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38 <-- 방문자 -->
“하나를 더 달라고? 허헛.”
그거 헛웃음을 지었다. 하지만 드낙의 표정은 진지했다. 그것을 빌미로 다른 것을 빼려는 것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절 실험체처럼 쓰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알버트가 질색했다.
“실험체라니···그 정도는 아니네.”
하지만 드낙은 말하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경험〉을 이야기했는데, 그것만큼 상대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해시키는데 좋은 것이 없었다.
흑마법사의 제자들. 포낙서스와 판데서스! 그들의 최후를 보라. 그 끔찍함을 이야기하며 드낙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그래서 꺼림칙합니다.”
“음. 그렇다면야···”
마치 자신이 흑마법사가 된 것 같은 기분에 마법사 알버트는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실험체처럼 여겨질 수 있었다. 충분히 그러했기에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또한 마법 장비를 하나 더 달라는 것 때문이기도 했다.
마법사가 마법 장비를 만드는 것은 매우 고된 일이다. 〈간략화〉가 이루어진 숙달된 수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복잡했다.
‘정보 따위 구두로 들으면 될 뿐이다.’
“그럼, 강화 화염 방패를 사용했던 상황에 대해서 상세하게 보고서를 받고 싶은데. 그것은 가능하겠는가?”
“당연히! 해드려야지요.”
알버트는 〈충격 흡수 반지(Body Absorber Ring)〉를 건네주고, 〈굴렁쇠 코뿔소 가죽 갑옷〉을 챙겼다.
“제법 무겁군.”
그 말에 드낙이 가죽 갑옷을 뺏듯이 들었다.
“아, 고맙네.”
마지막까지 윗사람처럼 행동하는 알버트를 배웅해주었다.
“물건이 완료되면 페리에를 통해서 전하도록 하겠네.”
“예.”
시간을 묻지는 않았다. 괜히 닦달하는 것처럼 보일 가능성이 있었다. 괴짜로 통하는 마법사였기에 드낙은 모든 협상이 끝난 뒤에도 그의 감정을 건드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하지 않아도 될 짓이었다.
정 급하면 방문하면 될 일이었다.
‘금고를 사야 하는데.’
은화 2천 닢을 보관하기 위함이었다. 추가로 금화도 보관해야 했다. 당연히 보통 금고로는 부족했다.
이스핀이 다시 돌아왔다.
“금고를 사야겠어.”
“금고··· 말씀입니까?”
드낙의 말에 이스핀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왜? 다른 좋은 방법이 있으면 말해봐.”
“〈스트롱박스〉에 맡기면 되는 것 아닙니까? 보통 돈도 아니고 말입니다.”
“스트롱박스? 거긴 뭐 하는 곳이지?”
“금고를 만드는 기술자들의 모임입니다. 남부 왕국이든 제국이든 어디든 있습니다.”
“그래? 처음 듣는 소리인데.”
“도시에만 있고, 사실 돈 많은 사람이 아니면 찾지도 않으니까요. 생소할 겁니다.”
이스핀이 말하는 스트롱박스는 은행과 비슷했다. 다른 점이라면 〈보관료〉를 받는다는 것과 수준 낮은 마법사들을 이용해서 어음을 양피지로 써준다는 점이었다.
‘돈을 잃는 것보다는 낫지.’
“도렌이 오면 그곳으로 가는 게 좋겠네.”
“예.”
도렌은 세아와 함께 장을 봐왔다. 미리 이야기한 대로 밀이나 곡물은 사 오지 않았다. 저녁 준비를 부탁하고, 그들은 잠깐 휴식을 가졌다.
드낙은 자신의 개인실에서 양피지를 끄적거렸다.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였다.
금화 30닢. 은화 2천 닢.
용병단장이 가지고 있기엔 엄청난 돈이었다. 이것으로 상단도 꾸릴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돈 굴리는 것은 드낙이 하고 싶은 일이 아니었다.
‘싸움.’
피와 시체 그리고 죽음으로 꽃피우는 〈검은 문〉. 그것을 원했다. 그게 아니라면 신분상승이 힘들다는 것을 하루가 지날수록 더욱 체감하고 있었다.
‘문인도 구해야 하고.’
행정, 내정 관련 업무를 처리하기 위한 문인이 필요했다. 앞으로 돈이 나갈 구석이 많았다. 그를 지키기 위한 사람도 하나 구해야 했다.
‘세아와 함께 일할 사람도 더 구해야 하고.’
할 일이 태산이었다. 장비도 구매해야 했고, 마차도 구매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말의 구매는 어려웠다. 관리할 엄두도 나지 않았고, 리스크가 크게 느껴졌다. 야지에서 주워오는 늑대와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말은 대여하는 것으로 하자.’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을 때, 시끄럽고 조잡한 종소리가 울렸다. 한국에서는 듣기 힘든 괴팍한 종소리였다. 세아가 계단을 오르내리며 종을 울리고 다니는 소리였다.
