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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32화 (132/1,239)

0132 <-- 봄녘마을로 -->

카레스는 흉갑을 〈막내 제니〉에게 천으로 싸달라고 말하고, 거실에 있는 〈마부 센〉에게 양해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일이 생겨서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느긋하게 배웅까지 하고 싶었습니다만···”

그는 그것을 무리 없이 받아들였다.

“아닙니다. 시간도 시간이고, 아크온 님께서 저를 기다리고 계실 것이니 저도 가보긴 가봐야 합니다.”

마부 센은 아크온이 있는 곳으로 향하기 위해 일어났다.

덜컹.

카딘과 남자들은 〈마부 센〉과 괜히 눈을 마주치지 못하고 고개만 꾸벅 숙였다. 〈촌장 카레스〉가 큰 소리를 치고 소란을 벌였던 것을 들었기에 마부 센은 그들과 눈조차 마주치지 않고, 사라졌다.

〈둘째 아들 카딘〉은 자존심이 상하는 것을 느꼈다.

자신의 버섯을 구매하기 위해 제법 이름 높은 상단에서 직접 매년 찾아오기도 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요.”

제니가 주는 흉갑을 받아들인 카레스가 나오면서 입을 열었다.

“가자.”

“네.”

카딘은 두려워서 촌장 카레스가 들고 있는 흉갑을 자신이 들겠다고 말도 못 꺼냈다.

걸으면서 카레스는 이 문제를 수습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했다.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었다. 꼭 해야 한다는 것을 상기해서 드낙을 앞에 두었을 때, 고개를 숙일 줄 알아야 했다.

‘앙금을 가진 채 가게 한다면 큰 손해가 생길 것이다.’

횃불 성채에서 뻗어나가는 소문! 위험했다. 특히나 〈추적 용병단〉은 게실리안 지휘관과의 인연으로 병사들에게도 신뢰 있는 용병단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번 의뢰까지 끝낸다면 횃불 성채에서 가장 신뢰도가 높은 용병단이 될 것이다.

〈피가득 술집〉에서 의뢰만 던져놓은 사람들이 직접 찾아올 수도 있었다.

‘유명세를 이용하면 작은 마을 하나를 부수는 것은 쉬운 일이지.’

하나부터 열까지 끔찍한 경험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알기 전까지 어린 용병들을 설득하는 것이 옳았다.

‘무엇보다도 추천서를 얻은 용병단이다.’

문제 소지가 생기고, 공개적으로 싸움이 붙는다면 패배하는 것은 〈봄녘 마을〉이었다. 그렇다고 암살을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이곳에 기사가 있기 때문이었다.

‘저들도 마을 사람에게 검을 뽑고, 무력행사를 했으니. 속이 답답할 것이다.’

마을과 분쟁을 경험한 용병단도 아니었다. 그 점을 카레스는 노리고 있었다. 또한 기사가 있는데, 논란을 키울 수도 없을 것이다.

기사의 객관성은 뛰어나기로 유명해서, 그에게 판단이 옮겨간다면 양쪽이 모두 피를 흘릴 가능성이 농후했다.

‘무엇보다도 앞으로 크게 될 용병단이다. 마을을 경유하는 것만으로도 이득이 생긴다.’

드낙은 이미 거물로 향하는 길을 탔다고 할 수 있었다. 귀족에게는 하찮은 것이겠지만 촌장에게는 커 보였다.

‘촌장이 직접 가는데, 설마 강단 있게 나올까.’

땀을 조금 흘리며 〈추적 용병단〉이 머물고 있는 집에 도착하자 카레스가 흉갑을 든 채로 노크를 했다.

“계십니까! 촌장인 카레스입니다!”

안에서 인기척이 났다. 아침 식사를 방금 마친 이스핀이 일어나려 하자 드낙이 말리면서 생긴 인기척이었다.

“됐다. 촌장이 왔는데, 네가 왜 나가냐. 내가 나갈 테니 정리를 하고 있어라.”

“예!”

드낙이 문을 열었다. 땀이 조금 나온 채 천으로 싼 뭔가를 들고 있는 촌장이 보였다. 드낙이 말을 열기도 전에 카레스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희 마을 사람이 무례를 저질러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웃는 얼굴을 하고 있는 카레스를 보며 드낙이 비켜서며 말했다.

“들어오시죠.”

문제를 일으켰던 5명에 카딘과 카레스까지 들어오자 거실이 가득 찰 정도로 비좁아졌다. 테이블 하나 없는 곳이었기에 일어서서 대화가 이루어졌다. 용병들은 여유롭게 식사한 흔적을 치우고, 마을을 떠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뭘 그렇게 멍하게 나만 쳐다보고 있느냐! 고개 숙여서 사과하지 않고!”

