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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35화 (135/1,239)

0135 <-- 내성 구경 -->

〈횃불 성채〉가 드낙의 눈에 보였다. 메디오 지방에서도 천 명의 정예 군대를 상주시키고 있는 횃불 성채는 가장 큰 성 중에 하나였고, 인구도 많았다. 따로 성채 내부에 경비병까지 합치면 2천 명의 군사가 있다고 할 수 있었다.

‘드디어 성주 얼굴은 볼 수 있겠군.’

〈성주 울베인 토치라이트(torchlight)〉. 몬스터 침입 때만 모습을 드러낸다는 성주였다. 방위 외에는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기에 드낙은 볼 기회가 없었다.

토치라이트 가문은 횃불 성채의 탄생과 함께 태어난 가문이었다. 그 덕에 몬스터와 관련된 비전을 다량 보유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었다. 또한 가문의 성이 〈횃불 성채〉와 매우 직관적으로 연결이 되어있었다.

몽펠리에 가문의 인장이 박힌 마차를 6마리의 말이 이끌었다. 마차의 위에는 나뭇잎으로 잘 싸놓은 〈일각수의 고기〉가 잔뜩 적재되어 있었다. 그 고기를 덮고 있는 것이 일각수의 가죽이었다.

바퀴 위에 아슬하게 안 닿을 정도로 쭉 늘어진 앞발과 뒷발은 거대했다.

그 뒤로는 준마 한 마리가 끌고 있는 짐수레가 있었다. 짐 수레의 물을 버리고 남은 공간에는 밀포대가 쌓여있었다.

마부 센이 목청을 높였다.

“아크온 몽펠리에 님이십니다!”

경비병이 손을 들어 올리자 마차가 서서히 멈추었다. 전과 같은 방식으로 검문이 이루어졌다. 그 사이에 뒤에서 뒷짐지고 있던 선임 경비병이 빠르게 경비병 병영으로 뛰어갔다.

아크온 몽펠리에가 왜 이곳에 왔는지 다 들어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세베긴 님! 버팔로 나이트가 왔습니다!”

“이크!”

〈경비대장 세베긴〉이 서둘러 투구를 쓰고 벌떡 일어났는데, 헐겁게 해둔 흉갑 한 쪽이 열렸다. 다급하게 다시 고쳐매고, 밖으로 나섰다.

“너는 어서 내성벽에 이 사실을 알려라!”

“예!”

이미 눈치 좋게 투구와 흉갑을 벗고 있는 병사였다. 다른 병사 또한 횃불 성채의 깃발을 가져와서 달려갈 준비를 하는 병사에게 건네주었다. 병사가 냉큼 뛰어갔다.

“비켜라! 비켜라!!”

대로가 한순간에 쫙 갈라졌다. 너도나도 서로를 밀칠 정도로 다급하게 움직였다.

“아크온 몽펠리에 님을 뵙습니다! 하셨던 일은 잘 마무리되셨는지요.”

세베긴이 빠릿빠릿하게 경례를 하고 난 다음에 고개까지 또 숙이며 말하였다.

“썩 나쁘지는 않았네. 경비대장이 이렇게 항상 무장을 단단히 하고 있는 것을 보니, 횃불 성채는 여전히 기강이 바로 잡혀있군.”

“몬스터를 끌어당기는 성채인데 당연히 전시(戰時)처럼 행동할 뿐입니다.”

세베긴이 비장하게 말했다. 흉갑을 헐겁게 풀어놓고, 병영 안에 있었지만 경비대장으로 살아온 경험이 오래된 그였다. 한 여름이라 땀이 비 오듯이 흐르고 있었기에 세베긴의 모습은 더욱더 강고한 경비대장처럼 보였다.

마차가 안으로 들어서고, 뒤에 가려졌던 짐수레와 〈추적 용병단〉이 보이자 병사들이 막아세웠다.

“멈춰라! 뒤로 가서 줄을 서라.”

눈치로도 아크온의 덕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막아세웠다.

