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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눈 내리는 밤에 아버지에게 뺨을 맞으며 밖으로 쫓겨났을 때. 손발이 시리면서도 가슴이 그렇게 뜨거워지는 날도 없었다.
세상은 겨울이었지만 자신의 마음은 한 여름이라는 것임을 그때 깨달았다. 서로의 온도 차이가 대단히 크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식인이라는 것들은 돈에 스스로의 판단을 바꾸고, 갈대와 밀처럼 권력이라는 이름의 바람에 따라 휙휙 마음을 간사하게 바꾸어버린다.
그게 세상 사는 이치라고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험담하던 검은 것들을 보며 진절머리 치며 작은 집을 얻어 틀어박혔다.
그게 벌써 3년 전의 일이었다. 〈백수 게제라스〉는 아버지에게 쫓겨나 따로 집을 가졌고, 매일 어머니가 찾아와서 뒤를 챙겨주고 있는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귀족도 아니고, 그럼에도 글자와 많은 지식을 쌓고 책을 읽는 것을 좋아하는 문인들은 냉정하게 말하면 귀족들의 따까리였다.
하지만 자신의 주관이 강하고, 제법 가문의 역사가 있는 게제라스는 거침없는 파도와 같은 지식인이었다. 스스로를 〈지식인〉이라 말하는 다른 이들과 질적으로 차이가 났다.
칼이 들어와도 목젖을 움직이는 양반이었다.
본래라면 내청에서 일을 해야 했지만 그 성정 탓에 외청으로 소속되었다. 머릿속에 쌓은 책의 권수와는 다르게 외청에서 근무해야 했다. 〈내청 소속의 문인〉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과 다름없었는데, 당시에는 무성한 소문이 퍼질 정도로 파격적인 인사였다.
〈엘리트〉는 눈에 피가 흘러들어와도 〈엘리트〉여야만 했다. 받았던 기대와 반대되는 똑 부러진 주관으로 게제라스는 그렇게 떨어졌다.
그는 확실히 외청에 들어가는 문인과는 차별되는 환경을 가지고 있었다.
엘리트가 외청에 소속되니 외청 직원들의 텃세가 활화산처럼 터져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유교 경전을 달달달 외운 집현전 학자들마저 새로 사람이 들어오면 똥물을 먹으라고 낄낄거렸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이제는 〈백수 게제라스〉라고 불리며 이제는 평범한 사람들한테도 조롱의 대상이 된 그였다. 그런데 기사에게서 일각수의 고기와 가죽을 받은 〈늑대 용병단〉의 용병단장이라는 자가 찾아왔다.
‘의심스러울 수밖에.’
존대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자신의 무례도 일단 참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의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런 자와 손을 잡는 것은 문인인 그에게 힘든 일이었다. 다른 이가 수작질을 부린 것이라고 생각하기 충분했다.
지나치게 정중했던 것이었다. 알게 모르게 적이 많은 것이 게제라스였다.
‘날 이렇게 대접해주는 이유. 솔직하게 말해야 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백수 게제라스〉를 보며 드낙은 얼굴을 찡그렸다.
‘이거 미친놈인가?’
강도 사건을 혼자 해결했음에도 병사들에게 찾아가서 제법 비싼 식재료를 선물한 드낙이었다. 이처럼 개망나니와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물론 갑을로 따지자면 저쪽이 갑이었다.
‘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하지만 그래도 사회라는 것이 갑을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대기업 과장이 40살에 은퇴해서 하청 업체로 취직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지나가던 길에 담뱃불이 튕겨서 대판 싸웠더니, 이번에 결혼하는 여동생의 예비 신랑되는 사람인 경우도 있다.
사람 사는 것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그런데 이 미친 놈은 자신이 직접 계획적으로 드낙에게 무례를 줬고, 그럼에도 드낙이 잘 대처한 이유에 대해서 묻고 자빠졌다.
‘또라이인가?’
그럼에도 드낙은 혹시 나중을 위해서 일단은 맞춰주었다. 다른 문인을 구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후보로 넣는 게 좋았다. 문인은 그냥 지식과 글을 할 줄 아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하나의 세력이나 다름없었다.
귀족이 아니더라도 귀족 앞에서 큰소리치는 것들이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이유는 문인들 또한 그들끼리 끈끈하게 연결이 되어있기 때문이다.
