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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18화 (118/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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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상황을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아크온이 쌓아온 압도적인 경험 덕분이었다. 그의 추측은 신뢰성이 뛰어났다.

‘〈크놀의 대장간〉을 습격함으로써 상황을 확인했지만, 어부지리는 물 건너갔다.’

그렇게 여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다른 상황은 생각하기 힘들었다. 장병기만 50자루였고, 그동안 모은 광석을 모조리 이곳에 옮긴 듯했다. 단단히 준비하는 모습 같았다. 그것은 곧 〈붉은털의 곰〉에게 습격을 한 번 당했다는 뜻이기도 했다.

‘크놀들에게 다행이라면 대장간은 들키지 않았다는 것이겠지.’

곰은 어딘가로 휴식하기 위해 향했고, 크놀들은 그에 대한 준비를 시작했다. 적어도 반나절, 길다면 하루 전에 있었던 상황일 것이다. 지금은 서로가 서로를 죽이기 위해서 준비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추적 용병단〉은 아크온의 결정을 기다렸다.

“음··· 드낙 용병단장의 생각은 어떤가?”

아크온은 〈자유 기사〉인 드낙에게 물었다. 그의 생각은 한 번 들어볼 만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드낙이 보여준 것이 많았기 때문이다.

‘내 선택은 하나뿐이다.’

〈검은 문〉에 탐욕이 있는 드낙의 선택은 하나뿐이었다. 〈크놀의 대장〉도 죽이고, 〈붉은털의 곰〉도 죽이는 것이었다. 그것에 추적 용병단의 목숨에 대한 걱정은 없었다. 오히려 아크온이 있을 때, 최대한 많은 적을 죽이고 싶어 하는 것이 드낙이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짐승인 곰보다는 지능이 있는 크놀부터 처리하는 게 맞다.’

포위를 할 수 있는 크놀들의 숫자는 무시 못 할 정도였다. 또한 대장을 죽이지 못하면 결집력도 상당한 것이 크놀이었다. 이유는 그들이 대장이 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대장의 영향력이 크기 때문이었다.

대장이 거의 왕처럼 추대되고 활동할 수 있기 때문에 크놀들은 모두 대장이 되고 싶어 했다. 그렇기에 그들의 결집력은 클 수밖에 없었다. 모두가 말을 듣지 않는데 대장이 되고 싶어 하겠는가?

반면 〈붉은털의 곰〉의 경우에는 야수였기에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가 한정되어있었다. 굳이 머리를 쓸 필요가 없었다.

‘무엇보다 순서를 생각하면, 대장을 죽여서 크놀들을 제외하고, 곰의 멱을 따는 것이 안전하다.’

“크놀 대장을 죽여서 크놀들을 일시적으로 무력화시키고, 곰을 잡는 것이 최선입니다.”

“150마리의 무리에서 대장을 죽이는 것은 힘들지 않겠나?”

“그래도 최악보다는 차악이 좋은 법 아닙니까?”

드낙의 말에 아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특별한 안목이 없다면 드낙이 말하는 것처럼 하는 것이 옳았다.

“또한 아직 크놀들에게 저희들의 존재가 들키지 않았으니 시기를 봤을 때, 크놀 대장을 손쉽게 기습으로 잡아낼 수도 있습니다. 반면 일백야수는 지금 가나 나중에 가나 큰 차이가 없을 겁니다.”

“못해도 오늘 내에 승부를 본다면 그렇겠지.”

아크온이 그렇게 말하며 가슴 안쪽에 손가락을 넣어서 긁었다.

‘실망스럽기보다는, 다른 의도를 가지고 있군.’

드낙의 말은 상황에 따라서 만든 적당한 계획에 불과했다. 그렇기에 큰 위험이 없었고, 큰 이득도 없었다. 고로 작전 자체에 평가를 내린다면 하책(下策)이었다.

보통 사람이 보기에는 제법 괜찮은 계획으로 보이겠지만 장점도 단점도 없다는 것이 아쉬운 계획이었다. 물론 마법갑주가 없어도 기사급의 무력을 지닌 드낙이었기에 이 작전도 능히 좋은 작전이었다.

‘알고도 못 막을 것이다.’

힘의 논리로 찢길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아크온은 드낙이 크놀들을 처리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파악할 수 있었다.

‘몬스터에 악감정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아니면 경험을 얻고 싶은 건가. 어찌 되었든 나에게는 좋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봐왔던 자유기사와는 다르군.’

명예욕에 정신 못 차리는 〈자유 기사〉와는 방향성이 조금 다른 것을 알 수 있었다. 크놀을 토벌해도 그리 큰 공적은 아니었다. 마을 사람들을 징집하고, 병사를 이끌고 충분히 토벌 가능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혹은 용병을 쓰던가.

크놀이든 고블린이든 용병들의 토벌 범위 내에 들어가기에 명성 한 줌 챙기기 힘들다.

‘제법 명문가일지도 모르겠군.’