“이번 토벌에 도움을 준 이들이네.”

“아, 그렇습니까. 하지만 규정은 규정이니 용병들은 다시 뒤로 가서 서도록 하겠습니다.”

생색내기였다. 아크온에게도 좋고, 경비병들에게도 좋은 상황이고 구실이었다. 변변찮은 용병단 따위 이럴 때 각을 세워서 경비병들은 위엄을 얻고, 아크온 또한 기사로서 규칙을 준수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니네. 그들과는 함께 내성으로 갈 생각이니 이해해줬으면 하는군.”

“예?!”

경비대장 세베긴이 크게 놀랐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조차도 내성으로 들어가지 못하는데, 용병 따위가 내성으로 들어가다니. 엄청난 특혜였다.

‘늑대로 제법 재미를 봤나?’

그의 눈이 자연스럽게 짐수레 뒤에 있는 늑대들에게로 향했다. 모두 입마개를 차고 있었다. 부들부들하게 손을 탄 가죽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전에 그 일이 있고난 뒤로 곧바로 〈만물 잡화점〉의 여주인 소레를 통해 제작한 것이었다.

빠른 피드백 때문에 쏘고 싶어도 쏠 구석이 없었다.

“그럼 알겠습니다.”

불편한 기색을 하면서 세베긴이 용병들의 검문을 직접 실행했다. 다른 경비병들은 짐수레를 뒤졌다.

“기고만장해 가지고는, 웃지 마라. 알겠느냐?”

“예.”

드낙은 짧게 대답하며 목례했다. 경고를 받아도 기분이 좋았다.

“통과!”

성문을 지나는 사이에 아크온은 목함에서 사람 몸과 비슷할 정도로 큰 〈일각수의 머리〉를 꺼냈다. 가까이서 보면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컸다.

“기사님. 여기 강철창을 받으십시오.”

병사가 가져온 강철창으로 밑 부분을 쿡 쑤셔서 단단히 고정했다. 그것을 경비병이 양손으로 다시 받아 높이 세웠다. 혼자 들 수 있는 무게가 아니었기에 들어 올리는 것은 병사 여럿이 도와야 했다.

아크온은 〈마부 센〉이 주는 몽펠리에 가문의 깃발을 잡았다. 그리고는 천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긴 대로는 싹 비워져 있었고, 대로의 양옆으로 사람들이 멈추어 선 채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수한 박수를 받으며 환호도 받기도 했다. 그 정도로 곰의 머리통이 컸기 때문이었다.

“버팔로 나이트!”

가는 내내 곰을 쥔 병사는 도중에 멈추면서 다른 병사와 교대하기도 했다. 힘이 굉장히 들었기 때문이었다.

〈추적 용병단〉은 괜히 여기 있으면 안된다는 기분을 느끼며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마차를 따라갔다. 외성 지역을 걸어가는 이유는 내성쪽에서 준비를 하기 위한 시간을 주기 위한 것도 있었다.

내성벽의 내성문은 활짝 열려 있었고, 무조건 신장이 180cm 이상만 가능한 직책인 〈성채 근위병〉이 큰 방패를 바닥에 놓고 할버드를 쥐고 있었다. 방패는 관상용으로서 이런 행사 때만 쓰는 것이었다.

몸 전체를 가리고, 바닥에 놓으면 안쪽으로 넘어지도록 설계된 방패였기에 손으로 잡고 있지 않고도 분위기를 낼 수 있었다.

“와악!”

할버드를 쥐고 있는 성채 근위병이 고함을 지르며 할버드를 한 손으로 들어 올렸다. 투구 속에서 입을 앙 다물고 힘을 빡 주고 있었다.

“와악!”

아크온이 지나고 세 걸음을 옮겼을 때, 다시 고함을 지르며 할버드로 땅을 찍었다. 그러자 붉은털의 곰 머리를 가지고 있는 경비병이 멈추어 섰다. 아크온도 익숙한지 멈추었다.

