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13 <-- 붉은털 사냥 -->
조금씩 떨어지던 빗방울은 점점 크기가 커져갔고, 이내 주위를 둘러볼 수 없을 정도로 비가 많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여름에 볼 수 있는 굵직한 빗방울이었다. 특히나 숲이었기에 나무들이 서로 힘을 합쳐서 습기를 모았기에 더 많은 비가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정령의 힘이라 불리기도 했다. 나뭇잎에서 떨어지는 빗방울은 모이고 모여서 물줄기가 되기도 했다.
촤아악!
마차 안에서 마부 센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시간을 보냈다. 책 한 권은 펼쳐져 있었지만 몇 페이지만 넘겨졌을 뿐이었다.
‘잠은 잘 주무시고 계실까.’
아크온은 자세가 불편하면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는 습관을 지녔다. 여행 갈 때 꼭 인형이나 베개를 챙기는 사람과 비슷했다. 두 다리 쭉 펴고 잘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상남자인 것과는 다르게 귀족으로 살면서 생긴 트라우마와 상처들은 남들보다 매우 깊었다.
태생부터 골격이 대단히 뛰어났던 아크온의 성장을 죽이기 위해서 틈날 때마다 팔다리를 접으려고 했던 고문을 당했기 때문이었다.
마부 센은 다른 걱정도 했다.
‘···용병단장이 이번에 너무 많은 것을 가져가면 안 되는데. 걱정이다.’
전투 망치를 사용하는 아크온이었다. 특히나 어깨가 떡 벌어지고 골반도 넓어서 본능적인 짐승은 더더욱 아크온을 경계할 것이다. 그에 반해서 드낙은 공격력에 비해서 아크온보다 몸집이 작았다.
공을 다투는 것에 있어서 절삭력을 지닌 무기가 당연 눈에 띄기 마련이다. 인간은 시각적인 동물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알게 모르게 드낙에게 견제가 이루어졌다.
그 견제는 응당, 〈돈을 베푸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보통이라면 사장이 사장에게 돈을 건네는 것이 알맞다. 하지만 굳이 아크온은 단원과 단장 구분 없이 돈을 건네주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드낙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사소한 것부터 하나하나 의미를 놓으며 바둑알을 박는 것이 귀족의 행실이었다. 반대로 현대에서 그렇게 살면 제명에 못 산다. 모든 것이 파도처럼 흘러가고 빠르기 때문이다.
〈용병단장〉에게서 돈을 받는 것과 〈기사〉에게서 돈을 받는 것은 엄연히 달랐다. 아크온은 용병단장의 위세를 키우지 않고, 용병단을 움직이고 싶었고, 그렇게 행동하였다.
‘물론 보통 용병단장이라면 과한 처사지.’
불쌍할 지경이다. 동정심마저 들 정도였겠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렇게까지 했던 이유는 드낙이 보통 용병단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곁에는 둬야 하지만, 엉덩이를 토닥거리며 키워줘서는 안 된다. 되려 발을 걸어 넘어뜨리면서도 곁에 계속 두어야 했다. 그게 바로 귀족의 입장에서 보는 〈자유 기사〉에 대한 공통된 방침이었다.
‘여우는 아니지만, 결국 세상 풍파 뒤집어쓰면 심장이 차가워지는 법이고, 그가 용병단장이라는 것부터 경계 대상이다.’
아크온이 공적을 가져가겠지만 소문은 막지 못할 것이다. 마부 센은 그것이 걱정이었다. 이제까지 용병질을 하는 자유기사는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군에 들어가거나 영주의 밑으로 향하여 등용된다.
그 정도 실력과 인연도 없다면 상인과 결탁한다. 하지만 결코 용병들과 섞어지내지 않는다.
명예를 중시하고, 귀족 사회로의 출세를 원하는 자유 기사가 용병질을 한다?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솜털도 빠지지 못한 애송이가 생각할만한 짓이었다. 그리고 아무도 하지 않는 짓에는 언제나 파리가 꼬이기 마련이다.
그 파리들을 어린 드낙이 쳐낼 수 있을 것이라고 보지 않았다. 그러므로 아크온은 드낙에게 도움을 받으면서도 그에게 크게 베풀지 않고 〈방침〉대로 행했다. 어차피 고꾸라질 인물이기 때문이다.
딱 적정선으로 관계를 유지시켰다. 〈변종 키메라〉를 죽인 것이 드낙에게 고작 은화 5닢만 쥐어진 것은 괜찮았지만 다른 무언가를 주지 않았다는 것은 아크온이 드낙과의 관계를 진전시킬 생각이 없음을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썩은 냄새가 풍기는 길이라도 목적지는 있는 법이지.’
그것을 경계해야 했다. 그렇기에 드낙이 출셋길로 잡은 용병질에 돈으로 수작질을 건 것이다. 가벼운 것이지만 깊게 생각하면 결코 가볍지 않은 일이었다. 드낙이 못 알아차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드낙은 의뢰가 끝나고 아크온이 뭔가를 더 줄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고, 관계를 맺는 것이 중요하다고 여기고 있었다. 5만 원짜리 샘플을 계속해서 손해를 보면서도 이곳저곳에 무료로 주는 사업가와 같았다.
