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34화 (134/1,239)

0134 <-- 봄녘마을로 -->

〈촌장 카레스〉는 눈을 좁혔지만 흥정하지 않았다.

‘발전 가능성이 너무 뛰어나다.’

늑대 10마리를 부리는 〈추적 용병단〉은 고작 3인 용병단이 아니었다. 앞으로 계속해서 발전하고 몸집을 키울 하나의 세력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드낙은 매우 젊은 용병단장이었다.

‘어렵구나.’

이토록 선택을 강요받은 적이 있었던가? 없었다. 드낙은 그것을 알고 있기에 괜히 자신들의 용병단에 대해서 이야기를 풀었다.

“늑대들 보셨지요? 야생 늑대와는 덩치부터가 다르죠. 앞으로 계속 숫자가 늘어날 겁니다.”

꿀꺽.

촌장은 침을 삼키며 괜히 물을 찾아 마셨다. 협박처럼 들렸지만, 드낙은 자신에게 손을 내밀고 있음을 알고 있었다. 그 손을 강하게 움켜쥐느냐, 약하게 움켜쥐느냐는 오직 자신에게 달려있었다.

그 선택권을 준 것은 말 그대로 앞으로 서로에 대한 판단 기준이 될 것이다.

‘늑대 조련. 기사에게 인정받은 것. 그런 것을 생각한다면 강하게 움켜잡아야 한다.’

보통 용병단이 아닌 것이 〈추적 용병단〉이었다. 그렇기에 〈봄녘 마을〉의 촌장과 맞먹을 수 있었고, 타협할 수 있었다. 그럴 깜냥이 되었다.

‘하지만 그냥 고개를 끄덕일 수는 없지.’

자신도 이득이 있어야 하고, 향후 계약을 이행하는데 손해가 없어야 했다.

“안정적인 것도 좋고, 장기적인 것도 좋습니다. 대량으로 가져간다는 말씀도 안 하시니 감사하기도 합니다만··· 팔 곡물이 없을 때, 파는 것은 안 되게 했으면 합니다.”

“당연히 그래야지요. 서로 상부상조하는 것인데. 그런 도둑놈 심보로 계약을 짓는다면 누가 저와 함께 손을 잡고, 거래를 하겠습니까? 걱정 마십시오.”

촌장은 위협적인 추적 용병단과 크게 싸울 정도의 일을 수습한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것이 적당했지만, 욕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런 소리를 한 것이다.

이 계약 자체에 흥미가 생긴 것이다. 드낙이 말하는 비전. 기숙사, 늑대에 대한 것으로 특출난 용병단임이기 때문이다.

투자할 만했다.

“계약하겠습니다.”

“좋은 선택입니다. 오늘 이 신뢰의 날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두 사람이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계약서를 두 장 작성했다. 하나씩 갖기 위함이었다.

계약의 시작은 이번 가을부터.

계약은 2년 겨울마다.

판매할 밀이 없는데 밀을 달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

한 번에 밀 포대를 50개 이상을 구매했을 때는, 그 이후로는 시세에 따라 가격을 정한다.

밀 한 포대의 무게는 20kg이며 동화로 15닢.

매달 1번 구매 가능.

서로 싸인을 하고, 지장을 찍었다. 엄지손가락부터 손바닥까지 다양했지만 양피지 자리가 많이 남아서 드낙과 촌장은 손바닥 전체를 찍었다. 또한 싸인도 그 밑에 했다.

“여기서는 지금 밀을 한 포대에 얼마에 팝니까?”

“지금은···동화 27닢 정도입니다.”

“동화 27닢에 10포대만 사가겠습니다. 횃불 성채보다 싸군요.”

“감사합니다. 계약은 이번 가을부터이니. 이번 이후로는 가을에 보겠군요.”

드낙은 밀을 10포대 사주면서 남아있을 앙금을 모조리 지워버렸다. 계약에 있는 가격이 아니라 정가에 구매했다. 계약의 시작은 가을이었기 때문이기도하고, 촌장과의 관계에 기름칠을 하기 위함도 있었다.

그 사이에 이스핀과 도렌은 출발 준비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드낙은 곧장 촌장집으로 향했고, 막 티타임을 끝내고 나오는 아크온을 볼 수 있었다.

시간이 딱 맞아떨어졌다.

“앞으로 잘 지냅시다.”

촌장이 되려 드낙에게 친하게 지내자고 말했다. 가만히 생각하면 할수록 드낙은 지금 친분을 쌓아놓으면 좋은 자로 보였다. 마을만 생각했을 때는 화가 났지만, 거래 관계가 형성되자 다른 것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간사한 법이지.’

다시 한 번 악수를 나누며 촌장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벌써부터 제법 친한 사이로 보였다.

〈봄녘 마을〉에서의 일은 그것이 전부였다.

