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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14화 (114/1,239)

0114 <-- 붉은털 사냥 -->

동굴로 진입하기 전에 아크온은 〈추적 용병단〉을 불러 모았다.

“큰 상처를 입으면 피를 쏟아내며 무식하게 도망치는 놈이다. 대책을 논의하고 들어가고 싶군.”

아크온의 말에 이스핀과 도렌은 아무런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 모습에 드낙은 가장 첫걸음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일백야수〉를 밖으로 끄집어낼지, 놈이 있는 곳으로 저희가 들어갈지를 먼저 정해야 합니다.”

“동굴의 크기와 깊이를 모르니, 그럼 일단은 정찰이군.”

철소리가 나는 아크온은 정찰멤버에 들어갈 수 없었다. 드낙은 부상을 입었던 이스핀을 제외하고, 도렌과 갈색늑대 도노를 데리고 정찰에 나섰다.

“밧줄이 좀 짧은데, 괜찮을지 모르겠네요.”

돌아갈 것을 염려해서인지 도렌이 밧줄이 짧은 것을 염려했다. 동굴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그 거친 지형이 먼저 생각났다. 드낙은 자신의 밧줄을 보여주며, 여차하면 서로 묶어서 길이를 길게 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못도 챙겼고.’

사람이 내려가거나 오르기 힘든 경사를 만나면 벽이나 바닥에 박아놓고, 밧줄을 잡고 내려가야 하는 경우가 왕왕 있었다. 현대의 개봉된 동굴이 구멍 숭숭 뚫린 철판 다리를 놓거나 울퉁불퉁한 땅을 평탄한 길로 만들려고 기계로 지나가며 묵직하게 짓누른 동굴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 자연동굴이었다.

이것저것 장비들을 짊어졌기에 내리막길이 가장 위험했다. 잘못 미끄러지면 발목이 그대로 부러질 수 있었다.

전에 챙긴 목탄과 천을 이용해서 물기가 스며든 나뭇가지를 이용해서 횃불을 만들었다. 기름이든 폐기름이든 동물 기름이든 뭐든 무조건 비싼 것이 기름이었지만 드낙은 만든 횃불에 충분한 기름을 발랐다.

두 개의 횃불을 만드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리 멀리 정찰을 가지 않을 셈이었다. 도노가 박쥐 똥내에 익숙해질 때까지 드낙은 기다렸다. 그다음에 횃불 하나만 밝혀 앞장섰다.

동굴의 높이는 순식간에 줄어들었다. 하지만 폭은 줄어들지 않았다.

“들짐승의 시체가 많네요. 원래 살던 곳이었을까요?”

“그럴 수도.”

도렌은 음울한 횃불의 빛에 노출되어 보이는 수많은 동물뼈들을 보며 속이 울렁거리는 것을 느꼈다. 언제 봐도 익숙하지 않았다. 반면 드낙은 무덤덤했다. 〈검은 꿈〉같은 초월적인 현상 앞에 놓여있는 인간의 심상은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통로는 끝도 없이 이어졌다. 길은 제법 거칠었지만 경사는 평탄했다. 횃불의 불빛을 받은 박쥐는 눈동자가 주홍빛으로 반짝거렸다. 그 숫자는 수십이 넘었다.

‘빌어먹을 박쥐들.’

도렌은 박쥐들이 금방이라도 자신에게 덤벼올 것 같아서 심장이 콩닥거렸다. 드낙은 횃불을 조금 올려서 박쥐들의 크기를 확인했다. 높이가 낮아진 천장이라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유독 큰 놈이 있네.’

놈은 독수리처럼 큰 날개를 하고 있었는데, 머리까지 파묻고 동굴 천장에 매달려있었다. 굵직한 다리와 발톱은 사람 하나를 죽일 수 있을 만큼 두툼했다.

횃불의 불빛에 놈이 그대로 반응했다. 고개를 쑥 내밀더니 이빨을 보였다. 몬스터 특유의 흉악함이 두 눈에 서렸다.

“캬악!”

놈이 소리를 지르자 박쥐들이 날개를 펴며 날아올랐다. 드낙이 외쳤다.

“박쥐는 우릴 공격 안 한다! 덩치 큰 놈을 주시해!”

“읏!”

도렌은 그 말을 들었지만 몸을 낮출 수밖에 없었다. 날아오른 박쥐들이 당장 그와 부딪칠 것처럼 위험하게 비행했기 때문이었다. 드낙은 그 속에서도 거침없이 움직였다. 날개가 투구를 스치고 갔지만 거리낌 없었다.

