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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은 능력을 세 개로 추려냈다. 〈소혈재생(消血再生)〉, 〈일각수의 뼈조직〉, 〈일각수의 간〉이었다.
‘이 세상은 넓다.’
똑같은 일각수라도 똑같은 야수라도 가진 능력이 모두 달랐다. 그렇기에 소혈재생도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었다. 피를 생산하는 능력이나 흡수, 흡혈하는 능력이 없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소혈재생을 추려냈다.
받쳐주는 능력이 있다면, 강력한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소혈재생이었다.
‘분명히 그런 능력이 있겠지. 언젠가는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기괴해서 남들 앞에서는 사용하지 못할 일은 아니었다. 포션과 병행한다면 긴박한 전투 중에 사용해도 상관없었다.
사람은 생각 외로 다른 사람에 대해서 깊이 있게 보지 않는다. 특히나 전투 상황에 사용한다면 드낙과 검을 맞대는 자만 볼 것이다.
‘판단을 흐리게 만들 수 있다.’
각혈은 인간에게 있어서 내부가 진탕이 되었음을 의미했다. 혹은 무리한 행동의 결과로 보일 수 있었다. 상황에 맞게 쓴다면 좋게 쓰일 수 있었다.
〈일각수의 뼈조직〉 또한 좋은 능력이었다.
‘아크온 몽펠리에의 우월한 골격.’
떡 벌어진 어깨와 큰 골반은 신이 내린 전사의 몸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그만큼 뼈의 구조가 넓다는 것은 큰 힘을 받아내는 그릇이나 다름없었다. 무엇보다도 일각수가 된 곰의 골밀도를 가지게 되는 것이 중요했다.
‘인간의 뼈조직을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지.’
보다 우월한 인자를 획득하는 것이었지만, 거부감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검을 쥐고 싸우는 이상, 〈일각수의 뼈조직〉만큼 좋은 것도 없었다.
‘하지만···〈일각수의 간〉도 놓치고 싶지 않지.’
간이 커지는 것은 물론이고, 해독력이 인간을 벗어난다는 점. 쓸개즙이 농축된 해독제가 되는 것도 좋았다. 적어도 독에 대한 해독력은 크게 오를 것이다. 혈관과 혈맥이 커지고 혈액이 고속도로를 타듯이 질주할 터였다.
대사량이 기존의 1.5~2배로 증가하겠지만 그만큼 먹으면 될 뿐이다.
“휴우!”
드낙이 한숨을 지었다. 한낱 짐승에 불과한 〈붉은털의 곰〉은 원한이나 증오 그것을 구체화하지 못했다. 애초에 드낙과 교감을 할 수도 없는 종족이었기에 〈검은 꿈〉에 있지를 못했다.
‘아쉽지만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
현대인인 박호훈으로서의 경험으로는 간으로 저울질이 옮겨갔다. 반면 이 세상의 드낙으로서의 경험으로는 당연히 〈일각수의 뼈조직〉이었다. 고민하던 드낙은 우월을 가릴 수 없음에 다른 것으로 판단 기준을 바꾸었다.
‘희소성.’
〈일각수의 뼈조직〉은 이름처럼 일각수를 잡으면 얻을 수 있어 보였다. 그것은 〈일각수의 간〉 또한 마찬가지였다. 곰이라는 놈은 최강이라고 불려도 아깝지 않은 야수였고, 그만큼 일각수가 되기 좋았다.
‘하지만 소혈재생은 다르다.’
붉은털의 곰으로 완전히 털색깔이 변하면서 〈변이〉로 얻은 특수한 능력이었다. 말하자면 종(種)으로서의 능력이 아니라 개체(個體)로서의 능력이었다.
일각수의 간과 뼈조직이 레어, 언커먼 등급이라면 〈소혈재생(消血再生)〉은 유니크 등급이었다.
이성적으로 판단한다면 소혈재생을 선택하는 것이 맞았다. 이런 특수하고 희귀한 능력은 다시 얻기 힘들 것이다. 단점이라면 다른 특정한 능력을 보유하지 않는다면 쓰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드낙은 소혈재생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따지면 일각수 자체를 보기가 힘들다.’
깊은 숲을 넘어 더 오지로 들어가야 한다. 그런 짓을 할 놈은 적다. 지금 당장 인간의 영토를 지키기에도 힘들기 때문이다. 또한 목숨은 하나뿐이고.
