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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16화 (116/1,239)

0116 <-- 붉은털 사냥 -->

탁! 휘릭, 탁!

갈림길의 입구에 들어선 드낙은 무언가 작업을 하고 있는 〈크놀(Knoll)〉을 볼 수 있었다. 모닥불을 하나 피워놨는데, 그것도 큰 열기를 내는 것도 아니고, 나무를 많이 집어넣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잔잔한 열을 낼 정도에 불과했다.

그 옆에서 크놀은 뭔가를 그렇게 만지작거리며 뒤집기를 반복했다.

‘반죽?’

탁! 휘릭, 탁!

크놀은 왼손과 오른손에 쥔 나무 작대기로 뭔가를 치덕대고 있었다. 희미하고 작은 불빛에 드낙이 그것을 노려보았고, 이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박쥐 똥이잖아. 저걸 왜 반죽하고 있는 거지?’

열기를 받고, 크놀의 손길을 받아서 박쥐똥은 하나로 단단하게 뭉쳐지고 있었는데 그것을 들어서 나무 건조대에 잘 올려놓은 뒤에 나무 작대기로 박쥐 똥으로 만든 벽돌을 쿡쿡 쑤셔서 구멍을 중앙에 여럿 뚫었다. 그 뒤로는 미리 넣어놓은 벽돌들을 만지고 다녔다. 딱딱하게 굳은 오물 벽돌을 찾아내자 그것을 수레에 담았다.

텅.

‘짐수레에 피가 가득 묻어있네.’

피가 잔뜩 묻어 굳어있는 것이 어디서 노획한 짐수레인 듯했다.

“글흐!”

물을 꿀꺽 꿀꺽 마시고는 크놀은 다시 모닥불 옆에 박쥐똥을 잔뜩 가져오더니 오줌을 찔끔 질금 싸고 다시 치덕 거리기 시작했다.

‘빌어먹을 정도로 더럽네.’

하지만 이것이 크놀들의 〈제련술〉이 가지는 비밀임을 드낙은 알 수 있었다.

‘배설물을 굳게 해서 화력으로 쓰는군.’

밖으로 나가지 않는 크놀들이 나무를 잔뜩 구할 리 없었다. 만약 그랬다면 벌써 밖에서 크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을 터였다.

박쥐똥과 오줌으로 진흙처럼 만든 뒤에 점성이 생기도록 치덕 거린 뒤에 벽돌처럼 반듯하게 만들어서 굳게 하는 것만으로 광석을 녹일 원료를 얻을 수 있었다.

〈동굴에서 원료〉를 얻는 방법이었다. 굴에서 살아가는 크놀다운 방식이었다.

“그케르! 탕빠! 탕빠, 탕빠!”

그때, 어둠 속에서 크놀 하나가 제법 큰 단지를 들고 모닥불의 불빛에 모습을 드러냈다. 발바닥이 말랑말랑하고, 털이 나있어서 발소리가 크게 나지 않아 드낙은 다가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소음을 줄이는 부츠를 태어나면서 가지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뚜르밤?”

박쥐똥 벽돌을 만들던 크놀이 몸을 일으켰다. 단지를 사이좋게 들고 드낙이 있는 입구로 향했다. 드낙이 몸을 낮추고, 벽에 달라붙었다. 도노도 따라 했다. 드낙은 검지에 침을 묻혔다. 바람은 불지 않았다.

걱정 없이 기다려도 되었다. 도노는 얌전하게 숨을 죽였다.

크놀 두 마리는 뭐라 뭐라 말했지만 드낙은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다. 몬스터 언어라곤 고블린 어(語)만 알고 있었다.

‘조금 더.’

3걸음 내로 들어와도 드낙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들이 드낙과 도노를 지나치자마자 단번에 달려들었다. 도노는 드낙이 움직이자마자 똑같이 덤벼들었다. 드낙은 거침없이 방패로 한 놈의 머리통을 후려갈기고, 숏소드로 다른 한 놈의 목이라 여겨지는 곳에 검을 휘둘렀다.

“컥!”

“크악!”

먼저 쓰러진 놈에게 도노가 덮쳐들어서 목을 물어뜯었다. 그 사이에 드낙은 목이 베여진 크놀을 마무리했다. 전투 시간은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쓱싹하면 끝이었다.

피냄새가 진득하게 올라왔다.

크놀이 마시던 물로 피를 씻어냈다. 그리고 모닥불에서 장작을 하나 집어 들어서 시체를 확인했다. 도노에게 목이 부러진 크놀과 목이 베이고, 가슴이 꿰뚫려 심장이 찔린 크놀 두 마리가 피로 범벅이 된 채 쓰러져 있었다.

