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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11화 (111/1,239)

0111 <-- 붉은털 사냥 -->

밤이 지나갔다. 제법 피곤이 누적되어있는데도 아크온은 습관처럼 새벽에 일찍 일어나 망치를 휘두르며 땀을 뺐다.

드낙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제까지 세파리아스와 포낙서스의 〈찌꺼기〉를 받아들였고, 신체능력이 상승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물리법칙을 벗어난 〈초월적인 종류〉의 신체능력 상승이었다. 피곤함이 남들보다 덜했다. 도렌도 마찬가지로 새벽 훈련에 참가했다. 그는 꾸준함이 있었다.

아크온과 추적 용병단은 서로 함께 훈련하지 않았고, 아침해가 떠올랐다. 태양의 모습은 볼 수 없었지만, 빛으로 주변이 가득 밝아왔다.

“대충 요리해서 먹자.”

“옙.”

이스핀이 아팠기에 2명이서 3명분의 식사를 만들어야 했다. 자연스럽게 용병들의 식사는 늦어졌다.

“후! 후!”

도렌은 정신없이 장작을 새로 대어 불씨를 키우고 있었고, 드낙은 거침없이 수프를 만들 준비를 했다.

반면 아크온과 마부 센의 아침 식사는 그들보다 한 발 빨랐다. 마차 내부에 있는 마법을 통해서 조리되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실력이 좋아.”

“과찬이십니다.”

양고기 스테이크의 향을 맡으며 아크온은 〈마부 센〉이자 자신의 집사 노릇을 태어나면서부터 해온 그와 함께 식사를 했다. 물론 공석에서는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이 문제로 1년을 다투었던 적이 있었는데, 기사의 우직함을 어찌 이기겠는가? 마부 센의 패배였다.

집사지만 그가 〈마부 센〉이라 불리는 이유는 몽펠리에 가문에서 가신인 그 집안이 대대로 말을 키우고 관리했기 때문이었다. 이 광경은 특히나 특이했고, 이색적이었다.

“용병들이 생각보다 제법이지 않습니까? 도망자가 있었지만 저는 남아서 싸운 용병들을 크게 쳐주고 싶습니다. 사후 비용이 들지 않는 정규병이나 다름없습니다.”

마부 센의 말에 아크온이 미소 지었다.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용병들이 기특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행동의 바탕에는 〈자유 기사〉로 확신되는 드낙이 있었다.

“윗물이 맑으면 아랫물도 그럭저럭 맑은 법이지. 용병단장이 과거 기사 가문 중 어디 가문인지 궁금해질 지경이야. 그 열악한 환경 속에서 제대로 키워냈어.”

기사의 자존심 때문인지 드낙의 무재가 뛰어나다는 소리는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아크온은 드낙이 비전을 사용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철석같이 그가 〈자유 기사〉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가문은 없지만 기사 출신인 자들은 곳곳에서 볼 수 있었다. 그리 드문 것은 아니었다.

“붉은털의 곰을 놓치셨다고 들었습니다.”

마부 센은 주제를 돌렸다. 그 말에 아크온은 고기를 입에 넣으며 고개만 끄덕였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이었다.

호되게 불맛을 본 일백야수는 추적하기 힘들었다. 다시 나타나는 것을 기다리려면 못해도 1달은 이 주변에서 지내야 할지도 몰랐다. 입맛이 쓰기에 스테이크보다는 와인에 손이 갔다.

“야수는 어차피 야수. 한 달 내에 다시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

자연히 시간이 해결해줄 것이라 말하는 아크온에게 마부 센은 그와는 조금 다른 의견을 내비쳤다.

“그들을 좀 더 써보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아크온은 눈썹을 찡그렸다. 썩 좋은 방안은 아니었다.

“3명 중 한 명이 제법 크게 다쳤는데, 의뢰 수행이 불가능할 것인데··· 포션을 그들에게 베풀라는 소리인가?”

연금술사의 비약. 포션이 거론되었다. 용병에게 베풀기에는 가치가 높은 물건이었다.

“한 달 동안 이곳에 묶여있는 것보다는 1주일 만에 야수를 토벌하는 것이 더 이롭지 않겠습니까? 결국에 저희들이 생각해야 할 것은 공적입니다. 경쟁자는 많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십시오.”