일백야수를 죽여야 하는 상황 속에서 크놀까지 토벌하고 싶어 하는 모습. 자연스럽게 멸문한 명문가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명예의 바탕이 되는 것은 인본주의(人本主義)였다.

남들이 좋아할 만한 일을 하거나 남들이 칭송할 만한 일을 해결하고 추진할 때 받는 것이 명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명예는 돈 있고 사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있고 돈이 있다고 말하는 것과 같았다. 명예를 추구한다는 것은 사람을 생각한다는 것과 비슷했다. 그것은 제법 명문가나 되어야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

보통은 사람보다 명예를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짓으로 보이지만 큰 명예 밑에 시체가 가득 깔려있는 경우가 많았기에 수많은 귀족들이 행하고 있는 짓이었다.

멸문한 명문가가 다시 일으켜세워지기 힘든 이유이기도 했다. 세력도 없는 주제에 이상만 높기 때문이었다.

‘어렵군. 파악하기가 힘들어.’

돈을 추구하는 용병단장이 된 드낙. 굳이 크놀을 토벌하려는 선택을 한 자유 기사 드낙.

‘뭐가 너의 본모습이냐?’

이스핀과 도렌이 그의 꾀주머니 일리가 없었다. 크놀이 뭔지도 모르는 것들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침묵을 길게 유지하는 아크온을 보며 드낙이 결국 입을 열어 물었다. 무례하다고 할 수 있지만 그의 힘을 생각한다면 한 소리들을 행동도 아니었다. 아크온은 드낙에게 호감을 가진 것처럼 보였기에 한 행동이기도 했다.

“드낙 용병단장의 말대로 하고 싶지만, 아직 준비가 안 된 크놀들이라는 것을 확인한 이상 〈붉은털의 곰〉부터 잡는 것이 먼저다. 굳이 크놀들을 토벌할 필요는 없네.”

아쉽지만 두 마리의 토끼를 잡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크온이었다. 그의 입장에서는 크놀은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명예 한 줌 얻기 힘들었다. 마을 하나를 몰살시킨 크놀 무리가 아니라면 칼에 놈들의 피를 묻히는 것이 아까울 지경이었다.

드낙의 눈썹이 찌푸러졌다. 솔직한 반응에 아크온이 한 마디를 덧붙였다.

“이해를 바라지 않는다. 드낙 용병단장, 자네는 젊고 혈기가 넘치기에 너무 이상만 바라보고 있어.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지게 된다면 지금 내 결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말을 하며 아크온은 곧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겁이 많은 것이 크놀들이다. 여기 있는 시체를 〈깊은 동공〉에 놓는다면 덤벼들지 않을 것이다. 더더욱 일백야수의 포효가 들려온다면 침묵할 공산이 크다.”

그렇게 말하며 아크온이 명령을 지시했다.

“여기에 있는 무기들을 모두 밖으로 옮긴다. 준비하고 있는 무기까지 없다면 크놀 대장이라고 해도 기껏해야 상황을 파악하는 정도에 그칠 것이다. 더더욱 일백야수를 잡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공격을 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크온이 투구를 쓴 채 머리를 두드렸다. 크놀들도 생각을 한다는 것임을 상기시켜주는 제스처였다. 드낙은 그 말에 순응할 수밖에 없었다.

단점이 있지만 확실하게 장점이 있는 작전이었기 때문이다.

‘아쉽군.’

아쉬워해도 훌훌 털어버렸다. 드낙이 크놀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은 기껏해야 크놀 어(語)와 제련술 정도였다.

“읏차!”

짐수레를 앞뒤로 끌었다. 아크온도 동참했는데, 일백야수의 체력회복 시간을 더 이상 주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차피 혼자 왔다면 혼자서 했을 것이다. 그는 혼자서 짐수레 두 대를 앞뒤로 겹쳐서 무식하게 끌고 나갔다.

그 모습에 이스핀이 혀를 내둘렀고, 도렌은 입을 헤-하고 벌렸다.

드낙은 짐수레 하나가 고작이었다. 늑대들 또한 짐수레를 이끌었다. 밧줄로 몸을 묶어서 끄는데 도움을 주도록 만들었다.

쏴아아-!

잠시 빗줄기가 약해졌던 비도 다시 강하게 내려왔다. 동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수레를 밀어 넣고, 되돌아오기를 반복했다. 장창은 길어서 누군가는 잡아줘야 했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기울어졌다. 크놀들의 시체들 또한 〈깊은 동공〉이 시작되는 입구에 놓았다.

작업은 1시간 30분정도 걸렸다. 모든 작업을 끝마치고 짧게 휴식했다. 휴식하면서 일행들은 깊은 동공을 구경했다.

앞은 뻥 뚫려있고, 위로는 오르막 통로가 있고, 아래로는 내리막길이 있는 기괴한 〈깊은 동공〉을 앉아 휴식하며 바라보는 아크온은 생각보다 넓은 동공에 인상을 찌푸렸다. 이런 동굴이 가장 싫었다.

