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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21화 (121/1,239)

0121 <-- 일각수 -->

초토화된 주위를 둘러보는 일각수가 혀를 날름거렸다. 입에 흙먼지가 들어가면서 씹혔기 때문이다. 쩍쩍 들러붙은 침은 흐르지 않고, 진득하게 아래턱의 턱에 들러붙었다.

“크흐! 크흐으!”

흙이 씹히는 사이에도 거친 숨을 내뱉었다. 흙먼지를 들이키면서 크게 기침도 했지만 별 수 없었다. 짐승이 억지로 호흡을 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일각수의 크게 지친 숨소리는 마치 과호흡 증세와도 같았다. 그것을 들은 드낙은 놈의 체력이 바닥난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더욱 경계심을 끌어올렸다.

‘하지만 방심은 금물. 피를 쏟아내면 상처도, 도망갈 힘도 회복되는 놈이다.’

일각수가 되면서 그 능력은 더욱 효율이 좋아지고, 방법도 달라졌을 것이다. 놈의 특징은 그야말로 덩치 큰 곰에게 쥐여지는 능력 중에서도 좋아 보였다. 수틀리면 피 한 번 쏟아내고 튀면 그만이었다.

‘주변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뿔을 통한 마력의 방출은 폭풍을 연상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그 광경을 흙먼지 속에서 조금조금 움직이는 드낙은 되려 일각수의 소모가 클 것이라 여겼다. 뿔에서 토해진 마력의 부하는 신체로도 다가왔다.

‘장난이 아니구나. 하지만 더더욱 일각수는 반드시 내가 죽여야 한다.’

가슴이 떨리는 것도 잠시, 드낙은 욕망에 휩싸였다. 〈검은 문〉이 주는 힘은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평범한 사람은 몇 년이고 고생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크··· 이놈의 흙먼지는···’

그는 기침 한 번 내지 못한 채 희미한 눈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야가 제한적이었기에 소음 하나 내지 못하고 슬금슬금 움직여야 했다.

흙먼지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고, 다시 한 번 아크온과 호흡을 맞추어 놈을 더욱 지치게 만들고, 출혈을 내야 했다.

‘음···!’

아크온 또한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드낙의 무식한 짓거리 때문에 심장이 벌렁거렸다. 일각수의 약점은 분명 그 뿔이었지만, 뿔을 타격당하면 안 쓰던 마력도 사용할 수 있을 수 있었다. 매우 위험한 행동이었다.

‘이제 막 변이를 마친 놈이다. 뿔만 안 건드리면 마력을 쓰지도 못할 놈인데! 일을 엉망진창으로 만드는군!’

가진 힘 때문에 겁이 없어 보였다. 그제서야 드낙의 솜털조차 빠지지 않은 얼굴이 가지는 〈애송이스러움〉을 체감할 수 있었다. 정말로 미친 짓을 보여주었다.

‘이미 때렸으니 늦었다.’

이미 거칠게 사용했으니, 본능적으로 계속 사용할 터였다. 아크온은 몰랐지만, 드낙은 유인할 때도 뿔을 공격했었다. 총 2번의 마력 방출을 본능적으로 토해낸 〈일각수(一角獸)〉의 뿔은 붉은빛의 마력이 스파크를 일으키고 있었다.

“흐으···”

아크온이 흙먼지 속에서 붉은 스파크를 보며 싫은 소리를 냈다.

진절머리가 났다.

목격이 된다면 기사가 최소 2명이 토벌을 위해 움직이는 것이 〈일각수〉였다. 〈버팔로 나이트(Buffalo Knight)〉처럼 명성을 제법 높인 기사가 아니라면 기사도 죽이는 것이 일각수라고 불리는 야수였다.

또한 병사만 있다면 천 명이 동원되어야 잡을 수 있는 것이 일각수였다. 기사의 강력한 힘인 전신갑주를 종잇장처럼 찢겨버리지만 놈도 결국에는 지치기 때문이었다.

‘어디···’

투구에 부여된 후각을 시각화하는 마법 〈늑대의 눈〉으로 곰에게서 풍겨오는 피냄새의 양을 확인한 아크온은 드낙이 생각보다 거칠게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놈에게 시간을 주면 드낙이 홀로 달려들 위험이 있는데···’

거대한 동공임에도 불구하고 바람 한 점 없는 것이 이 지형의 특징이었다. 흙먼지는 모든 것을 가렸다. 오직 어렴풋한 모습만 보여주었는데, 덩치가 큰 일각수는 보였지만 일각수는 두 사람을 확인할 수 없어서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고민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뭐라도 해야 한다.’

계속 슬금슬금 움직이며 드낙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 흙먼지 때문에 더 이상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때 위에서 뭔가가 후두둑하고 떨어졌다. 드낙이 위를 보니 누군가가 횃불을 든 채 이리저리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흙먼지 때문에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눈을 크게 뜰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하지만 한 가지만은 알 수 있었다.

‘왜 저렇게 위험하게 있어?’

소리를 지르지 않아도 도렌임을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절벽에 서보지 않아도 알아서 조심해야 하는데, 요령 없는 도렌이 할 짓이었다.