드낙은 〈일각수의 간〉이 있는 검은 문으로 향했다. 〈해독 능력〉은 어떤 상황에서도 도움이 될 것이다. 세상에는 수많은 독이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 침입은 드낙이 예상하지 못한 경로를 통해서 이루어질 것이기에 이참에 〈일각수의 간〉을 통해서 크게 해독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좋아 보였다.
검은 연기가 드낙을 휘감았다. 그는 자신의 간이 커진다는 느낌보다는 폐와 위가 압박당하는 기분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그 압박감은 서서히 사라져갔다. 간이 커진 만큼 다른 장기가 밀려나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다.
〈검은 꿈〉에서의 짧은 시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변종 키메라〉의 모습을 하고 있는 포낙서스에게서 흑마법을 배웠다.
드낙이 그에게서 배우는 흑마법은 〈인비저블 쉴드(Invisible Shield, 보이지 않는 방어막)〉이었다. 흑마법의 방어 마법은 특히나 수인이 복잡했다. 반대로 밴쉬 에로우 같은 공격 마법은 수인이 간단했다.
실패를 연발하는 드낙이었지만 포낙서스는 상냥하게 가르쳤다. 애초에 자신 또한 그랬기 때문이었다.
[한 번 성공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리는 수인을 계속 기억해라. 그것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으면 잡을수록 마법은 알아서 발현될 것이고, 알아서 〈간략화〉될 것이다.]
똑같은 한자를 써도 쓰는 사람에 따라서 다르듯이 마법이 발현되고 나면 그 뒤로는 수인이 변형되기 시작한다. 자신에게 맞도록 간략화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날림체와 비슷했다. 한자의 간자체라고 할 수 있었다.
“보통 얼마를 수련하면 간략화가 되지?”
실전에서 쓸 수 있는 마법은 대부분 이런 간략화가 이루어진 마법들이었다. 숙달되어야지만 전투력을 가지는 것이 마법이었다. 그렇기에 대부분의 마법사는 전투에 나서지 않는다. 〈간략화〉는 매우 비효율적이기 때문이었다.
[나는 밴쉬 에로우의 경우에는 5년이 걸렸고, 인비저블 쉴드의 경우에는 8년이 걸렸다.]
드낙은 입을 쩍 벌렸다. 그의 찌꺼기 덕분에 밴쉬 에로우를 간략화되어서 쓸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게 얼마나 큰 선물인지 이제야 체감했다.
꾸준히 연습하며 〈검은 꿈〉에서의 시간을 소비했다. 흑마법 중에서도 반드시 익혀야 하는 방어 마법인 인비저블 쉴드는 악마의 힘으로 보이지 않았기에 유틸성이 아주 좋은 방어 마법이었다.
*
다음 날 아침, 드낙은 제법 가뿐하게 일어났다. 〈변종 키메라의 재생능력〉 덕분이었다. 금이 간 팔뚝은 재생이 되었고, 피멍만 조금 보일 뿐이었다. 붕대를 갈며 팔뚝의 상태를 확인한 드낙은 부목은 빼버리고 약초를 다시 바르고, 새로운 붕대로 오른팔을 감았다.
‘통증은 조금 있겠지만 일은 할 수 있겠네.’
확실히 인간을 벗어난 〈변종 키메라의 찌꺼기〉였다. 초월적인 재생력이었다. 전치 2주 이상을 한 방에 치유했다. 시간은 오래 걸렸지만 이 정도면 만족하고도 남았다.
곡물 가루를 끓인 물에 질퍽하게 만든 것으로 아침을 때웠다. 소금이 있었기에 먹을 만했다.
“드낙 용병단장. 잠시 이야기하지.”
“두 사람은 지금 비가 그쳤을 때, 뭐라도 산에서 구해와. 늑대들을 붙여줄 테니.”
“예. 알겠습니다.”
이스핀과 도렌이 늑대들의 보호를 받으며 숲으로 향했다. 동굴 입구에 남은 드낙과 아크온이 서로를 마주 보며 새로이 장작을 하나 정도 넣은 모닥불에 앉았다.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열기를 두고 서로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 모두 제법 웃어 보이며 술부터 찾았다. 지금 이야기는 술이 필요했다.
아크온은 모닥불의 옆에 천으로 두른 일각수의 뿔을 놓았다. 반쯤 펼쳐져 있는 일각수의 뿔은 흉포한 붉은 마력으로 만들어진 적색 벼락을 토해낸 것과는 다르게 백색과 청색의 빛을 내는 신묘한 뿔로 보였다.
‘부산물에 내한 논의.’
