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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17화 (117/1,239)

0117 <-- 붉은털 사냥 -->

〈크놀의 대장간〉은 그야말로 난장판이 되었다.

쿠당탕!

강철로 온몸을 두른 아크온이 퇴로를 막기 위해서 돌진했고, 엉망진창으로 물건이 엎어지고 크놀 두 마리가 고꾸라졌다.

“바리박! 쿰싸미, 에타르데!”

알 수 없는 소리를 지껄이며 대장간에서 긴 망치로 장창의 날부분을 펴던 크놀 대장장이가 크놀들을 모았다. 모두 허둥지둥 달려와 똘똘 뭉쳤다. 퇴로가 막혔기 때문에 결집력이 실로 대단했다.

궁지에 몰린 쥐새끼조차도 고양이를 물려고 하는데, 하물며 〈휴머노이드(Humanoid)〉 종족에 그래도 한 발 걸친 〈크놀(Knoll)〉들이었다.

“크아아!!”

하이에나와 닮은 모습으로 두 다리로 선 채 소리를 꽥꽥 지르면서 위협했다. 화덕 내부에 넣은 〈박쥐똥 벽돌〉을 고르게 놓기 위한 긴 불쏘시개로 허공을 찔러대며 한 발 빠르게 도착한 늑대들을 위협했다.

“아악! 크아아악!!”

무기를 하나 쥐지 못한 크놀이 생각 없이 도노의 스피드와 덩치를 가늠하지 못하고 홀로 잽싸기 튀어나와서 검 손잡이의 가드 부분이 없는 〈크놀검〉을 쥐려고 했다가 그대로 다리가 물렸다. 훅하는 사이에 다리를 입으로 물어 당겼는데, 그대로 크놀이 넘어져서 버둥거렸다.

까득!

〈갈색 늑대 도노〉가 머리를 이리저리 좌우로 털자 크놀의 발목이 부러지고, 그대로 뜯겨져나갔다. 이내 다른 늑대가 신체 부위를 뜯었다. 끔찍하게 피가 쏟아져 나왔고, 과다출혈로 죽을 때까지 크놀은 살아있어야 했다.

덜덜덜!

크놀들은 그 광경을 보며 두려움이 가득 들었지만 도망칠 곳이 없었다. 끔찍하게 죽은 동료를 도와주는 크놀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자신의 목숨이 아깝다고 여겼다. 그리고 더더욱 흉악하게 이빨을 드러내며 생존을 위해 싸울 각오를 다졌다.

끔찍하게 죽은 크놀이 되려 크놀들의 기세를 높였다. 흉악한 기세였고, 날 것 같은 난폭한 기세였다.

죽기 살기로 싸워야 했다. 하지만 놈들이 뭉치면서 도망칠 생각이 없어지면서 더 상황은 악화되었다. 드낙의 명령으로 늑대 여럿이 퇴로로 향했고, 눈치 좋게 아크온이 단번에 화덕 주위로 뭉쳐있는 크놀들에게 달려들었다.

“크르르..앙!”

하이에나의 주둥이가 팔뚝을 물고, 휘둘러지는 전투 망치에 크놀 하나가 들러붙었다. 아크온의 주먹이 크놀 하나의 턱을 후려쳤다. 무릎이 솟구쳐 오르면서 상체에 들러붙은 크놀의 배를 후려쳤다.

“커억!”

위가 충격으로 강하게 경직되면서 그대로 쪼그라들었다. 크놀의 입에서 토사물이 쏟아져 나왔다. 아크온이 그렇게 덤벼들면서 크놀들의 진형에 바둑알처럼 박혔다. 진형이 뭉개졌다. 〈추적 용병단〉과 늑대들도 그대로 들어갔다.

촤악!

드낙은 이번에 롱소드를 사용했다. 휘두르기에 대장간의 공간이 제법 넓었고, 크놀들이 장병기를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아등바등 밀어냈지만 신체적으로 차이가 큰 것이 인간과 크놀의 간격이었다.