드낙은 게제라스를 칭찬하는 것보다는 문인 그 계급 자체를 존중하는 말을 했다. 게제라스를 칭찬하며 넘어가기에는 상황이 너무 거지 같았기 때문이고, 간신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야 아무리 내쳐졌다고는 하지만, 당신은 문인이 아닙니까? 돈을 못 벌든, 무례를 저지르든, 이미 문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용서받을 수 있고, 대접받을 수 있지 않습니까? 문인을 존중해주기에 그대를 존중해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말에 〈백수 게제라스〉가 조금 놀랐다. 제법 생각이 있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게제라스의 물음은 끝을 몰랐다.
“이미 내쳐져서 일도 못 구하는 〈백수〉가 두렵다는 것이오?”
게제라스가 드낙에 대한 평가를 조금 높였다. 그것은 생각하기 힘든 것이고, 말로 하기도 어렵고, 그런 생각을 잘 정리하여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것은 더더욱 괴로운 것이었다.
“두렵죠. 사람 일은 어찌 될지 모르는 것 아닙니까? 저한테 짓밟히고, 복수하겠다고 다짐한다면 어디든지 일을 구하시겠죠. 제 말이 틀렸습니까?”
“하하하.”
게제라스가 웃음소리를 내며 술을 찾았다. 사실이었다. 그래서 더 술이 마시고 싶어졌다. 저 말은 곧 문인에게도 위아래가 있다는 말이었으니까. 실제로 문인의 위에는 귀족이 있었다.
드낙이 그를 두려워할 만했다. 문인들은 펜과 세치 혀로 상대를 괴롭힌다. 결코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문인 중에서도 핫라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 게제라스였다.
물론 지금은 아니었지만, 말 그대로 세상일은 어찌 될지 몰랐다.
“매우 현실적인 분이셨군. 그런 분이 왜 문인을 찾으셨소? 갈 리가 없지 않소. 그런 용병단의 총관일에. 차라리 상단과 연계하는 것이 나을 것이오. 제법 신뢰가 있는 용병단 아니오?”
그 말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나 해서 왔습니다. 그런데 상단과 연계하라, 조언이 날카로우십니다.”
“칭찬은 되었소. 누구나 생각할 수 있는 것 아니오?”
하지만 드낙은 생각하지 못했다. 그게 드낙에게 중요했다.
‘용병단의 운영.’
노예를 고용해서 단련시키며 자신의 신뢰성을 이용해서 상단과 연계한다면, 그 어떤 상인이라도 계약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아쉬웠다. 상단을 도와주기 위한 인력을 키워야 하므로 드낙이 생각하는 용병단의 인원에서 두 배는 더 초과해서 용병단을 꾸려야 했다.
‘차근차근.’
사업 잘 된다고 벌리다가 자살한 사업가의 이야기를 뉴스에서 몇 번 접해본 드낙이었다.
“혹시 조언하는데 돈을 받습니까?”
게제라스는 뚱한 표정을 지었다. 드낙은 벌써 자리를 일어나 문을 나가도 되었는데 자꾸 앉아서 말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화가 나지 않으시오? 칼밥 먹으며 사는 용병들은 성질이 굉장히 급하던데.”
드낙은 손가락으로 그가 앉은 의자를 가리켰다. 이대로 곱게 일어나는 것이 싫었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당신이 앉아있는 의자는 대단한 겁니다. 그걸 모르시나 봅니다?”
“음.”
게제라스에게 한 방 먹인 드낙이 몸을 일으켰다. 그도 사람이었기에 게제라스가 썩 좋은 인재로 보이지 않았다. 물론 충분히 총관 일을 맡을 실력은 있어 보였다. 하지만 용병단의 총관은 자존심이 없어야 했다.
강직한 문인보다는 박쥐같은 문인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쉬웠다. 인재 자체가 적었고, 이런 만남조차도 아쉽기 때문이었다.
‘최소한의 장치는 걸어둬야겠다.’
“혹시라도 생각이 있으시면 〈늑대 용병단〉의 용병 하우스로 찾아오시면 됩니다.”
직접 자신의 발로 찾아오라고 말했다. 그 말의 뜻은 분명했는데, 자신이 가진 그 모든 것을 접고 들어올 수 있느냐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총관이 된다면 그 주인은 드낙이 되는 셈이었으니까.
