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36화 (136/1,239)

0136 <-- 내성 구경 -->

코스요리로 식사가 올라왔다.

“사과를 으깨서 만든 겁니다. 꿀도 들어갔고 그 외에 다양한 소스를 넣어서 작은 불로 살짝 데웠습니다.”

드낙은 한두 입 먹고 말았는데, 식감이 그렇게 좋다고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반면 이스핀과 도렌은 허겁지겁 작은 그릇에 담긴 것을 비웠다.

“와.”

“달다, 달아. 향도 좋고.”

이스핀이 어깨춤을 추면서 맛을 즐겼다. 음식점에 따라서는 소금값을 줄이려고 그냥 삶아서 내놓기도 한다. 단맛을 느끼는 것은 더 어렵다. 꿀벌처럼 꽃잎을 찾아다닐 정도다.

그에 비하면 벌꿀이 들어간 사과 으깬 것은 꿀맛이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이스핀은 욕심을 내서 드낙이 남긴 것을 후루룹 입에 털어널었다.

“그러다가 좋은 게 나와도 다 못 먹는다. 후회한다니까.”

“단장님. 제가 식탐 하나는 누구한테도 안 집니다.”

이스핀이 근엄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하지만 그 표정은 얼마 가지 못했다. 계속해서 나오는 음식들은 실로 많았다. 족히 10종류는 되어 보였다. 한정식과 비교하기엔 부끄러운 수준이었지만 큼직큼직한 육류가 많았다.

고기는 곧 권력을 의미하기도 하니까, 원 없이 내어주는 것이다.

“우와. 더는 못 먹겠습니다.”

결국 이스핀이 포크를 놓았다. 도렌은 자기에게 주어진 것을 억지로 말끔하게 비워냈다. 드낙은 고기를 많이 먹었다. 체중을 늘려야 하기 때문이다. 격투기에서 체급을 크게 중요시하는 것처럼, 몸무게는 곧 전투력이었다.

“끄윽.”

이스핀이 배를 두들겼다. 식사가 끝나고, 차 한 잔을 마셨다. 향이 좋아서 술을 좋아하는 이스핀도 먹을만했다. 무엇보다 달았다.

‘귀족의 음식은 단맛이 추가되었군.’

코스 요리를 맛본 드낙은 귀족들만의 식문화의 중심을 꿰뚫을 수 있었다. 서민들의 음식이 짠맛이라면, 귀족들은 거기에 단맛이 추가된 것과 같았다. 〈남부 왕국〉만 그럴 수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 느껴지는 것은 그랬다.

“이쪽으로 제한되긴 하지만, 내성 구경을 시켜드리겠습니다.”

내성 1층 중에서 그나마 중요하지 않은 곳들을 구경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낙은 심드렁했다. 정원, 약초밭, 도기나 관상용 무구들이 서 있는 복도. 벽에 걸린 미술품을 구경하는 것이 전부였다.

설명을 들으며 이 세상에 대한 배경 지식을 쌓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다. 미술품 중에는 신전이 준 것도 있었다.

“모든 것의 창조가 있었다고 말해지는 〈시작의 때〉를 그림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매우 직관적이라서 평가가 박하지만, 그래도 그런 것을 추구하는 것만으로도 최소한의 인정을 받고 있는 작품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름 위에 있었고, 한 사람이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 주위로 수많은 불똥이 거친 화법으로 함께 떨어지고 있었다.

“신기하네요.”

드낙의 말에 종교학에 관심이 많고, 실제로도 관련 책을 저술하기도 하는 젠 토치라이트가 조금 더 설명해주었다.

“오직 신들만을 위한 땅. 그곳을 떠난 신들 중에 하나가 저희들의 세상에 떨어졌습니다. 이유는 모르지만, 그분의 모든 것은 파편이 되어서 수많은 생명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이 세계의 창조주에 대한 가장 원론적인 내용이었고, 신전이 있는 곳이라면 누구든지 알고 있는 당연한 것이었다.

“창조주나 뭐 주신이라고 불립니까?”

“신에게 그렇게 거창한 말을 넣지 않습니다. 사제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일이 만인의 무지한 숭배입니다.”