박쥐가 자신에게 상처를 줄 만한 일은 없었다. 역으로 드낙이 박쥐에게 상처를 줄 만한 일 뿐이었다. 박쥐가 자신을 두려워할 것임을 알고 있었기에 대범해질 수 있었다. 실제로 고작 몇 마리에 지나지 않는 박쥐만이 드낙을 스치고 지나갔을 뿐이었다.

틱!

체중이 적은 박쥐가 숏소드를 뽑아올리는 드낙의 팔뚝에 맞아서는 그대로 땅에 머리부터 부딪쳤다. 파괴력이 있는 롱소드를 뽑기보다 드낙은 숏소드를 뽑았는데, 〈거대 박쥐〉의 스피드를 생각해서였다.

‘역시 빠르다!’

높은 곳에 있는 녀석이라 낙하 속도까지 감안해서 숏소드를 뽑은 것이 정답이었다. 만약 롱소드였다면, 검을 다 뽑지도 못한 채 거대 박쥐와 부딪쳤을 것이다.

퍽!

거대 박쥐는 호쾌하게 달려든 것과는 다르게 단칼에 두개골이 베이면서 박살이 났다. 숏소드는 단단한 거대 박쥐의 머리를 잘라내지는 못했기에 깔끔하게 잘리는 소리보다는 둔탁한 곤봉으로 후려치는 듯한 타격음이 동굴에 울려 퍼졌다.

‘별것도 아닌 게, 덤비기는.’

몬스터의 특징이었다. 일반적인 야생동물과 다르게 자신이 다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놈들이었다. 드낙은 도렌을 보며 혀를 찼다.

“박쥐를 무서워하지 말라니까. 놈들은 덩치 큰 널 더 두려워할 거다.”

도렌은 변명도 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드낙은 거대 박쥐의 죽음을 확인했다. 바닥의 질퍽한 박쥐똥 때문에 당장 해체하는 것은 어려웠다. 돌아갈 때 챙기는 게 좋을 듯했다.

“이놈은 돈이 되나?”

‘아···단장님은 잘 모르시지.’

도렌은 〈피가득 술집〉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풀었다.

“거대 박쥐의 날개는 약재로 자주 쓰입니다. 뼈에 좋다고 어디서든 잘 팔리죠. 가죽은 다른 가죽이랑 비슷하게 받습니다.”

날개가 비싼 놈이었다. 동굴에서 무식하게 들어갈 놈은 없었고, 전문적으로 〈거대 박쥐〉를 사냥하는 용병단이 없지는 않았지만 수요가 넘쳐났다. 구하는 사람이 많다면 한 장에 동화 200닢도 받을 정도였다.

물론 최댓값이 20만 원이라는 것이지 시세가 고정되어있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고 난 다음에 드낙은 시체를 옆으로 치워놓고, 검을 닦았다. 피냄새가 났지만 이런 악취가 심한 동굴에서 그것을 구별하기도 힘들뿐더러, 빗물이 들어오고 있어서 물 비린내도 났기에 바짝 경계하거나 바람이 크게 불지 않는 이상 들킬 염려는 없었다.

“응? 도렌, 이거 봐봐라. 이쪽에만 박쥐 똥이 없다.”

거대 박쥐가 죽은 곳의 벽 구석 주변 바닥에는 박쥐똥이 하나도 없었다. 지나치게 인위적이었지만 두 사람 모두 왜 그런지는 알지 못했다.

저벅, 저벅.

횃불에서는 검은 연기가 보통 이상으로 풍겨 올라왔다. 그 때문에 드낙이 지나가는 곳의 박쥐들은 너도나도 날갯짓을 하며 구석으로 가거나 아예 자리를 피했다.

‘너무 긴데.’

도렌의 걱정이 시작되었지만 드낙은 계속해서 앞으로 향했다. 곰이 갈 수 없는 갈림길도 나왔고, 작은 굴도 여럿 보였다. 그러다가 이내 동굴이 다시 확 높아졌다. 큰 공간이 모습을 드러냈다.

횃불로는 그것을 모두 밝힐 수 없었다. 대신 지형을 가늠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드낙의 눈으로만 봐도 아래로 푹 꺾어지는 내리막길 있었고, 벽 곳곳에 굴도 가득 보였다.

“저··· 단장님.”

도렌이 입을 웅얼거렸지만 드낙은 무시했다. 좌우를 살폈다. 큰 갈림길이 눈에 들어왔다. 드낙이 도렌의 입을 다물게 하며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더니 거침없이 걸어나갔다.

“으르.”

가는 도중에 도노가 소리를 냈다. 혈향이 맡아진 것이다. 드낙은 횃불을 앞세워서 세심하게 주변을 훑었다. 이내 혈흔을 발견할 수 있었다. 손으로 짚어서 비벼보았다. 점성이 느껴지는 것이 시간이 좀 지난 피였다.

