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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27화 (127/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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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밤길을 아크온은 거침없이 걸어가 마차에 도착했다.

6두 마차는 마법적 처리가 되어있는 마차였기 때문에 안에서 밖을 완벽하게 주시할 수 있었다. 곧바로 문이 열리며 짐승을 쫓기 위해 피워놓은 모닥불 빛에 전신을 강철로 두른 아크온을 〈마부 센〉이 반겼다.

“왜 이렇게 늦으셨습니까?”

“데운 술부터 주게. 날씨가 생각보다 쌀쌀하군.”

2일 동안 흐리고, 2일 동안 비가 내리고 난 다음이었기에 밖의 온도는 여름임에도 싸늘한 냉기가 가득했다. 특히나 숲이었기에 수분이 쉽게 증발하지 않아서 체감 온도는 더욱 낮았다. 시간에 쫓기는 것이 아니었기에 아크온은 테이블에 앉아 술을 부탁했다. 유일하게 안전한 곳이라 여겼기에 갑옷도 탈착하였다.

철컥.

많은 고민과 실험을 통해서 수많은 제작 끝에 서서히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진 전신갑주는 혼자서도 탈착이 가능했다.

“후우.”

밤이었기에 몸을 차갑게 만드는 맥주보다는 독한 술이 적당히 따뜻하게 데워져서 올라왔다. 안주가 준비되어있지 않은 채로 술을 마시며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다.

“일백야수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변종 키메라가 가장 먼저 튀어나왔지.”

마부 센에게 먼저 말하는 이유는 스스로 말을 한 번해서 이상한 점을 찾아내거나, 좀 더 이야기를 다듬기 위해서였다.

“그런 일이···”

〈일백야수 토벌〉까지 흑마법사의 간악한 노림수였다는 것을 안 마부 센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평범한 사람은 생각할 수 없는 사악함에 절로 공포스러움을 느꼈다. 동시에 여기서 끝이 아닐 수 있다는 걱정을 가지게 되었다.

“마을에 도착하고 나서 보고를 하는 것이 안전할 것 같습니다.”

그 말에 아크온이 고개를 저었다.

“드낙 용병단장이 아직 동굴에 있다. 마을에 되돌아가는 것은 아직 안 된다.”

거리낌 없이 드낙이 한 일을 이야기해주었기에 마부 센이 납득했다. 보고를 하려면 메시지 마법을 사용해야 했다. 물론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불을 일으키고, 물을 얼리며, 바람을 토해내는 마법은 손으로 할 수 있었지만, 메시지 마법은 달랐다.

〈메시지 마법〉은 매우 강력한 마법이었다. 보통의 마법사든, 고등한 마법사든 사용하기가 까다로웠으며 유지하는 것도 힘들었다. 또한 매우 비효율적인 마법이었다. 유일한 장점은 거리에 대한 제약을 크게 단축시킨다는 점이었다.

아무리 비효율적이라도 그 점은 대단히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

기사가 6두 마차를 타고 다니는 이유도 사실 메시지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테이블에 지도가 올려졌다. 자신의 위치를 대충 가늠해주는 것이 아니라, 〈별의 위치〉를 통해서 자신의 위치를 보여주는 〈별지도(Star map)〉라는 마법 지도였다.

“여기 줄자입니다.”

cm가 없고, hour라는 단위가 적혀져 있고 그 뒤로는 숫자가 박힌 줄자였다. 그것은 오직 메시지 마법과 별지도를 위한 줄자였다.

“18시간. 제법 길군.”

“같은 북부 지방이라지만 워낙 땅이 넓은 지방 아닙니까.”

말이 10시간 달릴 거리가 메시지 마법은 1시간 만에 갈 수 있었다. 줄자의 눈금은 메시지 마법의 소요시간이었다. 총 18시간 동안 메시지 마법을 유지해야 몽펠리에 가문의 영주성에 연락이 닿을 수 있다는 소리였다.

6두 마차 기능의 절반을 잡아먹는 놈이었다. 하지만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마부 센은 뒤이어서 작은 목함을 열어 큰 강철병을 18개 꺼냈다. 실로 기괴한 현상이었지만 공간을 늘리고, 줄이는 것이 가능한 마법 목함이었다.

단점이 있다면 강철 정도의 탄성과 단단함을 가진 것이 아니라면 박살이 난다는 점이었다. 강철병의 내부에는 마력을 액체로 농축시킨 것이 들어있었다.

이것이 모두 이번 보고에 쓰일 것이다.

수정구는 텅텅 빈 상자 속에 있었는데, 몽펠리에 가문 영주성에 대한 좌표와 메시지 마법의 술식이 부여되어있었다. 텅텅 빈 상자는 특수한 재질로 되어있었고, 그곳에 강철병 속에 든 〈마력 액체〉를 그대로 쏟아부었다.

