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9 <-- 일백야수 토벌 -->
“크르!”
갈색 늑대 도노는 들짐승의 기민함으로 정확하게 내려쳐지는 촉수를 피하고, 그대로 위에 올라타 촉수를 물어뜯었다. 흥건하게 피가 흘러내렸고, 단번에 고갯짓을 하며 살점을 뜯어내며 바닥에 사뿐하게 착지했다.
다른 곳에 있는 늑대들도 마찬가지였다. 그저 내려쳐질 뿐인 촉수에 당하는 늑대는 없었다. 또한 늑대들보다 더욱 위협적인 드낙이 있었기에 늑대들의 피해는 없다시피했다.
‘경쾌하게!’
드낙은 늑대들의 움직임을 통해서 더욱 촉수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그 움직임은 비전, 〈스트룸 라우치(Sturm rausch, 폭풍 돌진)〉와 닮아있었다. 스피드를 제외한 모든 면에서 상대의 능력이 출중할 때 사용하는 비전이었다.
상대가 덩치가 크면 클수록 빛을 발하는 경쾌한 보법이었다. 체중의 움직임을 향하는 방향으로 두기 위해 상체를 비정상적으로 기울여야 한다는 점. 그리고 그 반동을 버틸 정도의 하체 단련이 되어있어야 했다.
두 개의 조건 모두 드낙에게는 식은 죽 먹기였다. 패배가 드리워진 상황에서 쓸 수 있는 비전인 스트룸 라우치의 경쾌한 발놀림을 오랫동안 연습한 드낙이었기에 늑대들처럼 경쾌하게 움직이는 것에 어려움이 없었고, 능숙했다.
“노오오오오오옴!!!!!”
〈변종 키메라 포낙서스〉의 얼굴이 달린 목이 발악을 했다. 하지만 그 목의 움직임이 기괴했는데, 중간 부분이 전투 망치의 비전에 가격을 당해서 피떡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ㅅ자로 꺾여있었는데 꺾여서 축 늘어진 부분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다 죽여버리겠다! 날 이렇게 만든 놈도! 날 죽이려고 하는 네놈들도! 모두 다 죽여버리겠다! 이 원한! 이 증오! 아아아아악!!!!”
얼굴이 흙에 닿기도 하면서 엉망이 된 상태로도 포낙서스의 입에서는 온갖 잡소리가 쏟아져 나왔다. 한 대를 맞으니 뚝뚝 끊겼던 말이 술술술 풀려나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드낙은 촉수를 끊어내는데 집중했다. 〈변종 키메라〉의 무서움은 재생력이었다. 그것을 자신과 늑대들이 붙들고 있어야지만 아크온이 제대로 몸체를 타격할 수 있었다.
“〈밴쉬 에로우(Banshee Arrow, 악령 화살)〉!”
아크온의 전투망치가 키메라의 몸통을 다섯 번, 똑같은 지점을 정확하게 가격하고 나서야 포낙서스가 피맺힌 외침을 토해냈다. 그의 머리에서 마력이 봇물처럼 흘러나왔고, 순식간에 검붉은 화염으로 타오르며 악령을 쏘아보냈다.
충격력이 상당하고, 공격력이 출중한 흑마법의 가장 기본적인 공격 마법이었다.
드낙은 이미 그 흉악함을 잘 알고 있었다. 그저 악마의 힘을 마력으로 풀어낸 것에 불과했지만, 그렇기에 더욱 강력한 공격력을 지닌 마법 탄알이었다.
“모두 피해! 물러나!”
드낙이 있던 곳을 스치고 지나가는 악령의 모습을 한 덩어리가 그대로 땅에 충격을 주며 흙을 가득 튀어 오르게 만들었다.
퍼버벅!
연달아서 타격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늑대들은 워낙 재빨랐지만 촉수와 악령의 화살까지 피하기에는 부족한 면이 있었다. 운이 나쁘게 촉수의 내려치기와 악령 화살을 동시에 마주하게 된 늑대 하나가 처참하게 화살에 파괴당했다.
육편이 터져나가듯이 갈비뼈가 뚫리고 내장이 가죽을 뚫고 터져나갔다. 끔찍한 광경이었다. 중무장을 하고 방패로 막아낸 이스핀조차 날려보낸 악령 화살이었다.
‘젠장!’
드낙이 그 모습에 눈을 돌렸다. 하지만 결코 그 죽음을 슬퍼하지 않았다. 그럴 여유도 없었다.
“〈요격 물결(Intercept Wave)〉!”
아크온 몽펠리에의 전신갑주의 등 부분에서 물줄기가 튀어나와서 사방으로 뻗어나가더니 악령 화살과 부딪치며 터져나갔다.
퍼버벅!
폭음과는 거리가 멀었지만 그래도 흉악한 충격음이 터져 나왔다. 드낙의 눈이 탐욕으로 물들었다.
‘엄청난 성능이다.’