“죄송합니다!”

문제를 일으키지 않은 카딘도 고개를 푹 숙였다. 그 꼴이 실로 우스웠다. 그리고는 카레스는 한 명씩 목을 잡아 앞으로 나오게 하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이게 했다.

드낙은 그 모습을 보면서 박수라도 쳐주고 싶어 했다.

마음이 약한 사람이 본다면 용서를 할 정도로 훌륭한 쇼였다. 많은 착한 사람들이 저 겉모습, 저 진실되게 사과하고 고개를 숙이는 모습에 혹해서 용서를 해준다.

‘병신들이지.’

드낙은 사회생활을 하면서 결국 위로 올라서는 자는 용서하는 놈의 팬티까지 입에 물어서 가져가는 놈이라는 것을 잘 알았다. 그러면서도 그런 놈들은 품위까지 있다.

대통령 선거조차도 네거티브 공방으로 이루어지는데 그 밑은 오죽하겠는가? 용서는 호구들이나 하는 짓이거나 힘없는 놈들이나 하는 짓이었다.

“이게 끝입니까?”

드낙은 표정 하나 바꾸지 않은 채 무표정하게 말했다.

‘젠장.’

카레스는 속으로 드낙을 욕했다. 실로 대단한 용병단장이었다. 그러니까 수백kg은 되어 보이는 일각수의 고기를 얻은 것이겠지. 본래는 기사의 공인데 그것을 갉아먹은 것만으로도 훌륭한 실력이었다.

“횃불 성채의 유명한 대장간에서 제련한 흉갑입니다. 마을에 큰 싸움이 일어날 때마다 사용해온 것입니다.”

천을 걷으며 흉갑을 보여주었다. 보통 구매하려면 은화 25닢~50닢을 주고 사야 했다. 대부분의 용병이 가죽 방어구를 쓰는 이유가 있었고, 정규군이나 입고 있는 것이었다.

일반 강철 방어구가 은화 3~10닢 사이인 것을 감안하면 흉갑만 무식하게 비쌌다. 정규군에서 사용하다 보니 명성이 자연스레 높아졌기 때문이다.

작은 마을에 있을 수 없는 것이기도 했다. 그리고 드낙은 그것을 눈으로 보면서 단번에 이 〈봄녘 마을〉의 촌장인 카레스의 영향력이 보통 이상임을 알 수 있었다.

‘얼마나 남겨 먹는 거냐.’

대단한 놈이었다. 하지만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흉갑을 앞에 보고 무표정으로 일관하는 드낙을 보며 카레스는 기가 질렸다.

눈앞에 한화 5천만 원짜리를 보여주는데 무덤덤하다니.

‘뒷배가 따로 있나? 그럴 리가 없지. 아크온 님과의 일로 간이 부어버렸군.’

침묵 속에서 실처럼 가는 웃음을 지으며 드낙이 말했다.

“알만한 건 다 알고 왔으면서 고작 흉갑입니까?”

촌장 카레스가 직접 온 것부터 〈추적 용병단〉에 대한 정보를 획득했다는 뜻이었다. 그게 아니라면 올 사람이 아니었다. 땀까지 흘리며 직접 흉갑을 들고 온 것이 또 하나의 증거였다.

‘나한테 잘 보이고 싶다는 뜻이지.’

작다곤 해도 한마을의 촌장이다. 그것도 흉갑을 구매할 정도로 무식하게 착복하는 양반이 용병 단장에게 잘 보이고 싶어 한다? 정보를 획득한 것이 아니고서는 불가능했다.

그러므로 드낙은 강하게 나갔다.

“고작 흉갑이라니요. 그대로 팔아도 은화 50닢은 받습니다.”

그 말에 이스핀이 나섰다. 드낙이 정보를 수집하는 것에 큰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인이 가지는 밑도 끝도 없는 지식에 대한 우월함이었다. 그렇게 정보 취득을 부실하게 해서 얻어맞아도 시간이 지나면 또 불쑥 튀어나왔다.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평범한 사람이 드낙이었다.

“가장 비싸게 살 때야 50닢이지. 중고면 20닢도 힘든데.”

그 말에 카레스는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소수인원인 〈추적 용병단〉의 단장과 단원의 돈독함을 경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부러 저쪽에 칼부리를 쥐어주고 싶지 않았다.

