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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12화 (112/1,239)

0112 <-- 붉은털 사냥 -->

〈검은 문〉은 살해를 하는 대상의 능력을 받아먹는 힘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시체, 죽음과 연관되어 있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이 해골만 남은 상태에서 드낙과 인연을 맺게 된 이유도, 그 찌꺼기를 오롯이 드낙이 받아먹은 것도 〈검은 꿈〉과 연관이 되어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부탁을 들어줘야 했지만. 중요한 것은 1번에 1개의 능력을 받아먹는 보통의 검은문과는 다르게 그의 〈찌꺼기〉는 다양한 능력을 한 번에 얻는 게 가능했다. 이것은 포낙서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1제자 포낙서스〉. 〈변종 키메라〉가 된 그는 원한과 증오로 검은 꿈으로 들어올 수 있었고, 드낙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또한 세파리아스처럼 퀘스트를 내어주며 드낙에게 자신의 찌꺼기를 내어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세파리아스와는 다르게 매번 검은 꿈을 꿀 때마다 흑마법을 가르쳐주기로 약속했다. 〈기사〉 〈귀족〉의 특징을 지닌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기세에 눌려서 자신에게 불리한 약속을 했기 때문에 포낙서스는 〈을〉의 입장이었다.

〈아크온 몽펠리에(Arcon Montpellier)〉는 아침 식사를 위해서 밝혀진 모닥불을 보며 통나무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추적 용병단 개개인에게 은화 5닢을 주기로 약속했다. 이제는 그다음을 말하려고 하고 있었다.

타닥.

모닥불이 타는 소리를 냈고, 아크온 경이 품에서 포션을 꺼냈다. 다양한 색상의 층으로 이루어진 액체였다. 굉장히 껄그러운 인공적인 모습에 드낙이 움찔했다. 처음 보는 것이었지만 그것이 무엇이냐고 묻지는 않았다.

‘횃불 성채에서도 보지 못한 건데. 역시 귀족이 독점하고 있었군.’

척 보면 척이었다. 누가 봐도 판타지 세상에 유리병에 든 액체는 곧 포션을 의미했다. 내성에서 살아가는 〈연금술사〉의 비약(祕藥)!

“이것으로 이스핀 용병단원을 치료할 수 있다. 하지만 그전에···”

아크온은 말끝을 흐리면서 바닥에 포션을 놓았다. 유리병이 반짝거렸다. 〈남부 왕국〉에서는 생산과 제작 그리고 그 출처가 명시된 유리만 사용할 수 있기에 유리병의 바닥에는 연도와 섬세하게 음각(陰刻)된 왕국의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그게 없는 유리가 있다면 극형에 처해질 수 있었다. 왕족들이 귀족들이 쥐고 있는 금권을 뜯어먹기 위한 수단이기도 했다.

“〈일백야수〉를 추적하는 것이 가능한 일인지 물어보고 싶다.”

“가능합니다.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드낙은 단번에 대답했다. 신뢰성을 주기 위함이었다.

‘이스핀의 상태가 점점 악화되고 있다.’

땀을 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고열에 시달리고 있는 이스핀은 때때로 정신을 잃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른팔의 부기는 가라앉고 있었지만 상태가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기사가 있을 때, 야수 놈도 때려잡아야 하고.’

또한 하루가 지난 지금 〈붉은털의 곰〉 그것도 〈일백야수〉를 처리하는 것은 드낙에게 반드시 해야 할 일이나 다름없었다. 용병단과 함께 잡을 수 있었지만, 뒤숭숭한 상황에서 기사와 함께 움직이는 것이 좋았다.

적어도 〈변종 키메라〉는 드낙이 죽이기 힘들었다. 그 거체(巨體)를 잠시 동안 무력화 가능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었다.

‘역시 그렇게 조급하게 나올 줄 알았다.’

매우 열정적인 태도에 아크온은 속으로 웃음 지었다. 그가 드낙을 믿고 있는 이유였다. 행동에서 드러나는 열정은 귀족과 줄을 서보겠다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았다.