롱소드의 끝이 만들다만 장창을 쥔 크놀의 손가락을 정확하게 훑고 지나갔다.

“크악!!”

고통 때문에 그대로 상체를 숙이며 앞으로 고개를 숙였는데, 어느새 드낙의 곁으로 돌아온 도노의 아가리가 머리를 깨물었다. 피가 철철 흐르는 손이 올라갔고, 도노는 두개골이 생각보다 단단하자 다리 힘을 주면서 당겼다.

“그이익!”

넘어진 크놀이 허둥지둥 일어났다.

서걱!

드낙에게 목이 그대로 베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방패를 팔뚝에 고정한 왼손에서 투척 단검이 세 자루나 쏘아졌다. 모두 대충이나마 3마리의 크놀의 몸에 박혔다. 1마리는 허벅지에 꽂혔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이스핀이 아크온 다음으로 드낙이 휘저어놓은 곳으로 거침없이 크놀들에게 달려들었다. 아크온이 진형을 완전히 붕괴해버렸기 때문에 장병기 비율이 높은 크놀들은 빈틈이 안 그래도 많았는데, 드낙까지 그렇게 4명을 조져버렸으니 이스핀이 용감해진 것이다.

“우와아아아악!!!”

이스핀은 양손으로 방패를 쥔 채로 앞을 막아서는 창을 때리고, 계속 걸음을 옮겨서 그대로 크놀의 몸을 부딪치게 만들어 넘어뜨렸다. 방패가 큰 것에 반해 크놀들이 작았기에 무기를 들지 않은 것이다.

이스핀은 놈들을 맞출 수 있을거라 생각하지 않았다. 훈련 때 드낙에게 워낙 까였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방패만 양손으로 쥐고 덤벼들었고, 그 생각은 아주 잘 먹혔다.

핑!

“키엑!”

도렌은 화살을 쏘았다. 백발백중이었다. 무리하지 않고, 몸체를 노렸다. 무엇보다도 기습을 받았기에 방패를 쥐고 있는 크놀은 없었다.

애초에 대장간이었기에 만들다만 무기를 쥐고 있었고, 멀쩡한 것은 〈크놀검〉 뿐이었다. 당연히 크놀검은 제대로 된 검이 아니었다.

낮은 몸체를 지닌 크놀들이 〈크놀검〉을 쓴다면 검을 짧게 부딪치며 달려들어야 했는데, 이스핀은 양손으로 원형 방패를 무기처럼 휘두르고 있었고, 도렌의 화살이 그것을 보조해주고 있었다.

뻑! 퍽, 팍!

크놀검을 휘둘러도 방패에 막힐뿐더러, 뒤이어서 얼굴에 방패를 맞고, 그대로 나뒹굴어야 했다. 체급 차이가 심했다. 무엇보다도 그렇게 쓰러지면 늑대들이 거침없이 물어뜯었다.

넘어지면 자신보다도 작아져 보였기에 겁이 없어진 늑대들은 어금니까지 깊게 아가리를 들이밀어 크놀들을 아주 아작을 내버렸다.

순식간에 상황은 종료되었다. 아크온이 어그로를 끌었고, 그 순간적으로 생긴 진형 붕괴가 보여주는 끔찍한 교전비율은 드낙의 덕이 컸다. 투척 단검을 쏘면서 아크온과는 다르게 좌측으로 방향을 틀어서 휘젓고 나가며 시선을 끈 탓도 있었다.

도주하는 크놀들은 등에 화살이 박히고, 검과 전투 망치에 골통이 깨어졌다. 늑대에게 발목이 물리고, 덮쳐져서 앞으로 넘어지자마자 뒷목이 물어뜯겼다.

