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40화 (140/1,239)

0140 <-- 방문자 -->

그래도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정신없이 신전으로 향한 드낙은 입구에서 막혔다. 심야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성기사 둘이 입구를 지키고 있었는데, 두 명 모두 함부로 무기를 뽑지는 않은 채 드낙을 저지했다.

“천천히 다가오시오.”

“예.”

드낙이 성기사의 말을 들으며 걸음을 늦추었음에도 성기사들은 경계심을 높였다.

“용무가 어떻게 되시오? 부상을 입은 것 같지는 않은데.”

나이가 젊었기 때문에 배고프다고 말할 것도 아니라 여겼다. 당장 어디에 가더라도 노역으로 먹고 살 수 있는 것이 젊은이라는 상품이었다.

“이곳에서 치료를 하고 있는 사람을 찾기 위해서 왔습니다. 리라엔 사제님에게 찾아가라고 병사들이 말했습니다.”

“아. 병사들이 그랬다면, 세아 자매님을 말씀하시는 것이로군.”

“세아를 아십니까?”

그 말에 성기사 두 명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주말에 항상 밀빵을 가져와서 나눠주곤 합니다. 신을 믿는 자매님 중에서도 아주 존경스러운 분이시죠.”

세아는 아무래도 봉사를 매주하는 듯했다.

“늑대 용병단 소속입니까?”

“···추적 용병단 소속입니다.”

성기사의 말에 드낙이 정정했다. 늑대라는 강렬한 이미지 때문에 용병단 이름을 잘못 알고 있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단원이라면 죄송하지만···”

시간이 시간이라 성기사가 송구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용병단장 드낙입니다. 제가 고용한 사람인데, 폭행을 당했다는 것을 듣고 서둘러 오는 길입니다. 〈용병 기숙사〉에 강도가 다섯이나 들어왔었습니다.”

“아! 그렇다면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제가 안내자를 붙여드리겠습니다.”

조금 조금씩 부지를 필요할 때만 늘려왔기 때문에 신전 내부는 엉망진창으로 난잡했다. 그 덕에 안내자가 없으면 길을 잃기 쉬웠다. 드낙은 그런 것을 잘 몰랐기에 웃으며 괜찮다고 이야기를 했다.

“기다리고 계십시오.”

성기사는 눈웃음 지으며 안으로 들어가서 곧 사제복을 입은 젊은 청년을 데려왔다. 눈곱이 낀 그는 드낙에게 인사를 올렸다.

“안내를 맡은 엘배인 사제라고 합니다.”

“자,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드낙은 이렇게까지 해주는 것에 감사함을 표했다. 이곳의 사제들은 〈신성력〉을 손에 움켜쥐고 있으면서도 한없이 자애로워 보였다. 그건 드낙에게 의심을 낳게 만들었다.

‘믿을 수가 있어야지.’

신의 은총이라며 성추행을 일삼은 종교인들에 대한 소식을 너무 자주 뉴스를 통해서 접했기 때문에 편견이 항상 자리 잡고 있었다. 공짜로 상처를 치료한다고 해도 설마 그럴까 한 생각도 계속 자리 잡고 있었다.

이리 꺾고, 저리 꺾으면서 드낙은 신전에서 사람의 살냄새가 잔뜩 풍겨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어디든지 빨랫줄이 있었고, 옷이 널려있었다. 그것은 대부분 누더기였다. 또한 어디에서든지 바닥에 천을 깔고 잠을 자고 있는 부랑자들이 보였다.

그들에게서는 악취 하나 나지 않았는데 행색은 형편없었지만, 최소한 씻고 다니는 것처럼은 보였다.

“부랑자들입니까?”

“예. 슬럼가의 형제자매들입니다. 대부분 그곳의 텃세를 버티지 못한 이들이 신전으로 찾아옵니다. 애석한 일이지요. 가을이 오기 직전에는 아기도 서로 바꾸어서 삶아먹는 곳이라서 신전이 힘을 써도 항상 굶주림이 가득한 곳입니다.”

드낙의 물음에 엘배인 사제는 아주 상세하게 이야기해주었다. 정보를 숨기고 싶은 것도 없었고, 날 것 그대로를 말해주었다.

“이렇게 하는 것보다는 그들에게 일을 주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돌부리가 박히는 야지를 개간하는 것에도 목장의 마소(馬牛)들이 먹을 것이 없다고 반대를 크게 해서···”

땅이란 땅에는 모두 작물이 많았다. 하지만 밀이나 보리는 하나 없었고, 모두 감자 같은 뿌리 작물로 가득했다. 최대한 많은 작물을 여러 번 수확하기 위해서임을 알 수 있었다. 관상용 나무의 나무껍질을 뜯어먹은 흔적도 많았다.

드낙은 그것을 보면서 괜히 가슴이 찡했다.

