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33화 (133/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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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양아치가 다 있나?’

〈촌장 카레스〉는 손이 떨렸다. 봄녘 마을에서 이렇게 얻어맞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가진 자들은 서로서로 좋게좋게 거래하며 밑에 것들이나 후려패면 될 일이기에 서로 얼굴 붉힐 일이 없었다.

세월이 지나고 보니 〈애송이〉 시절 때 받았던 수모는 깜빡 잊고 살았기에 더욱 부들부들 떨었다.

밀이 썩어 넘쳐도 동화 20닢 밑으로 떨어진 적이 없었다. 10년에 한 번 15닢에 팔린 적은 있어도 팔아본 적은 없었다. 빻아서 창고에 넣어두면 몇 년이고 두고두고 먹을 수 있었다.

‘뭐? 동화 10닢? 이런 날강도 새끼가!’

열불이 터질 기분이었다. 하지만 카레스는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개를 숙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무력으로 놈들을 제압하기에는 아크온이 있어서 불가능한 형편이었다. 또한 〈마부 센〉이 당부한 것도 꺼림칙했다.

‘한 수가 있다는 것은 분명해. 하지만···’

허락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마을 사람들의 불만을 버텨낼 수 없을 것이다. 결국 드낙이 하는 말을 받아들인다면 자신은 촌장직에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왜 대답을 못하십니까? 일각수 고기는 돼지고기 값으로 사는 건 가능하고, 당신들이 거두어들이는 밀은 그렇게 못 팝니까?”

“죄송합니다.”

드낙의 눈이 다른 마을 사람에게로 옮겨졌다. 모두 드낙이 창문을 열 때 고개를 들었던 사람들이었다.

“한마을의 촌장께서는 내가 부끄러울 정도로 사과를 하며 높은 인성을 보여주는데, 당신들은 무엇이 그리 당당하기에 나를 쳐다보는가?”

냉큼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드낙은 촌장을 마지막에 한 번 세워주고, 다른 이들을 비난했다. 이 모든 일이 저놈들 때문이라고 몰아세웠다.

“오늘 있었던 일은 카레스 촌장님을 봐서 잊겠습니다. 이제 사업 이야기를 해보죠. 이스핀, 테이블 가져와."

그리고는 촌장을 보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은 돌려보내셔도 괜찮습니다.”

작은방에 처박혀있던 테이블이 거실로 나오고, 그 사이에 촌장은 카딘만 남겨두고 모두 밖에 땡볕에 서있으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안도의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끝까지 달리는 줄 알았네.’

그만큼 드낙의 기세가 대단했다.

드륵!

드낙은 테이블에 앉으며 생각했다. 즉흥적이었지만 제법 괜찮은 방법이었다. 〈봄녘 마을〉에서 횃불 성채까지 걸리는 시간은 3일~5일. 식량을 받기에 좋은 곳이었다.

‘농사도 열심히 확장하는 것을 보니 투자할 만하다.’

〈용병단〉의 이름을 딴 노예단을 꾸리고 운영하는데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이 식량이었다. 로마 군대의 경우에는 병사가 평균 1.5kg의 곡물을 받았고, 그 외의 식료품 또한 제공받았다.

단순 곡물만 해도 한 달이면 45kg이었다. 기숙사에서 20명의 인원수를 굴린다면 한 달에 900kg. 20kg짜리 포대로는 45포대가 필요하다.

상당한 양의 식량이었다. 그리고 횃불 성채의 시세로 구매한다면 동화 1800닢이다.

‘이번 기회에 〈봄녘 마을〉과 관계를 형성한다.’

좋은 기회였다. 형세를 보면 추적 용병단이 유리했기 때문에 협상에서 좋은 위치를 선점할 수 있었다. 물론 동화 10닢에 파는 것은 불가능했다.

끝까지 달린다면 드낙도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아크온의 중재를 받게 되겠지.’

사과를 하는 것으로 끝날 것이다. 실질적인 거래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고, 눈에 보이는 손해가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가 먼저 무기를 뽑아서 사람을 다치거나 죽게 만든다면 오히려 그놈이 불리할 수 있었다. 특히나 아크온은 드낙의 실력을 알고 있었다.

‘닥치는 대로 죽인다면 아크온이 날 끌고 가서 법정에 세워 죽이겠지.’

아니면 평생 전투 노예로 살아야 할 것이다. 무력이 장점인 드낙에게 현 상황에서 진짜로 끝장을 보는 것은 선택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촌장 카레스〉는 거기까지 생각이 닿지 못했다. 드낙이 동화 10닢을 거론하며 그곳에 잔뜩 정신이 몰리게 했기 때문이었다.