콸콸콸 거리는 소리 하나 없었고, 그저 떨어져내린 마력 액체는 마치 슬라임처럼 들러붙듯이 상자에 납작 붙어서 쫙 퍼져나갔다.

그 과정 속에서도 한 방울도 넘쳐흐르지 않은 것은 상자에도 관련된 마법이 부여되었기 때문이었다. 마력이 들어오자 수정구가 푸른빛으로 물들었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연결이 될 것이다.

아크온은 잠에 빠져들었고, 센은 경비를 서듯이 눈을 뜬 채로 시간을 보냈다.

18시간이 지나고, 마력 액체가 모조리 수정구에 쓰였을 때, 빛이 한 번 터졌다. 연결된 것이다. 연결이 된 순간부터 이곳에서 마력을 보낼 필요는 없었다. 저쪽의 풍부한 마력이 계속 유지시킬 터였다.

“아크온 몽펠리에다.”

“버팔로 나이트를 뵙습니다.”

“인사는 됐다. 바로 보고서를 작성할 준비를 해라.”

“예. 하지만 그전에 최소한의 검증을 부탁드립니다.”

몇 가지 추가적인 검증을 거치는데 아크온은 큰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 뒤에서 마부 센이 지켜보고 있기도 했고, 그럴 나이도 아니었다. 야수 때문에 식량이 없는 곳에서 어린애가 서슴없이 감자를 하나 건넸을 때부터 아크온은 밑에 사람에게 큰 소리를 치는 빈도수가 매우 낮아졌다.

물론 안 한다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는 성인이 아니었다. 자기가 한 약속을 평생 지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검증을 마치자 곧바로 이야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문관(文官)과 견습 마법사가 함께 수정구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일백야수의 건이다.”

모두 몽펠리에 가문에 소속되어있는 이들이었고, 친척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흑마법사에 대한 주제가 입에 올라왔다.

“〈왕국 야영지〉에서의 일은 이미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가는 데에는 전기보다 형편없는 속도를 보였지만 한 번 연결되고 나서는 그 어떤 렉도 없었다.

“예. 파이룬 가문의 떠오르는 태양이라고까지 말해지는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의 이번 연도 가장 큰 공적 아닙니까? 잘린 늑대인간의 머리만 해도 25개였는데 수도의 대로를 그 머리를 효수해서 걷는데 엄청난 유명세를 떨쳤습니다.”

북부 지방에 흑마법사들의 움직임을 파악한 일이었다. 비록 변종 키메라는 잡지 못했고, 흑마법사의 하수인을 잡지 못했지만 왕국 야영지에서 늑대인간 25마리에게 습격을 당했다면 큰 피해를 입었을 것이다.

그것을 미연에 방지한 것만으로도 대단한 이슈였다. 물론 죽은 병사들 또한 황금으로 도금되고, 새하얀 석관으로 그전에 먼저 들어섰다. 수도 신전의 지하 납골당에 모셔졌다.

“세 개의 강가에서 벌어진 〈일백야수 토벌〉에 관련되어서도 흑마법사가 농간을 부렸다.”

엄청난 사건의 결말부터 일단 아크온이 던졌다.

“!!!”

듣는 두 사람이 경악했다. 문인은 그러면서도 계속해서 손을 놀려 대화 내용을 간략화해서 쓰고 있었다.

상세히 말을 하고 나서 아크온이 자신의 추론을 말했다.

“다음은 〈횃불 성채〉가 될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지. 놈들의 준비는 철저하니 반드시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제법 정보를 들은 문관이 아크온의 말을 받쳐주었다.

“〈횃불 성채〉에서 아기들이 납치당하는 일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남부 야영지〉에서는 혹시 몰라 했지만 〈세 개의 강가〉의 〈일백야수〉에 대한 일까지 더한다면···”

빼박이었다. 하지만 그 말을 타인에게서 들은 아크온이 생각을 바꾸었다. 너무 노골적이었다. 그래서는 안 되었다. 수백 년 먹은 썩은 시체가 할 판단이 아니다.

“아기들의 납치? 노골적이군. 그렇다면 횃불 성채가 원래 처음으로 일이 터졌어야 했거나 동시에 세 곳에서 일을 냈을 것이다. 아니, 그럴 계획이었군.”

들키지 말아야 할 일이 들켰고, 그렇기에 횃불 성채에서 일어난 끔찍한 일이 크게 부각된 것이다. 모든 것이 꼬였다면···

“그렇다면 벌써 발을 뺐을 가능성이 있군. 자원 투입은 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아크온님의 생각을 들으니 정말로 그러하군요. 허면, 개입은 하지 않으나 신전에게 정보를 흘리겠습니다. 알아서 움직여줄 겁니다.”

