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120화 (120/1,239)

0120 <-- 일각수 -->

이스핀은 냉정하게 웅크려서 상황을 지켜보기만 할 뿐이었다. 동굴이 무너질 것처럼 싸움의 여파가 대단한데 육편으로 찢기고 싶은 게 아니라면 전투에 참가하면 안 되었다.

〈일각수〉에 대한 이야기는 유명할 정도였다.

어쩌다가 죽은 일각수의 시체를 회수한 용병단이 횃불 성채에 오면 성주까지 나서서 그 부산물을 탐낼 정도였다. 금이 아니라 백금을 하사받기도 한다. 나이가 들고 알게 된 것이지만, 〈하사받는〉 이유는 명예로움과 동시에 경매를 열게 하지 않기 위한 성주의 꼼수였다.

아무튼 죽은 일각수만 가져가도 순식간에 인생이 바뀌는 데는 별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무식하게 강하기 때문이었다.

그런 와중에 도렌이 옷깃을 잡으니 얼굴이 구길 수밖에 없었다.

매번 그렇지만 소심해 보이면서도 위험한 상황에서는 항상 제 할 일을 하고, 앞으로 나서는 도렌이었다. 괜히 이스핀이 도렌을 〈형제〉로 대우해주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면모가 없었다면 사람대우조차 안 했을 것이다.

“또 왜? 진짜 이번엔 아니다. 단장님과 기사님만 믿자.”

도렌은 듣지도 않고 자신의 의견을 간곡히 부탁하며 막으려 하는 이스핀을 보고는 자존심에 금이 가는 것을 느꼈다. 병신 소리 듣고, 면전에 구박을 받아도 항상 자신이 실수했기에 자존심이랄 것도 없이 실수를 인정하고, 쓴소리를 듣는 도렌이었지만, 이번 경우는 아니었다.

은근히 자신이 실수했다고 생각 안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쇠심줄 같은 고집을 가진 도렌이었다. 워낙 실수를 많이 하기 때문에 생긴 반동이기도 했다.

“아무 말도 아직 안 했잖아?”

되레 화를 내는 도렌을 보며 이스핀은 가죽 투구를 벗은 채 머리를 긁었다.

“그럼 뭐? 이 상황에서 우리가 뭘 하겠다고? 화살이라도 쐈다가 놈이 덤벼들면 피할 수도 없어. 집채만 한 놈인데. 깔려서 죽기밖에 더하겠냐? 입다물고 그냥 잠자코 있어!”

이스핀이 역정을 냈다. 정말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레벨 1 짜리가 버스 타고 와서는 레이드 파티에 낀 격이었다. 발악해도 민폐였기에 가만히 있는 게 정답이라 생각했다.

결국 도렌은 이스핀을 회유하는 것을 포기하고는 어떻게든 덤빌 생각을 하면서도 땅이 거칠게 흔들렸기에 움직이지 못하는 도노를 기어서 뒷다리를 잡고 끌고 왔다.

“크르르!”

도노는 으르렁거리면서도 드낙이 도렌을 제법 좋게 생각하고 있음을 알고 물지는 못했다. 도렌은 으르렁거림에 손을 놓았다. 겁이 많았기 때문이고, 도노 또한 엎드리고 있어서 머리를 물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니, 좀 도와달라고. 내 말 알아듣지? 단장님을 도와야 하잖아! 좀 도와주라!”

도렌이 도노에게 감정으로 호소했다. 인간관계에서 지고 들어가는 것이 도렌이었기에 딱히 늑대에게 감정을 호소하는 것에 부끄러움을 느끼지 않았다.

평범한 사람의 균형 감각으로는 쿵쿵 울리는 땅에서 서는 것도 힘들었다. 도렌은 드낙의 어려운 명령도 듣는 도노에게 말을 걸며 이리저리 제스처를 취하며 몇 번을 말했다. 그러자 도노가 고개를 휙 돌렸고, 도렌은 다시 도노의 뒷다리를 잡고 진동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 곳까지 물러났다.

