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28 <-- 끝이 나고 -->
이스핀이 방패와 숏소드를 들어 올렸다. 옆에는 도렌이 거친 숨을 내뱉으며 구경하며 눈을 빛내고 있었다.
그의 방패는 전과 다르게 조금 작아져있었다. 체격이 크다고 해서 큰 방패를 사용하는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알았다. 물론 여전히 컸지만 처음 〈애송이 용병〉 시절에 구했던 방패보다는 작았다.
1:1을 하면서 누구보다도 깨달은 것이 있다면 칼싸움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공간이라는 점이었다. 리치는 그 공간의 길이이며 자신이 가지고 있는 영향력에 대한 것이었다.
〈간합〉의 중요성은 처음에 가르쳐도 성급하지 않으며, 틈틈이 말해도 아쉬움이 남으며, 끝날 때 상기시켜도 부족함이 항상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무의 가장 기본이었다.
특히나 인간과 인간의 싸움에서는 이 간합을 모른다면 죽어도 할 말이 없었다. 드낙은 탄력의 롱소드를 쥔 채 다시 한 번 도렌에게 말했던 것을 말하고 있었다.
드낙은 오늘은 롱소드의 간합과 기본적인 상대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롱소드는 기본적으로 양손검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한 손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길이가 긴 롱소드의 무게는 1.5kg 전후. 탄력의 롱소드는 제법 무게가 나가는 편이었다. 한 손으로 쓰기에는 사실 부적합한 것이었지만 초월적인 〈검은 문〉을 통해서 신체능력을 높인 드낙은 막힘없이 쓸 수 있었다.
또한 제법 나이가 있거나 경험을 쌓은 용병들은 방패를 쓰지 않는다면 롱소드를 주무기로 썼다. 방패를 쓴 이도 주무기로 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삼류들의 싸움에 있어서 리치는 강력한 이점이었다.
무엇보다도 승부 자체가 빨리 끝나기 때문에 지구력을 고민해야 할 필요가 없었다. 뭐라도 닥치는 대로 손에 쥐어야 했다.
드낙은 양손에서의 리치. 한 손에서의 리치를 느리게 보여주었다.
수많은 대련을 통해서 그 차이를 정확하고, 요령있게 확인한 이스핀은 도렌보다 배움이 빨랐다. 방패를 긁는 정도로 간합을 조절할 정도가 되는 것은 각각 두 번씩 반복했을 때였다.
물론 드낙은 끝에는 항상 굴복시켰기에 이스핀이 긴장했다.
“보통 롱소드를 양손으로 쥔 채로 방패를 든 상대를 상대할 때,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무엇일까?”
“방패를 내리게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렇지.”
쾅!
드낙이 한 걸음 내디디며 정확하게 롱소드를 내려쳤다. 이스핀이 방패를 쭉 뻗은 상태에서 안으로 팔뚝을 굽히면서 기울여 막았다. 가드는 결코 내려가지 않았다. 하지만 인상을 찡그린 이스핀은 드낙의 힘에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결코 평범한 드낙의 몸으로는 낼 수 없는 힘이었다.
“가드가 풀리지 않으면 어떻게 해야 할까?”
“현란하게 움직일 것입니다.”
그 말에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정답은 아니었다. 롱소드의 흉악함은 현란함이 아니고, 찌르기였기 때문이다. 그것은 곧 리치 싸움이며 간합의 결투였다.
쉭! 텅!
뒤로 물러나면서 말을 할 것처럼 행동하던 드낙이 롱소드로 찌르기를 하자 이스핀이 놀랐다. 그만큼 드낙과의 거리가 멀어 보였는데도 롱소드가 방패를 두드렸기 때문이다.
“롱소드는 베기도 강력하지만, 찌르기가 가장 무섭다. 리치 싸움을 할 것이다. 또, 조금 기교를 섞는다면 방패 쪽으로 움직이며, 하단을 노린다. 발이 찔리면 그것으로 끝이다.”
팍!
흙이 깊게 패었다. 롱소드의 파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그럼 방패를 내리면 되는 것 아닙니까?”
“페이크를 내면? 방패를 퉁치고 단번에 회수하여 목을 찌르면 어찌할 테냐?”
이스핀이 결국 입을 다물었다. 그제서야 드낙이 〈정석〉을 이야기해주었다.
“방패를 들었다면 간합 싸움이 아니라 공간 싸움으로 가야 한다. 계속해서 밀고 들어오며 위협해야 한다. 롱소드의 리치로 들어서며 방패를 밀어내도록 계속 들이밀어야 한다.”
“무작정 돌진이 답입니까?”
드낙이 차갑게 웃었다.