딩! 땅 덩!
1층으로 내려가 식당으로 향했다. 이스핀과 도렌은 이미 도착해있었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곧바로 〈스트롱박스〉로 향하였다.
“규모가 굉장한데.”
외청과 정반대되는 곳에 있었는데, 〈남쪽 상업지구〉에 있는 것이 〈스트롱박스〉였다. 척 봐도 경계가 매우 삼엄했고, 횃불 성채의 병사도 있었다.
‘귀족과 연계했군.’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이었다. 현금을 크게 쥐고 있는 〈금고업자〉들은 현물을 크게 쥐고 있는 귀족과 손을 잡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이런 곳도 있었군.’
드낙은 은화만 넣을 생각이었다. 금화는 따로 가지고 있을 생각이었다. 제법 묵직했지만 들고 다닐만했다.
“어서 오십시오. 처음 보는 분들 같은데.”
병사들과 칼 좀 써본 자들이 지키고, 넓은 부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르게 1층 홀에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또한 실질적으로 카운터를 보는 사람은 다섯 명도 되지 않았다.
“예. 처음 왔습니다.”
“그러십니까. 일단 가장 기본적인 사항부터 여기 이 양피지에 적으시면 됩니다.”
기름을 묻혀서 말끔하게 관리하는 긴 수염을 가진 남자는 통성명도 하지 않고, 양피지를 들이밀었다. 마치 여기 오려면 글은 쓸 줄 알아야 한다고 강요하는 모습처럼 보였다.
드낙이 주위를 쓱 살피니 자신을 보고 있는 경비병이 보였다.
‘글 못 쓰면 쫓아보내기라도 하나? 기분 나쁘네.’
해외여행 가서 공무원의 행정처리를 보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이곳의 서비스는 그만큼 노골적으로 상태가 안 좋았다.
인적 사항을 적자 남자의 눈이 조금 커졌다.
“〈추적 용병단〉? 혹시 늑대 용병단 아닙니까?”
“늑대를 부리기는 합니다만, 추적 용병단입니다.”
“이거 정말 영광입니다!”
그가 호들갑을 떨며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제 이름은 〈조멜 스트롱박스〉라고 합니다. 소문으로만 들었는데, 늑대 용병단의 단장님을 이렇게 만나다니!”
“그렇게 유명합니까?”
“그럼요. 늑대 하나로 기사와 공을 다투었다고 소문이 자자합니다!”
아무래도 소문이 부풀러지다 못해 그냥 새로운 소설이 퍼져나가고 있는 듯했다.
“사실이 아닙니다. 그저 조금 도왔을 뿐이죠.”
“기사를 도울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일이죠. 아무튼 정말 반갑습니다.”
조멜이 악수를 청하자 드낙이 손을 잡아주며 흔들었다. 단번에 양피지에 도장이 쿵하고 미리 찍혔다.
“맡기실 금액은 얼마입니까?”
“여기, 은화 2천 닢입니다.”
“받았습니다만, 확인을 해야 해서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조멜이 뒤에 있는 널찍한 테이블에 은화를 양손으로 들어서 옮긴 다음에 뒤에 있는 문을 두드렸다. 그러자 아이들이 다섯 명 우루루 문을 열고 나타났다. 품삯을 받고 일을 하는 듯했다.
조멜은 아이들이 세알리는 것을 다시 검수하듯이 세알리며 텅 빈 가죽 포대에 집어넣었다.
“확실히 은화 2천 닢입니다.”
양피지에 금액이 써지고, 그 밑에 보관료를 조멜이 책정했다.
“보관료는 1년에 5은화입니다. 금액 상관없이 책정됩니다.”
“헉. 무슨 금액이 북쪽 지역 거주세보다 비쌉니까?”
드낙이 헉소리를 냈다. 폭리도 이런 폭리가 없었다. 북부지역에 집을 내고, 세를 내어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그래서 더더욱 놀랐다.
“처음이면 당황할만합니다. 하지만 저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이해하시죠?라는 표정으로 되묻는 모습에 드낙이 반문했다.
“예?”
“으흠! 큰돈을 보관하는데 한두 가지 돈이 쓰이는 것이 아닙니다. 횃불 성채의 경우에는 성주님의 병사를 빌린 대가로 돈을 내야하고, 이 넓은 상업지구의 땅값도 내야 합니다. 무엇보다 금고를 지키는데 필요한 금고를 제작하는 것은 물론이고, 인건비에 마법사를 통한 다양한 마법까지.”
조멜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
“돈이 얼마나 많이 들어가는지. 양피지의 어음조차도 신뢰성을 위해서 마법적으로 처리가 됩니다.”
“······”
드낙이 할 말이 없자 조멜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말했다. 웃음마저 짓고 있었다.