아이가 아빠를 봤다고 달려오면 흡연구역임에도 괜히 허공에 손짓을 하고, 담배를 끄는 것이 한국 남자들이었다. 은근히 마음 따뜻한 면이 있었다. 그건 애늙은이인 드낙도 예외가 아니었다.

검은 문에 거대한 탐욕을 드러내면서도 남을 돕는 모습이 절로 보이는데 가슴 한 켠 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물론 가슴이 떨린다고 해서 자신의 돈을 기부한다던가 그런 것은 일절 없었다.

세아는 신전의 가장 구석진 곳에 누워있었다. 드낙은 리라엔 사제를 만날 수 있었다. 그녀와 엘배인 사제는 서로를 보곤 고개를 숙였다.

“사제님. 지금은 주무실 때인데, 왜 일어나 계십니까?”

엘배인의 말에 눈밑이 검은 리라엔 사제가 웃음소리를 냈다.

“자는데 병사들이 피떡이 된 여성을 데리고 오는데 어떻게 잠을 자겠습니까?”

“다른 사제님들도 있는데 왜 굳이···”

“제 이름 때문이겠죠. 최근에는 이름을 바꿀까 싶기도 합니다.”

“하하하.”

농을 던지는 리라엔 사제의 말에 엘배인 사제가 웃음소리를 냈다. 그리고는 작별 인사를 서둘러 하며 이곳을 떠났다. 그 사이에 드낙은 주위를 살폈는데, 전부 병들고 부상을 입은 사람들뿐이었다.

“단장님.”

세아의 말에 드낙이 서둘러 그녀에게 다가갔다. 피떡이 될 정도로 옴팡지게 구타를 당했음에도 지금은 붓기가 다 가라앉았고, 피멍만 남아있었다.

“괜찮습니까?”

“예···하으으···”

말을 하려다가 턱을 조금 내린 세아가 눈물을 주륵 흘러내리며 고통을 호소했다. 드낙은 활화산처럼 타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현대에서 수십 년을 살면서 여자 한 번 때리지 못했던 그였다.

말 그대로 살색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온몸이 피멍투성이였다. 그야말로 끔찍했다. 이빨 하나도 없었고, 귓불이 찢겨 있어 딱지가 들러붙어있었다.

‘이 개새끼들이.’

피가 머리로 솟아올라왔다. 꾹꾹 참은 드낙이 분노를 삭히고 있을 때, 리라엔 사제가 드낙의 어깨에 손을 올렸다.

“이렇게 찾아와준 것만으로도 세아 자매는 큰 기쁨을 느끼고 안도할 것입니다. 대단한 용기를 가지신 겁니다.”

“대단한 용기라뇨?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 말에 리라엔 사제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

“다친 이들을 찾아오는 것이 얼마나 용감한 일인지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깊게 깨닫고 있는 게 접니다.”

드낙은 밑도 끝도 없는 칭찬에 괜히 속이 불편해졌다. 그래서 주제를 돌렸다.

“아직 치료가 덜 된 겁니까? 아니면 이게 다 된 겁니까?”

“모든 이들이 아파하기에 최소한의 처치만 했습니다. 더 이상은···”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에는 돈이었다.

“치료비를 주면 완치가 됩니까?”

그 말에 리라엔이 작게 미소 지었고, 세아가 드낙을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쳐다보았다.

“신전은 돈을 받지 않고, 뭘 더 준다고 먼저 치료해주지도 않아요.”

“예? 하지만 귀족을 위해 신성력을 여분 남겨두지 않습니까?”

리라엔 사제가 거기에 대해서 답해주었다.

“이 신전이 여기에 있게 해준 것,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준 것. 그 외의 다양한 도움을 주는 것에 대한 대가일 뿐입니다. 귀족들이 스스로의 잣대로 신전을 가늠하기에 그 잣대대로 한 것뿐입니다.”

귀족이 원하니 해준 것이라는 소리였다. 신전도 현실에 살고 있으며 타협한다는 것을 스스로 자백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함에 있어서 한 점 부끄럼이 없어 보였다.

괜히 속이 불편해진 드낙은 도망치듯이 신전을 빠져나왔다.

다음 날에는 경황이 없어서 그냥 돌려보낸 병사들에게 보답을 하기 위해 움직여야 했다. 그냥 잊으면 되겠지만, 앞으로 횃불 성채에서 사는데 그냥 지나가기에는 드낙이 가지고 있는 사회생활 경험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이건 얼맙니까?”

잘 말려진 생선 10마리가 밧줄이 엮어서 한 줄로 주륵 늘어져 한곳에 매달려있었다.

“아! 〈마른 몰렌〉? 비싼 놈이지! 30닢!”

마리당 동화 3닢으로 비싼 놈이었다. 하지만 1줄로 엮어서 10마리나 있었기에 제법 선물용으로 좋아 보였다. 현재 드낙의 재산으로 부담스럽지도 않고, 병사들이 좋아하기에도 충분했다.