마을 사람들의 불만은 없었다. 저수지, 벌려놓은 농사. 그것 때문에 수확량이 많아질 것이라 예상되었고, 늑대를 부리는 추적 용병단에 대한 두려움도 있었다.

무엇보다 흉갑을 구매할 정도로 마을을 착복했던 카레스였다. 마을에 대한 영향력이 대단했다. 드낙은 계약서를 다시 한 번 훑어보고는 짐수레 안에 넣었다.

‘이번 의뢰는 취한 이득이 많다.’

〈검은 문〉이야 말할 것도 없었다. 마법 장비 3개를 획득했고, 향후 밀 구매에 대한 계약서도 좋은 수준으로 얻었다. 특히나 일각수의 뿔에 대한 모든 권리를 포기하는 대가로 얻은 금화 30닢은 충격적일 정도로 큰돈이었다.

‘해야 할 일이 많다.’

크게 사업을 벌이기보다는 차근차근 나아갈 생각을 해야 했다.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은 유지해야 하는 것을 명심해야 했다.

반나절을 걸어 날이 어두워지고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기사와 마부는 마차 안에 들어섰다. 늑대들이 둘러앉은 곳에서 드낙은 체온을 높이기 위해 술을 마시며 잡담하는 이스핀과 도렌을 바라보았다.

“술집에서 진짜 쩌는 누님 하나 아는데, 술 같이 마시자. 너도 이제는 알아야지.”

“알긴 뭘 알아. 나는 됐어.”

“자식, 튕기기는. 그럼 좀 조신한 애를 소개해줄까?"

“네가 그런 사람도 알아?”

“알~지. 나를 뭘로 보고. 서점에서 필사를 좋아하는 여자앤데, 나랑 한 살 차이밖에 안 나. 무서운 사람은 질색이라고 해서 빗자루 맞고 그 애, 아버지한테 빗자루로 맞고 쫓겨나긴 했는데···”

이스핀은 봄녘 마을에서 여자에게 추근거리는 것을 도렌에게 한 소리 들은 뒤로 뻔질나게 도렌에게 여자를 소개해주려고 하고 있었다.

여자를 한 번도 사귀지 못한 놈이 여자에게 어떻게든 한 번이라도 좀 해보려고 노력하는 자신을 안타깝게 여기던 그 눈을 참을 수가 없었다.

또한 자신의 〈형제〉라는 녀석이 여자 경험이 없다니? 이스핀에게 있어서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용병도 경력 따지지? 〈피가득 술집〉에서 의뢰 하나 없이 넌 4년을 허탕만 쳤잖아. 나중에 정~말 좋아하는 여자 만나서 실패하기 싫으면 지금부터 차근차근 경험을 쌓아야···”

연애 솔루션 강사처럼 이야기하기도 했다. 드낙이 듣기에는 궤변이었지만 도렌은 혹하는 표정을 지었다.

남들이 해야 한다, 꼭 해야 한다, 안 하면 후회한다고 말을 계속 듣다 보면 어느새 해야 할 것처럼 느껴지는 법이었다.

“하고 싶을 때, 하겠지. 좀 놔둬라.”

드낙의 말에 이스핀이 소스라치게 반응했다.

“아니, 단장님마저 도렌을 챙기십니까?”

“크흠.”

드낙이 헛기침을 했다. 실수를 연발하면서도 나서야 할 때 나서는 도렌은 사실 미워할 수가 없는 단원이었다.

성격 자체가 우쭐하는 성격도 아니었기에 차근차근 전투 때마다 쌓아오는 모습과 매번 궂은일을 마다하지 않는 모습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좋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것도 드낙처럼 단원을 자세히 살피는 상관을 만나야 했지만. 눈치가 워낙 없어서 미움받기 딱 좋은 것이 도렌이었다.

특징이 없어서 일찍 수염이 난 것을 별명으로 삼아 〈수염 도렌〉이라고 말하는 것부터 요령 없음을 말해주었다.

티격 태격 거리는 것도 잠시 금방 진지한 이야기로 돌아갔다. 현대인인 드낙의 행동력은 이 세상에서 볼 수 없을 정도로 빨랐고, 실패를 생각하는 계획성을 지니고 있었다.

“전에 노예 구매에 대해서 말했을 것이다.”

“예.”

“너희 두 명이 이제는 부대장 노릇을 해야겠다.”

갑작스러운 말이었고, 결과론적인 통보였다.

“부대장 노릇이요? 제가요?”

도렌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부대장이라니? 노예들을 통솔하는 일로 보였다.

“그래. 이제 제법 싸움도 잘하니까. 충분히 할 수 있다. 경험 하나 없지만, 차차 쌓아나가면 된다.”

드낙 또한 통솔에 관련해서는 지식이 없었다. 소설이나 다른 문화 컨텐츠에서 본 것들이 전부였다. 하나하나 맨땅에 박치기를 하거나, 관련 서적을 구매해야 했다.