상황이 끝났다.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싱거울 지경이었다. 이스핀과 도렌이 크놀들이 너무 약해서 그렇다는 판단을 한 것과는 다르게 아크온은 전율하고 있었다.

‘이런 전투는 처음이다.’

아크온은 말을 잊지 못했다. 짜릿함이 전신을 타고 흐르고 있었다. 자신이 뭉쳐있는 크놀들의 중앙에 난입해서 바위처럼 틀어박혔다면, 드낙은 폭포처럼 들어와서 벼락처럼 옆으로 빠져나가 시선을 나누었다.

그것은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전술이었다. 단단한 바위가 있다면, 흐르는 폭포가 썩 어울리는 것과 같았다. 똑같은 바위가 두 개 덜렁 있는 것보다는 시선을 확 잡는 그림이 되는 것과 같았다.

〈바위같은 아크온〉과 〈폭포같은 드낙〉의 조합은 막대한 폭풍을 만들어낸 것이다.

본래라면 〈아크온〉과 〈추적 용병단〉으로 시선이 모였겠지만, 좌측으로 어그로를 끌며 들어왔는데도 되려 빠지는 선택을 함으로써 〈아크온〉 〈드낙〉 〈이스핀, 도렌〉으로 크놀들이 생각하고 봐야 하는 방위가 하나 더 늘어난 것이다.

디펜스로 치면, 입구 두 곳을 막아야 하는데 세 곳이 되어버린 상황이었다. 당연히 더 압도적으로 무너져내렸다.

딱히 명령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자신이 해야 할 최선을 보여준 드낙이었다. 하지만 그 공적을 따로 말하지 않는 것도 기사인 〈아크온 몽펠리에(Arcon Montpellier)〉에게 큰 호감으로 다가왔다.

“부상자는?”

“없습니다.”

드낙이 웃었다.

“부상자가 나왔다면 크게 혼내주려고 했는데.”

“저런 작은 놈들 상대로 무슨 부상입니까?”

이스핀이 그리 말하며 크게 웃었다. 전과는 다르게 호쾌하게 싸웠기 때문이었다. 그가 무기를 뽑지 않은 이유는 새벽 수련을 하지 않는 이스핀을 보곤 드낙이 방패술만 가르쳐줬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소화하기 힘들 거다. 언제 깨닫는지는 네 자존심이 해결할 문제고.’

드낙은 원하지 않는 시간까지 그들에게 가르침을 주지 않았다. 어느 적정 수준까지 오르고 난 뒤에는 원할 때만 가르쳐줄 뿐이었다.

크놀들이 모아놓은 물로 피를 씻어냈다. 그리곤 그대로 대장간을 수색했다. 드낙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뭐니 뭐니 해도 〈장창〉이었다. 50자루가 넘는 장창이 만들어져 있었다.

“이런 동굴에서 사용할 물건은 아닌데···”

또한 공성전에서나 볼 법한 〈바퀴달린 방패벽〉을 볼 수 있었다. 철이 아니라 구리 따위의 광석으로 만든 벽에 바퀴가 달린 것이라 보면 되었다.

“깃 없는 화살···”

내구력이 형편없어 보이는 갈라진 화살이 수백 대가 수레에 담겨 있었다.

‘전쟁이라도 하려는 건가?’

〈송곳 통나무〉도 있었다. 날카롭게 끝을 깎은 것이었다.

그 외에도 〈투창용 창〉이 있었고, 〈크놀검〉처럼 특이한 구조의 활을 드낙은 볼 수 있었다.

‘금속으로 된 활이군.’

만지자마자 드낙은 집중했다. 활시위를 당기자 금속으로 되었음에도 활이 탄성 있게 기울어졌다.

땅!

활의 중간 부분을 내려쳐서 쪼개었다.

‘안에는 나무로 되어있군.’

무른 금속으로 도금된 활이었다. 습기가 가득한 곳에서 〈크놀〉들이 자연에서 구하기 힘든 기름을 얻을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활에서 습기를 차단하기 위해서 활에 도금을 한 것이다.

