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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19화 (119/1,239)

0119 <-- 일각수 -->

정신없이 달려갔다. 상황이 끝나있다면 그만큼 호기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크온은 독보적으로 뛰어갔다. 혼자 가도 무조건 이득을 볼 수 있다는 강력한 자신감을 풀풀 풍겼다.

‘미친. 저런 속도로 전신갑주를 입고 내달린다고?’

드낙이 생각보다 더욱 뛰어난 마법 장비의 강력함에 혀를 내둘렀다. 활력 자체를 적게 소모하게 만들고,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마법이 있는 것 같았다. 그것은 곧 혼자서도 일당백을 찍을 수 있게 한다는 소리와 다름없었다.

인간만큼 지구력이 강한 생명체도 없지만 그래도 사람이고, 근육으로 이루어졌기에 지치는 것이 정상이었다. 복싱 선수만 해도 1라운드에 3분 그리고 1분의 휴식을 가진다. 세계 챔피언 경기의 경우 라운드는 12라운드다. 풀로 뛴다고 해도 36분. 1시간도 되지 않는다.

‘전신갑주, 정말 탐난다.’

전투를 한 시간 이상만 할 수 있어도, 일백 명을 잡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무엇보다도 그전에 도망갈 것이다. 전쟁병기나 다름없었다. 혼자서 10명만 잡아도 튀는 놈이 반을 넘을 것이다.

아크온이 그렇게 평지를 내달리는 코뿔소처럼 뛰어갔다.

드낙은 호흡을 조절하면서 하체 근육이 너무 힘을 주는 것을 의식적으로 막으며 달렸지만 뒤에서 그를 부르는 소리에 속도를 늦춰야 했다. 물론 멈추지는 않았다. 그리되면 근육의 피로감이 극대화되기 때문이었다.

“대, 대장님!”

도렌이 단장이라고 부르지 못하고 대장이라 불렀다. 급할 때마다 나오는 호칭이었다. 두 사람은 고작 200미터를 달리고 숨이 턱까지 올라왔음을 느꼈다. 짊어지고 있는 장비를 생각한다면 현대인의 뺨을 후려갈기는 체력이었지만 드낙의 앞에서는 형편없는 체력이었다.

“그렇게 숲 언덕을 오고 내렸는데도 체력이 아직도 부족하다니.”

“다, 단장님처럼 되기에는 시간이···”

이스핀이 불평하면서도 끝말을 내뱉지 못했다. 결국 드낙은 두 사람과 호흡을 맞추는 수밖에 없었다.

‘내가 시야에서 사라지면 딱 봐도 멈출 것 같다.’

“속도를 더 늦춰도 된다. 하지만 멈추지 마라. 멈추면 10분은 휴식해야 한다.”

이스핀과 도렌은 그 말을 듣자마자 냉큼 속도를 걷는 것처럼 줄이면서 아예 걷기 시작했다. 이스핀은 헐떡거리면서 호흡의 완급까지 포기했는데 곧바로 드낙에게 손날로 머리를 맞아야 했다.

“멍청한 놈. 누가 호흡까지 포기하라고 하든? 똑바로 숨셔라!”

“죄, 죄송합니다!”

진정으로 화난 모습에 이스핀이 깜짝 놀랐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찌꺼기 때문에 카리스마가 필요할 때든 아니든 나름 분위기를 풍기는 드낙이었다.

“기사가 보고 있는데, 이렇게 형편없는 모습을 보이다니. 앞으로 이스핀은 새벽수련에 무조건 나와라.”

“아니··· 그것은··· 제가 아침잠이 많아서···”

드낙은 건수를 잡자 이스핀에게 새벽수련에 나오라고 했지만 이스핀은 죽어도 예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이 그래도 드낙에게 쓸모가 있는 사람으로 여겨진다는 것을 잘 아는 눈치 덕분이었다.

〈추적 용병단〉은 자신들이 끌어다 놓은 〈깊은 동공〉 입구에 널브러진 크놀의 시체를 지나갔다. 늑대들의 경우에는 아크온을 따라갔기에 자신들이 가장 꼴찌였다.

오르막길의 옆에 뚫려져 있는 큰 통로가 보였지만 무시했다. 여기서부터 전투의 흔적이 있었기에 곰의 방향을 드낙은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속해서 올라가는군.’