따로 밖에 나와있던 성채 근위병이 홀로 곰 머리를 인계받았다. 다른 이들과 교대도 하지 않으면서 갈 생각인 듯했다. 팔뚝 근육이 장난이 아니었다. 매우 굵었다.

‘저게 정예병이지.’

드낙이 황소처럼 보이는 성채 근위병을 보며 만족스러워했다. 그리고 〈경비대장 세베긴〉도 여기까지 동행할 수 있었다.

척!

내성 지역에는 이미 성채 근위병들이 전부 달려와서 사열해있었다. 할버드가 서로 교차하며 서로가 서로를 받쳐주어서 힘을 덜 들인 채로 오랫동안 교차할 수 있도록 하고 있었고, 할버드의 도끼날 아랫부분에 부착한 구리 고리에는 천이 좌르륵 매달려서 아래로 내려왔다.

‘와.’

드낙은 몸이 쭈뼛 서는 것 같았다. 그 정도로 장관이었다. 오랜만에 이렇게 큰 행사를 봤기 때문이었다. 실로 감회가 새로웠다. 내성벽을 지나고, 내성지역을 지나고 난 다음에는 해자가 다시 모습을 드러내며 영주성, 내성이 보였다.

그곳에는 마차가 들어가지 못했고, 병사들의 사열도 끝났다. 대신에 붉은색의 실크로 된 카펫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마차는 옆으로 향해서 정지했고, 짐마차 또한 그곳에 세웠다. 아크온은 벌써 들어가고 없었다. 드낙은 감히 들어가지 못하고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수비대장 세르인 토치라이트〉가 손짓을 했다.

“여기까지 온 것을 보니, 큰 도움을 주었는데 내성으로 들어오게.”

“예, 예!”

드낙은 말까지 더듬었는데, 현대에서 살면서도 행사를 지켜볼 뿐, 주인공이 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가슴이 너무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켜보는 것과 직접 그 행위 속에 있는 것은 체감이 달라도 너무 달랐다.

하지만 내성에 들어서고 실크 카펫을 밟는 것이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이었다. 곧바로 격리되듯이 1층에 있는 개인실로 옮겨졌다.

‘이런, 뭐라도 캐물을 셈이구나.’

드낙은 이내 썩 좋은 곳에 온 것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중세풍의 색다른 행사에 눈이 팔렸고, 주제넘은 기대를 한 것이다.

“살 떨려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스핀의 말에 도렌이 크게 동의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의 땀을 닦았다. 드낙 또한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아크온 님의 배려를 거절했어야 했다.”

아크온으로서는 이런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고, 추적 용병단도 그런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그 이후를 생각하지 않았다.

“아크온 경이 대부분의 공을 가져간 것이고, 우리들은 그저 잘 막아주기만 한 것이다. 알아들었나?”

“예.”

“옙.”

드낙이 도둑이 제발 저리는 것처럼 대충이라도 말을 미리 맞추었다. 토치라이트 가문과 몽펠리에 가문의 사이를 몰랐기 때문이다. 겉으로 좋아도 속은 썩어문드러져 상처 입은 채 서로 이빨을 겨누고 있을지도 몰랐다.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불안함과 걱정이 무색하게 인자한 얼굴의 집사가 들어왔다. 뒤에는 메이드 복을 한 중년 여성이 안경을 낀 채 와서는 김이 솔솔 나는 새하얀 찻주전자와 붉은색의 염료로 장미를 표현한 찻잔을 놓고 다시 밖으로 나갔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나가는 모습에 드낙은 생각보다 메이드의 처우가 좋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약한 사람만큼 온갖 것에 묶여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처우와 대우를 알 수 있었다.

“아크온 경을 많이 도왔다고 들었는데, 내성까지 오시다니. 실제로 그러한지 궁금해서 말입니다.”

집사의 나이는 제법 많아 보였지만 주름 하나 없었다. 대신에 새하얀 머리가 곳곳에 많이 나있었다. 반백발을 하고 있었기에 드낙은 행동을 조심스럽게 했다.