“후.”
마부 센은 한숨지으며 눈두덩을 손으로 누르다가 몸을 일으켰다. 아크온이 어지럽힌 마차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물약이 든 목함이 몇 개나 열어져 있었다. 몽펠리에 가문의 가신(家臣). 〈스펙트럼 연금술사 가문〉의 회복물약인 〈물결 회복물약〉이 눈에 들어왔다.
‘애지중지해야 할 물약을···’
연금술사는 어디든지 있다. 하지만 진짜 실력 있는 연금술사는 귀족가문이 가신으로 두고 있었다. 가문에 소속되지 않은 연금술사는 실력이 형편없었다. 시중에 팔리는 물약을 드낙이 개무시하고 있는 이유였다.
또한 그런 물약은 〈유리병〉에도 들어있지 않았다. 차라리 약초를 다진 것을 가죽 주머니에 들고, 종류별로 가루약을 만드는 것이 비상약으로서 더 좋았다. 그 정도로 형편없는 것이 소속되지 않은 연금술사였다.
*
“어흐!”
도렌이 자다 말고 소리를 내며 펄쩍 뛰었다. 위에 단단히 돌들을 놓고, 앞에는 흙을 파 물길을 만들었는데, 물이 새서 도렌의 머리를 흠뻑 적셨기 때문이다. 벌떡 일어나자 앉아서 잠을 자고 있던 다른 두 사람도 눈을 떴다.
“무슨 일이야?”
“물길이 무너져서 물이 흐릅니다.”
드낙은 넝쿨과 나뭇가지로 만든 입구를 손으로 들어 올렸다. 귀를 때리는 빗소리가 선명하게 들어오며 냉기가 안으로 들어왔다.
‘새벽도 오지 않았네.’
밖은 어두컴컴했다. 일어나기에는 이른 시간이었지만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었다.
몸 상태는 나쁘지 않았다. 달군 돌에서는 계속해서 지금도 열기가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드낙이 몸을 일으키자 다른 이들도 서둘러 기름먹인 로브를 덮어쓰고, 몸을 일으켰다. 밖으로 나오자 로브를 비가 두들기며 귀를 소리로 때렸다.
‘설마 수련을 하려는 건 아니시겠지.’
도렌이 멍청한 생각을 하며 야영지를 만들고, 시간이 남아 캔 뿌리작물을 화덕에 올렸다. 숯불이 되고, 불씨가 남은 곳에 전날 모아두었던 장작을 넣었다. 매캐한 연기가 습기 때문에 타올랐지만 입구를 벗겼기에 그곳으로 검은 연기가 올라갔다.
드낙은 늑대들의 상태를 살폈다. 모두 느긋하게 널브러져 있었다. 달군 돌이 아직도 땅에서 열기를 발하고 있었다. 도노의 머리를 쓰다듬은 드낙이 되돌아왔다.
척. 슥슥···
빗물을 받아놓은 냄비를 끓이고, 곡물가루와 야채 말린 것이 섞여진 것을 넣어 수프를 만들었다. 다른 곳에서는 마실 물로 만들기 위해 끓였다.
뜨끈한 것을 몸 안에 넣는 것이 중요했다.
아크온은 인기척에 일어나 추적 용병단이 있는 곳으로 왔다.
탁탁탁!
겉이 바짝 탄 감자와 고구마의 중간 정도 되는 것을 건네주자 아크온이 받아들였다. 그리고 다른 이들이 먹는 것을 보고, 따라 했다. 검은 부분이 묻지 않게 두 번 생각하고 움직이는 모습에 드낙이 큭큭 거리며 웃었다.
“무엇이 웃긴가?”
“신중하시길래··· 그만. 죄송합니다.”
“괜찮네.”
식사가 끝나자 도렌과 이스핀은 쓸만한 목탄을 챙겼다. 다음에 장작으로 써야 했다. 제법 양이 되었다.
“먹어라.”
뒤이어서 늑대들의 식사가 이루어지고, 드낙이 정성껏 후후 불어서 따끈따끈한 정도로 만든 물이 냄비에 담겨 늑대들에게 제공되었다.
“자, 가만히 있어.”
그러고 난 뒤에는 기름먹인 천을 이용해서 늑대들에게 옷처럼 입히는 일이 이어졌다. 늑대들은 드낙의 말을 잘 알아들었다. 늑대들에게 우비를 입히는 이유는 털을 가지고 있지만 그대로 그 털이 쫄딱 젖을 정도로 비를 맞으면 컨디션이 무너지는 것은 똑같았다.
“이제야 짐이 좀 가벼워지겠네.”
이스핀이 가장 후련해했다. 덩치가 크고, 힘이 좋은 이스핀이 늑대들의 우비 절반을 짊어졌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절반은 드낙이 짊어졌었다.
꼼꼼하게 모자까지 씌우고 나서야 드낙이 만족한 듯 무릎을 펴며 일어났다. 상체는 굽혀야 했지만 모든 준비를 마칠 수 있었다. 모두가 모인 상태에서 통보에 가까운 이야기가 이어졌다.
