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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지 않는 남자는 집안에서 항상 눈치 받기 마련이다. 그것은 이제 46살이 된 〈은퇴군인 베르벤〉도 마찬가지였다. 꼬박꼬박 급여를 받아오며 병사로 살아왔고, 베테랑 병사를 거쳐 백인장 타이틀도 손에 쥔 적이 있었다.
“오늘도 나가세요?”
새하얗게 되면서 머리카락의 건강이 좋지 않게 되어 어깨 밑으로 나오는 조금 긴 단발을 유지하는 것이 된 그의 아내 또한 세월을 먹으며 함께 나이가 들어있었다.
“오늘은 조금 다른 일이 있어서요.”
〈북쪽 구역〉에서 거주하고 있어도 괜히 아침을 먹고 나면 밖으로 나가는 것이 그의 일상이었다.
백인장이 은퇴할 때는 자신의 개인 장비와 사용하던 무구는 모두 무료로 그에게 주어진다. 손때로 반들반들해진 흉갑을 차고, 어젯밤에 초를 녹인 것으로 문지른 혁대는 말끔했다.
숏소드는 병사 시절부터 사용한 그의 애병이었다. 리치가 길면 무조건 장점이 있다고 말하는데 헛소리였다. 애송이 병사 시절, 그의 목숨을 여러 번 지켜준 것은 짧은 숏소드였다.
그렇다고 검술의 깊이가 낮은 것도 아니었다. 짧았기에 할 수 있는 수법은 무궁무진했다. 병사치고는 특히나 작은 방패인 버클러까지 오른쪽 혁대에 걸었다.
무인으로써 한껏 힘을 준 복장임에도 그의 아내는 알아차리지 못 했다.
은퇴한지 이제 1년. 45살 생일을 시작으로 군에서 나왔다. 군대의 고된 일을 매일 하다 보니 힘에 부친 것이다. 그렇다고 무인이 잡일을 할 리가 없었다.
그런 그는 평소 가는 곳이 아니라, 다른 곳으로 향했다.
‘〈늑대 용병단〉.’
최근 소문이 자자한 용병단이었다. 특히나 인기가 있는 이유는 신뢰 때문이었다. 게실리안 지휘관 소속의 병사들이 휴가를 나올 때마다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었다. 안줏거리로 써먹기 좋았다.
버팔로 나이트의 인품이 유명하다고 해도 일각수의 고기와 가죽을 하사받은 것은 유명했다. 옆집 수저 개수는 몰라도 그건 알 정도였다.
동시에 용병단장 혼자서 강도 다섯을 격살했다는 것도 익히 들었다. 도적이 없는 이유이기도 했다.
얼마나 무서웠는지 도적 두 명은 드낙과 싸우는 것보다 3층에서 뛰어내리는 것을 선택했을 정도라고 시체를 운반한 병사의 입에 명명백백히 퍼져나간 신뢰 있는 소문이었다.
‘꿀같은 직장이지.’
이 바닥이 그렇다. 강한 놈 앞에서는 빌빌 거리고, 약한 놈은 팬티까지 벗겨버린다. 그러므로 은퇴군인을 총관으로 삼고, 경비병으로 고용한다는 말에 잔뜩 힘을 주고 〈은퇴군인 베르벤〉가 아침 일찍 집을 나선 것이다.
행동력 있게 움직인 베르벤만큼 빠르게 판단한 사람은 없었다. 그게 그의 무기이기도 했다.
‘왜 총관을 구하는지 알겠군. 저급한 종도 안 달아놓다니?’
베르벤이 멈칫했다. 이 정도로 준비가 안 된 곳에 취직해도 되나 싶었다. 〈북쪽 구역〉은 소란이 일어나면 병사들이 미친 듯이 뛰어오기 때문에 꿀직업처럼 보였는데 종을 안 달았다는 이유로 멈칫하게 만들었다.
그만큼 용병 하우스가 관리가 안 되어있다는 뜻이었다.
대문에 종 하나 마련되어있지 않은 것이 늑대 용병단의 용병 하우스였다. 저급한 종을 매달기에는 현재 늑대 용병단의 유명세가 크기 때문에 쓸 수 없었다. 그리고 드낙은 현대인이라 종을 구매해야 한다는 생각도 없었다.
도렌은 그냥 아무 생각이 없었다.
