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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22화 (122/1,239)

0122 <-- 일각수 -->

“크흐! 크흐으!”

〈일각수(一角獸)〉가 된 붉은털의 곰이 거칠게 오르막길을 달렸다. 길은 거의 직선로에 가까웠는데, 〈깊은 동공〉의 넓이가 워낙 넓었기 때문이기에 원이라 느끼기보다는 직선에 가까운 굴곡을 보여주었다.

또한 제법 오랫동안 크놀들이 진흙으로 보수를 하기도 한 곳이라 일각수가 거칠게 달려도 무너지지 않았다. 일각수의 뒤로 전투망치를 양손에 쥔 채로 좌우로 흔들면서 뛰어오는 아크온이 보였다.

중병기의 경우 걸을 때는 어깨에 걸쳐서 걷지만, 달릴 때는 양손으로 쥐고 좌우로 흔들면서 달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또한 등에 걸치지는 않는다. 애초에 등에 걸치면 혼자서 뽑아낼 수 없었고, 중병기에 따라서는 무게 중심도 양쪽 끝이 균형을 맞추지 않아서 조금만 걸어도 척추와 어깨에 고통이 따른다.

‘이런 젠장.’

멀리서도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존재감을 느끼며 이스핀이 발을 뺐다. 쿵쿵 진동하는 공기가 고막으로 느껴졌다. 집채만 한 곰의 체중은 아프리카 코끼리의 두 배인 12톤에 달했다. 코끼리처럼 느리게 발을 놀리지도 않았기에 엄청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었다.

‘막아야 해! 또 도망치게 만들면 안 된다!’

도렌은 〈송곳 통나무〉를 밀어서 방향을 바꾸고 있었는데, 이스핀이 뒤로 계속 물러나며 소리를 질렀다.

“소용없어! 뭐 해, 이 새끼야! 죽고 싶냐! 빙판길도 아니고, 미끄러지겠냐고!"

이스핀이 생각하기에 도렌의 행동은 바보 같은 짓이었다. 아무리 내리막길이라도 빙판길도 아니고, 아스팔트도 아니며 울퉁불퉁한 길이었다. 시작부터 속도를 냈다면 모르겠지만, 인력으로 밀어서 속도를 내려 한다면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도렌은 턱짓을 하며 외쳤다.

“단장님이 놈의 밑에 덜렁거리고 있어! 뭐라도 해봐야지!”

드낙이 내리막길에 떨구어놓은 횃불 때문에 살짝 그 모습을 봤던 도렌이었다.

“멍청아! 택도 없어! 도망쳐야 해! 안 된다니까!”

이스핀은 도렌을 잡아당기려고 했는데, 순간 미끄러졌다.

“어읏?!”

넘어지지는 않았지만 이스핀이 습도가 높은 동굴에서 생긴 땀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가 시선을 내려 바닥을 보았다. 그곳에는 크놀들의 시체에서 흘러나오는 피로 가득했다.

‘설마?’

그는 횃불을 아래로 던졌다.

내리막길로 흥건하게 피가 이어져 있었다. 시체 기름 때문에 번들거리기까지 했다. 크놀들을 겁주기 위해서 시체를 〈깊은 동공〉의 입구에 옮겨놓았기에 생긴 일이었다.

도렌이 그것을 알았다면 말했겠지만, 그러지 않은 것을 보니 얻어걸린 행운이나 다름없었다.

피와 섞인 흙은 진흙이 되었고, 아래로 어느 정도 진창이 만들어져 있었다. 늑대들과 이스핀, 도렌이 오르면서 발자국이 찍히면서 한 번 짓눌러진 곳은 반들반들했다.

‘이거, 된다!’

“빨리빨리!”

이스핀이 자신이 뒤로 가놓고는 소리를 쳤다. 두 명이 힘을 합치자 〈송곳 통나무〉가 순식간에 속도를 냈다. 일반적인 흙이 아니라 피와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땅 덕분이었다. 마찰력이 적을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점성이 물보다 뛰어나서 더 잘 미끄러졌다.