무식한 방법이었지만, 밖으로 나가 나무를 가져오는 것도 잘 하지 않는 놈들이 선택할 방법으로는 이해가 되었다.

‘봐도 이해가 안 되네.’

드낙은 정보가 적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스핀과 도렌도 뭣도 모르면서 여기는 이게 몇 개나 있네. 세고 있을 뿐이었다. 모두 똑같이 〈밖〉에 대해서 몰랐다. 하지만 아크온은 달랐다.

〈기사 임명식〉 이후로 1년에 한 번 본가를 방문할까 말까 하는 〈기사〉가 바로 아크온 몽펠리에였다. 최소한의 명성을 얻기 위해 하는 일이었고, 가문을 세습 받기 위한 필수적인 코스였다. 그게 아니라면 〈남부 왕국〉은 진작에 외부의 위험에 나라가 망했을 것이다.

“얼핏 보면 전쟁을 벌일 것 같지만, 그래서야 앞뒤가 안 맞지.”

아크온은 드낙을 자신의 품으로 안고 가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내치지도 않는 포지션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번 전투에서 보여준 드낙의 실력은 결코 객사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일신의 무력이 있었다면 아크온처럼 바위같이 크놀의 진형에 박혔겠지만 드낙은 〈아크온〉을 생각해주었다.

‘남을 비춰주는 거울 같은 사내다.’

태양이 되고 싶어 하는 기사와는 다르게 느껴졌다.

물론 오해였다. 〈팀 플레이〉를 잘 아는 드낙이었기에 아크온이 생각하는 것만큼 남을 생각하는 게 아니었기에 그 혼자만의 착각에 불과했다.

“전후 사정을 맞도록 하려면 크놀들에 대한 소식을 마을에서 접하는 게 정상이지. 전쟁해야 할 놈들이라면 인간밖에 더하겠나? 하지만 아니지. 그러므로 〈전쟁〉은 뒤로 물리고.”

“곰을 사냥하기 위한 것이라고 본다면 그럴듯하지. 장창부터 투창까지.”

붉은털의 곰은 인간이 봐도 거대하다. 크놀들은 더욱 크게 느껴질 것이었기에 이런 것들을 만들만하다는 것이 아크온의 생각이었다.

‘몇 번이나 본 것이기도 하고.’

그의 시선이 녹이지 못한 광석으로 향했다.

“아직 녹이지 못한 광석까지 치면 크놀의 숫자는 못해도 150마리. 이 정도면 〈일백야수〉에게 겁을 먹을 정도는 아니다. 고로 토벌을 지시했을 것이다.”

“호기(好期)라고 할 정도입니까?”

드낙의 말에 아크온이 투구를 쓴 채 고개를 까딱했다.

“그렇지. 이 정도로 호기는 없다. 동태를 살피고 때를 기다리면 놈들은 스스로 움직여서 붉은곰을 사냥했을 테지만, 아쉽게도 대장간을 이렇게 박살을 내버렸다.”

호기임을 알았음에도 정작 올라탈 수 없었다.

“크놀들이 곰을 잡기 전에 다른 놈들에게 대장간이 털렸다면, 곰을 잡기보다는 웅크릴 것이다.”

이스핀과 도렌의 표정이 굳어졌다. 아크온의 말대로 크놀들이 외부의 침입을 발견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한 번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서는 강력한 수단이 필요했지만 그 리스크는 목숨값이라는 것을 모르는 이는 없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결정권은 귀족인 아크온에게 있었다. 물론 의뢰금을 토해내고 빠질 수는 있었지만, 메디오 지방에서 용병질 하는 것을 그만둬야 했다. 가족까지 피해를 입을 수 있었다. 적당히 원만한 관계지만 언제든지 아크온의 마음대로 박살이 날 수 있었다.

그게 바로 계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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