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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26화 (126/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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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족의 문제가 아니라, 가문의 문제임을 아크온이 대놓고 말해주었다. 그것은 그의 자존심 때문이기도 했고, 어린 드낙이 잘 몰라 했기에 직접적으로 말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결코 현명한 것이 아니었다.

‘아크온, 개인의 문제가 아니구나!’

드낙의 마음이 검게 물들었다.

‘하긴, 당연한 것이다.’

용병단을 고용한 기사가 공적을 빼앗긴 것이다. 그간 쌓아온 명성이 탑이 무너지듯이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그것은 귀족과 평민 사이에 자리 잡은 거대한 벽처럼 큼지막한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귀족과 평민은 보유한 힘. 그 자체가 다르니까, 엄청난 이슈가 될 수밖에 없다.’

버팔로 나이트가 용병 단장에게 일각수를 빼앗겼다는 소문이 무성하게 퍼질 것이다. 용병과 기사의 강함이 얼마나 차이가 심한지 두 번이나 경험한 드낙이었다. 그 마음에 간사함이 가득 차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드낙이 요구한 것은 당연히 우선순위가 정해져 있었다.

“기사들이 쓰는 전신갑주를 제가 받을 수 있습니까?”

마법이 부여된 전신갑주(全身甲冑, Full Plate Armor)! 기사의 상징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가문을 가진 기사만이 착용할 수 있는 비싼 놈이었다. 지금이 아니라면 가질 수 없어 보였다. 고민할 것이라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아크온이 바로 즉답했다.

“미안하지만 그것은 힘들 것 같군.”

딱 잘라 말하는 모습에 드낙은 전신갑주의 유출이 귀족 마음대로 할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크온은 그래도 드낙에게 미안함을 가지고 있는지 그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다. 도둑이 제발 저리듯이 자신의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몽펠리에 가문은 물론이고, 다른 가문도 모두 마찬가지로 거절할 것이네. 만약에 전신갑주를 원한다면, 우리 가문에 들어와야 하네. 그뿐만 아니라, 자네가 무슨 가문에 속했는지도 말해야 하지.”

아크온이 처음으로 드낙을 〈자유기사〉로 여기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말했다. 드낙은 능숙하게 받아들였다. 이미 여러 번 상상했던 상황이었다.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그가 비전을 쓰든 안 쓰든 상관없었다.

그가 보여준 용맹은 정신 그 자체에 깃들어있는 명예욕이 아니면 얻을 수 없는 용기였다. 물론 아크온이 생각하는 것과는 다르게 드낙의 용맹이 가지는 바탕, 그 뿌리는 〈탐욕〉이었다.

이스핀과 도렌은 결코 가지지 못한 거대한 탐욕.

“······”

그러나 드낙은 뜸을 들였다. 불파겐의 이름을 사칭하기에는 〈검은 꿈〉에서 수많은 비전을 손에 쥐고 있는 세파리아스와의 관계가 더더욱 악화될 것이다. 최소한의 검술에 대한 가르침을 받고 있었기에 아주 안 주지는 않는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실로 드낙을 이용할 줄 알았다.

큰 것은 주지 않지만, 유일한 검술 가르침을 내려주는 포지션을 가지고 있었다. 때때로 툭툭 던져주는 화두는 충분히 드낙에게 도움이 되었다.

‘또한 신체적 특징도 없다.’

붉은 머리카락에 녹색의 눈동자가 불파겐 가문의 증표. 드낙은 그와는 거리가 멀었다. 마법으로 바꾸어도 귀족에게는 통하지 않을 터였다. 그러므로 드낙은 불파겐에 대한 언급을 할 수 없었다.

‘다른 것이라면···’

“작은 마을이라도 괜찮으니, 장원(莊園)을 받을 수 있습니까? 장원이 아니더라도 괜찮습니다만.”

그 말에 아크온이 헛웃음을 지었다. 몽펠리에 가문이 지닌 영지에 있는 마을 하나에 대한 세금을 먹을 생각을 하다니.

“힘드네. 〈가문〉이 허락하지 않을 걸세.”

드낙이 고개를 숙이며 깊은 고민에 빠지는 척을 했다. 전신갑주와 장원이 아니면 딱히 원하는 것이 없었다. 금화? 귀족에게 금화를 달라고 하는 것부터 어리석었다. 돈은 언제든지 벌 수 있었다.

정말로 돈은 언제든지 벌 수 있었다. 용병들의 진짜 모습을 봤기 때문이었다. 위험한 의뢰를 받는 용병단은 소수에 불과했다. 〈머리통 용병단〉은 말 그대로 희소한 용병단이었다. 그런 용병단을 처음으로 만났기에 드낙은 제법 손해를 보기도 했다.