도렌이 소리를 지르지 않은 것은 지나치게 조용한 밑에서의 상황을 파악했기 때문이다. 열심히 횃불로 휘적거리고 있었다.

‘뭔지 몰라도 계획이 있구나!’

그 신호가 무엇인지는 몰랐지만 뭔가를 준비하고 있는 것은 확실했다. 파악하려면 소강상태인 지금뿐이었다. 드낙은 상체를 숙인 채 빠른 걸음으로 오르막길에 올라서서 흙먼지에서 벗어났다.

그제서야 이스핀과 도렌이 뭘 준비하는지 눈으로 볼 수 있었다. 크놀들이 준비했던 〈송곳 통나무〉였다. 드낙의 눈이 빛났다.

"네가 왜 앞에 있어! 뒤로 와서 여기 앉아있어!”

이스핀은 낭떠러지에서 위험하게 횃불을 휘적거리는 도렌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아서 소리를 질렀다. 그제서야 도렌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스핀이 잡고 있는 〈송곳 통나무〉에 체중을 실었다.

1/3쯤 튀어나와있는 송곳 통나무는 떨어질 것 같지는 않았지만 혹시 몰라 단단히 쥐고 있었다. 이스핀이 횃불을 빼앗아들면서 어둠과 흙먼지로 가득한 곳을 둘러보았다. 누구 하나 보이지 않았다.

밝은 곳에서 어둠 속을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반면 드낙은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서둘러 아크온에게 다가가기 위해서 흙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흡!”

아크온은 구멍 뚫린 방어구를 양손으로 뜯어내고 있었다. 방어력을 잃었기에 필요가 없었다.

체중을 더욱 가볍게 만드는 것이 좋다고 판단하는 듯했다. 그것을 도와주며 드낙이 용병 단원들이 무엇을 준비했는지 말하기 시작했다.

“높은 곳에서 〈송곳 통나무〉를 떨어뜨릴 겁니다. 일각수를 몰아붙인다면 뒤로 보낼 수 있습니까?”

“말이 되는 소리를. 곰이라서 힘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불가능해.”

혹시나 싶어서 물었지만 역시나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드낙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 이 환경 속에서는 놈이 더 불편할 겁니다. 지금 폭풍처럼 몰아붙인다면 몰아붙일 수 있습니다.”

아크온은 고민하지 않았다. 곰을 유인해서 벽에 밀착하는 것보다는 곰에게 달려드는 형세가 더 안전했기 때문이다. 스펙이 높은 만큼 제한된 행동이 이루어지는 상황만큼은 선택하고 싶지 않았다.

“해보지.”

드낙이 빠르게 흙먼지 속으로 사라졌다. 그것을 통해서 아크온은 가시거리를 확인했다. 채 5걸음도 되지 않았다.

거대한 모습을 지닌 일각수의 시야는 덩치에 걸맞게 아주 박살이 났을 것이다. 이족보행으로 서있었기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터였다.

‘괜찮은 판단이다.’

〈가시거리〉의 차이를 본다면 확실히 자신들에게 승리의 여신이 손을 들어주었다.

“후아압!!”

아크온이 소리를 지르자 일각수의 고개가 홱 돌아갔다. 놈이 지친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드낙이 뒤에서 방패를 버린 채 무릎을 밟고 그대로 솟구쳤다. 아무리 둔중한 놈이라도 감각은 있기 마련이다.

곰의 시선이 자신의 무릎으로 향했지만 드낙이 거기 있을 리 없었다. 아래를 바라보는 일각수의 뿔을 다시 한 번 내려쳤다.

파지직!

붉은 마력이 더욱 번쩍거리며 충격파를 토해냈고, 드낙의 몸이 크게 날아갔다. 바닥이 어깨와 부딪쳤지만 충격 흡수를 위해서 데굴데굴 굴렀다.

“크아아아악!!!!”

일각수가 〈뭔가 부서질 것만 같은 기분〉에 휩싸이며 소리를 지르며 거침없이 광분했다. 그러면서도 적을 찾으려고 했지만 흙먼지는 더욱 크게 일어났을 뿐이었다.

발광하는 놈 앞에서 기술적으로 단련된 아크온과 드낙이 뒷짐지고 물러서서 구경할 리가 없었다. 아크온은 결코 드낙처럼 무리하게 점프하지 않았다. 그것이 얼마나 위험한 짓인지 알고 있었다.

드낙처럼 〈또 다른 목적〉이 없다면 무조건 해서는 안 될 목표물이 일각수의 뿔이었다.

퍼걱!

〈자이언트 해머〉가 그대로 발광을 짓는 놈의 팔꿈치를 올려쳤다. 관절에 충격이 오면서 뼈와 뼈가 크게 부딪쳤다. 신경계가 깜짝 놀랐고, 앞발이 덜컹거리듯이 크게 출렁거리더니 축 늘어졌다.

서걱!

드낙은 이발을 하듯이 털부터 깎았다. 너무 양이 많은 털이라 가죽을 베려면 반드시 털이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특히나 롱소드의 검날에 피가 묻으면서 털이 엉키기까지 했다.