드낙이 만약 〈기사〉였다면, 그에게 만약 〈가문〉이 있었더라면, 이렇게 독대를 할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그는 기사도 아니고, 가문도 없었다.
그것이 문제였다.
〈일각수〉의 어깨를 뚫어버린 것은 비전 하나 익히지 않은 천한 용병 두 명이었고, 일각수의 뿔을 충격파 속에서도 연달아 때린 것이 드낙이었다. 아크온이 1인분조차 안 했다는 말이 아니었다.
그가 없었다면 일각수의 뿔을 때릴 수 없었을 것이다. 굳건한 바위처럼 제법 피하기도 하면서 일각수의 얼굴을 마주 보며 전투를 벌인 것이 아크온 몽펠리에, 〈버팔로 나이트(Buffalo Knight)〉라 불리는 기사였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용병과 드낙이 일각수를 죽였다는 점이었다. 결론적으로 본다면 일각수를 죽인 부산물은 모두 〈추적 용병단〉이 가지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세상이라는 것은 결코 그 결과만을 보지 않았다. 다른 수많은 요소가 침입하기 때문이었다. 또한 과정에 있어서 아크온의 전공도 만만찮았다.
‘일각수의 뿔.’
성주가 사더라도 영주가 원하면 백금을 받고 되판다고 말해질 정도로 대단한 부산물이었다. 〈제국〉에서는 일각수에 대한 것을 〈국가의 것이며, 황제의 손가락〉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누가 얻든지, 국고로 환수되었다.
보상금은 합당하게 주지만, 일각수의 소유가 금지된 곳이 제국이었다. 어디서든 사용해도 좋은 것이 일각수의 뿔이었다. 사람이 먹어도 좋았고, 마법 재료로 써도 좋았다.
“이번 일각수를 토벌할 때, 〈추적 용병단〉이 보여준 역할은 실로 대단하였소. 하지만 그대도 알다시피···"
아크온 몽펠리에는 반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패배감을 느끼고 있었고, 이렇게 〈남부 왕국〉의 관례를 자신의 입으로 말할 날이 오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않았기에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남부 왕국〉은 철저한 계급 사회였다. 그곳으로 향하는 계단은 끊겨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일각수 토벌에서 주인공이 된다면 드낙에게 세간의 관심이 모일 것이고, 〈자유기사 드낙〉은 성주든 영주든 누군가에게 거두어져 장원(莊園)을 받을지도 몰랐다.
그만큼 대단한 일이었지만, 반대로 공을 빼앗긴 아크온 몽펠리에의 명성은 곤두박질칠 것이다. 전신갑주 하나 입지 않은 15살짜리한테 무훈(武勳)을 빼앗긴 것이 되는 것이다.
말끝을 흐리는 아크온을 보며 드낙은 눈을 깜빡였다. 현대인이 귀족의 생태를 알 리가 없었다. 빼앗기면 더 빼앗기고, 건수가 생기면 물어뜯긴다.
서로 눈웃음 짓고는 있지만, 끊어진 계급 사회의 밑으로는 못 보내겠지만 그 계단과 가까운 곳으로 내려보내려고 혈안이 되어있었다.
이것은 아크온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몽펠리에 가문의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말씀하고 싶으신 것이 무엇인지···”
드낙이 눈치 있게 대답을 하지 못하자 아크온이 몸을 들썩였다. 항상 승승장구하던 아크온이었다. 이런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다른 이의 공을 빼앗는 것! 자존심 하나로 황소를 어렸을 때 번쩍 들어 올린 그였다.
‘젠장.’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자신을 탓해도 그래도 그는 귀족이었다. 개인의 생명보다 위에 있고, 우선시 되는 것이 바로 〈귀족 가문의 일〉이었다. 〈추적 용병단〉은 귀족인 아크온에게 부산물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음에도 우직한 그는 그 문제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야 했다.
스스로 자신을 곤혹스러운 곳으로 걸어들어가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해야만 했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은 아크온이었기 때문이다.
“일각수의 뿔. 몽펠리에 가문에게 양보를 했으면 하네.”
그제서야 드낙이 반응했다. 〈몽펠리에 가문〉 그리고 〈양보〉. 단번에 아크온 몽펠리에가 부산물을 탐내고 동시에 공적을 원하는 것을 알았다.
“거래를 원한다는 겁니까?”
드낙의 물음에 아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는 대로 도와주지. 밖에서 임무를 행하지만, 가문 내에서는 제법 영향력이 있으니. 무리한 부탁이라도 일단은 말해보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