머리만 뜯겨진 채 엎어져있는 크놀의 시체에서 뿜어져 나온 피는 계속 위를 향하고 있었다. 머리를 으적 씹는 소리가 드낙에게 들리는 것처럼 놈의 시체가 보여주는 흔적은 생생했다. 〈깊은숲 사냥꾼〉으로 워낙 흔적을 찾는 것이 숙련된 드낙이었다.

‘젠장. 체력이 저하되긴 개뿔.’

단단한 목뼈가 뜯겨졌다는 것을 본 드낙은 〈일백야수〉가 크놀들을 포식하며 모든 힘을 되찾았은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게 되자 이제는 아크온이 걱정되었다. 아무리 기사라고 해도 흥분하면 허망하게 죽을 수 있었다.

아크온은 오르막길이 끝나는 통로에 몸을 바닥에 엎드린 채 있었다. 다른 늑대들은 드낙의 명령 덕에 아크온의 뒤에 대기하고 있었다.

“헉. 헉. 커으···”

이스핀과 도렌은 죽는 소리를 내며 엎드렸다. 그제서야 살 것 같았고, 가죽 주머니에서 이스핀이 냉큼 물을 한 모금 마셨다. 훈련하면서 드낙에게 들은 게 있는지 입에 물을 머금은 채 조금조금 마셨다.

도렌도 따라 했다.

드낙은 평온한 기색으로 아크온의 옆에 엎드려서 위를 보았다. 이미 상황은 끝나있었다. 피비린내가 진동을 했다.

〈크놀 대장간〉의 입구에서 기습할 때 바람 하나 불지 않았었다. 이 동굴은 바람 한 점 불어오지 않고,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왜 그런지는 드낙도 몰랐다. 하지만 그 덕에 정체된 공기는 멀리 가지 못했고, 반대로 피냄새는 농후하게 늪처럼 들러붙어있었다.

‘어마어마한 혈향이다.’

“제법 빨리 왔군. 크놀들은 모두 죽었다. 살아있는 놈이 없다.”

〈크놀 본거지〉에는 곳곳에 화덕이 많았다. 그 빛 때문에 여실 없이 넓은 공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드낙은 크놀들의 시체를 가장 먼저 확인했다.

‘못해도 100구가 넘는다.’

처참했다. 흉폭한 일백야수가 반나절~하루를 휴식하고는 그대로 먼저 쳐들어간 것이다. 혹은 척후짓을 하던 크놀이 놈을 깨웠는지도 몰랐다.

시체가 그득한 본거지에는 모든 것이 박살 나 있었다. 천장에서 떨어진 종유석이 땅에 박혀있었고, 다리가 거기에 휩쓸려 도망가지 못해 짓밟혀서 곤죽이 된 크놀도 있었다.

새끼고 암컷은 구석에 박힌 채 두려움에 떨다가 떼몰살을 당했다. 팥빙수를 먹듯이 한입에 씹어버려 그 잔해가 흉측하게 흩어져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 속에서도 냉정하게 상황을 주시하는 것은 아크온과 드낙 뿐이었다. 이스핀과 도렌은 계속해서 느껴지는 거북함에 불안함에 떨었다.

‘혼자서 저 많은 크놀을 잡다니··· 미친 것 아닌가?’

놈의 덩치는 화덕의 음울한 작은 빛에 그림자까지 크게 더해져서 거대해 보였다.

드낙은 시체 다음으로 〈붉은털의 곰〉의 모습을 찬찬히 뜯어보았다. 그리고 변화된 놈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족히 1미터에 달하는 하나의 뿔이 이마에 있었다.

“저 뿔은 뭡니까?”

드낙의 소근거림에 이스핀이 얼굴을 손으로 부여잡았다. 드낙이 산골 출신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아크온은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저것을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모르는가?”

“예.”

“〈일각수(一角獸)〉의 가장 큰 특징이지. 놈이 일백야수를 지나 또 한 번 변이했다는 뜻이다.”

야수의 두 번째 변이였다. 운이 따라준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은 우연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그저 보이는 것만으로도 감정에 따라 판단하는 야수가 일각수가 되려면 족히 삼백이 넘는 생명체를 죽여 업을 쌓아야 했다.

보통 힘든 것이 아니었다. 그것을 단시간에 이룩해낸 놈은 확실히 운이 좋았다. 악운이 따라왔다. 끝없는 피의 길을 걷고 있었다.

