢, 20닢 차이가 나도 경쟁률이 높다. 그런 곳에 그저 빨리 도착하고 깍듯하게 대한 것만으로도 취직한 베르벤은 독한 눈을 했다.
횃불 성채에 있는 수많은 곳에 물품을 배달하는 짐꾼이 처음으로 스타트를 끊는 곳이 바로 〈남쪽 상업지구〉였다.
그 복잡한 곳에서 〈총관 베르벤〉은 거침없이 움직였다. 드낙에게 아랫사람을 자처하는 모습을 보여도 강고한 이미지를 가진 무인이 그였다. 거기에 근육도 다부지고 새하얀 백발을 하고 있으니 너도나도 길을 비켰다.
알아서 피한다는 말이 맞았다.
살이 포동포동 찐 상인은 실크로 된 옷을 입은 채 짐꾼들이 내리는 짐을 살피고 있었다. 자기 몸 하나 성하자고 짐을 던지고 발로 미는 것이 예사라 의자에 앉아서 눈만 날카로운 상인이었다.
베르벤 총관이 다가가자 그가 몸을 일으켰다.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어? 오늘은 날이 아닌데, 어떻게 오셨습니까?”
“부탁하고 싶은 게 있어서 말이네. 이쪽은 〈늑대 용병단〉이라고, 자네도 잘 알걸세. 그곳의 단장님일세.”
“아! 그, 일각수의 고기···”
상인이라 그런지 돈 되는 물품을 통해서 기억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특히나 일각수의 고기 1톤은 그야말로 엄청난 가치였는데, 하필이면 횃불 성채에서 하사받은 것이 너무나도 아쉬웠다. 술집에서는 목이 잘려도 자신이라면 밀거래를 했을 거라며 큰소리치는 상인의 고함소리가 자주 들려올 정도였다.
아주 큰 개소리였다. 아크온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직접 고기를 자신의 마차에 싣게 할 정도였다. 드낙은 그것을 전혀 몰랐다. 그저 아크온의 인품에서 나오는 친절이라고 여겼었다.
“늑대 용병단의 용병단장 드낙이라고 합니다.”
“소문대로 정말로 젊으신 분이군요. 저는 이때 술만 찾았는데. 하하하.”
웃음소리가 퍼져나갔다. 상인의 눈이 베르벤으로 향했다. 그러자 베르벤이 웃음 지으면서 그를 드낙에게 소개해주었다.
“이쪽은 물류를 잡고 있는 〈블루박스 상단〉의 〈상단주 갈세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상단 소속 상인은 저밖에 없습니다. 구색 맞추기입니다. 하하. 짐꾼들은 상단이 있는 곳을 좋아하는 경향이 있어서요.”
“왜 그렇게 상단을 좋아합니까?”
갈세인은 호탕하게 말했다.
“상인 놈들이 어지간히 장난질을 쳐서. 급여를 주기 전에 야반도주하기도 합니다.”
드낙이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야말로 이판사판 개사판의 모습을 여실 없이 보여주는 모습이었다. 월급 주기 전에 사장이 도망친다니. 미친 세상이었다. 딱히 잡을 방도가 없는 것도 일품이었다.
“한 달에 30닢. 식료품을 용병 하우스로 배달하는 일이네.”
“하루에 세 번은 못 갑니다. 한 번은 가능합니다.”
친분이 있고 없고를 따져서 갈세인은 상인이었다. 이득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렇게 하면 자네가 너무 가져가잖나.”
“남겨먹다뇨. 언제 남겨 먹습니까? 정말 한 푼도 남는 게 없습니다. 이건 정입니다. 정!”
“다른 상인들도 똑같이 말하겠지. 내가 모를 줄 알고?”
총관의 말에 갈세인이 손을 비볐다.
“역시 잘 아십니다. 그래도··· 그거 이하면 안 하려는 상인이 많을 겁니다.”
“찾아보면 하나는 나오지 않겠나? 물건 교환이 아니라 화폐로 거래하는데?”
“그럼 하루 세 번, 동화로 40닢은 주신다면 해드리겠습니다.”
드낙이 눈을 좁혔다. 제시하는 것만 봐도 제법 남겨먹는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힘쓰는 이들을 통해서 이득을 취하는 것이 바로 보였다.
“35닢. 매달이야. 매달!”
“ 짐꾼 하나 고용해 보십시오. 매달 35닢으로 되시나. 정말 너무합니다. 아무리 베르벤님이라도···”
“이래서 상인은 절대로 도와주지 말라는 걸 들었어야 했는데. 내 정말 실망이네. 내가 자네를 얼마나···”
뭔가를 말하려고 하자 갈세인이 펄쩍 뛰며 냉큼 대답했다.
“좋습니다. 35닢!”
하루에 세 번. 용병 하우스를 위한 짐꾼을 보내주기로 결정하였다. 세아의 일이 조금은 편해질 것이다. 상인이기에 여분의 짐수레를 분명 가지고 있을 것이므로 잡부 한 명으로도 감당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친다면 사실 30닢을 받아도 되었다. 하지만 마진의 제한 따위 없는 곳이 이곳이었다. 상인 마음대로였다.
한국조차도 유통이 거미줄처럼 엮어서 한우의 경우에는 지독하면 유통업자 10명을 거치기도 한다. 마진의 지옥!
‘동화 35닢. 나쁘지 않아.’
짐꾼 하나 고용하는 것보다는 싸게 쳤다. 아주 크게 싸다.
다시 용병 하우스로 드낙이 돌아갔다. 부쩍 더워진 날씨 탓에 뒷마당의 차가운 우물물이 생각났다. 도렌과 이스핀의 실력을 급상승시키기 위해서 자주 봐주어야 하기도 했다.
용병 하우스에서 드낙은 뜻밖의 방문자를 맞이해야 했다.
신전의 사람들이었다. 가슴이 덜컥할 수밖에 없었다. 드낙은 흑마법을 구사할 줄 알았기 때문이었다.
========== 작품 후기 ==========
6008자
항상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