그는 검날을 손으로 쓸어서 털만 대충 걷어내면서 계속해서 털을 베어 나갔다.

‘일각수에게 통용되는 비전은 없다.’

정확히는 무기가 없었다. 못해도 중병기로 실행해야 하는 비전이 필요했다. 그것 또한 〈비전〉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일각수〉의 습성, 시야각, 몸의 구도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대중없이 인간형을 상대하는 비전과는 달랐다. 보다 창의적인 비전이 필요했으나, 드낙은 일각수와 조우한지 처음이었다. 그런 비전을 만들어내기에는 경험이 일천했다.

‘불파겐 가문의 오우거 사냥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제야 알겠네.’

〈오거 야크트(Oger Jagd, 오우거 사냥)〉처럼 오우거만을 위한 비전. 말 그대로 반드시 오우거를 죽이는 수법은 그야말로 엄청난 가치가 있는 비전이었다.

그러므로 일각수에게 타격을 주는 것이 쉽지 않았다. 다행이라면 아크온의 전투해머는 가죽마저 피떡으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었다. 특히나 관절에 망치가 타격되면 아주 죽으려고 했다.

“크워어어!!!”

곰이 허우적거리다가 오른팔의 관절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그대로 앞으로 몸이 쓰러졌다. 이족보행은 정신이 따라주지 못했고, 사족보행은 신체가 맞지 않았다. 흙먼지 속에서 높은 곳에서 인간들을 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내려앉아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사각을 노렸다. 체면적에 비해서 목이 길지 않은 곰이었다. 포식으로 덩치만 커져있었기에 요리하는 일만 남았다.

드낙은 일각수가 내려앉자마자 그 타이밍을 이용해서 기어코 일각수의 뿔을 한 번 더 후려갈겼다. 이번에는 충격파가 나오지도 않았다. 한계에 봉착했다는 것을 드낙은 체감할 수 있었다.

아크온은 그것까지는 알 수 없었다. 옆구리의 갈비뼈를 부수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발악하는 일각수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싸움에 있어서 지성이 높지 않은 것이 큰 하자였다. 드낙은 그림자 같았고, 아크온은 긴 리치와 경험을 통해서 싸움에 크게 뛰어난 모습을 보여주었다.

‘마지막 한 방만 남았다!’

두리번거리는 일각수의 머리통만 바라보는 드낙의 살기를 느낀 것인지 결국 일각수가 선택한 것은 모두가 생각하는 것과 정반대되는 것이었다.

“쿠와아아악!!!”

놈이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은 기분에 거북함을 느끼고 벌떡 일어났다. 아크온이 무릎을 때렸지만 끄떡하지 않았다. 아주 단단히 흥분한 듯했다. 몸이 기울었지만 그대로 아가리에서 피를 쏟아냈다.

익히 본 것이었다.

‘재생!’

하지만 상처에서 쏟아낸 것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아가리에서 쏟아져 나왔다. 마치 분무기처럼 넓게 분사되었다. 드낙은 혹여나 독이 있을까 봐 사각으로 이동했다. 피와 흙먼지가 뒤엉키며 주변 시야가 빠르게 확보되었다.

쿠궁!

오르막길을 보자마자 일각수가 뛰었다. 금이 간 것이 분명한 무릎은 어느새 재생되어있었다. 엄청난 능력이었지만 입 주변이 새파랗게 변해있는 것이 피가 부족한 것은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놈이 출구로 뛴다!!!”

아크온이 뒤늦게 소리를 질렀다. 그 또한 뛰었지만 한 타이밍 늦을 수밖에 없었다.

놈이 도주를 선택한 것을 계속 염려했어야 했는데, 디테일하게 놈의 근육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예측을 하지 못했기에 따라붙지 못한 것이다.

또한 아크온의 위치상, 잡을 수 있을 수가 없었다. 앞발로 먼저 뛰어들고 뒷발이 땅을 박차는 사족보행의 특성상 무릎을 타격하며 뒤쪽에 있는 아크온의 반응은 뒤처질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고, 일각수의 행동이 이루어지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그게 그에게 주어진 환경 정보의 최대였다. 외쳐본들 버스는 이미 정거장을 떠났다.

일각수의 무식한 거체에서 나오는 힘은 실로 대단했다. 이번에도 또 도망가서 후일을 도모할 것처럼 보였다. 〈붉은털의 곰〉에게서 파생된 능력이 가지는 강제된 행동이나 다름없었다.

드낙은 놈의 아랫배 가죽을 쥐고 있었다. 방패는 진작에 버렸기 때문에 왼손으로 크게 젖을 움켜잡고 있었고, 롱소드를 쥔 오른팔은 덜렁거리는 뱃살을 이겨내지 못해서 그대로 풀렸다. 팔이 땅에 부딪쳤지만 든든한 방어구를 입고 있어서 그리 고통스럽지는 않았다.

다시 한 번 롱소드와 함께 아래 뱃가죽을 쥐어뜯듯이 움켜쥐었다.

순식간에 시야가 바뀌고 있었고, 워낙 흔들렸기에 주변을 제대로 살필 수도 없었다.

‘놓치면 안 된다! 기회는 단 한 번 오긴 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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