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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24화 (124/1,239)

0124 <-- 끝이 나고 -->

‘죽겠다.’

드낙은 탈력감을 느꼈다. 전투의 흥분이 사라지자 끔찍한 체력의 소모가 느껴졌다. 목마름에도 함부로 물을 많이 마실 수 없었다. 옷이 축축한 것이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많이 마셨다가는 죽을 수도 있었다. 입에 물을 머금은 채 조금 조금 마시다가 미지근해지면 다시 뱉기도 했다.

아크온은 그 모습에 괴짜를 보는 듯했다. 그러고는 가죽 주머니에서 구운 소금을 건넸다. 뽀얗고 이물질 하나 없는 최고급 소금이었다.

“먹게. 땀을 많이 흘린 것 같은데.”

“감사합니다.”

드낙은 망설임 없이 소금을 한 줌 입에 털어 넣으며 물을 벌컥 벌컥 마셨다. 이제야 조금 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후욱! 후욱!”

도렌은 동굴 입구에 지폈던 모닥불에서 불씨를 살리기 바빴다. 습기 때문에 불씨 빼고는 다른 탄 장작은 모두 옆으로 치워놓고, 얼마 남지 않은 목탄을 사용한 다음에 젖은 장작을 넣었다. 검은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나 올라갔다.

별 수 없는 일이었다. 돌아가는 길은 멀었기에 여기서 하루를 보내야 했다.

드낙은 오른손에서 통증이 느껴졌기에 한 팔로만 일을 도왔다.

“단장님, 쉬고 계십시오.”

도렌이 만류했지만 드낙은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열도 나지 않은 것 같았고, 충분히 괜찮았다. 오른 팔뚝에 금이 가고, 손목이 조금 부었을 뿐이었다. 왼팔은 멀쩡했다. 또한 솔선수범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기특했기 때문이다.

‘녀석들···’

중견 용병조차도 도망갔는데, 이스핀과 도렌은 남았다. 그 배경에 드낙과 아크온의 강함. 그리고 드낙이 보여주는 베풂(호구스러움) 때문이었다.

인간은 탐욕적인 동물이었다. 드낙과 함께할 현실적인 이유가 있었다. 다른 아르바이트에서는 시급도 제대로 안 쳐주는데 어떤 곳에서 1만 원을 쳐준다면? 뭣 같아도 끈덕지게 남아 학비를 마련할 것이다.

그 절박함이 이스핀에게 있었고, 그 덕에 도렌 또한 남을 수 있었다.

폐기름 먹인 로브를 입은 채 이스핀이 돌아왔다. 그는 뱀 한 마리와 나무속에 있는 새의 알 여러 개를 들고 왔다.

쫙!

이미 머리가 베어진 뱀이었기에 이스핀은 거침없이 가죽을 벗겼다. 내장을 갈라내고, 나뭇잎으로 감싸서 모닥불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는 역시나 드낙의 상태를 살폈다.

“괜찮습니까?”

드낙의 오른팔의 옷은 잘라뜯어서 팔이 선명하게 보였는데 피멍으로 가득했다. 무식한 체중이 떨어지는 와중에 그 반대편으로 도약하며 뿔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그 반동으로 인해서 팔뚝에 금이 갔다.

12톤에 달하는 체중을 이용한 대가였다. 촉수는 뇌에 들러붙은 기생충에 불과했다.

“괜찮다. 금이 간 것뿐이고, 팔만 뜨겁지 열도 없어.”

그 말에 이스핀은 고개를 끄덕끄덕 거리면서 다행이라 말하며 돌을 잔뜩 모닥불 주위에 둘렀다. 포션을 가지고 있는 아크온이었지만, 드낙에게 내어주지는 않았다. 크게 위험한 부상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중에 마차에서 〈칠일축전(七日祝典) 붕대〉나 주면 되겠지.’

이미 한 번 이스핀에게 포션을 베풀었다. 과도한 친절은 언제나 배신으로 돌아온다는 것을 가르침으로 배운 아크온이었다. 저 정도에 포션은 과했다. 아무리 드낙이어도 인색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재화를 풀지 않았다.

까마귀 카이야는 드낙의 주위를 총총거리며 뛰어다니다가 동굴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다른 이들은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망간 그 〈명사수 젠〉이라는 놈. 반드시 잡아서 족쳐야지 않겠습니까?”