“근거를 들어보고 싶군.”

갑처럼 행동하는 아크온의 모습은 여유로웠다. 한두 번 그런 위치에 있었던 것이 아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언제나 위에서 군림했다. 공석이 아니라면 계급이 차이가 나도 크게 예를 올리지 않는 것이 귀족 사회였다.

“흔적을 남기는 야수를 못 찾으면 용병단 이름을 바꿔야죠.”

드낙이 대범하게 말했다. 그 말에 아크온이 하늘을 가리켰다. 전날 밤부터 먹구름으로 가득했는데, 이제는 제법 강풍도 불고 있었고, 잔뜩 힘을 참은 먹구름이 굵직한 빗물로 휘몰아칠 것이다.

“비가 내리면 흔적도 사라져버리지 않는가.”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다.

‘제법인데. 추적에 대한 기본을 알고 있네.’

귀족이 그런 종류의 지식도 알고 있는 것이 신기했다. 애초에 귀족에 대해서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에 하나하나가 신선했다. 그나마 정보가 풀리는 곳은 〈피가득 술집〉이었는데 용병놈들이 귀족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리가 없었다.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와는 다르게 정보가 크게 없는 것이 이 세상이었다.

“비가 그쳐도 바람만 잘 받으면 추적할 수 있습니다. 늑대의 후각을 빌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피냄새에만 한정한다면 최소 2천 걸음까지 멀리 있어도 쫓을 수 있습니다.”

후각이 좋은 늑대는 〈붉은털의 곰〉이 털에 잔뜩 묻혀 스며들은 피냄새를 쫓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일백야수〉는 곰입니다. 많이 먹은 상태이기 때문에, 비가 내린다면 자연동굴에 들어갔을 가능성이 큽니다. 비가 내려도 동굴만 찾아다니면 놈을 발견할 수 있을 겁니다.”

‘흠.’

아크온이 드낙의 말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다. 이곳에 묶여있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서 〈추적 용병단〉에게 포션을 베푸는 것은 좋은 생각인 것처럼 여겨졌다. 인간은 3명뿐이지만, 늑대가 5마리나 있었다.

“비가 내렸을 때 찾는다면, 퇴로 없는 동굴에서 놈을 마주할 수 있을 겁니다.”

가장 좋은 시나리오를 말했다.

“못 찾는다면?”

“못해도 10일 내에는 찾을 수 있습니다.”

최악의 시나리오도 나쁘지 않았다.

아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포션은 본가에 돌아가면 언제든지 얻을 수 있는 것이었다. 아크온의 포션을 〈마부 센〉이 주워들어 이스핀에게 다가갔다.

“붕대의 질이 좋군요. 신전에서 생산한 붕대 같은데···”

집사로서의 교육을 받은 센이었다. 단번에 붕대의 출처를 찾아냈다.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다 아는 방법이 있죠.”

센은 그 구별법을 말해주지는 않았다. 붕대를 풀자 전날보다 상태가 안 좋은 이스핀의 팔이 모습을 드러냈다. 온 곳이 피멍이었다.

“축복을 조금만 받았나 보군요. 일일 축복도 아닌 것 같은데···”

“예. 맞습니다.”

“다음부터는 뭐가 어찌 되었든 1일 이상 사제가 축복을 내린 것을 구매하십시오. 그 밑은 효력이 그리 대단하지 않습니다.”

치료하기 전에 〈마부 센〉은 마차에서 붕대를 가져왔다. 〈칠일축전(七日祝典) 붕대〉였다. 보통 7일 동안 기도해서 얻어지는 붕대가 아니었다. 조직적으로 의식을 행하며 행사까지 곁들어서 다수의 신관들의 힘이 깃들어있었다.

영지마다 아주 성대하게 열리는 편이고, 대개 1년제 혹은 3년제로 이루어지는 칠일축전이 귀족의 금력으로 시행되는데, 그 행사에서 만들어지는 붕대였다.

신전이 이를 허락하는 이유는 그 행사를 통해서 막대한 식량과 화폐가 풀리기 때문이었다.