‘기반을 가진 놈과 싸우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이 없지.’

노예나 강도와는 달랐다. 가진 자끼리 서로 상부상조 하는 것. 그게 세상 살아가는 방법이었다.

사유재산이 탄생하고 쭉 이어져온 인류의 전통이었다. 강자는 영원토록 강자일 것이며, 약자는 영원토록 약자일 것이다.

현실감각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은 악수를 해야 할 대상이지 손가락질해야 하는 대상이 아니다.

큰 시류가 발생했을 때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민초(民草)라는 단어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잡초가 그리 쉽게 하나로 똘똘 뭉치겠는가?

현대에서도 이런데 하물며 이런 세상에서 마을의 대표와 끝장을 본다? 하기 힘든 일이다.

드낙이 적어도 진짜 기사가 되거나 가문을 가지지 않는다면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작아도 마을은 마을이다. 수백 명의 대장이다.

이번 일은 이기고 지고가 문제가 아니다. 이길 수 없었고, 질 수도 없는 싸움이다. 그게 바로 있는 놈끼리의 싸움이었다.

강자가 다른 강자를 향해서 칼을 뽑을 때는 끝장을 볼 때뿐이다. 구족을 멸하고, 성에 있는 사람을 학살하고, 다른 강자의 흔적을 모조리 지우고 파괴할 때뿐이다.

칼을 뽑으면 정말로 끝장을 볼 수 있을 때여야 했다. 적이 가진 기반을 한꺼번에 몰살을 시키지 않는 이상은 치고받고 싸워서는 안 되었다. 그저 말로만 각을 세우며 자신이 가진 기반을 단단하게 굳히는 용도로 쓰는 게 좋았다.

이런 작을 마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드낙에게 있어서는 수백 명이 사는 작은 마을의 지배자인 촌장은 강력한 지역 유지였다. 〈고작 작은 마을의 촌장〉이 아니었다.

하지만 적어도 드낙은 대등한 입장에서 설 수는 있었다.

“저희 마을도 자주 거래하는 고객을 가지고 있으면 결코 나쁜 게 아닙니다. 특히나 드낙 용병단장께서는 〈횃불 성채〉에서 용병업을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촌장은 아까 있었던 일은 치매 걸린 듯이 잊어버린 것처럼 굴었다. 사람 상대하는데 이골이 난 모습이었고, 능숙했다. 감정보다는 앞으로의 이해관계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나 마지막에 드낙이 자신을 세워주었기에 할 수 있는 행동이기도 했다. 드낙이 스스로 보여준 행동이었기에 드낙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말씀을 하시는 것을 보니, 현물거래를 많이 하십니까?”

촌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자신들의 마을에 대해서 이야기해주었다. 부족함이 많은 마을이라는 것을 어필하기 위함이었다. 당연히 밀 포대 값을 높이기 위함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거짓을 말하는 것은 아니었다.

“〈세 개의 강가〉에서도 끝물에 있는 것이 저희 마을입니다. 〈횃불 성채〉와 가장 가깝지만 저희 마을의 물건을 사기 위해서 오는 이들은 없습니다. 있어도 대부분 현물거래를 원하죠.”

“돈 만지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드낙은 흥미가 돋았다.

“어째서입니까?”

“횃불 성채에서 출발하는 이들은 멀리 가서 팔려고 꿈에 부풀어 있으니, 횃불 성채에서 물건값을 아는 저희 마을에는 잘 팔려고도 하지 않습니다. 당연한 일이지요.”

그럴듯했다.

“반대로 횃불 성채로 향하는 이들은 그곳에 볼일이 있는데 저희 마을의 물건을 사겠습니까?”

“아니겠죠.”

“결국 이도 저도 아니게 되어버린 것이죠. 가깝다고 다 좋은 것만은 아니더군요.”

특출난 뭔가가 있지 않는 이상은 불가능했다. 괜히 카딘이 버섯 때문에 우쭐하는 것이 아니었다.

“차라리 농사를 지어서 횃불 성채에 식량을 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거리가 가까워서 운임료가 적고, 저희 마을 자체에서도 팔 수 있습니다.”

괜찮은 방법이었다. 인구가 많은 횃불 성채와 가까운 곳에 있는 마을이었기에 충분히 농사로도 화폐를 만질 수 있었다. 구매자가 있기 때문이다.

또한 텅텅 빈 짐수레에 밀 포대를 횃불 성채보다 싸게 준다면 돌아가는 길에 소소한 차익을 위해서라도 가져갈 상인이 있을 것이다.