그렇다고 오래 지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붉은털의 곰〉의 것이라 여기기에는 핏자국이 너무 적었다.

도렌은 너무 넓어진 동굴에 두려움을 가지며 드낙을 따라가며 숏소드를 뽑아들었다.

‘불 피운 흔적이군. 누군가가 있다.’

인간은 아니었다. 점토로 도기를 만든 흔적이 보였다. 화기를 이겨내지 못하고 쪼갈라져 있는 그릇을 손으로 집은 드낙은 몸을 일으켰다.

‘판타지의 단골손님인 고블린···’

곧바로 단골손님이 떠올랐지만, 고개를 저었다. 고블린은 분명 동굴을 좋아하지만, 온갖 장식을 늘어놓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입구부터 여기까지 깔끔했다. 힌트는 여럿 뚫어져있는 작은 굴이었지만, 짚이는 것이 없었다.

눈길을 받은 도렌 또한 고개를 저었다.

‘다른 놈들이 자리를 편 곳에 들어왔구나. 썩 좋은 상황은 아닌데.’

드낙은 그 외의 단서를 찾으려 했지만, 깊게 들어가는 것은 어리석었다. 횃불은 가시거리에 비해서 멀리서도 적이 확인할 수 있었기에 썩 좋은 조명 도구는 아니었다.

깨어진 도기 그릇을 챙기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한참 오지 않았기에 이스핀이 서성거리고 있었다.

“왜 이렇게 늦게 왔습니까?”

“생각보다 동굴이 길다. 자연 던전이야.”

그 말을 들은 아크온이 복잡한 눈을 하며 귀찮은 표정을 지었다. 드낙이 보여준 도기 그릇을 쥐고 있었다.

“불로 도기를 구운 흔적을 봤다면 믿을 수밖에 없군.”

일이 꼬였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동굴이 그렇게 길다면 불을 지펴서 나오게 하지도 못하겠군.”

“예. 들어가는 수밖에 없습니다.”

드낙은 바닥에 자신이 걸었던 길을 그렸다. 굵은 통로에 가지처럼 작은 길과 굴들이 곳곳에 있었다. 그 모습에 아크온이 단박에 이곳에 사는 몬스터를 파악할 수 있었다.

“크놀(Knoll)이군.”

“크놀이 뭡니까?”

드낙의 말에 아크온이 순간 말을 못하다가 이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이제 두 번째 의뢰인 것이 확실히 맞긴 맞는군! 하하하!”

이스핀이 그 물음에 대해서 대답해주었다.

“하이에나처럼 생긴 주제에 걸어 다니는 놈들입니다. 동굴에서만 살아가는 놈들이라 자주 볼 수 없긴 합니다.”

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놀이라는 것을 들어서야 동굴 곳곳에 작은 갈림길과 좁게 뚫어진 굴들이 이해되었다.

“두 사람은 본 적이 있나?”

드낙의 말에 이스핀과 도렌 모두 고개를 저었다. 횃불 성채에서 태어나고 자란 두 사람에게 크놀을 볼 기회는 없었다. 〈피가득 술집〉에서나 들어봤다.

“위험한 놈들입니까?”

아크온은 단호하게 말했다.

“전혀. 고블린보다도 더 야만적인 놈들이지. 〈휴머노이드(Humanoid)〉 종족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몬스터다.”

곱추라고 표현할 정도로 척추가 엉망진창으로 자라는 것이 크놀의 가장 큰 특징이었다. 그 덕에 낼 수 있는 힘도, 파워도 낮았다.

“하지만 동굴에 살아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제법 질 좋은 무기와 방어구를 들고 있지. 광부들에게는 〈광산의 몬스터〉라 불리기도 한다.”

고블린처럼 조잡한 목재 무기나 잡석 따위보다는 훨씬 우월한 재련 기술을 가지고 있는 것이 크놀이었다.

“또한 놈들은 대장 놀음을 좋아해서 대장 목만 따면 놈들을 패퇴시킬 수 있지.”

“예?”

대장 놀음을 좋아하는데 대장을 죽이면 패퇴시킬 수 있다는 말을 드낙은 이해하지 못했다. 아크온은 그 반응을 즐겼다.

“이해하지 못할만하지. 너도나도 대장이 되고 싶기 때문에 대장이 죽으면 서둘러 되돌아가서 다시 대장을 뽑는 거다.”

“생각보다 더 멍청한 놈들이군요.”

“그렇지. 그래서 그렇게 까다로운 놈들이 아니야.”

아크온은 그렇게 말하며 크놀들에 대한 대처법을 꺼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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