그때가 되어서야 도노가 뒷발을 뻥뻥 차더니 일어나서는 이스핀의 팔뚝을 살살 물려고 했다. 이스핀은 도렌이 하는 짓을 모두 보고 있었기에 그것을 피하며 쌍욕을 퍼부었다.

“에이, 씨발! 좀 가만히 있으면 어디가 덧나나. 저딴 곳에 어떻게 도움을 주겠다고. 진짜 미친 새끼들, 목숨이 둘이냐?”

가슴을 쿵쿵 두드리며 화를 한 번 쏟아내더니 한숨을 한 번 쉬고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도렌을 쏘아붙였다.

“계획이 뭔데?”

그놈의 잔정이 뭔지. 이스핀은 결국 두 손 두 발을 들었다. 도렌이 신나게 쑥덕거렸다. 이스핀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두 사람은 엉금엉금 기어서 다른 늑대들도 뒷다리를 잡아서 끌고 왔다.

늑대들은 이리저리 흔들리고 종유석이 쾅쾅 떨어지며 흙이 튀어 오르고 벽이 쩍 갈라져서 부서지는 통에 귀만 쫑긋 세운 채 바짝 엎드려있었다. 오도 가도 못하고 있었다. 무리해서 움직이려는 늑대는 흔들리는 땅 때문에 픽픽 쓰러졌다.

늑대 9마리와 도노까지 이끌고는 이스핀과 도렌이 빠르게 밖으로 향했다.

“쿠우워어우어어엉!!!!”

〈일각수〉가 포효했다. 공기가 떨리면서 드낙이 인상을 찡그리며 순간적으로 비틀리는 균형 때문에 곤욕을 치르며 옆으로 쓰러지며 방패로 땅을 짚으며 한 바퀴 굴렀다.

‘개 같은!’

귀에 이명 현상이 생기며 윙윙 울렸다. 그저 큰 소리만으로도 인간은 무력화되기 쉬웠다. 귀찮은 놈을 그렇게 구르게 만들고는 일각수가 한 걸음을 쿰척 옮기면서 그대로 양 앞발을 손뼉 치듯이 휘둘렀다.

쩌억!

아크온은 그 공격에 부딪칠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붉은털의 곰〉에서 〈일각수〉가 된 곰이었다. 신체능력이 어마어마했다. 또한 곰은 물을 무서워하지 않기 때문에 이물질이 많이 묻기 마련이라, 깨끗해지기 위해서 털을 많이 뽑아내는 습성을 가져 털 자체가 많았다.

그 덕에 드낙은 10합이 넘어간 지금까지 털만 왕창 베고 가죽을 긋는 것이 전부였다.

완급 조절을 하지 않는 곰 상대로 지금 놈과 부딪치는 것은 어리석었다. 처음의 부딪침은 놈이 가진 힘을 가늠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때 밀린 뒤로 아크온은 길쭉한 전투망치와 자신이 가진 특유의 체격으로 관심을 끄는 것이 전부였다.

퍽!

엉망진창으로 휘둘러지는 앞발을 전투망치로 기술적으로 휘둘러지는 곳의 정반대 방향을 후려치는 것이 전부였다.

몇 번 일어서려다가 귀가 먹먹하고 웅웅 울려서 쉽게 서지 못한 드낙은 아크온이 세 번의 공격을 회피하는 사이에 몸을 회복하고 다시 한 번 뛰어들었다.

후웅! 후웅!

〈탄력의 롱소드(Longsword of elasticity)〉가 크게 휘어졌다. 〈세파리아스 불파겐(Sepharias Bulpagen)〉에게서 눈으로만 배운 비전인 〈엘라스티쉬 제스트렁(Elastisch Zerstorung, 탄력적인 파괴)〉은 아직까지도 제대로 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었다.