작게 벌겠지만 그래도 지금보다는 나을 것이다.

‘제법이군.’

유통로에서 상인과 많은 이야기를 듣고 경험을 쌓은 티가 났다. 먹고사는 문제였기에 농지를 넓히고, 수로를 개선하고, 저수지를 짓는 것은 망할 일도 없었다.

“그럼 보통 가격대가 20닢에서 30닢이겠군요.”

“그렇지요.”

그 말을 하고는 서로 말이 없었다. 두 사람 다 자잘한 것까지 속으로 가늠하기 바빴다. 그 싸움에서 승리한 것은 드낙이었다. 현대인. 그것도 한국인의 산수 능력은 매우 뛰어났다.

언어적인 면이 강했다. 번호판을 외우는 것부터 영어권과 큰 차이가 나는 것을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었다. 육구구팔과 six, nine, nine, eight는 크게 달랐다.

‘이렇게 거래하면 많이 해봤자 한 포대에 17닢~19닢밖에 못한다.’

“헌데, 횃불 성채에서 보급이 부족했던 적이 있습니까?”

곧바로 드낙이 수작을 부리기 시작했다. 아직 계산을 다 끝마치지 못한 촌장이 그 말에 휘둘리기 시작했다.

“없지요.”

“허. 그럼 횃불 성채만 믿고 농사를 크게 지었다가는 제값을 못 받을 텐데. 물량이 많아지면 상인들이 뭐라 하겠습니까? 차라리 불태우라고 하겠지요. 하하하.”

“크흠.”

촌장 카레스가 기침을 했다. 드낙은 코를 손가락으로 훔치며 말했다.

“그래서 저는 하나를 제안 드리고 싶습니다.”

“어떤 것 말입니까?”

“시세가 어떻게 변하든 말든 고정적으로 밀 포대를 구매하겠습니다. 대신에 싸게 해주십시오. 안전하게 화폐를 손에 쥐도록 모든 거래는 화폐로 하겠습니다.”

“음!”

카레스가 눈을 내리깔며 테이블의 나무 무늬를 보며 고민했다. 드낙이 제시하는 것은 두 가지의 장점이 있었다. 안정적이다. 폭등, 폭락 상관없이 무조건 그 가격으로 거래를 한다는 것이었다.

“재계약은 2년에 한 번. 겨울에 합시다. 서로 오래 얼굴을 보는 것이 아무래도 서로 좋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촌장 카레스가 눈을 빛냈다. 고정적이고 장기적인 고객이라니? 보기 드물었다. 애초에 곡물의 가격 고정이라니? 매달 요동치는 것이 곡물가격이었다.

“장기적으로 보시는군요.”

“안정적이고, 장기적인 거래입니다. 매달 달라지는 곡물값에 저 같은 방패는 하나 세워놓는 것이 좋지 않습니까? 물론 결코 대량으로 구매하지 않을 것이며, 다른 곳에 되팔지도 않겠습니다.”

“입소문만큼 무서운 것이 없죠.”

드낙이 빙긋 웃으면서 자신이 약속을 반드시 지킬 것이라는 이유도 설명했다. 촌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쁘지 않았다. 큰 이득을 못 봐도 그래도 안정적으로 계속 돈이 들어온다.

100% 화폐 거래를 약속한 것도 좋았다. 보통은 그러기 힘들었다. 하지만 카레스는 깊게 생각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드낙이 다리를 떨기 시작했을 무렵, 카레스가 입을 열었다.

“기숙사에 최대 몇 명까지 들어갑니까?”

“많으면 25명입니다. 지금은 3명뿐입니다.”

“그렇습니까. 늑대들에게도 곡물을 먹입니까?”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늑대 또한 과일과 채소를 먹는다. 때때로 먹을 것이 없으면 풀도 먹기도 한다. 육류 소비를 줄이려고 섞어 먹이는 게 좋았다.

‘어차피 경작을 해도 가을에 파는 것은 힘들다. 제값을 못 받는다.’

소작농 혹은 노예들이 생산하는 밀이 시장에 풀어질 것이다. 겨울이나 봄이 지나서 서서히 파는 것이 보통 시민들의 판매 방법이었다. 물론 마을에서는 대중없이 소비했지만 횃불 성채를 근처에 두고 있는 봄녘 마을의 방식은 달랐다.

“좋습니다. 하면 한 포대에 얼마를 생각하십니까?”

“열다섯 닢.”

촌장의 눈이 좁아졌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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