“주의해야 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뿔에서 마력을 다룬다. 파괴적인 성질이니 결코 방심하면 안 된다. 약점 또한 뿔이다. 뿔을 부수는 것만으로도 죽일 수 있다.”

“간단하게 부서지는 것은 아니겠군요.”

드낙의 말에 아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파괴력이 높은 비전을 써도 세 번은 내려쳐야 할 것이다. 차라리 심장을 노리거나 출혈을 유도하는 것이 더 편하다.”

전신갑주를 입은 기사가 둘이라면 모를까, 아크온은 일각수를 상대로 도박하기 싫었다. 반면 드낙은 부서지면 죽는 것에 주목했다. 막타를 먹기 아주 좋다는 뜻이었다.

작전은 어렵지 않았다. 최대한 전투를 길게 끌고 가서 지치게 만들며 출혈로 끝장을 낸다는 것이었다. 드낙은 부하들에게 단단히 일러두었다.

“절대로 무리하지 마라. 한 방에 죽는다고 생각해라.”

“예.”

“네.”

하지만 곧바로 싸우지는 않았다. 이곳은 인간이 싸우기에 가장 형편없는 곳이었기 때문이었다. 시체가 가득했기 때문에 발이 걸려 넘어지기 충분했다.

“내려가 있으십시오. 유인해서 밑에서 싸우는 것이 좋을 겁니다.”

드낙이 나섰다. 시체가 적고 땅이 울퉁불퉁해도 걸려 넘어질 걱정은 없는 〈깊은 동공〉의 밑바닥이 전장으로 선택됐다. 장비를 최대한 벗으며 롱소드 한 자루만 쥔 드낙의 손을 꼭 잡은 이스핀과 도렌이 아크온과 늑대들과 함께 내려갔다.

도노는 한 번 뒤돌아보며 드낙과 눈을 맞추었다. 그리고는 시크하게 내려갔다.

‘녀석.’

드낙은 시간을 기다렸다. 모두 내려가서 준비를 한다면 30분이 넉넉했다. 그동안 드낙은 심호흡하며 마음을 다졌다. 먼저 나선 이유는 앞으로에 대한 방향성을 바꾸었기 때문이었다.

‘귀족들이 생각 외로 〈자유 기사〉들을 대우해준다.’

이스핀과 도렌을 다르게 쓸 생각을 하게 되었고, 저 덩치 큰 놈을 성공적으로 유인하기에는 드낙만한 사람이 없었다. 아크온은 우직했기에 적을 유인하는 것에는 어울리지 않았다.

체감 시간으로 대충 감을 잡은 드낙이 손을 들어 올렸다. 〈견습 흑마법사의 마력〉이 드낙의 몸에 추가되었고, 포낙서스의 가장 장기(長技)인 〈밴쉬 에로우(Banshee Arrow, 악령 화살)〉는 그가 수인을 그릴 줄 몰라도 순식간에 그려졌다.

푸른 마력이 모습을 드러냈고, 검붉은 화염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악마의 힘으로 변하고 있었다.

“밴쉬 에로우.”

〈1제자 포낙서스〉의 마력 찌꺼기를 받았기에 드낙이 만들어낸 밴쉬 에로우는 사람 허벅지만 한 크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정확하게 허공을 가르며 〈일각수(一角獸)〉의 뿔을 후려쳤다.

퍼걱!

시원한 타격음이 퍼지면서 공기가 울렸다.

“커흐우엉!”

곰이 혼비백산하며 일어나더니 뒷걸음질 치며 옆으로 몸이 기울었다. 정신을 못 차렸다. 그리고는 손을 흔드는 드낙을 볼 수 있었다. 놈은 고개를 한 번 털고 드낙을 다시 보더니 이내 상체를 들어 올렸다.

‘무슨?!’

드낙의 표정이 기괴하게 변했다.

두 다리로 선 놈은 주위를 두리번거리더니 〈송곳 통나무〉를 양손으로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드낙을 향해서 투척했다.

“미친!”

콰앙!

흙이 튀었다. 내리막길로 몸을 던진 드낙이 몇 번을 구르면서 겨우 일어났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어났고, 송곳 통나무는 〈깊은 동공〉의 깊은 낭떠러지로 떨어져내렸다.