드낙이 혀를 내둘렀다. 자신이 믿는 신을 숭배하고, 높이 만들지 않다니. 드낙의 모습에 젠은 진지하게 물었다.

“원래 종교 쪽에는 관심이 없습니까?”

“예. 진짜로 일어난 일인가 싶기도 하고···”

그 말에 그가 헛웃음을 지었다.

“중립신(中立神) 〈엘 마르토 카사다민〉에 대한 믿음은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한 번쯤 신전을 방문해서 가르침을 받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입니다.”

“이름이 참 기네요.”

“고대 신어입니다. 엘은 빛의 신념을 뜻하고, 마르토는 끔찍한 죽음을 의미합니다. 카사다민은 으뜸이라는 뜻입니다.”

해석에는 차이가 있지만 엘은 위대한 빛이고, 마르토는 모든 것의 끝이고 카사다민은 강력함 정도로 보면 되었다.

“신의 이름 뜻만 보면 굉장히 오만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제들도 이름 뜻은 잘 이야기 안 합니다. 귀족들과 왕족들이 우월함을 크게 생각해서 신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권력을 탐하고 사용하려고 했던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전대라는 개념도 그때 처음으로 나오게 되었죠.”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 있는 이스핀이 몰래 고개를 돌려 손으로 입을 가려 하품을 하자 〈집사 젠 토치라이트〉는 미소 지으면서 걸음을 옮겼다. 지겨운 이야기는 여기까지였다.

〈수비대장 세르인 토치라이트〉가 마차를 확인하고 있었다. 〈성채 근위병〉이 가죽을 올렸다. 안에 보이는 대량의 일각수 고기가 보였다. 싸여져 있는 것을 하나 빼내어 상태를 확인했다.

‘생육.’

냄새까지 맡았는데, 비가 워낙 많이 왔을 때라 충분히 피가 빠져있었다. 추가적인 고생을 하지 않아도 되어 보였다.

〈일각수〉 혹은 한 번이라도 변이를 완전히 마친 〈일백 야수〉의 고기는 유통기한이 없는 고기였다.

‘양이 너무 적은데.’

곰이 일백야수가 된 경우 엄청난 양의 고기가 토해진다. 의문을 가진 그는 계속해서 도착하는 정보들을 획득했다. 버팔로 나이트 아크온과 성주 울베인이 이야기를 나누면서 오고 가는 술, 치워지는 음식을 통해서 계속해서 정보가 실시간으로 돌았다.

“흑마법사의 농간으로 고기 대부분을 잃었답니다.”

“용병들의 용감함 때문에 가죽과 고기 모두 용병들이 가지게 해주었답니다.”

놀랄 노자였다.

그 정보까지 획득하자마자 〈수비대장 세르인 토치라이트〉는 추적 용병단을 찾았다. 내성 구경을 모두 마치고 돌아가고 있는 상황에서 마주치게 되었다.

“젠 집사님. 잠깐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서로 말없이 목례만 나누고, 세르인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집사 젠이 거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명확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세르인보다 나이가 많고, 공부도 많이 하는 젠이었다.

“요르인. 손님들을 처음의 개인실로 모셔라.”

“예.”

수비대장 세르인이 그대로 따라가려고 하자 집사 젠이 막았다.

“그들에게 친절을 베푸시려는 겁니까?”

“일생일대의 상황에서 올곧음을 택하고, 사자와도 같은 용맹을 자신의 손으로 집어 든 이들입니다. 좋은 미담으로 퍼져나가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제가 도둑놈도 아니고···”

그렇게 말하는 수비대장 세르인의 눈은 시리도록 차가웠다. 집사 젠이 그것을 모를 리가 없었다. 군적(軍籍)에 몸을 담는다는 것은 이타적보다는 이기심, 배타적인 마음을 가지게 하기 때문이었다.

모두를 생각하기보다는 우리를 생각하게 된다. 그게 바로 군에 몸을 담은 사람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개인의 사사로움은 사라지고, 집단을 위해서 살아가는 이들이다.