비전은 그것을 개발한 사람의 의도를 정확하게 알아야만 했고, 체중의 깊이나 방향에 따라서도 위력이 달라졌다. 그런 의미에서 드낙의 〈탄력적인 파괴〉는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탄력적인 파괴〉와 달랐다.

불파겐은 때때로 〈검은 꿈〉에서 드낙과 대련을 해주지만 그것에 비전이 들어가는 법은 없었다. 말해줘도 한 줄 정도였고, 제한적이었다.

“합!”

드낙이 온몸을 던졌다. 오직 파괴력만 중시한 휘두르기! 두 번, 세 번 허공을 움직여지며 탄력적으로 휘어지며 속도가 빨라진 롱소드가 그대로 불곰의 무릎을 후려쳤다. 털이 잘려나가고, 가죽에 박혔지만 피는 조금 묻을 뿐이었다.

“크아아!”

하지만 고통이 없을 수가 없었다. 드낙은 재빨리 옆으로 달려가며 엉덩이 쪽으로 움직였다. 고개만 돌린 곰은 드낙이 반대편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다시 고개를 돌리려 했지만 길쭉한 전투망치가 툭하고 아래턱을 쳤다.

단번에 콧김을 뿜은 일각수가 몸 전체를 내려찍듯이 하며 양 앞발이 땅을 찍었다.

쾅!

토사(土砂)가 튀어나오며 아크온을 두들겼다. 흙먼지를 헤쳐나가며 빠져나온 아크온은 벽을 마주했다. 몸을 돌리면서 언뜻 보이는 곰의 모습에 그대로 상체를 기울이며 엎드렸다.

쿠궁!

앞발이 정확하게 벽에 틀어박혔다.

후두두둑!

어찌나 힘이 강한지 단단한 암벽을 뚫고 들어간 앞발을 손쉽게 빼냈다. 뒤늦게 굵직한 벽에 통째로 쓰러지며 일각수의 머리를 때리며 쪼갈라져서 몸과 부딪치며 땅으로 떨어져내렸다.

‘무식한 놈!’

드낙은 그때문에 크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터프해도 정도가 있었다. 인간 두 명의 공격은 자잘한 상처만 줄 뿐이었기에 화만 돋울 뿐이었기에 더더욱 일각수의 움직임을 격렬하게 만들었다.

그게 아크온과 드낙의 계획이긴 했지만 더 이상은 공격하지를 못했다. 완급 조절을 위한 인간 특유의 휴식 시점이기도 했지만 더 광분하면 놈의 움직임을 예측하는 것이 어려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푸욱! 푸우욱!”

곰은 거친 소리를 내뱉으며 침을 질질 흘렸다. 숨을 거칠게 내뱉는데 호흡하는 폐기량이 실로 대단히 높아 보였다. 하지만 먼저 숨을 고르게 한 것은 인간 쪽이었다.

놈이 더 숨을 진정하기 전에 아크온과 드낙은 다시금 달려들었다. 첫 부딪침에서 유리한 것은 드낙이었기에 드낙이 먼저 곰의 관심에 들어왔다.

두 다리로 일어선 채로 놈은 앞발로 이리저리 무너져있는 흙더미를 그대로 드낙에게 쏟아보냈다.

“큭!?”

드낙은 흙더미에 휩쓸리며 그대로 뒤로 넘어져야 했다. 양이 많으면 집도 흘려보내는 것이 산사태였다. 그 정도는 아니었지만 충분히 큰 일각수의 앞발이 울퉁불퉁하고 파여진 흙에 손을 푹 넣어서 던져서 만들어지는 흙더미는 인간 하나는 우습게 날려버렸다.

‘저항하면 죽는다!’

버티기보다는 드낙은 얼굴을 보호하며 그대로 흙더미의 운동량에 편승해서 뒤로 날아가 데굴데굴 구르며 낙법했다.

아크온은 달리다 말고 호흡을 맞추기 위해서 간합을 통해 전투망치를 휘둘렀다. 힘이 대단한 일각수였기에 앞발의 속도 또한 빨랐다. 거침없이 전투망치를 후려쳤다.