“의뢰 경험도 많다는 놈이 도망가다니. 〈피가득 술집〉에도 알려서 소문도 퍼트려야 합니다.”

모든 일이 끝났다고 생각하자 자연히 젠에 대한 것이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이스핀에게 있어서 도망자는 반드시 손모가지를 날려야 하는 중대 사안이었다. 하지만 드낙이나 도렌이나 무덤덤했다.

이미 도망친 놈, 시간 써서 쫓아가기 귀찮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내버려 두면 다른 이들이 뭐라고 생각하겠어.’

놈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것은 드낙이 하고 싶지 않아도 해야 하는 일이었다. 빈집의 깨어진 창문처럼 도둑이 자신의 주변에 들끓게 만들기 싫으면 반드시 처단해야 했다.

“〈현상금〉을 내걸지. 그러면 알아서 잡히지 않을까.”

드낙의 말에 이스핀이 눈을 빛냈다.

“만약, 단원이 잡아도 줍니까?”

그 말에 드낙이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스핀은 정말로 자신이 잡을 생각인듯했다.

“얼마 정도로···?”

“은화 1닢이면 되겠지. 평범한 용병 하나에 걸린 현상금치고는 제법 높지.”

용병단 자체 수입으로 보면 적은 돈이었지만, 드낙은 이 세상의 돈에 대한 지식이 점차 쌓이고 있었다. 자신이 살았던 〈검은 산골 마을〉이 퇴역군인 락손 때문에 비정상적일 정도로 화폐가 유통되었음을 깨달았다. 이번 의뢰 전에는 3군으로 나눈 의뢰금을 점진적으로 계속 바꿀 예정이었지만 드낙은 그 생각을 접게 되었다.

이스핀과 도렌이 크게 한 건 했기 때문이다. 목에 칼이 박히면 기사도 죽는 게 이 바닥이다. 놀라운 신력을 보여줘도 인간인 이상 언제든지 위기에 빠질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서늘하군.’

드낙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 〈검은 꿈〉에 대한 탐욕은 항상 상황이 끝나고 후회로 남았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늘하다고 생각해도 본능은 이미 그 맛에 중독되어있었다.

이스핀과 도렌은 이번 일로 드낙에게 자신들의 존재감을 알렸고, 앞으로도 그들에게는 충분한 돈이 지급될 것이었다.

술로 몸을 데우고, 달구어진 돌을 바닥에 묻어 잠을 청했다. 뜨끈한 열이 등을 타고 전신으로 퍼졌기에 순식간에 드낙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검은 연기가 드낙의 눈을 스쳐 지나갔다.

바닥에는 언제나처럼 시체로 된 오른손이 튀어나와있었고,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검은 연기에 휩싸인 채 머리만 그에게 보여주고 있었다. 끔찍한 모습을 하고 있는 〈변종 키메라 포낙서스〉 또한 드낙의 눈에 들어왔다.

수 개의 검은 문이 모습을 드러냈다. 〈일각수〉를 해치우면서 생긴 검은 문이었다. 물론 그중에는 크놀과 관련된 검은 문도 있었다.

〈크놀의 제련술〉. 길쭉한 망치를 이용해서 금속 제품을 만드는 크놀들만의 대장장이 기술이었다. 인간의 모습으로 하면 더 효율이 높아지는 것이 특징이었다. 힘이 크기 때문이었다.

‘제법이긴 한데.’

야만적이라고 생각했던 크놀들의 기술이었지만 급하게 만들지 않는 이상 평범한 대장장이 수준은 되었다. 특히나 〈순철(純鐵)〉을 만드는데 극대화된 제련 기법을 보유하고 있었다. 어깨너머로 배운 인간의 대장장이 기술까지 보탠다면 양질의 물품을 드낙이 생산할 수 있었다.

‘대장장이 짓을 할 것도 아니고. 필요가 있나?’

〈크놀의 언어〉. 말할 것도 없었다. 고블린 언어 다음으로 별 쓸모가 없어 보이는 것이었다. 검은 문을 통해서 짧게 본 크놀 어(語)의 언어체계는 고블린 어와 비슷한 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그다음에는 일각수에 대한 것이었다.

검은 문의 앞에 선 드낙은 환상을 경험했다. 천둥소리 없는 번개가 그의 눈앞에서 번쩍였다. 시뻘건 색의 파괴적인 마력은 시각적으로도 흉포했다.