머리가 결코 나쁘지 않은 것이 〈갈색늑대 도노〉였다. 지금까지 제법 상당수의 생명체를 잡아먹었기에 덩치도 일반 늑대보다 컸다.

“크르르, 컹!”

명령을 내리며 머리로 송곳 통나무를 밀어 보이자 다른 늑대들이 들러붙어서 밀었다. 그 덕에 이스핀과 도렌은 계속해서 자신들에게 오는 〈송곳 통나무〉의 방향을 잡아주고 있는 힘껏 밀어내면 되었다. 순식간에 2통을 쏘아보냈다.

“헉! 헉!”

하지만 금방 지쳐버렸다.

전신의 힘을 다 써야 했기에 〈송곳 통나무〉를 쏘아보내는 일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라, 벌써부터 숨이 턱까지 차올랐다. 호흡을 조절하고 나발이고, 그냥 입을 앙다문 채 밀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드낙이 그렇게 어깨를 탁탁 치며 호흡 조절하라고 말했건만 〈전투〉하는 상황이 아니라 통나무 미는 일에는 사용하지 못했다.

경우가 달랐기 때문이다.

옆에서 훈수 두듯이 지켜보면 말도 안 되는 실수였지만, 해외여행 가는데 카드가 무겁다고 1개만 들고 가는 사람도 이 세상에는 있는 법! 결코 이스핀과 도렌이 멍청한 것이 아니었다.

“허으으아!!”

힘이 부족해지는 이스핀이 소리를 지르자 도렌도 눈치를 좀 보면서 소리를 같이 질러대었다.

“흐아압!”

집채만 한 곰이 오르막길을 올라가면서 무시무시한 속도로 내려오는 〈송곳 통나무〉를 피할 길은 없었다. 떨어지거나 앞발로 후려패야 했다. 하지만 그 숫자는 제법 많았고, 매서울 정도로 속도가 붙어있었다.

네발로 달리던 일각수가 제법 익숙해졌는지 두 발로 순식간에 변해서 달렸다. 그 자세 변경의 틈을 타서 드낙이 아랫배에서 옆구리에 매달렸다.

앞발로 통나무를 후려팼다. 송곳 통나무의 일부분이 그대로 퍽 부서지며 파편을 날리며 낭떠러지로 떨어졌다. 후려패면서 곰의 체중이 앞으로 쏠렸는데 드낙이 그대로 까뒤집어졌다.

서둘러 몸을 빙글 돌리며 출렁거렸는데, 능숙하게 등 쪽으로 몸이 엎어지면서 손으로는 옆구리를 잡고, 등에 몸이 얹어지게 되었다.

“크워우어엉!!!”

그다음에 오는 송곳 통나무 또한 여지없이 앞발에 박살이 났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에 드낙은 기민하게 움직여 옆구리를 잡은 손을 등에 잡았다. 허벅지로 단단히 곰을 잡고, 왼손으로도 가죽을 움켜쥐었다.

‘〈송곳 통나무〉!’

용병 단원들이 제대로 일을 벌였다. 계속해서 내려오는 송곳 통나무의 무지막지한 소리가 드낙의 귀로 들려왔다. 못해도 다섯 개는 어둠 속에서 윤곽으로 보였다.

롱소드를 제대로 말아 쥐었다.

‘기회는 반드시 온다!’

보내는 족족 통나무가 박살나자 이스핀은 똥줄이 탔다.

“이런 씨!”

우직하게 계속 통나무를 보내는 도렌이 곁눈질로 보였기 때문에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놈의 자존심이 이스핀을 단단히 묶었다.

평소에 실없는 놈보다 먼저 도망친다면 평생 악몽을 꿀지도 몰랐다. 목숨보다 자존심이 중요하냐고 할 수 있었지만, 아무리 밑바닥 인생을 사는 남자도 자존심은 있는 법이었다. 그만큼 남자들에게 가오는 중요한 부분이었다.