이스핀의 경우 뒷골목에서 〈들개 이스핀〉이라고 불릴 정도로 힘들게 살았으니 종 따위를 왜 구매해야 하는지 몰랐다. 강철문을 두들기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돈이 필요하다.’
아래로 자식만 다섯을 낳았다. 할아버지로서 손자 용돈이라도 쥐여주고 싶은 게 그의 마음이었다.
‘설마 그렇게 힘들까? 북쪽 구역인데.’
덜컹, 덜컹, 덜컹!
목을 가다듬고 소리를 질렀다.
“계십니까!”
금방 반응이 왔다. 앞치마를 두른 젊은 여성이 고개를 꾸벅 숙이더니 누군가를 부르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아침 시간에 왔기에 식사를 하고 있는 듯이 보였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단장님이 식사를 하고 계셔서··· 죄송합니다.”
도렌의 말에 베르벤은 상관하지 않았다.
“약속도 없이 찾아왔는데, 무엇이 미안합니까? 전 괜찮으니 식사를 마저 하십시오.”
딱딱하고 감정 없는 목소리였기에 괜히 도렌이 더 죄송해했다. 새하얀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존대까지 하니 더 딱딱하게 느껴졌다. 마치 선을 긋는 것처럼 보였다. 말을 놓으라고 말조차도 못 했다.
확 넓은 1층 집무실에서 대기했다.
드낙은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10분도 안 되어서 집무실에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장장 3일 동안 허탕만 쳤기 때문이다. 이래도 못 구하면 말 그대로 노예로 세력을 스스로 챙기면서 다시 명성을 높여야 할 지경이었다.
힘든 일일 수밖에 없었다. 총관을 구하고 노예를 구하는 게 순서상 알맞았다.
“반갑습니다. 늑대 용병단의 용병단장 드낙입니다.”
“반갑습니다. 드낙 용병단장님.”
은퇴군인 베르벤은 매우 깍듯했다. 앞으로 자신이 급여를 받을 상대가 드낙이었다. 볼에 난 솜털은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사장에게 반말하는 놈은 이 세상에서 남의 돈을 받기 위해 고개 숙여 본 적이 없는 놈뿐이었다.
그리고 병사 생활을 했던 베르벤은 사회생활에 도가 텄다. 폐쇄적인 집단 중에서도 폐쇄적인 곳이 군대였다. 귀족이 맞물리면서 아귀 같은 곳이기도 했다.
‘합격.’
드낙은 그 모습에 당연히 호감이 갔다.
“총관을 하기 위해서 왔습니까 아니면 경비원이 되고 싶어서 왔습니까?”
“총관을 하고 싶습니다.”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이가 찼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례가 되겠지만 돈을 벌려는 이유를 알 수 있겠습니까?”
개개인마다 민감해하는 것이 다른 것처럼 드낙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베르벤은 막힘없이 대답했다.
“손자, 손녀가 많아서 용돈벌이라도 하려고 왔습니다.”
보통 용병단의 총관 혹은 작은 상단의 총관은 동화 500닢도 많이 받는 것이었다. 〈관리직〉이라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돈을 쥐지 못한다. 잡부보다도 적은 급여를 받는 것이 보통이었다.
그 때문에 총관하는 이들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자들이었다. 크게 힘들이는 것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맡았다.
물론 제법 큰 상단부터는 말이 다르다. 총관을 그 상단의 혈연으로 이루어지기에 급여가 빵빵했다. 혈연은 이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보증 수표였고, 배신하지 않는 어음이었다.
“문서 작업 경험은 있으시죠?”
“백인장으로 복무했습니다. 가능합니다.”
“베르벤 씨. 그럼 당신의 가장 큰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 장점 말씀입니까? 지금까지 총관이 되려고 찾아온 사람이 있습니까?”
“베르벤 씨가 처음입니다.”
“그게 제가 가진 장점입니다. 생각한 것이 있으면 바로 해치우는 것입니다. 절대로 내일로 미루지 않죠. 백인장으로 올라갈 때, 그 장점 하나로 올라갔습니다.”
드낙이 미소 지었다. 행동력이 있다는 소리였다. 그리고 실제로 베르벤은 가장 먼저 총관이 되기 위해 여기에 왔다.
“그럼 총관이 되고 나서 가장 먼저 할 일이 있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도 베르벤은 거침없이 하나를 말했다.
“대문에 종을 달 겁니다.”
“종이요?”
“예. 질 좋고, 작은 종을 다는 것이 제가 총관이 되고 나서 할 가장 첫 번째 일입니다.”