“널리고 널린 것이 공적인데···”

그렇게 말하면서 아크온은 와인을 비웠다. 귀족에게 쥐어지는 특권 중에 하나가 바로 포션이었다. 연금술로 만들어내는 비약인 포션은 신전이 지닌 〈신성력(神聖力)〉과 견줄만했다. 귀족이 지닌 강력한 힘 중 하나였다.

“믿을만한 전력입니다. 북부 지방에서의 일을 마무리할 때까지 그냥 데리고 다니는 것이 어떻습니까?”

거듭되는 말에 아크온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변종 키메라가 자신을 노렸다는 것을 안 이상, 용병단을 돌려보내는 것은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메시지 마법〉을 통한 보고는 언제 하실 생각이십니까? 흑마법사에 대한 보고는 매우 중요하고 가치있게 여겨집니다. 단번에 눈에 뜨일 기회입니다.”

“일백야수까지 잡아낸 다음에 한꺼번에 하겠다. 공적에 눈이 멀어서 꼬리에 불붙은 황소처럼 보이긴 싫다.”

〈마부 센〉은 자존심을 부리는 아크온에게 조언을 하였다. 매우 조심스러웠다.

“너무 늦는 것 아닙니까? 외람되지만, 전신갑주에 내장된 〈기억보석(記憶寶石)〉을 훑었는데 그 끔찍함이 이루 말할 수 없고, 정황상 흑마법사는 기사를 죽이려고 함정을 파고 기다렸습니다. 보고는 빠를수록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아크온이 코웃음쳤다.

“실패했다는 것이 더 중요하지. 그 외의 여력이 이곳에 남아있다면 어젯밤에 습격했을 것이고.”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자꾸 모든 위험이 사라졌다는 식으로 말하는 아크온을 보며 마부 센이 거듭 말하였다.

“포션은 언제든지 다시 받으면 그만이고, 은화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들에게 베풀어서 마음을 얻고, 끝까지 안전하게 걸어가시지요.”

“알았다. 알았어. 걱정이 정말 끝도 없군.”

진절머리가 난다는 듯이 말하면서도 아크온은 마부 센의 말을 듣기로 했다. 그게 가장 나은 방법이기도 하였다.

거칠어 보이긴 해도 그는 귀족이었다. 많은 것을 배웠기에 급한 상황이 아니라면 본성보다는 이성으로 해결해 나가는 것이 보통이었다. 다른 사람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줄 정도의 그릇은 되었다.

그릇이 좁은 귀족도 그릇이 넓어지는 것이 교육이라는 것이었다. 그 그릇은 결코 넓어지지 않지만 적어도 보는 사람들은 그릇이 넓다고 여겨지게 만드는 것이 〈귀족의 교육〉이었다.

흥분하지 않은 상태에서의 판단은 좋을 수밖에 없었다. 물론 또 하나 믿음직한 이유가 있었다.

‘드낙의 적극성은 〈자유 기사〉들이 자주 보이는 행동이다. 그는 믿음직해.’

아크온에게 있어서 그를 믿는 것은 쉬운 일이었다. 〈검은 문〉을 획득하기 위한 드낙의 효율적인 저돌성은 자유기사들이 명예욕에 불타는 것과 똑같이 보였다. 그 급해 보이는 마음은 이용하기 좋았다.

“식사를 마치면 알려달라고 전하게. 그때 모닥불에서 이야기를 나눠보지.”

마부 센은 밖으로 나가 이제 첫 술을 뜬 드낙에게 말했다.

“식사를 마치고,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하실 말씀이 있으시다고 합니다.”

“예. 알겠습니다.”

〈마부 센〉은 또한 전날 있었던 도망친 용병에 대해서 말해주었다.

“화살을 제법 많이 챙겨가더군요.”

“예? 다른 건 또 뭐 가져가지 않았습니까?”

드낙이 깜짝 놀랐다. 짐수레는 경황이 없어서 점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화살만으로도 충분했는지, 식료품과 냄비 몇 개를 들고 갔습니다.”

솔직하게 모든 것을 이야기해주었다. 드낙은 감사를 표했고, 마부 센이 다시 마차로 돌아가자 이를 갈았다.

‘도둑이야, 뭐야? 이거 정말 미친 새끼 아냐?’

아무리 중세가 마을도 강도로 변할 때가 있다는 것을 들어본 기억이 있었지만 해도 너무했다. 인간 불신에 걸릴 정도였다. 법의 테두리 밖에 있으니 개망나니나 다름없었다. 동유럽의 소매치기를 보는 기분이었다.

“지금이라도 추격한다면 잡을 수는 있을 겁니다.”