“집사님이 생각하시는 것처럼 용병들은 배려가 필요한 족속들이 아닙니다.”

“그들이 다른 용병과 같아서 내성에 들어왔겠습니까?”

“그럼 그대로 시장에 팔리도록 둬야 합니까? 성주님이 나서기 전에 가신이 나서는 것이 가장 좋은 모습 아닙니까.”

그 말에 집사 젠이 누그러졌다. 일각수의 고기는 유통기한이 극단적으로 높았기에 군사적으로 엄청난 가치가 있었다. 일각수의 뿔보다는 그 중요도가 낮기는 하지만 그냥 민간에 풀기에는 제국처럼 강하지 않은 것이 〈남부 왕국〉이었다.

“그럼 얼마에 구매하실 것인지, 저에게 말씀이라도 한 번 해주십시오. 수비대장의 처지를 제가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크흠!”

드낙에게 고기를 구매하도록 강요하는 것은 성주를 들먹이는 것으로 해결했지만 집사 젠이 요구하는 말에 세르인이 기침을 한 번 했다. 눈알을 구르는 것을 보니, 젠을 설득하기 힘든 값인 듯했다.

“···그래도 가죽은 용병단이 가지는 것이니, 괜찮은 거래가 될 겁니다.”

“수비대장의 입장에서는 그렇겠지요. 급하게 달려오셨으니, 천천히 걸어가십시오.”

집사 젠의 당부에 수비대장은 젠이 사라질 때까지 우뚝 서있어야 했다.

‘말 하나는 참 잘한다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다.’

모두 토치라이트 가문을 위한 것이었다. 성큼 걸어서 딴 길로 빠르게 돌아서 걷는 수비대장 세르인은 1호 개인실에 늦게 도착할 수밖에 없었다.

“수비대장님! 한참을 찾았습니다!”

〈성채 근위병〉이 얼굴에 땀범벅이 된 채 그의 앞으로 달려왔다. 코너를 돌 때에는 천천히 걷고, 직선로에서만 뛰었음에도 땀으로 가득 차있었다.

“무슨 일이냐?”

딱 봐도 매우 중요한 내용을 전하려고 노력한 모습이었다.

“한낱 용병 따위에게 버팔로 나이트가 추천서를 줬답니다.”

“그건 정말로 이상하군.”

“늑대를 크게 부린다더니, 그 덕을 본 것 아닙니까?”

이상하게 여기는 소리에 성채 근위병이 말했다. 그 소리에 세르인이 소리 내어 웃었다. 실로 재미난 소리였다.

“기사가 늑대에게 덕을 보는 일이 세상 천지에 어디에 있고, 언제 있겠는가? 재미난 농담으로 들릴 수밖에 없군.”

‘14살인가 15살에 황소를 들어 올린 자가 아크온 몽펠리에다.’

귀족답지 않은 모습 때문에 가문 내 권력싸움에서 밀려났지만 그럼에도 개인이 가진 명성은 압도적이었다. 호탕함 하나로 가문 사람들에게 동생이 다음 가주라며 크게 소리 내는 것을 어려워하지 않는 사내였다.

호탕하다고 해서 아무에게나 추천서를 남발하는 사내도 아니었다. 확실한 은혜를 입었을 때, 베풀어주는 자였다.

걸음을 멈춘 수비대장 세르인은 결국 자신의 생각을 고칠 수밖에 없었다.

‘집사 젠이 아니었다면, 낭패를 봤을지도 모르겠군.’

아크온 몽펠리에의 추천서를 받은 용병단장을 협박해서 싼 가격에 일각수의 고기를 매입했다? 한동안 귀족 사회에서 얼굴도 못 들 것이다.

〈집사 젠 토치라이트〉가 없는 상황에서 1호 개인실에 대기하던 추적 용병단의 앞에 수비대장 세르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강인하고 고집스러운 인상을 보여주는 그였고, 특히나 수염이 덥수룩한 것이 특징이었다.

통성명을 짧게 나누고, 자리에 앉은 그가 입을 열었다.

“일각수의 고기를 소유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정확히 어느 정도의 양인가?”