‘일각수의 뿔.’

드낙의 머리에서 돋아나는 일각수의 뿔은 피를 머금을수록 계속해서 자라날 것을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인간을 뛰어넘는 압도적인 마력을 가지고 있는 일각수는 〈견습 흑마법사 포낙서스〉의 마력을 새의 발처럼 비교되게 만들었다.

‘부작용이 심각하군.’

인간이 지닌 정신을 뛰어넘은 마력은 시속 500km의 자동차를 제어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끝없는 정신 수련이 필요했다. 평범한 재능을 지닌 드낙은 당연히 까마득한 수련이 필요했다.

‘뿔도 나고.’

투구를 주문 제작해야 했고, 다른 이들의 앞에 보여줄 수 없을 것이다. 백금으로 거래가 되는 것이 일각수의 뿔이었다. 아크온이 뽑혀진 일각수의 뿔을 자연스럽게 회수해도 한 마디도 못 내뱉은 이유이기도 했다.

금화도 많이 못 만지는 용병단인데 백금화로 거래되는 일각수의 뿔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자신의 분수를 알아야 했다.

반드시 보복이 따를 것이다.

그 정도로 가치가 있는 일각수의 뿔을 인간인 드낙이 가진다면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계속 뿔을 키울 감당이 안 되었고, 보유하는 마력을 제어할 감당도 되지 않았다. 마법사의 역량이 많이 키워져있었더라도 애매했다.

‘보류.’

드낙은 다음 검은 문으로 향했다. 검은 연기가 그를 감싸며 물처럼 흘렀다.

전신으로 퍼지는 거대한 혈력(血力)을 그는 경험했다. 쫙 퍼지는 강대한 힘과 심장처럼 맥동하는 간의 감각은 기괴함을 주었다.

〈일각수의 간〉. 인간을 뛰어넘는 해독력을 부여하고, 간의 크기가 커지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또한 신체의 활동성 자체가 높아졌다. 신체 대사량의 증가라고 봐도 무방했으며 혈액의 양과 혈맥의 크기가 증가하는 것은 물론이었다.

간접적으로 심장의 기능 또한 증대되는 힘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강화되는 간에서 나오는 쓸개즙은 비상시에 강력한 해독력을 보여주고 있었다. 쓸개의 기능까지 변하게 만들었다.

‘매력적이군.’

해독! 〈일각수의 간〉은 드낙에게 아주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단순히 해독력을 높여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신체 대사량이 높다는 것은 그만큼 보이는 것 이상으로 힘을 낼 수 있게 해주었다.

외형은 인간인데 내부 장기는 짐승처럼 강고하다는 뜻이다.

다음으로 겪은 환상은 지금까지 놈을 가장 까다롭게 만든 능력이었다.

〈소혈재생(消血再生)〉. 피를 소모하여 다시 살아남.

‘강력한 능력이지.’

특히나 어디든지 찔려도 사망에 이르기 쉬운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능력이었다. 큰 부상을 입어도 상처를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 베스트였다. 단점은 피가 소모되기 때문에 출혈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사용해버려야 한다는 것이라 전투 끝에 쓰기 어렵다는 점과 전투 중에 써서 얻어지는 피 부족을 감당해야 했다.

‘피를 생산하는 종류의 능력을 얻으면 더 좋겠지.’

수많은 야수와 몬스터가 있는 이 세상이라면 얻는 것이 불가능해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검은 문〉은 선택 전에 미리 환상을 통해 확실하게 능력의 장단점을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소혈재생은 인간이 쓸 수 없는 능력이나 다름없었다. 인간이 가진 피의 양은 형편없이 적었고, 또 피가 부족해지면 산소부족으로 괴사가 일어나기 때문에 상처를 회복해도 세포가 죽어버리기 일쑤였다.

‘당장 쓸 수 없는 능력.’

아쉬운 능력이었다. 인간 종족이 가진 선천적인 단점이 발목을 잡았다.

〈일각수의 뼈조직〉이나 〈야수의 피〉도 검은 문에 있었다. 단순 뼈조직은 다른 능력에 비해서 매력적이지는 않았지만 우직하게 스펙을 올려주는 것이었다. 야수의 피는 〈붉은털〉의 변이와 〈일각수〉로의 변이를 인간이 겪게 만드는 것이었다.

드낙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야수가 가진 폭력적인 인자를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드낙의 고민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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