이스핀이 당장이라도 뛰어갈 것처럼 말했지만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다. 콕 찔러도 끙 소리를 내며 쓰러질 놈이 입으로는 잘도 그런 소리를 내뱉었다.

‘이스핀을 놔두고 가면 가능하지만···’

당연히 그렇게 할 정도로 상황이 돌아가지 않았다. 아직 일이 남았기 때문이다.

‘일백야수가 남아있는데, 그런 잔챙이 하나 잡는데 시간을 허비할 수는 없지.’

드낙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그런 놈보다 더욱 중요한 것이 남아있었다. 아크온 경이 할 말이 있다고 한 것을 보니 분명 〈붉은털의 곰〉에 대한 것일터였다. 김치국물을 마셔도 괜찮았다.

식사를 하며 그의 눈은 이스핀과 도렌으로 향했다.

‘베리븐의 죽음. 젠의 도망. 그래도 이들은 남았다.’

애송이 용병이라서 되려 용감한 부분이 있었다. 〈피가득 술집〉에서 용병들이 무슨 입을 털었는지 잘 알 수 있었다. 온갖 허세를 가득 잡아서 애들에게 말했겠지. 그중에 진실도 뒤섞여있어서 더욱 속이기 쉬웠을 것이다.

망가진 정보 탓이라고 해도 드낙은 저 두 사람이 나름대로의 각오와 다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도렌은 의외인데. 이스핀이 행동력 있게 나서서 의기투합이라도 했나 본데···’

드낙은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이번에 확실히 알았다.

‘용병들의 생리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놈들은 〈검은 문〉을 획득하는데 결코 도움을 줄 놈들이 아니야.’

애송이 용병을 키우거나, 노예를 구매하는 방법이 더 알맞았다. 또한 자신의 행동에 〈방향성〉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이번에 확인할 수 있었다.

‘돈에 눈이 멀었다. 당초 계획은 〈검은 문〉의 개방이었지 〈돈〉이 아니었다.’

돈에 눈이 먼 용병들을 대량으로 꾸려서 일을 진행하는 것이 자신의 성장에 더 큰 도움을 주는 방법이었다. 호구니 뭐니해도 자신에게는 〈검은 문〉이 있었다.

독하게 말하면 용병들이 몇이나 죽어나가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문제가 있었는데, 〈입소문〉만큼 무서운 것이 없기 때문이다. 좀 더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언제까지 돈만 좇을 생각이냐.’

자신이 걸어가야 하는 길에 돈은 주(主)가 아니었다. 없어서는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량으로 필요하지 않았다.

‘마법 장비만 해도 그렇다.’

돈이 있어도 구매하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돈을 생각했다. 그 제한을 뚫기 위해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위험 속으로 뛰어들어야 했다. 정확히는 〈검은 문〉이 열어주는 길을 걸어야 했다. 보다 상세하게 눈에 보이는 길이었다. 〈힘〉!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간단한 길이었다.

“단장님. 식사 다 끝내셨으면 연락을 넣겠습니다.”

도렌의 말에 드낙이 고개를 들었다. 그리곤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자신의 수프는 바닥이 보이고 있었다.

도렌은 마차에 노크를 했다. 기다렸다는 듯이 마부가 문을 열었고, 아크온이 마차에서 내렸다.

거침없이 통나무에 앉았다. 투구는 언제나처럼 옆구리에 끼고 있었다.

“모두 수고했네. 의뢰 밖의 일이 벌어졌었고, 용병 베리···븐이 땅에 묻혔지. 들짐승같은 한 놈은 전우를 버리고 도망쳐버렸고. 하지만 결국에는 사악한 흑마법사가 만든 〈변종 키메라〉를 잡을 수 있었네.”

모두가 아크온의 말을 귀담아들었다.

“추가금은 은화 15닢으로 보았다. 물론 개인당 은화 5닢으로 총 15닢이네.”

큰 금액이었지만 탄성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어라?’

아크온이 의문을 가졌다. 은화 2닢만 줘도 탄성이 나오는데 5닢에 리액션 하나 없었다. 귀족의 돈씀씀이는 받는 사람에 따라서 달라지는데, 이번에 그것이 어긋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법 돈을 쥐어봤구나. 게실리안 지휘관이 아랫사람에게 돈을 많이 주지 않는다고 들었는데.’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아크온의 생각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었다. 아크온의 입이 열렸다.

‘아쉽지만 바로 다음으로 넘어가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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