“두 줄 주세요.”

“어디 중요한 일이라도 있나 보지? 보통 몰렌은 생일 때나 먹는 것이거든!”

동화 60닢을 건네고 드낙은 곧장 외성벽 쪽에 있는 〈경비병 병영〉으로 향했다. 내성벽과는 확연하게 다른 곳이었다.

“어떻게 오셨습니까?”

당연하다는 듯이 병사가 입구를 막았다.

“예. 어제 북쪽 구역에서 강도 사건 때문에 경비대장님에게 최소한의 감사를 표하려고 왔습니다.”

“아! 그러십니까. 이쪽으로 절 따라오십시오.”

머리가 특히 작은 몰렌이라는 생선은 특히나 살코기 부분이 많아서 인기였다. 그것을 들고 있는 것은 당연히 〈경비대장 세베긴〉에게 줄 것으로 보였기에 한 방에 통과였다.

“늑대 용병단의 드낙 용병단장 아니오?”

집무실에서 흉갑을 헐겁게 풀어헤치고 있는 세베긴이 느긋하게 일어나서 드낙과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살짝 이야기가 오고 갔다.

“아! 그럼 그 사건이 일어난 곳이 드낙 용병단장의 용병 하우스였소? 그 강도 놈들도 지지리 운도 없군.”

“하하하. 그렇지요. 그래도 고생하시는 병사님들 덕분에 수고를 크게 덜었습니다. 그래서 그분들에게도 한 줄이라도 주고 싶어서.”

마른 몰렌 한 줄 10마리를 세베긴에게 건네주며 말하자 경비대장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성의 〈수비대장 세르인 토치라이트〉과는 다르게 서민이나 다름없는 것이 경비대장 세베긴이었다.

“그런 수고까지! 〈5조〉 녀석들이 아주 좋아하겠군. 때마침 휴식 타임인데 내 병사를 시켜 안내를 시켜주겠소.”

“감사합니다.”

드낙이 고개를 숙이자 경비대장이 흐뭇해하며 어깨를 두들겼다. 무려 1줄에 동화 30닢짜리 선물이었다. 오늘은 재수가 좋은 날로 여길 정도로 나쁘지 않은 날이었다.

〈5조 순찰조〉는 밤을 새웠기에 병영에서 잠을 자고 있었다. 하지만 경비대장 세베긴의 말인데 어떻게 잠만 자고 있을까? 병사 하나가 순찰조장의 옆구리를 발로 두드리며 깨웠다.

“이런 제기랄.”

쌍욕을 지껄이며 조장 완장을 차고 있어서 혼자 일어난 〈순찰조장 브린〉은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그리고 해죽 웃으면서 〈마른 몰렌〉을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순식간의 표정 변화에 드낙도 웃음을 지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걱정 마십시오!”

그가 가슴을 탕탕 두드렸다. 이 소문은 금방 퍼질 것이었다.

이스핀과 도렌은 점심이 되어서야 용병 하우스에 도착했다. 그리고 사달이 났다는 것을 드낙의 입으로 듣고는 펄쩍 뛰었다. 특히나 도렌은 세아에게 조금 마음이 있어서 더욱 날뛰었다.

“진정해!”

오죽하면 이스핀이 도렌에게 진정하라고 할 정도였다.

“병문안은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세아가 다쳤다고 하자 적극적으로 변한 도렌의 모습에 이스핀이 갑자기 배를 잡으면서 웃었다. 드낙은 이스핀과 도렌에게 병문안 가라고 말했다. 자신은 이미 갔기 때문이었다.

모두가 사라지자 드낙은 품에서 〈고블린 수면향〉 혹은 〈잠자는 이들의 향로〉라 불리는 주먹만 한 향로를 꺼냈다.

‘어떻게 사용하는 것이지?’

마력을 조금 주입하자마자 새하얀 향이 피어오르자 드낙이 웃음 지었다. 하지만 동시에 의심이 들었다.

‘큰도끼와 명사수 젠은 마력을 운용할 수 없다.’

서로 맞지 않는 어긋남. 향로의 뚜껑을 열었지만 마력을 품은 것은 나오지 않았다.

‘누군가 용병단을 노렸다.’

하지만 그것이 누구인지는 모르게 되어버렸다. 아는 놈은 모조리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전부터 있었던 드낙의 악인에 대한 매서운 손 때문이었다.

‘낭패로군. 누구지?’

마력을 운용하면서 자신에게 피해를 주려고 수작질을 부릴만한 것은···

‘흑마법사 뿐인데.’

하지만 흑마법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조잡한 수법이었다. 이해가 되지 않은 드낙은 한참 동안 1층의 넓은 집무실에 다리를 떨면서 생각에 잠겼다. 답은 나오지 않았다.

찝찝한 채로 강도 사건은 그렇게 끝이 났다.

========== 작품 후기 ==========

5565자

더위야 물럿거라! 수박 나가신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