또한 〈뒷골목 출신〉인 이스핀이었다. 그에게 가오는 곧 생존이었다.

“크워우어엉!!”

통나무를 내리 박살내자 곰이 자신감이 붙은 일각수는 다시 사족보행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더욱 속도를 냈다.

앞발로 그저 옆을 치면 픽하고 꺾이며 떨어지는 것이 〈송곳 통나무〉였다. 자신감이 붙을 만했다. 한 번에 여러 개를 밀었다면 어찌 될지 몰랐지만 인력이 부족했다.

도노가 따로 밀수는 없었다. 길쭉하게 밀어야 했는데, 늑대들은 옆으로 머리를 들이대어 밀수는 있어도 직선으로 미는 것은 불가능했다. 여러 마리가 들러붙어도 손이 없으니 제대로 밀수가 없는 것이다.

머리를 통해서 미는 것이 가장 힘을 낼 수 있었다.

아직 〈송곳 통나무〉는 많았지만 무시무시한 속도로 달려오는 곰 때문에 고작 8개만 밀 수 있었다.

마지막 8번째 송곳 통나무를 보내고 도렌과 이스핀이 무기를 들었다. 하지만 발은 정직하게 뒷걸음질 쳐졌다.

슈욱!

도렌이 화살을 쏘았지만 털에 박히지도 못하고 튕겨져 나갔다.

7번째 송곳 통나무가 가까이 다가오자 일각수가 앞발을 휘둘렀는데, 통나무가 순간적으로 덜컹거리더니 크게 올라왔다.

퍼서석!

앞발을 후려팼지만 무식한 곰의 힘 앞에 높게 띄워진 송곳 통나무가 그대로 반쪽이 났다. 그것은 실로 과유불급. 힘이 너무 커서 생기는 안 좋은 점이었다. ㅡ자형에서 ㅣ자형이 된 채로 천장을 향한 채로 부서졌기에 그 파편이 정확하게 곰의 머리와 발에 부딪쳤다.

부수지 않았다면 옆으로 나가떨어졌을 송곳 통나무였는데, 다른 통나무와는 다르게 벌레가 그득해서 속이 적당히 비어있는 송곳 통나무였다. 아주 박살이 나버렸다.

일각수는 자신의 무식한 힘으로 아주 박살이 나면서 생긴 작은 파편 때문에 눈을 뜰 수 없었다. 그리고 뒤이어서 오는 마지막 8번째 송곳 통나무의 날카로운 부분이 그대로 어깨에 틀어박혔다.

콰직!

출렁거리는 몸체와 함께 옆으로 체중이 이동하려는 곰의 움직임을 드낙은 균형감각 하나만으로 상황을 파악했다.

‘곧 넘어질 거다. 그때가 승부다!’

드낙은 그대로 바닥에 착지했다.

옆으로 출렁거리면서도 하체의 힘으로 버텨내는 곰이었지만 어깨에 단단히 박힌 송곳 통나무가 뒤로 기울어져 버렸다.

‘놈의 힘을 이용한다!’

드낙은 쓰러지는 방향의 반대편으로 발을 박차며 롱소드를 움직여서 선명한 궤적을 만들어냈다.

쾅!

일각수의 뿔이 그대로 부서졌다. 기본적이지만, 흑마법의 특성상 공격력이 특출난 〈밴쉬 에로우〉 그리고 탄력적인 롱소드에서 나오는 원을 그리지 않아도 좌우를 출렁거리면서 생기는 강력한 힘을 통한 가격.

마지막으로 곰의 힘을 이용해서 쓰러지는 곰의 반대편에서 롱소드를 부딪친 것은 현명한 판단이었다. 곰은 스스로의 체중으로 자신의 뿔을 부러뜨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반동은 드낙이 검을 떨어뜨리게 만들었다. 엄청난 충격으로 손목에 통증이 왔다. 신경이 저릿했기에 낙법을 할 수도 없었다. 몸에 경직이 걸린 것이다. 형편없이 구르는 드낙은 15걸음보다도 멀리 나뒹굴었다.