덜그럭.

단단히 봉해진 단지의 뚜껑을 열었다. 그곳에는 온갖 벌레가 가득했다.

‘박쥐들에게 먹이를 주려는 것이군.’

크놀과 박쥐는 연료를 통해서 공생 관계에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박쥐 중에서 하나가 〈거대 박쥐〉가 되어도 먹이를 준 크놀들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도 할 수 있었다.

발로 걷어차면서 크놀들의 소지품을 확인했다.

뽀얀 하얀색의 가루가 든 가죽 주머니가 인상적이었다. 약초로 보였다.

‘이상한 건 아니지만.’

〈휴머노이드(Humanoid)〉 종족에 속하고, 〈광산의 몬스터〉라 불리며 제련에 재능이 있는 몬스터 종족이었다. 이종족이라고 불려도 되지만 인간들의 적이었기에 몬스터라 불렸다. 그렇기에 약이 그들의 문화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킁킁.

드낙은 냄새를 맡아보았다. 색상에 비해서 고약한 냄새가 났다. 사용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냄새 때문에 맛보는 것조차 두려웠다. 다시 시체에 던져놓고, 무기를 확인했다.

횃불을 통해서 보이는 무기는 깔끔한 모습을 가지고 있었다.

‘크놀들의 제련술이 생각보다 좋군.’

찌르기가 불가능한 끝이 뭉툭한 검이었지만, 반듯하게 세워져 있었다. 검 손잡이에 가드가 없을 뿐이지, 다른 차이는 없었다.

‘찌르기가 없는 게 신기하네. 리치가 짧은 그들에게는 찌르는 것이 좋을 텐데.’

특이한 구조였다. 다음은 검의 재질이었다.

‘탄성도 있고. 아쉬운 것은 구리를 섞었다는 것이다.’

구리가 점처럼 다닥다닥 들러붙어있었다. 그 무른 부분이 흠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이 철인 것은 분명했다. 철은 돈이 된다. 구리 또한 사람들이 자주 찾는 금속이었다.

그 외에는 구타당한 흔적이 있었고, 꼬리가 잘려 있다는 것 정도가 특이한 부분이었다.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크놀인 듯했다. 드낙이 몸을 일으켜서 걸음을 옮겼다.

‘냄새가 지독하군.’

건조대가 잔뜩 모여있는 곳을 훑었다. 딱히 눈에 보이는 것은 없었다. 드낙은 정찰을 계속 진행했다. 뒤에서는 천천히 다가올 것이다.

땅! ······땅!

입구를 지나서 딱 50걸음. 드낙은 크놀 무리를 볼 수 있었다.

‘이곳은 대장간이군.’

입구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대장간이 있다니, 웃음이 나왔다. 구조적으로 알맞지 않았기에 크놀들이 멍청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이 만들어내는 대장간은 제법이었다.

화아악!

박쥐똥 벽돌을 넣자마자 화력이 크게 일어났다. 바짝 마른 것이었다. 내부의 열기를 보존하기 위해서 화덕은 크놀들보다 컸다. 화덕의 옆쪽에는 온갖 낙엽이 잔뜩 모여있었다.

나무를 쓰지 않는 것이 신기했다. 그들만의 생존법이라도 지키고 있다는 것이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땅!

자기 몸보다 큰 길쭉한 망치를 휘두르는 장인도 보였다. 굵기는 얇고, 망치의 크기도 왜소한 크놀의 주먹만 했다. 원심력을 이용해 단번에 길쭉한 장창의 날부분을 두드려 펴고 있었다. 망치가 때려질 때마다 불순물이 불똥을 튀며 흩어졌다.

‘저렇게 공정하면 구리는 반드시 녹을 텐데. 급하게 만든 검을 왜 가지고 있었던 거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드낙의 눈에 〈크놀 대장간〉의 인원수는 열다섯이었고, 대장간의 뒤로 통로가 계속 존재했다. 그의 눈이 좁아졌다.

‘대장이 있는 곳으로 향하는 길일까?’

어찌 되었든 환하게 밝혀진 대장간을 처리하기 위해서는 혼자서는 불가능했다. 드낙은 사뿐한 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일행은 대장간 입구에서 시체를 확인하고 있었다.

‘기습이라고 해도 단번에 치명상을 입혔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마무리도 확실하게 매듭지었고.’

아크온은 깔끔한 솜씨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드낙은 소리로 신호를 보내며 적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며 어둠 속에서 횃불의 불빛이 닿는 곳에 들어섰다.

“어떤가?”

아크온의 물음에 드낙이 고개를 살짝 숙이며 보고를 올렸다.