꼼꼼함을 엿볼 수 있었다.
“좋습니다. 급여는 얼마를 생각하십니까?”
“주는 대로 받겠습니다만, 야근 근무는 힘듭니다. 해질녘 전에는 퇴근하고 싶습니다. 물론해야 할 일은 그전에 최대한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동화 400닢. 하시는 것을 보고 1개월 후에 동화 500닢까지 올려드리고, 그 이상으로 잘하시면 1년 뒤에는 은화 1닢까지 드리겠습니다.”
베르벤의 눈이 빛났다. 거친 병사 생활로 골반이 검을 쥔 곳인 오른쪽으로 조금 기울어진 그였다. 은화 1닢이면 엄청난 금액이었다.
“퇴근은 마음대로 하세요. 하지만 말했던 것을 시일 내에 못하시면 안 됩니다. 저도 융통성이 있는 사람이라 거기에 대해서는 터치하지 않겠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오늘부터 일하겠습니다.”
드낙은 〈총관 베르벤〉에게 경비병들을 고용하라고 말했다. 그리고는 은화 5닢을 먼저 건넸다. 또한 양피지에 돈을 쓴 내역을 상세히 쓰라고 지시했다.
“경비병은 몇 명이나 두실 생각입니까?”
“야간에 세 명. 주간에 두 명. 총 다섯을 둘 생각입니다. 짐꾼으로도 쓰고···”
가족 같은 분위기로 지정된 업무 외에도 일을 시킬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총관 베르벤〉이 질색을 했다. 병사 시절 척후로 훈련받지 않았는데, 해본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건 좀, 불만도 심할 겁니다. 급여를 더 줘도 안 하려는 이가 많을 겁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을 더 고용하기에는···”
〈총관 베르벤〉이 자신 있게 웃어 보였다.
“저에게 맡기십시오. 필요한 것을 구매하면서 이곳으로 보내달라고 하면 됩니다. 아는 가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야 잘 부탁드립니다.”
드낙과 베르벤이 서로 악수하며 움켜쥐었다. 골반이 비틀려서 은퇴한 베르벤의 손아귀 힘은 현역 못지않았다.
바로 축하를 위해서 낮술을 해버렸다. 드낙은 자신에게 초면부터 존대를 하는 이를 처음 봤기 때문이기도 했다. 애송이가 용병을 하려고 하고 단장을 하려고 했으니 당연한 일이었지만, 제3자의 입장에서만 납득할 수 있는 일이었다.
‘많이 마시면 안 되는데···’
벌써부터 귀에 잔소리가 꽂히는 기분이 들어서 〈총관 베르벤〉은 내내 불편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결국 저녁 늦은 시간에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
새하얀 천으로 옷을 입은 준마(駿馬)가 거침없이 도로를 내달렸다. 그 앞에는 〈횃불 성채〉가 보였는데, 늦은 밤이었기에 성문이 굳게 잠겨져있고, 아래에는 횃불만 놓여 있을 뿐이었다.
쿵쿵쿵!
작은 문을 두드리자 조그마한 칸이 열리며 병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냐?”
“〈빛의 신전〉의 전령입니다. 이것은 그 인장이요.”
인장이 쑥하고 들어갔다. 병사는 그것을 확인했다. 황금의 성배의 좌우로 태양과 달이 있었고, 성배의 잔을 사제들이 힘을 모아서 받치고 있었다. 뒷면에는 나무가 만져졌다.
황금과 은으로 된 앞면과는 다르게 삭막할 정도로 투박한 뒷면. 그게 바로 〈빛의 신전〉의 인장이었다. 병사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장을 다시 건네주었다. 작은 문이 덜컹거리며 열리며 준마가 들어가고, 전령도 들어갔다.
병사는 경례를 하지는 않았다. 〈빛의 신전〉의 인물들은 스스로를 가장 밑바닥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었다.
“무슨 일입니까?”
또한 신전의 전령은 매우 보기 힘든 일이었다. 예산이 좀 있다 싶으면 그냥 바로 슬럼가나 못 사는 이들, 가뭄과 자연재해, 몬스터와 야수에게 피해를 입은 자들에게 베풀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서민들은 귀족이 크게 다치는 것을 고대할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신전이 큰돈을 얻기 때문이다.
〈전령 오메인〉은 말을 타고 빛의 신전으로 향했다. 급하게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외성 지역에서는 크게 달릴 수 없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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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