전투기의 플레어나 다름없었다. 마법사와의 싸움에서 압도적인 우위를 순간적으로 낼 정도로 좋았다. 이래서 기사, 기사 거리는 듯했다.
“키키키키!!!!”
뿌득!
악령 화살을 마구잡이로 쏘아보내던 포낙서스의 눈깔이 까뒤집히며 으스스하게 웃었다. 그리고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리며 꺾인 뼈가 제자리로 돌아오며 다시금 땅에 닿아있던 얼굴이 위로 올라갔다.
“언제까지 싸울 수 있을까? 하찮은 인간놈들! 나는, 악마다!”
그 소리에 아크온은 전투망치를 어깨에 척 걸치며 숨을 고르며 도발했다.
“뭐가 악마냐! 네 몸을 봐라! 끔찍한 실험체로 전락해 〈변종 키메라〉가 된 너의 모습을 보라!”
“끔찍하다니! 이렇게 강력한 몸을 보고도 그런 소리를 하는가! 잘려도 다시 튀어나오는 내 팔과 다리를 보라! 천장을 가득 메우는 위풍당당한 악마의 날개를 보라!! 하, 하하! 하하하하하!!!!”
포낙서스가 말하는 팔다리는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흉측한 촉수였다. 또한 악마의 날개도 보이지 않았다.
‘환상을 보고 있는 건가?’
드낙은 포낙서스가 자신이 보고 있는 것과 전혀 다른 것을 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인식의 차이 때문에 촉수를 그저 내려치고만 있는 건지도 몰랐다.
“악마의 날개라니! 우습군! 너는 지금···”
최대한 느린 호흡을 하며 호흡을 진정시키는데 성공하며 몸의 완급을 누그러뜨려 피로감이 폭주하지 않도록 하려던 아크온이 옆으로 움직였다. 촉수가 바닥을 내려쳤다.
“후우!”
‘이대로는 힘들다.’
아크온은 혀를 찼다. 그와 키메라의 상성은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신체 재생력을 지닌 키메라는 타격력에 내성이 있다고 봐야 했다. 똑같은 곳을 가격했음에도 피부만 떡이 되었을 뿐, 내부에 있는 심장을 찌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믿을 만한 건 〈자유기사〉 뿐인데.’
그런 생각을 하며 아크온이 드낙을 바라봤는데, 드낙 또한 그를 보고 있었다. 그 눈동자에 깃든 활화산 같은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흑마법을 쓰는 두툼한 머리만 잡아두면 드낙 용병단장이 마무리를 할 수 있을 터다.’
롱소드의 검신은 길었다. 자신이 피떡으로 만들어놓은 지점을 정확하게 찌른다면 키메라의 심장에 닿을 수 있었다. 닿지 못한다고 해도 큰 피해를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피해는 정확하게 촉수의 재생속도를 늦출 것이다. 그때가 되면 몸 내부에 2차 타격을 가하는데 더욱 수월해질 것이다.
빙글!
아크온이 전투 망치를 돌려잡았다. 손잡이가 앞뒤로 다른 그의 전투망치는 앞뒤가 존재했다.
“〈파워 밤(Power Bomb)〉.”
전투망치의 뒤를 앞으로 잡은 아크온이 오른팔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강철 글러브의 내부에서 선명하게 마력이 그의 팔뚝으로 스며들어갔다. 단 일회성 신체 강화였다. 기사의 근육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아직도 그 위험성을 마법사들이 외치고 있는 것이 〈신체 강화 마법〉이었다.
그중에서도 여러 번 사용하도록 하는 것이 마법사들 사이에서 엄격하게 금지되어있는 것이 파워밤이었다. 천금을 주어도 일회성 마법으로 밖에 부여해주지 않는다. 결국 기사가 후유증을 달고 오면 얻어터지는 것은 자신들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콧김을 뿜으며 아크온이 처음으로 황소처럼 돌진했다. 목표는 포낙서스의 얼굴이 들러붙어있는 굵직한 목이었다.
“덤벼라! 덤벼 봐!”
포낙서스는 밴쉬 애로우를 쏘아보내며 거칠게 아크온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결코 일직선으로 달려들지 않았다.
피를 쏟아내면 쏟아낼수록, 척추를 재생하면 재생할수록, 전투를 계속해서 진행하면 할수록 그의 이성은 점점 돌아오고 있었다.
휘익!
활처럼 목이 포물선을 그렸다. 정확하게 아크온의 정면을 노리지 않고, 후방으로 얼굴이 향했다. 아크온을 휘감아 조여 죽일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한 바퀴를 그렇게 돌 정도로 목이 길었다.
달리는 아크온은 3바퀴째 돌며 자신을 조이려는 그 수작질을 알면서도 막지 않으며 계속해서 내달렸다.
‘목과 몸체의 연결부위를 노린다. 단번에 무력화 시키겠다.’