“추천서는 어떻습니까? 앞으로 활동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내 이름을 넣는 것은 가능하지만, 몽펠리에에 대한 것은 넣어줄 수 없네. 하지만 그래도 가치 있는 추천서네. 내 입으로 말하기 부끄럽지만 〈버팔로 나이트〉라 불리며 남부 지방인 〈올-갈렘 지방〉에서는 누구든지 알아볼 걸세.”

말 그대로 〈아크온의 추천서〉였다.

“지방을 옮기기에는··· 이미 벌린 사업이 많아서···”

드낙이 크게 아쉬운 소리를 냈다. 한 것이라곤 집을 산 것뿐임에도 여러 가지 일을 벌인 것처럼 굴었다. 하지만 아크온은 그대로 믿었다. 드낙의 수완을 이스핀과 도렌에게서 엿보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수를 보고 드낙을 위해서 남은 용병들이다. 인물 됨됨이가 크게 다르다는 뜻이다.’

믿고 따를만하니 따른다는 것이다. 그것은 용병이기에 〈재물〉과 연관되어있기도 했다. 겉으로는 용병단장의 모습이지만, 생각 외로 상인으로서의 역량을 지니고 있는지도 몰랐고, 몰락했지만 그래도 부농으로 명맥이 이어지고 있을지도 몰랐다.

본가(本家)가 북부에 있는데 남부에서 활약하기에는 어려울 것이다. 아크온은 그렇게 생각했다.

“오래된 전신갑주는 어떻습니까? 괜찮습니까?”

“가능하네. 하지만 알고 있는 마법사가 없다면 고철일 뿐이라··· 괜찮겠는가?”

그 물음에 드낙이 입맛을 다셨다. 알고 있는 마법사라니? 친분은 없지만 몬스터의 부산물을 원하는 마법사는 있었다. 구형 전신갑주에 마법부여를 해줄 사이는 아니었다.

입맛을 다시는 드낙의 고민이 한도 끝도 없어지자 이 상황 자체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는 아크온이 타협안을 제안했다. 제법 잘 나가는 기사인 그였다. 이런 곤욕은 그에게 많이 있는 것이 아니었고, 언제나 아크온의 손해로 이어졌다.

“추천서와 양질의 마법 장비 하나 그리고 일각수의 뿔을 대신해서 금화 30닢을 주겠네.”

금화 100닢이 백금화 1닢이라는 것을 생각한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였지만, 드낙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아크온이 진실로 자신에게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일각수와의 싸움에서 크게 활약을 하지 못한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지 못하는 면도 있었다.

그 양심은 실로 대단했지만 드낙은 그것을 존중하고 싶은 생각은 들지 않았다. 당장의 이익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인권이라는 이름으로 여성 10명의 인생을 박살 낸 성폭행 전과 10범도 군대보다 좋은 환경에서 살다가 사회로 다시 나오는 국가에서 살았던 박호훈이었다.

그런 곳에서는 신념보다는 물질이 우세할 수밖에 없었다. 사기를 당하면 당한 놈이 죄인이 되어버리는 세상이었다.

아크온의 양심은 누가 보더라도 칭찬할 만했지만 드낙에게 있어서는 맛있는 스테이크로 보일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드낙은 흥정을 하지 않았다.

‘쩝.’

얼굴과 얼굴이 대면하고, 서로의 눈과 눈이 마주치는 상황에서 아크온의 계속되는 괜찮은 모습에 괜히 드낙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았다. 웃는 얼굴에 침을 못 뱉는다는 말이 딱 지금에 쓸법한 말이었다.

또한 그가 제시하는 타협안은 괜찮은 방법이었다. 그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모든 것을 해주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달랑 금화만 제시하지 않았고, 여러 가지를 건네주는 모습을 가졌다.

“양질의 마법 장비는 어떤 것인지 물어봐도 괜찮습니까?”

“기사들이 사용하는 마법 장비 중에 하나를 주겠네. 마차 안에 제법 있는데, 무엇이든 좋아할 만하고, 직접 고르면 되네. 물론 몇몇 마법 장비는 줄 수 없지만···”

드낙은 그 부분에 대해서 강하게 나가고 싶었지만, 시종일관 반말하던 전과 다르게 말하는 아크온의 모습 때문에 크게 이익만 추구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아쉬움이 컸다.

결국 욕망을 이기지 못한 드낙이 입을 열었다.

“다른 단원들에게도 마법 장비를 하나씩···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음.”

아크온이 그 말에 소리를 내며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강하게 나오지 못했다. 드낙이 앞서 북부에서 활동한다고 했기 때문에 시간이 흘러도 다시 한 번은 마주칠 인연이었고, 여러 번 귀로 들어올 인연이었다.

만약 드낙이 큰 공을 세우거나 본가의 성을 버리고, 다른 귀족 가문에 데릴사위처럼 들어간다면, 이웃사촌이 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크온은 드낙의 제안을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였다. 하지만 마차 안에 이스핀과 도렌을 들이게 하지는 않았고, 드낙이 선택하는 것이 되었다. 실로 귀족 다운 생각이었다. 드낙이야 당연히 냉큼 받아들였다.