“방패 믿고 덤벼드는 놈만큼 무서운 놈은 없는 법이지. 정규군이나 기사가 아니라면 충분히 〈정석〉이 통할 것이다. 넌 강단이 있고, 힘이 있으니 오히려 무식한 것이 효과가 좋다. 물론, 상대를 보고 덤벼야 할 것이다.”
“도망이 최고입니까?”
“죽기보다 사는 것이 좋지.”
“단장님 두고 뭘 도망갑니까? 젠처럼 현상금이라도 거실 겁니까?”
“하하하!”
몇 번 달려드는 것에 있어서 빈틈을 지적하는 것으로 대련은 끝났다. 말이 대련이지 사실상 수업이나 다름없었다.
아크온은 4일 만에 도착했다. 왜 그렇게 늦었냐는 말은 하지도 않았다. 말 두 마리를 받아들였다. 그는 나뭇잎에 싸여진 고기를 보고는 기가 찼다.
“이걸 모두 가져간다고?”
“예. 더 가고 싶어도 못 가져가는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드낙의 말에 아크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물질적인 것에 있어서 부족함과 절박함 한 번 느껴보지 않은 그에게는 이해 못 할 일이었다. 그리고는 늑대 9마리와 도노가 볼에 살이 쪄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며칠 안 본 사이에 얼굴에 살이 오동통 올랐군.”
“먹기 싫어해도 억지로 먹였습니다. 일각수의 고기니까, 제법 몸에 좋지 않겠습니까?”
드낙은 무덤덤하게 말했지만 실제로는 토를 하거나, 헛구역질 그리고는 이빨이 부러질 정도로 반항하기까지 했다. 〈검은 늑대〉이자 〈마브로스 리꼬〉같은 놈이 있었다면 당장 친구고 뭐고 물었겠지만, 일반 갈색 늑대는 드낙에게 찍 소리도 못 냈다.
뱃가죽이 당장이라도 터질 것처럼 보였다. 오늘도 잔뜩 먹인 듯했다.
‘이런 기회가 언제 오겠어?’
늑대 한 마리당 한 달 동안 먹는 고기 유지비만 해도 최소 동화 300닢에 달했다. 덩치를 키워야 했기에 보통 동화 400닢이었다. 일각수의 고기를 잔뜩 먹여서 살을 찌우는데 집중한 3일이었다.
깡마른 야생 갈색 늑대들의 뱃가죽이 두툼했다. 바늘로 찌르면 터질 것 같았다.
말 한 마리에 450kg씩 짊어졌다. 나머지 100kg과 가죽은 〈추적 용병단〉이 짊어져야 했다. 그들은 간이 썰매까지 만들어놓았는데 그것을 사용해서 두 명이 앞에서 끌고, 한 명이 뒤에서 밀었다.
무식한 짓을 보며 아크온이 그 모습을 외면했다.
모양이 빠지기 때문이었다. 〈일각수〉의 전투에 용맹하게 나섰던 용병이 엉덩이를 한껏 하늘을 향해 세우며 썰매를 끌고 있었다.
뒤에서 끄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제법 높이가 낮아서 허리가 아팠기 때문에 자주자주 교체를 했다.
‘빌어먹을. 정말로 끌고 가는구나.’
드낙이 정말로 끌어야 한다 끌어야 한다고 말해도 믿지 않았던 이스핀이었다. 혹사하는 것이 되겠지만 말이 끌 줄 알았기 때문이다. 또한 짐수레에 있는 준마는 왜 아크온이 안 데려왔는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전이랑 다를 바가 없어!’
늙은 당나귀 녀석이 요령을 피워서 뒤에서 밀어야 했던 저번 의뢰가 생각났다. 허벅지가 튼실해졌다고 수련 한 번 잘했다고 생각하라는 것이 드낙이 술 마시며 말했던 위로의 전부였다.
더더욱 자존심이 절반인 이스핀은 아크온이 있었기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쪽팔렸다.
6두마차 위에 고기가 얹어지고, 말이 모두 앞에 놓였다. 짐수레를 끌던 일반 준마는 산길을 갈 수 없을 정도로 말굽의 관리가 안 되어있어서 가만히 풀만 뜯으며 추적 용병단을 반겨주었다.
“드낙 용병단장!”
아크온의 부름에 드낙은 정리를 하다 말고,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이스핀과 도렌은 그것을 보며 부러움에 가득 찼다. 마차 안이 매우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안으로 들어간 드낙은 생각보다 좁은 마차 내부를 보며 연신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기사의 마차는 처음 보나 보군. 잠자는 것이 고작인 곳이네.”
말을 하며 마부 센이 건네주는 가죽 주머니를 받은 아크온이 드낙에게 다시 건넸다.
“미리 돈을 주겠네. 약속한 금화 30닢이네.”