손은 드낙이 잡아올렸고, 팔뚝은 도렌이 살포시 손으로 받쳤다. 센은 포션을 살살살 흘리면서 손으로 팔에 바르기 시작했다. 수초만에 스며들어가며 눈에 띄게 피멍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한 번 하고, 두 번 하고, 세 번을 팔의 위아래로 옮겨 다니며 팔 전체에 묻힌 포션은 절반이 남았다. 이스핀은 편안함을 느꼈다. 나머지 절반은 마셔야 했다.

“소모된 활력을 되찾아줄 겁니다.”

이스핀은 단번에 포션을 마셨다. 아무 맛도 나지 않았다. 향은 조금 독했다.

“끅.”

트림이 나왔다. 팔을 만지작거리던 〈마부 센〉이 웃었다. 이스핀은 일명 포션빨을 잘 받는 신체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마다 주량이 다르듯이 인간의 체질은 개개인마다 크게 달랐다.

“붕대까지 감을 정도는 아니군요. 포션 한 병에 치료가 되다니. 생각보다 그리 큰 상처는 아니었습니다.”

〈칠일축전 붕대〉는 다시 마차 안으로 옮겨졌다. 그 붕대가 그 붕대처럼 여겨지지 않았기에 드낙은 아쉬워했지만 달라고는 못했다.

마차와 짐수레는 길을 되돌아가서 적당한 공터에 비켜섰다. 바로 앞에 말들의 시체가 있었기 때문이다. 부패가 되어서 독수리만 찾아오지만 그래도 굶주린 들짐승들이 나타나면 귀찮았다.

“읏차.”

짐수레에는 기름먹인 천이 쳐졌고, 추적에 대한 준비를 마친 이들은 곧바로 추적에 나섰다. 강도들을 추적하며 추적에 대한 기본은 물론이고 숙달된 것이 〈추적 용병단〉이었다. 따로 명령을 하면서 일일이 챙겨줄 필요가 없었다.

“함께하지.”

여기서 아크온은 단독 행동을 하지 않았다.

드낙은 추적 용병단에게 명령을 내렸다. 듣는 이는 2명뿐이었지만 그래도 좀 폼이 났다.

“출발한다. 곰의 발자국은 〈키메라 동굴〉에서부터 시작되니까, 거기로 향한 다음에 방향을 가늠한다.”

‘저런 복장으로 숲을 거칠게 다닐 수 있을까.’

도렌은 의문스러워했지만 30분 뒤에 그 생각이 말끔하게 사라짐을 느꼈다. 비가 오기 전에 뽕을 다 뽑으려는 드낙 때문에 이스핀과 도렌이 숨을 헐떡이며 바닥만 보고 갈 때, 아크온은 거침없이 주변을 살피며 상체를 꼿꼿이 세우며 따라가고 있었다.

반대로 아크온은 드낙을 보며 크게 감탄하고 있었다.

‘보통 솜씨가 아니군.’

추적을 늑대와 협업하는 드낙은 다른 추적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속도를 보여주었다. 무엇보다도 체중이 보통 곰보다 확연하게 차이가 나는 〈붉은털의 곰〉은 추적하기 너무 편할 지경이었다.

드낙은 생각보다 일이 쉬움을 느꼈다.

‘일이 쉽게 풀리는데? 이놈이 주는 〈검은 문〉이 제법 괜찮다면, 야수 사냥을 업으로 삼아도 되겠어.’

그렇게 생각하기도 잠시, 1시간을 빠른 걸음으로 숲길을 이동한 드낙은 결국 휴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핀과 도렌이 따라와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결코 그들이 나약해서가 아니었다.

드낙과 아크온의 체력이 인간이라고 생각하기 힘들 지경으로 단련되어있을 뿐이었다.

“체력이 정말 좋군.”

"어렸을 때부터 단련을 했습니다.”

아크온은 투구를 벗지 않은 채로 나무 등치에 등을 기대며 앉았다. 비는 금방 내릴 것처럼 보여도 내릴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닥은 습기로 축축했지만 거침없이 엉덩이에 흙을 묻혔다. 다른 이들도 비슷했다.