망치가 바닥을 쾅 하고 찍으면서 박혔다. 하지만 아크온도 힘이 적은 남자는 아니었다. 쑥 빼냈다. 흙은 수수깡처럼 흐트러졌다. 하지만 그 시간 동안 일각수가 아무것도 못할 리가 없었다.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진 명백한 아크온의 실수였다

흉악하게 뻗어지는 팔 길이는 성인 남성의 몸길이와 같았다. 3m에 이르는 덩치까지 생각한다면 전투 망치를 회수하고 있는 아크온을 못 때릴 이유가 없었다.

앞발이 순식간에 다가왔다. 무겁다고 해서 느리다고 말하는 이들은 곰의 진정한 스피드를 모르고 말하는 것이었다. 험지에서는 자동차에게 따라붙을 수 있는 것이 곰이란 놈들이었다.

흉악하게 다가온 앞발을 아크온은 피할 수 없음을 직감했다. 그러나 그 얼굴은 결코 공포로 물들지 않았다. 선민사상(選民思想), 선민의식이라 불리며 아랫것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고 여기는 귀족인 아크온이었다.

그것은 때때로 정말로 비합리적인 결정을 내리기도 하지만, 이 시점에서는 아니었다. 강력한 힘을 지니며 실제로 일당백을 실천할 수 있는 강함을 쥐고 있는 아크온에게 있어서 이 정도의 위기, 이 정도의 경험은 몇 번이나 있어왔다.

〈버팔로 나이트(Buffalo Knight)〉라 불리는 〈아크온 몽펠리에(Arcon Montpellier)〉였다.

“후악!”

기합을 내지르며 그대로 전투망치를 투척하듯이 손에서 놓았다. 앞발을 위로 후려친 전투 망치는 금방 바닥에 떨어졌다.

하루에 한 번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파워 밤(Power Bomb)〉이 오른팔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대로 오른 주먹이 도달하기 전의 앞발을 옆으로 위에서 아래로 후려쳤다.

휘둘러지는 앞발이었기에 위아래로 타격하는 것이 기술적으로 최선이었다. 동시에 왼손으로는 앞발을 위에서 잡아서 아래로 최대한 내렸다. 갑옷을 손톱이 긁으면서 일각수의 팔이 바닥에 꽂혔다.

카득!

단박에 손톱이 지나간 곳의 갑옷이 뻥 뚫렸다. 방향을 튼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전투망치를 집어 든 아크온이 뒤로 발라당 넘어졌다. 흙에 파묻힌 앞발이 빼지면서 그를 노렸기 때문이다.

“후우···”

아크온은 당황하면서 호흡을 놓치며 가빠질 법했는데도 가지런한 호흡을 보여주었다. 당황하면 몸을 움직이지 않아도 거칠게 호흡하는 생명체의 습성을 거역하는 일이었다. 얼마나 많은 전투를 겪었는지 보여주었다.

그때, 드낙이 아크온의 시선에 들어왔다. 그는 겁도 없이 털가죽을 잡아서 위로 올라가서는 그대로 롱소드로 일각수의 뿔을 후려쳤다.

‘내가 분명 하지 말라고 했거늘!’

아크온이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뿔이 두 번째로 타격당하자 일각수가 입을 쩍 벌리고 포효하며 길쭉한 뿔에서 파괴적인 마력이 벼락처럼 튀어나왔다.

드낙은 곰의 몸을 방패로 삼으며 엉덩이로 대피했고, 거대한 붉은색의 벼락이 사방을 휩쓸었다.

천둥소리 하나 내뱉지 않는 벼락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불러오는 파괴적인 현상은 아크온이 왜 도망쳤는지 알 수 있게 만들었다.

콰과가강!

모든 것을 파괴했다. 드낙은 곰의 엉덩이에 숨어있었지만 전신을 두들기는 돌과 흙을 맞으면서 얼굴을 가리며 태아처럼 웅크려야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