민주주의고 나발이고 여기는 그저 꿈뻑 고개를 숙여야 했고, 받아들이는 것이 상책이었다. 약 빨고 대한민국이 통째로 이세계로 오는 것이 아니었기에 개인의 역량으로서는 그저 침묵하는 것이 답이었다.

“저희들 왔습니다.”

두 번 왔다 갔다 하며 필요한 것을 채집해서 온 이스핀과 도렌이 자리를 정리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 동굴 입구에 도착하며 말했다. 드낙은 짐을 옮기는 것을 도와주었다.

이제 할 일은 일각수의 부산물을 챙기는 것이었다. 가죽, 심장, 뼈, 힘줄, 간과 쓸개까지 모두 획득해야 했다. 전부 돈이 되었다. 대장과 위장까지도 안을 세척하고, 목함에 넣어야 했다. 거기에 살점까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었다.

그게 바로 〈일각수〉였다. 하지만 밑으로 떨어진 일각수의 상태는 처참했다.

“완전히 박살이 났군.”

드낙이 혼잣말을 하며 뻥 터져있는 아랫배를 조금 들어 올리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흑마법사의 간악한 마지막 술수. 아랫배에서 부풀어 오르는 가스폭발은 일각수의 내장을 그야말로 충격파로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텅텅 빈 아랫배 때문에 건질 수 있는 것은 심장, 폐 같은 그래도 갈비뼈의 보호를 받고 있던 위쪽에 있는 내장들이었다. 쓸개는 찾을 수 없었고, 반토막이 난 간을 바닥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스핀과 도렌은 물을 계속해서 가져와야 했다. 세척을 한 내장은 소금에 절여져서 대충 만든 작은 목함에 하나씩 들어갔다.

아크온은 홀로 마차로 돌아갔다. 험한 일을 하는 것은 귀족과는 맞지 않았고, 〈일각수의 뿔〉과 〈일각수의 머리〉를 가지고 가는 것으로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고 여겼다.

“헉! 헉! 정말로 고기까지 다 가져가실 겁니까?”

이스핀이 진땀을 빼며 주저앉은 채 기름으로 범벅이 된 대거를 닦다 말고 피와 기름이 잔뜩 묻은 천을 물에 박박 빨며 드낙에게 물었다.

“그럼! 이런 거 다 놓치고 갈려고?”

“아니요. 싹 쓸어가야죠. 워낙 양이 많아서 저도 모르게. 크흐흐!”

일각수의 신체는 썩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기에 따로 고기를 절일 필요도 없었다. 소금이 필요하지 않았으므로 그냥 다 들고 가야 했다. 땡볕에 두어도 10일은 보존되는 말도 안 되는 생고기가 일각수의 살점이었다.

그런 판타지적인 재료를 드낙이 버리고 갈리 없었다. 악착같이 한 푼이라도 더 얻어야 했다. 이스핀 또한 뭐라도 말을 하고 싶어서 그렇게 말한 것이지 그 또한 악착같이 일했다.

도렌은 말하기도 힘든지 입을 다문 채 엉덩이 가죽을 벗기고 있었다. 항문이 쩍 열린 곳에서는 악취가 풍겼는데, 다른 사람이 알아서 하기에 내버려 둘 만도 했지만 상관하지 않고 가죽을 벗기는데 집중했다.

고기는 양이 워낙 많아서 내장처럼 세척하거나 피를 빼지 못했다. 그저 두툼하게 썰어서 큼지막한 나뭇잎으로 덮고 넝쿨을 꼰 것으로 묶었다.

“기사님이랑 일하니까 좋지 않습니까? 부산물을 탐하지 않고, 제법 상징적인 것만 가져가지 않습니까?”

다 같이 짧게 휴식하면서 이스핀은 물로 시원하게 만든 천으로 땀을 닦았다. 겨드랑이 땀은 반드시 슥슥 비볐다. 땀띠가 날 수 있었다.

그는 〈일각수의 뿔〉에 탐욕 하나 가지지 않았다. 애초에 자신이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덕에 아크온에 대해 호감을 가졌다. 도렌도 마찬가지였다.

일각수를 해체하고 부산물을 획득하는데 저녁 늦게까지 작업을 해도 끝나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아크온이 말을 끌고 돌아오는데 시간이 걸린다는 점이었다.

많은 고기를 전부 가져갈 수는 없었다. 생각했던 것 이상의 고기를 적출할 수 있었고, 더 이상 들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를 얻자 그 뒤로는 아크온을 기다렸다.

1000kg의 고기

심장, 폐, 반만 남은 간

가죽과 뼈 대량

4개의 절단된 발바닥

대부분의 고기를 포기했지만, 대거로 갈라베어 나뭇잎에 싸서 모아놓은 양만해도 어마어마했다. 더 들고 가고 싶어했지만 그 이상은 운송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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