인간의 눈은 어둠 속에서 가장 형편없는 눈이었기 때문이다. 자신은 괜찮았지만 드낙의 전투력이 낮아질 것이 분명했다. 다른 용병들은 말할 것도 없었다.

“이 정도 공간이라면 위에서 우리를 내려다볼 수 있겠군. 횃불을 끄는 것이 좋겠다.”

밝혀주는 거리에 비해서 상대가 자신을 아주 멀리서도 보기 좋게 만드는 것이 횃불이었다. 이런 넓은 지형에서는 형편없는 도구였다. 흙을 파서 덮어 불을 끈 다음에 기름을 조금 발랐다. 언제든지 다시 밝힐 수 있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어둠 속에서 아래로 향했다. 짐승의 특징상 지친 상태에서 오르막길을 가는 것보다는 내려갔을 것이기에 아래로 향하는 것이 맞았다.

도렌은 중앙의 뻥 뚫린 곳을 통해서 위를 쳐다봤는데, 무엇 하나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데.’

그렇게 많은 크놀들이 산다면 이곳에 몇이라도 보이는 것이 정상이었다. 하지만 도렌은 그 이상함을 이야기하지 못했다. 쓸데없는 것이라 여겼다.

반면 아크온은 무덤덤했다. 어차피 사람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놈들이 이런 저급한 지성 종족이었다.

드낙은 놈들을 조금 똑똑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제련술 때문이었고, 그래도 지성종족이기 때문이었다. 곰의 시선을 끄는 짓을 안 하고 웅크린 채 기회를 노리고 있는 상황이라 생각했다.

이스핀은 그냥 아무 생각 없었다. 자신이 결정하지 않아도 좋은 결정을 하는 사람이 둘이나 있었기에 도렌의 목을 살짝 치면서 위를 보지 말고 측후방을 잘 살피라고 말했다. 그는 도렌을 챙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내리막길은 끝도 없이 이어졌다. 피냄새를 맡은 늑대들이 으르렁거렸다. 도노가 코를 킁킁거리는 빈도가 많아지자 누구 하나 할 것 없이 침을 삼켰다.

아크온은 내리막길의 경사가 사라지고 〈깊은 동공〉의 바닥에 도착했음을 발로 확인했다.

“횃불을 켜라.”

횃불 세 개가 단번에 켜졌다. 부싯돌이 부딪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주변에는 피가 제법 있었다. 도노가 크놀의 팔을 입에 물어서 가져왔다. 단번에 뜯겨진 것이 〈붉은털의 곰〉이 물어뜯은 것임을 알 수 있었다.

‘한 번 싸웠군.’

〈깊은 동공〉의 바닥은 수백평에 달했다. 하지만 그곳에 붉은털의 곰은 없었다. 시체에는 포식한 흔적이 보였다. 또한 이빨이 박힌 채 날아가 벽에 박힌 장비들을 드낙은 떼어내 확인할 수 있었다.

‘흉갑.’

몸의 상체만 보호해주는 중갑옷이었는데, 마감 처리가 상당히 잘 되어있었다. 노하우가 제법 쌓여있다는 뜻이기도 했고, 크놀들의 손재주가 제법이라는 소리였다. 무엇보다도 대장간에 동원된 크놀들에게 제법 자원이 들어간다는 소리였다.

‘풍족하게 배가 부르니 열심히 일을 했겠지.’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드낙의 머리에 벼락같은 생각이 지나갔다.

“아! 이런!”

그가 크게 탄식을 하며 아크온에게 달려갔다.

“지금 이렇게 놈의 흔적을 훑을 때가 아닙니다.”

“왜 그런가?”

“시체를 밑에 끌고 올 정도면 크놀들이 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서 척후 노릇을 하는 놈이라도 배치시켰을 겁니다. 하지만 그게 없다는 뜻은···”

“단장님! 여기 방금 죽은 크놀이 있습니다!”

드낙은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뛰어갔다. 아크온도 바삐 움직였다. 갈비뼈가 쩍 갈라져서 분리된 놈이었다. 머리가 반이 박살이 나있었고, 척 봐도 위에서 추락한 놈이었다. 내장은 곰의 발톱에 헤집어졌는지 엉망진창이었다.

끔찍한 모습이었지만 드낙은 거침없이 글러브를 벗어서 손가락으로 시체 내부의 온도를 확인했다. 미지근했다. 밖에서는 비가 내리고, 동굴 안은 평소보다 춥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정확히 못해도 2시간 전이다.

‘우리가 동굴을 발견했을 때, 붉은털의 곰은 위로 향하고 있었다는 것이 된다.’

“저희가 동굴에 들어섰을 때, 일백야수는 위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놈들을 뜯어먹으면서 체력을 회복했을 겁니다. 또한 크놀들은 자신의 상대가 안 되기에 편하게 쉬려는 목적도 있었겠지요.”

아크온이 그제서야 상황을 파악했다.

“그렇다면 빨리 올라가야 한다! 일백야수와 크놀들이 싸우고 있을 것이다!”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허둥지둥 내려왔던 길을 올라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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