명목상 〈일각수의 뿔〉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뜻으로 주는 금액이었다. 가치에 비해서 낮은 가격이었으나, 그 외에 여러 것들을 해주기로 했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기도 했다. 흥정을 하기에는 조금 그랬다.
최대한 해주려는 사람에게 쓰게 대하는 것이 드낙에게는 어려웠다. 차라리 아크온이 수전노였다면 더 뜯었을 것이다.
직접적인 광경을 목격하는 기사의 삶. 그 속에서 아크온 몽펠리에는 스스로가 쌓아만든 정원을 부수고 밖으로 나온 지 제법 되었다. 그 정원에서 자란 꽃과 나무는 그대로였지만 밖에서 들어온 곤충들도 많았다.
“추천서부터 써주지.”
단번에 일을 하려는지 아크온이 테이블에 앉자 〈마부 센〉이 필요한 것을 꺼냈다. 두툼한 양피지. 양피지의 고정을 위한 긴 철막대기. 불을 켠 양초와 글을 쓰기 위한 펜과 잉크. 딱딱하게 굳어있는 씰링 왁스와 아크온 몽펠리에 자신의 이름과 가문이 새겨진 인장까지.
“음···”
아크온은 먼저 추천서에 쓸 내용을 한 번 고민하고, 다시 생각했다. 한 번 쓸 때 거침없이 써야 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잉크를 펜에 흘러 넣은 뒤에 나오길 기다렸다.
펜으로 점을 찍은 곳은 제법 굵직했다. 하지만 그 뒤로부터는 막힘없이 써 내려갔다. 잉크는 계속 흘러내렸기 때문에, 앞뒤로 뚜껑이 없었기에 무조건 써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그냥 바닥에 쏟던가.
추천서의 내용은 〈변종 키메라〉와 〈일백야수〉 그리고 〈일각수〉가 된 〈붉은털의 곰〉을 잡는데 큰 도움을 준 드낙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 용맹과 의뢰에 대한 신념은 남다르다고 평가했다.
몽펠리에 가문의 주관이 아님을 명시했으며, 자신의 이름과 버팔로 나이트의 명성을 적었다. 이 때문에 상당한 양이 소모되었는데, 버팔로 나이트의 명성에 관한 것이 추천서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였다.
펜을 놓자 마부 센이 천으로 받아들었다. 일이 끝나면 곧바로 세척을 해야 했다.
그다음에는 굳어진 씰링 왁스를 밝혀진 촛불로 녹였다. 황토색과 검은색이 뒤섞인 독특한 씰링 왁스였다.
그것을 충분히 녹였는데, 독한 냄새가 가득 퍼졌다. 드낙은 내색하지 않고, 익숙한 냄새를 맡는 것처럼 지켜보았다.
씰링 왁스를 길쭉한 날 없는 나이프처럼 생긴 것으로 크게 덜어서 양피지에 묻혀 바르고 인장으로 꾸욱 눌렀다.
아크온 몽펠리에의 개인 문장은 힘의 팔뚝과 주먹. 그 양옆으로는 재생과 치유를 상징하는 버드나무 잎이 가득했다.
모든 작업이 끝나고 식을 때까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앞으로에 대한 것이었다.
“일단은 횃불 성채로 돌아가서 휴식의 시간을 보낼 생각입니다.”
“한 달은 쉴 생각인가? 의뢰가 제법 들어올 텐데.”
드낙은 그럼에도 고개를 끄덕였다. 쉬면서 용병단의 크기를 부풀리게 해야 했다. 이번 일은 드낙에게 다른 방향이 필요함을 말해주고 있었다.
‘노예.’
도망치는 용병에 대한 미련을 버린 드낙이었다. 애송이 용병을 키우는 것보다는 차라리 노예를 구매하는 것이 나았다. 그를 위한 웅크림이 드낙을 기다리고 있었다.
“뭔가 생각하는 것이 있군. 뜻깊은 휴식을 보낼 생각인데, 말해줄 생각이 없나보군.”
“하하. 비밀로 할 만한 것도 아닙니다. 노예를 구매할 생각입니다. 용병들과 두 번 합을 맞추었는데 제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더군요. 이스핀과 도렌이 굉장히 의외였고···”
아크온은 깊이 공감했다. 귀족이든 정규군이든 호로쌍놈의 새끼들이 용병들이었다. 말이 상단 호위지 트롤이나 야수가 나타나도 도망치는 용병단이 있을 지경이었다.
인장이 다 식어서 굳어지자 양피지를 돌돌 말아 묶어서 드낙에게 주었다. 최상급의 양피지라 거칠게 다루어도 30년은 갈 것이다.
“마법 장비도 한 번 둘러보게. 설명은 센이 해줄 것이네.”
“예. 혹, 찾는 것이 있습니까?”
드낙이 마차를 살폈다. 눈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었기에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말해서 얼추 맞는 것을 얻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