‘어떻게든 되겠지.’

지금까지 잘 굴려왔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고 믿었다. 〈검은 산골 마을〉의 〈고블린 토벌〉 당시 찾아온 〈용병단장 조세〉의 〈쇠주머니 용병단〉의 인원만 해도 33명이었다.

짐마차 3대를 끌고 다녔던 강력한 고블린 토벌 담당 용병단이었다. 적어도 그만큼은 키워야 했다.

“저희를 높게 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스핀은 냉큼 부대장 직함을 얻고 싶어 하는 듯했다. 그야말로 출세 중의 출세였다. 자신의 말을 천금처럼 듣는 전투 노예가 생기는 것이다.

“대신 지금까지 해온 급여체계를 또 바꿔야 한다. 노예들의 유지비 때문이다.”

그 말에 이스핀이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항상 뭔가 현실감이 떨어지는 급여체계를 제시했던 드낙이었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뭐 도둑놈처럼 뜯어가는 건 아니잖아.”

드낙의 말에 이스핀이 그저 웃기만 했다.

‘이상한 소리를 하니까. 그렇죠.’

“용병 공금의 비율이 좀 높아질 거다. 의뢰 당 바로 지급하는 것이 아니라, 한 달마다 급여를 종합해서 건네주겠다."

“예. 그래서 어느 정도 비율을 생각하시는지···”

“고정금을 주려고 하고 있다.”

월급이라는 소리였다. 점점 자신들에 대한 대우가 낮아지고 있었기에 이스핀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곳에 남고 싶은 마음이 컸다.

늑대를 부려서 〈횃불 성채〉 북쪽 구역에서 〈늑대 용병단〉으로 유명세를 날렸고, 지금도 큰일을 해냈다. 앞으로 어디까지 출세할지 몰랐다.

“월급은 얼마 정도로 생각하십니까?”

“다른 용병과 현격하게 다른 모습을 보여줬는데, 그만큼 대우를 해줘야지. 은화 3닢.”

드낙이 고민한 급여를 말했다. 2닢만 해도 다른 용병들보다 큰돈을 쥐는 것이었다. 3닢은 과하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간 해온 정 때문에 그만큼 줄 마음을 가졌다. 특히나 이번 일에서 도망치지 않고 맞서 싸운 것이 드낙의 심경 변화에 큰 역할을 했다.

또한 넉넉한 자본금이 있었기 때문에 결정할 수 있었다.

“그리고··· 앞으로 너희들도 계속 강해져야 할 것이다.”

의미심장한 드낙의 말에 눈치 빠른 이스핀은 척추가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팔뚝에 돋은 소름을 쓸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럼···”

“내가 개발한 비전들을 전수해주겠다. 어디 가서 맞고 살지는 않게 될 것이다. 이스핀. 너는 계속 숏소드와 방패를 사용해라.”

“예, 예!”

드낙은 눈을 돌렸다. 도렌은 현재 활과 숏소드 그리고 작은 방패를 쓰고 있었다.

“도렌은, 어쩌고 싶으냐?”

“활과 관련된 비전이 있습니까?”

드낙은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없다.”

“그러면···”

말끝을 흐리며 고민하는 도렌을 보며 이스핀이 대신 입을 열었다.

“단장님. 그럼 제가 롱소드를 쓰고, 도렌이 숏소드를 쓰는 건 어떻습니까?”

근력이 조금이라도 높고, 덩치가 있는 이스핀은 롱소드와도 잘 맞았다. 숙련도 면에서도 도렌이 숏소드를 쓰는 것이 맞았다.

“좋지. 하지만 괜찮겠어?”

드낙이 이스핀을 보며 말했다. 덩치가 있기에 항상 시선이 모이는 것이 이스핀이다. 드낙이 사람을 죽이기 전까지는 말 그대로 이스핀이 가장 전투력이 강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제 겨우 적응된 숏소드를 버리고 다시 롱소드를 연마해야 했다.

“전 괜찮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는 걸로 하자. 무기 구매는 〈일각수의 고기〉를 팔고 난 대금으로 할게.”

“감사합니다.”

드낙이 인심 쓰듯이 말했고, 이스핀은 감사를 표했다. 흉갑을 비롯해서 기본 무구를 제외하고 사비로 장비를 구매해야 하는 정규군 느낌이 물씬 풍겼다.

이것은 추적 용병단에게 있어서 큰 변화였다. 드낙이 지닌 세력이 더욱 커진다는 것을 의미했다.

‘〈피가득 술집〉에 이젠 갈 필요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굵직한 의뢰가 찾아오겠지.’

다른 용병단과는 다른, 신뢰도가 높은 용병단의 출범. 그것이 드낙이 향하는 목표점이었다.

========== 작품 후기 ==========

5407자

감사합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