물론 게제라스는 코웃음을 쳤다.
“찾아온다면, 버팔로 나이트의 추천서를 보여드리겠습니다.”
그가 물만 한 떡밥도 하나 던져주었다. 생각이 많고, 앞의 수를 내다보는 것에 능한 것처럼 보였던 〈백수 게제라스〉였다. 그는 분명 답을 찾을 것이다. 귀족들과 연결된 줄도 있을 테고.
그는 스스로 드낙에 대해서 자세하게 알고 나서 대문을 두드릴 것이다. 물론 그전에 드낙이 다른 문인을 구한다면 드낙에게 발을 걷어차이겠지만.
“아.”
드낙이 몸을 돌려서 또 하나를 물어보았다.
“경비병을 구하고 싶은데, 용병을 쓰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럼 어느 누구를 고용하겠습니까?”
“난 총관도 아닌데 왜 나한테 묻는 것이오?”
“그래도 지식을 쌓은 분이신데, 좋은 말씀 하나 들을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게제라스는 고민 하나 없이 툭하고 던졌다.
“하릴없이 지내는 은퇴군인을 고용하겠소. 몸은 좋은데, 돈은 모으지 못한 사람으로. 친구까지 묶어서 고용하면 더 좋겠지.”
드낙은 고개를 까딱거리며 집을 나섰다.
‘은퇴군인이라?’
락손이 생각났다. 그만큼 성공한 은퇴군인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만한 사람은 나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군에서 소속되어 살아온 만큼 규율과 최소한의 도덕심은 가지고 있을 터였다.
드낙은 또 하나의 문인 추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문전박대를 당했다.
“어디서 감히 용병단에서 바이난 님을 고용하려고 찾아온단 말이냐!”
북쪽 구역에서 마당을 쓸고 있던 하인이 빗자루로 허공을 휘적거리면서 드낙에게 큰소리를 빵빵쳤다. 하지만 그놈도 소문은 들었는지 드낙이 가만히 노려보자 빗자루를 내렸다.
드낙을 때릴 정도로 간 큰 하인이 아니었다. 기분이 나빴기에 하인에게 거침없이 하대하였다.
“그래도 안에 언질은 한 번 넣어봐라. 어서!”
소리를 크게 한 번 지르자 하인이 기세에 밀려 움찔하더니 허둥지둥 집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시간이 지나고 볼따구를 한 대 맞은 하인이 손가락질을 했다.
“들을 가치도 없으시단다! 썩 꺼져라!”
드낙은 으쓱하며 마당을 벗어났다. 〈문인 바이난〉은 변변찮은 일도 없으면서 술을 좋아하는 문인이었다. 높은 곳만 바라본 지도 이제 8년. 슬슬 낮은 곳을 볼 때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라며 〈피가득 술집〉에서 말을 해준 것이다.
자신들의 배달 고객 중 큰 손이라고 술을 선물로 주면 고마워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술을 건네주지도 못했다.
‘책 좀 읽었다고 정말 막 나가는 놈들이 많네.’
어디서 돈을 얻는지 궁금할 지경이었다. 술, 도박, 마약. 뭐라도 하나는 가지고 있는 놈이 대다수였고, 그런 놈들은 찾는 곳도 없으면서 큰소리만 쳐대었다.
특히나 〈용병단의 총관〉이라는 직책에 입술을 떨면서까지 화를 내더니 자신의 수준이 여기까지 떨어졌냐고 혼자 탄식하면서 시무룩해져서는 들어가기도 했다.
결국 드낙은 일단 〈은퇴군인〉부터 고용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들이라면 경비병도 되고, 총관 일도 그럭저럭 해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문인들의 위상이 더 높아.’
자존심 빼면 시체였다. 용병단의 총관은 은퇴 군인들에게 맡기는 게 괜찮아 보였다. 특히나 제법 병사들을 통솔하는 중간 간부까지 올라간 이라면 문서 작업도 가능했다.
은퇴군인을 고용하는 일은 말 그대로 깡으로 생으로 발품을 파는 것이었다. 혹은 외성 지역의 사거리마다 배치된 게시판에 딱딱 붙여서 연락을 기다려야 했다.
〈늑대 용병단〉은 두 가지 모두를 병행했다. 효과는 즉각적으로 드러났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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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