“성전대를 일으킬 만큼 경각심은 주지 말아야 한다.”

흑마법사든 귀족이든 신전은 꺼림칙한 곳이었다. 금욕하며 남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는 자들이 득실거리는 모습은 너무나도 인공적이었고, 인위적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신전과 사이가 좋은 귀족은 없었다. 겉으로 관계만 좋을 뿐이었다.

“명심해서 보고서를 작성하겠습니다.”

그다음은 당연히 〈드낙〉에 대한 것이었다. 그에 대한 것을 조사하고 싶은 것이 아크온이었다.

“하나 알아봐 주었으면 한다.”

“예. 말씀하십시오.”

아크온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 지금 이 판단이 나중에 어떻게 될지 몰랐지만, 그래도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 것 같았다.

“늑대를 부리는 북부 기사 가문을 알아봐 주었으면 한다.”

“···늑대를 부리는 북부 기사 가문 말씀입니까?”

들어본 적도 없는지 문인이 물음표를 띄웠다. 그야 당연했다. 역사에 대해서만큼은 빠삭할 정도로 교육을 받은 아크온조차도 몰랐으니까.

“일단 사서들에게 의뢰를 요청했으면 한다.”

문관이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예. 문헌을 조사토록 하겠습니다. 혹 다른 하실 말씀은 없습니까?”

“기이한 롱소드를 사용했다. 매우 탄력적인 검이었지. 아마 가보(家寶)일 것이다.”

그 말에 문관이 단번에 말했다. 매우 유명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럼 불파겐 가문이 아닙니까?”

수백 년이 흘러도 〈남부 왕국〉에서는 살아있는 전설이 바로 〈오우거 슬레이어〉에 대한 이야기였다. 한 손으로 마법사를 불태우고, 다른 손으로 기사의 목을 조르는 오우거는 힘의 상징이었다.

“바보 같은 소리! 불파겐 가문이 야생 늑대를 단번에 조련하느냐? 또한 〈스틸 플로잉 리버(Steel flowing river)〉는 야수의 적발과 엘프의 녹안을 지닌 불파겐 가문의 혈통만 쓸 수 있는 귀물(鬼物).”

아크온이 무서운 기세로 말을 더했다.

“저주받았다고 여겨질 정도로 주인을 가리는 검이다. 그는 평범한 탁한 금발에 청안을 가지고 있다. 결코 이 보고서에 불파겐 가문의 이름을 적지 마라.”

“예! 예. 알겠습니다.”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크온 때문에 문관이 고개를 숙였다. 그만큼 북부 지방의 기사를 비롯해서 〈남부 왕국〉 전체에서 활동하는 귀족들에게 불파겐은 귀신의 가문이었다. 불파겐 가문을 시작으로 피의 숙청이라 불리며 명문 기사 가문을 20여 개를 박살 냈기 때문이다.

〈백금 왕가〉를 만들어낸 시절이기도 하였다. 귀족들에게는 암흑기와도 같았던 시절이었다. 지금에 와서 왕권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면 하나뿐인 자식까지도 죽여버리게 된 이유이기도 했다.

“다, 다른 것은 없습니까?”

아크온은 조금 고민했다. 크게 다른 일은 없었다.

“가문에 별다른 일은 없겠지?”

“예. 딱히 없습니다. 여전합니다.”

아크온이 작게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적어도 끝에는 훈훈하게 끝내고 싶은 것이 그였다.

“횃불 성채에서 다음 일을 맡겠다. 그때 다시 연락하지.”

“예. 준비해놓겠습니다.”

메시지 마법이 꺼지자 마부 센이 뒤에 있다가 말했다.

“왜 그렇게 소리를 지르십니까. 겁먹은 소리를 들으니 안쓰럽기가 그지없었습니다.”

“민감한 이야기를 꺼내니 그렇지. 내 말이 틀린가?”

“그래도···”

아크온은 그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알겠다. 내가 잘못했다. 많이 피곤했나 보다. 나중에 본가에 간다면 직접 찾아가서 위로하겠다.”

마부 센이 웃음 지었다.

아크온은 그날 오후, 보고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말 2마리를 풀어서 산속으로 향했다. 부산물을 〈추적 용병단〉에게 주는 이유는 그들이 그만큼 활약을 했기 때문이었다. 보통이라면 가죽과 내장만 챙기는 것이 전부였지만, 용병들은 다를 것이다.

그는 느긋하게 걸었다. 말이 다리를 다치지 않게 걸어야 했고, 드낙이 더 많은 부산물을 준비할 시간을 주기 위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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