“처음 오시는 분들은 다 그렇게 말합니다. 하지만 저희들만큼 신뢰 있는 곳이 없습니다. 큰돈, 어떻게 안심하고 맡기겠습니까? 유지하는데도 어마어마한 돈이 들죠. 저희들은 〈토치라이트 가문〉의 돈마저 보관하고 있습니다.”
“믿고 맡기십시오.”
드낙은 입맛을 다시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은화 2천 닢을 맡기기에는 여기뿐이었다. 자신의 기숙사를 철옹성으로 만들기에는 배보다 배꼽이 많았다.
“2천 닢 중에 1900닢만 맡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95닢을 받았다. 보관료 5닢을 뺀 값이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피까지 뽑고 나서야 계약을 마칠 수 있었다. 손을 본뜨고, 마법 수정구로 얼굴을 푸른 마력이 훑었다. 매우 중요한 것처럼 보였다.
‘현대보다 보안면에서는 나을지도.’
마법이라는 것은 편할 때는 정말로 편해 보였다. 필요한 모든 것을 마치고, 양피지를 받을 수 있었다.
“잃어버려도 되지만, 잃어버리면 돈을 더 내셔야 합니다.”
“잃어버리면 얼마를 배상해야 합니까?”
“마법 처리가 된 것이라 그 양피지가 은화 1닢짜리입니다.”
도렌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사는 세계가 달랐다. 드낙은 소중하게 양피지를 집어넣었다. 몇 천만 원짜리 차는 한 방에 구매해도, 100원 하나 아깝게 생각하는 그였다.
그렇게 드낙은 스트롱박스의 VIP고객이 되었다. 한 포대에 불과한 크기의 돈을 맡겼기 때문이다. 이런 고객이 스트롱박스에게 가장 좋은 고객이었다. 어떤 상인은 돈을 맡기고 보관료를 내는 것을 아쉬워해서 맡길 때는 동화로 바꾸어서 맡기기도 했다.
그것에 비하면 드낙은 스트롱박스에게 있어서 최고의 이득을 주는 고객이나 다름없었다. 말 그대로 〈스트롱박스가 원하는 VIP 고객〉이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하자. 해산해. 난 따로 볼 일을 볼 테니.”
“예.”
해질녘도 되지 않았음에도 단원들을 해산시켰다. 도렌은 이스핀에게 어깨동무를 당해서 어디론가로 향했다. 히히덕거리는 것이 놀 생각인 듯했다.
“단장님도 〈피가득 술집〉으로 가시죠. 거기에 새로 온 여직원이 있는데, 얼마나 쌔끈한지! 꼭 술 마시면서 한 번은 봐야 한다니까요.”
“시끄럽다. 피곤하니 난 돌아간다.”
너무 많은 갑질을 당했기에 드낙은 정신적으로 피로함을 느끼며 돌아갔다. 엿 같은 일진이었다.
그대로 일찍 잠에 빠진 드낙은 초저녁에 한 번 깨서 적당히 끼니를 때웠다. 세아도 이스핀과 도렌이 저녁에 오지 않자 작게 요리를 하고, 퇴근한 뒤였다.
‘잠이 안 오네.’
가만히 누워서 비전의 어레인지를 생각하던 드낙은 몸을 움직여 땀이라도 뺄 생각을 가지고, 창문을 열었다. 시간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자정을 넘긴 것 같은데.’
롱소드를 허리에 차고, 그대로 문을 나섰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누군가가 문 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살짝 열린 문이 다시 쾅하고 닫혔다.
‘강도!’
드낙이 발로 문을 힘껏 걷어찼다. 두 번의 신체능력과 관련된 검은 문을 소유한 드낙이었다. 오래된 문은 단번에 박살이 났다. 검을 뽑은 드낙의 눈에 검은 형체가 보였다. 그는 넘어져있었는데, 박살난 문의 파편을 치우면서 일어나려고 했다.
가만히 있을 드낙이 아니었다. 단칼에 강도를 베었다.
“끄악!”
베였지만 강도는 기어가다가 헐레벌떡 도망쳤다. 드낙이 놈을 쫓았지만 걸음을 멈추어야했다. 창을 통해서 들어오는 달빛으로 보이는 강도들의 숫자는 다섯이 넘었다.
싸우는 소리를 듣고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강도들이 소리쳤다.
“죽여!”
“놈은 혼자야!”
놈들이 어떻게 안전하게 기숙사 안에 들어왔는지 따질 때가 아니었다. 기숙사의 복도는 두 명이 검을 휘둘러도 상관없을 정도로 넓었다. 동시에 두 명을 상대해야 했는데, 곁눈질로 활을 뽑아드는 강도도 보였다.
‘작정을 했군.’
하지만 그들은 큰 실수를 범했다. 소문만 듣고 왔는지, 드낙에 대한 두려움이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드낙에게 있어서 큰 행운이었다.
========== 작품 후기 ==========
5681자
감사합니다. 싸우지들 마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