“지금 놈을 추적해야겠지?”
아크온의 말에 드낙이 냉큼 대답했다.
“비가 내릴 때 계속 가야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습니다.”
“큰 상처를 입어도 대량의 피를 쏟아내면서 폭발적으로 상처를 회복하는 것이 놈의 능력이다. 몇 번 그런 놈들을 마주친 적이 있지. 귀찮은 능력이라 이번 기회를 잘 살려야 하네.”
아크온은 기사로 활동하며 많은 야수를 처리했었다. 대부분이 용병이 덫으로 잡지 못하게 되면서 인간을 먹으며 〈일백야수〉로 변이된 야수들이었다. 〈일백야수〉가 되면서 얻는 특성과 능력들을 수없이도 봐왔다.
“까다로운 능력이지. 큰 상처를 입으면 도망친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고. 상처를 단번에 회복시키지만 피를 많이 소비하는 것이 놈이다.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니, 그리 멀리 가지 못한 채 휴식하고 있을 것이다.”
기사의 말을 들었지만 이미 제법 깊게 들어온 상태였다.
“시야가 제한되었는데 동굴을 지나치면 더 위험하지 않습니까?”
이스핀이 반대했다. 그렇게 강력하게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 우려를 말한 것이었다.
“비가 그치면 놈의 체력은 완전히 회복될 거다. 이스핀. 지금은 움직여야 한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꼼꼼하게 훑으며 진행해야 해.”
드낙이 그를 보며 쏘아붙였다. 민감한 반응에 아크온의 입에 미소가 걸렸다.
“방향은 일직선으로 쭉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런 비에서 움직일 몬스터는 없을 겁니다.”
그 뒤로도 드낙은 희망적인 의견을 내비쳤다. 그는 그렇게 말해야 할 수밖에 없었다. 〈일백야수〉를 아크온보다 더 절박하게 잡아죽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빗속에서의 추적은 그렇게 큰 불만 없이 시작되었다.
쏴아아!
가시거리는 50보. 드낙은 30보 간격으로 일행을 세우고, 늑대들을 배치했다. 인간은 안쪽, 늑대들은 바깥쪽이었다. 갈색 도노는 선행해서 30걸음 먼저 앞으로 나서야 했다.
체계화된 모습에 아크온은 속으로 감탄하고, 또 감탄했다.
그들은 끝없이 걸었다. 드낙은 동굴보다는 곰의 흔적을 더듬었다. 발자국이 워낙 깊어서 물이 고여있었는데, 이제는 그것만이 유일한 흔적이었다. 물웅덩이를 살짝 손으로 촥촥 걷어내어서 발자국을 확인하는 작업도 이어져야 했다.
그때는 모두 멈추어서야 했다. 아크온도 예외는 아니었다.
바람이 거세게 불었기에 수풀과 나뭇잎이 보여주는 흔적은 모두 사라졌기 때문에 발자국에 온신경을 집중해야 했다.
전날 그렇게 오랫동안 이동했기에 2시간 뒤, 드낙은 놈의 발자국이 방향을 확 튼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동굴을 발견했다.’
가시거리가 굵은 빗줄기 때문에 제한되었기에 그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비가 내리지 않았을 때, 이 자리에 있었던 〈붉은털의 곰〉은 동굴을 발견했다.
“놈이 동굴을 발견했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서! 이대로 가시겠습니까? 아니면 휴식하고 가시겠습니까!”
드낙이 소리쳤다. 가까이 있었음에도 목소리는 작게 들려왔다. 드낙이 말하는 곳보다 가까운 곳에서 비가 소리를 내며 귀를 두들겨패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 오랜 시간을 냉기에 노출되어 걸었다! 곧바로 동굴 입구로 향해야 한다!”
아크온의 외침에 드낙이 고개를 크게 끄덕여 보이며 흔적을 자세히 더듬는다고 모여있는 다른 이들에게도 정보를 전달했다. 이스핀과 도렌의 표정이 굳어진 채 무겁게 끄덕여졌다.
동굴은 늑대들이 발견했다. 불과 100걸음 밖에 있었음에도 보지 못하고 지나칠 뻔했다.
“후우! 정말 미친 듯이 내리는군요.”
동굴의 입구는 성인 남자 세 명이 적당히 서도 될 정도로 넓었다. 높이 또한 높았다. 높은 높이 때문인지 깊이가 깊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박쥐 똥내가 끔찍하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드낙은 능숙하게 천을 투구에 끼우면서 냄새를 덜 맡는 작업을 했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우비를 벗고, 빗물을 털어 곱게 접어서 가죽 배낭에 집어넣었다.
"아으, 차가워라."
도렌은 우비를 잘못 써서 등이 흠뻑 젖어있었다.
“대체 어떻게 하면 우비를 입고도 이렇게 젖을 수 있는 거냐?”
이스핀이 황당해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멍청해보였다. 도저히, 상상이 가지 않았다. 망치질도 다섯번만에 적당한 요령을 터득해내는 이스핀에게 도렌은 뭔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