“〈세 개의 강가〉에는 제법 길이 여럿있죠. 괜히 강가가 3개입니까?”

경유지의 특성으로 제법 소득을 가지고 있는 것이 봄녘 마을이었다. 드낙이 그 부분을 말하자 괜히 뒤통수가 싸했다.

〈횃불 성채〉로 돌아가면 무슨 수작을 부리겠다는 소리나 다름없이 여겨졌다.

“이거 왜 이러십니까. 서로 좋게 좋게 하는 게 좋은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그게 아닐 때도 있는 법이죠.”

자신과 봄녘 마을은 격차가 분명히 있음을 드낙이 말을 돌려서 내비쳐 보였다. 서로 싸우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의 역량이 비슷해야 하는 법이었다.

육식동물과 육식동물은 서로 싸우는 일이 크게 없다. 하지만 호랑이가 노루에게 덤비는 것을 주저하지는 않는다. 드낙은 싸워도 자신은 큰 손해가 없다고 말하고 있었다.

‘불리한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그것을 카레스 또한 잘 알고 있었다. 몇 마디 나누지 않아도 서로 생각하고 고려하는 것이 비슷하다 보니 벌써부터 패배가 눈에 들어왔다.

그가 아무 말이 없자 드낙이 창문을 열면서 말했다. 여유로움에 모두의 시선이 드낙으로 향했다. 몇몇 이들은 마른침을 삼켰다. 실로 보기 드문 광경이었다.

“제법 농사일에 많은 노력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예··· 아무래도 〈세 개의 강가〉 곳곳에 크고 작은 마을이 계속 들어서다 보니, 다르게 살길을 찾아야 해서 시작했는데 호응이 좋아서 목표를 더 높이 잡았습니다.”

촌장이 착실하게 대답해주었다. 드낙에게 아주 만족스러운 대답이었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이기도 했다. 이스핀이 전날 먹거리를 들고 오는 여자들에게 추근거리면서 온갖 것을 들은 덕분이었다.

‘얼마나 이스핀과 엮이기 싫었으면 마을의 발전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을까.’

이스핀에게는 굴욕이었지만 그 덕에 드낙은 이번 일을 좋게 마무리할 수 있었다.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농지가 많아도 사는 사람이 많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상재가 좀 있으신 듯합니다. 많은 이들이 지나가는 곳이지만 곡물을 살 사람은 적지요.”

카레스가 맞장구를 쳐주었다. 그러면서 드낙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생각했다.

‘대체 뭘 요구하려고?’

도무지 잡히는 구석이 없었다. 갑자기 웬 농사 이야기를?

‘땅을 원하는 건가? 그건 아닐 텐데.’

이런 작은 마을에 땅은 무슨, 공짜로도 거주할 수 있을 지경이었다.

“곡물이 필요할 때, 와서 구매하는데 값을 좀 싸게 해주시지요. 한 번 살 때, 많이 사겠습니다.”

“예?”

“20kg짜리 한 포대에 동화 10닢으로 하지요.”

“무···”

카딘이 까무러치려다가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주제넘은 짓이었지만 그만큼 놀랄 수밖에 없었다. 보통은 20kg에 동화 30~50닢 하는 것이 밀이었다. 그걸 10닢에 팔라니. 미친 소리나 다름없었다.

“어렵습니까?”

“그거야···”

카레스가 눈을 이리저리 굴렸다. 생각할 것이 많았다. 그렇다고 입을 다물고 있으면 점점 궁지에 몰릴 것이다.

“물량은 어느 정도로?”

“그야, 그때그때마다 다르지요.”

드낙이 〈봄녘 마을〉의 촌장을 하청업체 사장처럼 다루자 카레스는 뒤통수에 망치로 맞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아니, 정확한 물량도 모르고 그러시면···”

“하하. 그리 대단히 시킬 것은 아닙니다. 제가 장사할 것도 아니고. 도둑놈처럼 싹 긁어가겠습니까? 제가 횃불 성채에 용병단 기숙사를 지었는데, 앞으로 용병단이 제법 커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소리인데···”

드낙이 말 끝을 흐리자 카레스가 그 말을 받았다.

“기숙사를 운영하는데 곡물을 달라는 것입니까?”

“거저 주는 것은 아닙니다. 동화 10닢이면 괜찮지 않습니까?”

그 모습을 본 카딘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자신의 아버지인 카레스가 어떤 인물인가. 마을 사람들의 신임을 받으면서도 돈이란 돈은 박박 긁어내는 수전노였다.

드낙 앞에서 쩔쩔 매는 모습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었다.

========== 작품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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