“1톤입니다. 대중잡은 것이라 오차가 있을 수 있습니다.”

“횃불 성채에 매각할 생각은 없나?”

그 말에 드낙이 고민했다. 고민할 수 있는 여유가 있었는데, 아크온의 추천서 때문이었다. 큰 책(責)을 잡히지 않는 이상은 귀족에게 조금은 개길 수 있게 되었다. 특히나 북부 가문인 것이 몽펠리에 가문이었다.

같은 메디오 지방의 가문끼리 서로 인정해주는 관례나 다름없었다.

“일각수의 고기는 유통기한이 매우 길지. 생육을 병사들에게 보급시키는 것은 아주 대단한 일이네. 아크온 경의 추천서를 받았는데 상인에게 파는 것보다 횃불 성채에 파는 것이 더 좋은 일 아니겠나?”

수비대장 세르인은 드낙이 고민하는 사이에 계속해서 입을 놀렸다. 물지 못하는 개가 짖는 것과 같았다.

“잘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이네.”

집사 젠이 하지 말라고 했던 협박도 은근히 쑤셔 넣었다.

“1kg에 얼마를 생각하십니까?”

“동화 100닢. 보통 돼지고기가 30닢이니 3배가 넘는 돈이네.”

드낙이 선선하게 웃으며 말했다.

“일각수의 고기가 그 정도 값어치 밖에 안 합니까?”

“동화 200닢으로 해주지.”

세르인이 거침없이 두 배를 불렀다. 드낙은 코로 깊게 숨을 내뱉으면서 손을 주억거렸다.

“드낙 용병단장.”

세르인이 그를 불렀다. 하지만 드낙은 예라는 대답 대신에 물음을 던졌다.

“수비대장님. 용병이 왜 칼밥을 먹고 살아가는지 아십니까?”

“갑자기 그것은 왜 묻는 건가?”

“저는 용병입니다. 추천서를 받아도 용병은 용병입니다. 아닙니까?”

“그렇지. 자네는 용병이지.”

“그럼 용병이 왜 칼밥을 먹고 살아갑니까?”

“···돈 때문이네.”

“예. 돈 때문입니다. 무식하고 무례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용병이란 잡것들이 그러한 놈들이고, 그런 족속들입니다. 아닙니까?”

“음···”

스스로 디스를 하는 드낙의 거침없는 모습에 수비대장 세르인이 인상을 찡그렸다. 뭐라 말을 찾지 못했다. 자존심마저 버린 듯한 화법은 듣도 보지도 못한 것이었다.

“너무 그렇게 말하지 말게. 자네는 버팔로 나이트의 추천서를 받았지 않았나.”

“아··· 예. 그렇군요. 하지만 그 추천서는 저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과분한 것이라··· 꿈에서조차 나타날 정도로 압박감을 주고 있어서 힘듭니다.”

그 말에 단번에 세르인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귀족을 무서워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추천서 때문에 마음고생을 했다니, 정말로 하찮아 보였다.

‘생각해보면 추천서는 그리 큰 것이 아닌데.’

드낙의 그릇이 작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도 1kg에 200닢으로 했으면 좋겠군. 드낙 용병단장, 돈만 바라봐서는 안 되네. 상인에게 팔면 300닢도 너끈하게 받을 수 있겠지만, 때로는 돈 말고 다른 것을 봐야 할 때가 있는 법이네.”

드낙은 머리를 긁었다. 역시 보통내기가 아니었다. 여기서는 드낙이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다행이라면 일각수의 가죽에 대한 것은 말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드낙의 수난은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금화로 20닢을 내어주고 싶지만 횃불성채의 상황이 좋지 않아서··· 자네가 이해하리라 믿고 있네. 은화로 2천 닢을 내어주겠네.”

“예. 주는 대로 받아야지요.”

동화로 받지 않은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할 정도였다.

드낙은 그에게 그 어떤 앙금도 가지지 않는 것처럼 대했지만, 그 이름은 확실하게 기억했다.

‘개자식. 오래도록 죽지않고 살아있어라. 내 반드시 한 번은 찾아가겠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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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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