물을 한 모금 머금은 채로 드낙은 흐르는 땀을 손에 물을 묻혀서 닦았다.

20분을 휴식했다. 휴식치고는 길었는데, 숲길을 걷기 때문에 발과 다리에 부담이 크기 때문이었다. 평지와는 휴식 시간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출발.”

5시간을 그렇게 휴식을 병행하며 이동했다. 〈붉은털의 곰〉은 정말 엄청난 거리를 이동했다. 점심마저 대충 휴식시간에 먹었는데, 놈이 있을만한 자연동굴도 발견하지 못했다.

“무식한 놈.”

차갑게 식은 놈의 대변을 보며 드낙이 한숨을 내쉬었다. 대량의 변 안쪽까지 식어있었기에 놈이 얼마나 멀리 갔는지 알 수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일백야수〉가 겁을 먹은 듯했다. 어디까지 도망쳤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곰의 지구력은 이 정도로 좋지 않을 텐데? 내가 아는 지식이 잘못되었나.’

자동차처럼 야지를 달리는 것은 알고 있어도 지구력까지 높을 줄은 몰랐다.

“여기서 하루를 지내야겠습니다. 비가 내릴 것을 생각하면 일찍 준비해야 합니다.”

드낙의 의견을 아크온이 받아들였다.

용병들은 서둘러 장작을 모았다. 야영을 할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식료품은 넉넉히 4일 치를 가지고 있었다.

제법 굵은 나뭇가지를 활처럼 휘어서 묶고, 나뭇잎이 있는 나뭇가지를 여러 번 얹었다. 누워서 잘 수는 없지만, 비는 피할 수 있었다. 주변에는 흙을 파 놓아서 빗물이 침투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도렌은 돌을 가져와서 박아 물의 흐름을 막는데 집중했다.

아크온만의 은신처를 만들고, 추적용병단과 늑대까지 들어갈 곳을 곳곳에 만들었다. 비를 쫄딱 맞는 것은 피해야 했다. 밤새도록 비를 맞는다면 감기에 걸릴 수밖에 없었다.

모닥불을 지펴야 했지만 마른 장작을 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만물 잡화점〉의 도움이 있었다.

“마른 동물변을 돈으로 팔길래 그렇게 화를 냈는데, 이렇게 유용하게 쓰네.”

첫 불을 내는데 바짝 마른 짐승의 변만큼 좋은 것이 없었다. 마른 변은 냄새도 잘 나지 않았다.

딱! 딱!

불똥이 튀자 단번에 드낙이 고개를 숙여서 후후 불며 마른 변을 모았다. 연기가 자욱하게 피어오르자 그나마 습기가 적도록 이스핀이 손이 저릴 정도로 비벼댄 낙엽을 놓았다. 모닥불 하나가 만들어지자 아크온의 모닥불도 불이 지펴졌다.

모닥불에는 서둘러 돌들이 가득 올라갔다. 달구어진 돌은 야영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열기가 뜨끈하게 새벽까지 올라오기 때문이다.

“제법 깊은 숲에 왔는데, 까마귀만으로 괜찮겠는가?”

아크온은 카이야에 대한 불신을 드러냈다. 매번 있는 일이었지만 잘 설명해주었다. 한두 번 불침번을 선 카이야가 아니었다.

“낮과 밤이 바뀐지 오래입니다. 몇 번이나 서주었으니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동물 조련에 대단한 재능이 있다는 것을 내 믿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걱정스러운 것은 어쩔 수 없군.”

그렇게 말해도 강제로 불침번을 세울 수 없었다. 귀족이라고 해서 평민을 강제적으로 노역시키는 것은 보기 힘든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예 할 수 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자유 기사〉인 드낙의 앞에서 보여줄 만한 것이 아니었다.

또한 드낙이 그렇게 말하니 아크온은 이내 까마귀를 믿어주었다.

밤이 깊어갔다.

투둑. 후두둑.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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