“···!”

가슴을 부딪쳤기 때문에 순간적으로 숨을 쉴 수 없었다. 드낙은 최대한 냉정하게 몸을 다스리며 온몸에 있는 힘을 풀었다. 당황하면 더 몸이 긴장할 것이다.

“헉! 헉!”

폐가 다시 재작동을 하기 시작했다. 숨을 내뱉은 드낙이 그대로 손을 더듬으며 다친 부분이 있나 자신의 몸을 훑으며 일어났다.

‘끝났다. 내가 죽였다!’

벌러덩 뒤집어진 곰의 어깨에 선명하게 박힌 채 천장을 향해있는 송곳 통나무를 보며 드낙은 그것이 결코 곰을 죽일 수 없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뿔을 부순 자신이 곰을 죽인 것이다. 미소로 번진 드낙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쯔억.

죽은 일각수의 뿔이 뽑혀진 이마에서 쩍 열리는 소리가 들리며 거무튀튀한 촉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키메라를 봤던 이들이었기에 모두 경악하며 소리쳤다. 경악한 것과는 다르게 촉수의 길이는 30cm도 되지 않았다.

“키메라?!”

뻑!

그런 촉수는 공격조차 하지 못했다. 뒤에서 미친 듯이 따라온 아크온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점프해서 자신의 〈자이언트 해머〉로 촉수가 난 부분을 내려쳤기 때문이었다. 이미 쩍 쪼개진 두개골이었기에 수박처럼 터져버렸다.

“빌어먹을, 흑마법사. 모든 것이 계획되었었구나. 정말로 간악하군.”

아크온은 욕을 내뱉으면서 치를 떨었다. 설마 〈일백야수 사건〉까지 흑마법사에게 계획된 것일 줄이야. 촉수가 머리에서 나온 것을 보니 최소한의 행동을 조종해서 인간만 습격하게 만든 것처럼 보였다.

〈인간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우게 만들었다는 것이 아크온의 직감이었다. 정확한 것은 마법사에게 이 시체를 끌고 가면 알 수 있을 듯했다.

“휴.”

아크온이 모든 상황이 끝났음에 한숨을 쉬며 〈일각수〉의 머리를 지나 내려와 걸었다. 하지만 드낙은 물론이고 다른 이들이 손가락을 가리키며 소리쳤다.

“피하십시오! 배가 부풀어 오릅니다!”

피쉬이이익!!!

아랫배에 상처를 줬던 곳에서 가스가 분출되었다. 그러면서도 아랫배가 계속해서 불러오는 일각수의 몸이 거대하게 커지기 시작했다. 흑마법 〈아랫배의 가스 폭발〉이었다.

아크온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렸다. 아랫배에 상처가 난 곳에서 계속해서 공기 소리가 크게 나더니 일각수의 몸이 주르륵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속도를 제법 내더니 그대로 뻥하고 터졌다.

불이 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충격파가 동굴을 흔들었다. 무너지지는 않았지만 온 곳에 들러붙어있던 종유석이 떨어져내리고, 벽이 무너진 곳에서는 지하수가 있었던지 물이 쏟아져내렸다.

콰코카콰!!

도렌은 순간 소름이 돋는 것을 느꼈다. 시원하게 뒤통수에서 바람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퍼걱!

가죽 배낭을 정확하게 뚫고 떨어진 종유석 때문이었다.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하지만 그들의 위에 있던 종유석은 다행히 그것 하나뿐이라 모두가 제자리에 있었다. 아크온은 거대한 지진 같은 현상에도 막힘없이 달려와서 합류했다.

지하수는 그리 많지 않았던지 금방 줄어들었지만 10분 동안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마지막까지 정말 미친 짓을 벌이는군. 아랫배에 상처가 없었다면 압력이 빠르게 상승하여 생각보다 빨리 터졌을 것이다.”

아크온이 마른침을 삼키면서 목이 잠긴 채 말했다. 폭음은 그만큼 대단했다. 엄청난 충격이 공기떨림으로 전해질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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