흙먼지를 뚫고 그대로 일각수가 뛰쳐나와서 벽에 부딪쳤다. 워낙 빨라서 자신도 주체를 못 하는 것처럼 보였다. 위에 있던 종유석이 와르르 무너져내렸고, 드낙은 정신없이 달렸다.

콰과가강!

흉악한 기세로 흙먼지가 한 발 빠르게 드낙을 덮쳤다. 무엇 하나 보이지 않았고, 입에 흙먼지가 들어갔지만 드낙은 결코 멈추지 않았다.

끔찍한 소란이 원통형의 〈깊은 동공〉을 거세게 흔들었다.

그 소리를 들은 도렌이 다리를 떨었다. 이스핀도 긴장이 되는지 손톱을 물어 뜯으며 옆구리에 글러브를 끼운 채 팔짱을 꼈다.

〈일각수〉는 네발로 달리면서 주체를 못해서 자꾸 얼굴로 땅을 들이받았다. 벌러덩 뒤집어지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벌떡 일어나서 두 발로 달리다가 다시 네발로 달렸다.

〈일각수〉가 되면서 이족보행으로 변했는데, 하루 만에 네발로 다닌 습관을 버릴 수 없게 되면서 생기는 부조화였다. 그 덕에 드낙은 큰 소란을 꼬리에 달고 달리면서도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었다.

“놈의 상태가 이상합니다!”

드낙의 외침에 아크온이 투구 속에서 눈을 빛냈다. 그 말 뜻을 단박에 알아들었다.

‘이족보행이 되었나보군.’

변이 직후에 일어나는 부조화는 크고 작았는데 이번엔 놈이 제대로 운신하지 못할 정도로 심한 듯했다.

“크아아아!!”

3미터가 넘는 거체에 이스핀과 도렌은 앞으로 나서지도 못했다. 포효를 지를 때마다 오한이 들었으며, 발이 땅과 딱 붙어서 얼어붙었다. 호환(虎患)을 당하는 사람처럼 옴짝달싹도 못했다.

늑대들은 발을 구르는 것만으로도 진동하는 땅 때문에 움직이질 못했다.

퍼걱!

그대로 늑대 한 마리가 걷어차여서 형편없이 날아가서 벽에 부딪쳤다. 입에서 피가 튀어나왔다. 2번의 변이를 거치면서 체중 자체가 아프리카 코끼리의 2배 무게인 12톤이 넘어가면서 거칠게 달리는 것만으로도 지진이 일어난 것처럼 땅이 울렸다.

네발로 달려온 일각수가 주르륵 미끄러졌다. 앞발이 정확하게 드낙을 향해 휘둘러졌다. 드낙은 앞으로 내달리면서 그대로 엎드리며 슬라이딩을 했다. 흉악한 공기가 피부로 느껴졌다.

엎드린 자세에서 반바퀴 구르면서 드낙이 거침없이 일어났다. 곰은 자신을 보고 있지도 않았다. 아크온 때문이었다.

“우워어어어어어!!!!”

아크온이 숨을 크게 들이마시며 함성을 내지르며 양팔을 쩍 들어 올리며 자신의 몸크기를 최대한 크게 보이게 하자 일각수가 가슴을 탕 치며 포효하고 있었다. 드낙은 귀가 떨어져 나갈 것 같았지만 계속해서 움직였다.

숏소드는 그냥 검집채로 풀어서 버려버렸다. 이런 괴물에게 숏소드는 이쑤시개나 다름없었다. 아크온은 드낙이 성공적으로 곰의 시선에서 도망치자 전투망치를 내리며 양손으로 쥐었다.

“크아아아!!!”

일각수가 바닥을 손으로 쿵 치면서 그대로 점프했다. 몸으로 찍어 누르려는 모습에 아크온이 뒤로 물러났다. 일각수의 두툼한 왼쪽 곰발바닥이 바닥을 짚었고, 오른 곰발바닥이 휘둘러졌다.

전투망치와 곰발바닥이 부딪쳤고, 망치째로 뒤로 물러나는 것은 아크온 몽펠리에였다.

이스핀은 그걸 보고 입을 쩍 벌렸다.

‘미친.’

인간의 육신을 뛰어넘은 듯한 스펙을 보여주던 아크온이 힘에서 밀렸기 때문이다. 도렌이 이스핀의 옷깃을 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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