“그리 대단한 일은 한 것은 아닙니다. 아크온 님이 워낙 인품이 좋으셔서···”

통성명을 하지도 않은 집사가 혀를 한 번 찼다.

“쯧. 아크온 경은 따스한 마음씨보다 원칙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철의 기사입니다. 보통 일을 도와준 것이 아닐 텐데. 겸손한 겁니까. 아니면 정말로 운이 좋은 겁니까?”

당장이라도 내성에서 쫓을 것만 같아서 드낙이 빠르게 입을 놀렸다.

“〈변종 키메라〉와 〈일백야수〉의 습격에서 도망가지 않고 싸웠을 뿐입니다. 큰 도움은 안 되었지만 굉장히 높게 평가해주셨습니다.”

그 말에 그제서야 집사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쓴소리를 해서 미안합니다. 이해해주십시오. 아! 저는 집사 중에 하나인 젠 토치라이트라고 합니다. 내성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식사를 준비해놓았으니, 이곳에서 조금만 기다려주십시오.”

말하는 것을 보니 이미 대접을 할 생각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한 번 떠본 것이라는 소리였다. 귀족과 관련된 인물을 자주 만난 것이 아니라 긴장했던 드낙이 상황 파악을 잘 하지 못한 것이 컸다.

그리고 그 현실감 넘치는 굳은 표정 때문에 집사 젠 토치라이트 또한 안심할 수 있었다.

‘〈늑대 용병단〉은 소문대로 경험이 적군. 하지만 실력은 있어. 쓰기 좋은 말이다.’

요령을 피우기에는 경험이 적고, 명마처럼 허벅지는 튼실하다고 비유할 수 있었다. 집사가 나가자 그제서야 세 명 모두 한숨 쉬었다. 걱정했던 것과는 다르게 이미 대접하려고 준비를 했기에 기분 나쁘지도 않았다.

상하가 명확하게 나누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노예가 무례를 범하는 것과 귀족이 실수하는 것은 달랐다. 노예가 실수하면 무례고, 귀족이 실수하면 그냥 실수였다.

드낙은 신분제를 겪어보지 않았지만 힘의 차이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잘 적응할 수 있었다. 백화점 이사에게 설설기던 직원도 퇴사한 이사에겐 하대한다. 그게 현대였다.

백화점의 고위 임원이 은퇴하고 옷 가게를 여는 족족 망하는 이유를 밑바닥에서 살았던 드낙은 잘 알고 있었다.

‘횃불 성채의 힘! 기득권의 영향력.’

이곳의 사람들이 신분을 보고 대우를 정한다면, 드낙은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과 힘을 생각했다. 비슷하지만 엄연히 달랐다.

지금은 고개를 숙여야 할 때였다. 때가 올 때까지 웅크려 있는 것은 인간에게 가장 쉬운 일이었다. 인간만큼 인내심이 강한 동물도 없었다. 특히나 한국 사회에서 사회성을 기른 드낙은 참는 것 하나만큼은 미련한 곰과도 같았다.

“우리도 열심히 했는데, 너무 건방지지 않습니까?”

이스핀은 불만을 가졌다. 한 번 떠보는 것 자체로도 불쾌감을 그대로 표현했는데, 바로 드낙에게 손가락으로 겨드랑이가 찔리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그런 소리는 입에 담지도 마라. 속으로만 생각하고 있고, 속으로도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라.”

“예···”

토치라이트 가문의 직계는 아니지만 성을 받은 집사였다. 실력이 있으니 방계에 있다는 뜻이다. 그런 인물이 자신들을 찾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할 일이었고, 추적 용병단이 유명해졌다는 뜻이었다.

물론 늑대를 〈용병 기숙사〉에 데려오면서 횃불 성채의 사람들은 그들을 〈늑대 용병단〉이라고 알고 있었다.

========== 작품 후기 ==========

6082자

분량 실패! 끊을 곳이 없더군요···오늘 정말 덥고 습하네요. 아침 밥먹고 토했어요. 모두 더위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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