“앞에 크놀 15마리가 있습니다. 대장간으로 보이고, 작업 중이라 소음도 커서 단번에 뛰어든다면 능히 다 잡아낼 수 있습니다.”

“그 외에는?”

“뒤로 계속 이어지는 통로가 있었습니다.”

“흠··· 반대편 갈림길에도 오르막과 내리막으로 갈라지는데, 이 길도 그렇게 깊단 말이지···”

아크온이 신중하게 고민했다. 크놀을 닥치는 대로 섬멸하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지만, 생각보다 크놀들의 세력이 많다면, 최대한 은밀하게 붉은 털의 곰만 죽여버리는 것이 더 좋은 판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붉은털의 곰〉은 반드시 토벌해야 한다.’

인간의 맛을 알아버린 놈이었기에 반드시 토벌해야 했다. 보통 야수와는 격이 다른 놈이 되어버렸다. 놈을 죽이지 않으면 어차피 또 인간의 앞에 나타날 놈이었다.

“대장간에 열다섯 마리나 있다니, 그건 정말 이상하군.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죽은 두 놈까지 합치면 17마리에 광석을 캐는 놈들까지 치면 50마리가 넘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못해도 300마리 이상의 크놀이 있다고 예상된다.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 정도로 무리를 이루었다면 사단이 나도 벌써 나야 했다. 어떤 식으로든 움직임이 관측되어야 하는 규모였다.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고민하는 아크온에게 드낙이 의견을 냈다. 그 또한 아크온이 고민하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섬멸하는 것도 좋지만 생각보다 인원이 많을 수 있었다.

“〈대장간〉에서 만든 것을 보면 놈들의 숫자를 능히 파악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그렇군. 크놀들의 숫자가 너무 많이 잡히는 것이 붉은털의 곰 때문일 수도 있지. 일시적으로 대장간에 인력이 많이 들어갔는지도 모르지. 생산물량을 보면 견적이 나오겠군.”

그렇게 말을 하고 나서야 아크온은 이내 납득했다.

대장간에서 보유하고 있는 재료부터 하루 생산하는 장비까지 확인을 한다면 놈들의 인구수를 추측할 수 있었다. 판단은 그때 해야 하는 것이 옳았다.

“기습을 하겠다. 나는 거침없이 달려들어서 통로를 막겠다.”

“늑대 둘을 붙여드리겠습니다. 혹여나 통로로 도망치는 크놀이 있다면 추적해서 물어 죽이게 만들겠습니다.”

“그것이 좋겠군.”

아크온이 반대편 통로를 막고, 통로로 운 좋게 도망친 크놀은 늑대 두 마리가 맡도록 하였다. 사족보행을 하지 못하는 크놀이었기에 달리기에서 늑대에게 패배할 수밖에 없었다.

“너희들은 차근차근 크놀들을 죽여나가라.”

“예.”

이스핀과 도렌이 고개를 크게 끄덕이며 대답했다.

〈크놀 대장간 기습〉은 특별히 준비할 것도 없었다. 땅을 파서 횃불을 고정시켜놓고, 어둠 속으로 들어가면 그만이었다.

환해 보이는 대장간인 만큼 어둠을 꿰뚫어볼 눈이 없었기에 아주 안전하게 근접할 수 있었다.

철컥.

아크온의 중갑 소리도 대장간의 소음으로 파묻혔다. 광석을 관리하는 곳에서 금속음은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하도 두들겨대다 보니 작은 소리를 듣지 못하게 된 귀를 가지고 있는 크놀들이었다.

‘아주 제대로 방심해있군.’

아크온과 추적 용병대가 그대로 뛰어들어갔다. 크게 소리를 외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그것은 늑대들도 마찬가지였다. 적에게 위협을 가할 때나 짖지 공격할 때는 으르렁거림이면 족했다.

아크온은 거칠게 직선으로 내달렸다. 장창을 물에 담그던 크놀이 그대로 아크온의 왼 주먹에 머리통을 맞고 옆으로 픽하고 쓰러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했다.

거침없이 달리는 아크온의 뒤로 늑대 두 마리가 함께 달리고 있었다. 아크온이 그렇게 달려도 크놀들은 순간 상황을 판단하지 못했다. 작업에 집중하는 크놀이 있었고, 무언가를 운반하던 크놀의 뒤통수를 아크온이 지나갔다.

“까, 까마툰! 비비낙!”

소리를 질러도 이미 늦었다.

공격해서 들어가는 방향에서 반대편에 있는 통로를 그대로 막은 아크온이 빙긋 웃으면서 전투 망치를 들어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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