몽펠리에 가문의 비전 중에서 가장 완벽하면서 거대한 적을 상대할 때 효율이 좋은 비전이 그의 몸을 통해서 모습을 드러냈다.
오른발로 강하게 땅을 찍으면서 동시에 전투 망치를 휘둘렀다. 〈그라벤 윈드물레(진흙 풍차, Graben Windmuhle)〉가 망치가 중심축을 이룬다면 〈드레이파치 드라힌(삼회전, Dreifach drehen)〉은 몸 자체가 축이었다.
후웅!
아크온은 이를 악물었다. 신체 강화 마법인 파워밤이 그의 팔에 있었다. 강화된 첫 번째의 휘둘림은 어깨 관절이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처럼 늘어지게 만들었지만 선천적으로 뛰어난 골격을 지니고 태어난 아크온이었기에 버틸 수 있었다.
후우웅!
속도는 더욱 거세졌다. 두 걸음과 함께 두 번째의 회전으로 만들어진 원심력은 더욱 거세졌다. 폭풍과도 같았다. 전신갑주의 굵직한 팔뚝에 있는 철판이 덜덜덜 떨렸다. 조여오는 포낙서스의 목에 망치의 끝부분이 닿았는데 살갗이 찢겨나가며 그대로 분쇄되었다.
“으아아아아!!!!”
속도가 줄어들면 결코 안 되었기에 아크온이 기합을 지르며 마지막 3회전을 하며 소리를 질렀다.
“〈파이어 블래스트(Fire Blast)〉!”
망치의 뒤가 앞이 되었고, 앞은 뒤가 되어있었다. 앞으로 터져나가는 파이어 블래스트가 자연히 뒤에서 터져나가며 뒷목을 물려는 포낙서스의 얼굴과 후방을 부채꼴로 화염이 덮고 그 뒤로는 폭발이 일어났다.
반동을 느끼면서 충격에 몸이 붕 뜬 아크온의 망치가 그대로 목과 몸체의 연결 부분을 후려갈겼다.
쾅!
묵직한 충격음과는 다르게 살점이 튀고, 뼈가 부서지는 것이 고작이었다. 하지만 충격은 키메라의 몸을 출렁거리게 할 정도로 대단했다.
“꺽.”
포낙서스의 아래턱에서 혀가 쭉 뻗어 나오면서 경직된 통나무만 한 목이 다시 한 번 바닥에 떨어졌다.
쿠웅!
아크온은 바짝 마른 입으로 숨을 거칠게 한 번 내뱉고, 깊게 들이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드낙은 벌써 5번 내려찍은 곳에 롱소드를 점프해서 온 체중을 다해서 쑤셔 박고 있었다.
아크온이 보여주는 삼회전은 무식했지만 투창이 아니라면 막을 수 없는 공격이었다. 균형을 무너뜨릴 만한 중량을 지닌 원거리 타격이 유일한 약점이었다. 이유는 간단. 전신갑주의 보호력과 흉악한 힘 그리고 전투망치의 리치 때문이다.
푸우욱!
롱소드는 깊게 쑤셔졌고, 드낙은 찰나의 순간 느껴지는 딱딱한 느낌을 맛보았다. 그 손맛은 키메라의 심장을 꿰뚫었음을 의미했다.
‘끝이다.’
추욱! 철퍽!
촉수가 늘어졌다. 하지만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붉은털의 곰〉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몸을 돌린 드낙은 곰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서둘러 도렌과 이스핀에게 다가갔다.
두 사람은 바닥에 주저앉아 있었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도렌은 숏소드를 쥐고 있는 손을 펴지를 못했다. 워낙 힘을 주고 있어서 손근육이 쥐가 난 것처럼 딱딱하게 굳어있었고, 이내 통증이 심하게 왔다.
드낙은 손가락으로 도렌의 손가락 근육을 펴주며 물었다.
“일백야수는?”
“도망쳤습니다. 믿을 수 없게도 한 번 피를 대량으로 쏟아내더니 다리의 상처가 나아버렸습니다. 아크온 기사님이 불꽃을 토해내며 폭발을 크게 만들어내자 그대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이스핀과 도렌 모두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말했다. 하지만 드낙은 웃음을 지었다가 이내 굳은 표정을 지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쉬어라.”
드낙은 서둘러 아크온에게 다가갔다. 그는 멀쩡히 서있었다. 전투 망치에 묻은 피와 기름을 고급스러워 보이는 천으로 닦고 있었다.
“괜찮습니까?”
“나보다는 다른 이들을 보살피게.”
“예···그럼.”
드낙은 그가 멀쩡한 것을 보자 서둘러 다시 되돌아와서 주변을 살폈다. 횃불은 두세 개 밖에 불타고 있지 않아서 시야가 제한적이었다. 횃불을 하나 쥐어들고 나서야 불빛이 주변을 제법 밝혔다.
‘베리븐이 날아갔는데··· 저기에 있구나.’
서둘러 달려간 드낙은 엎어져 있는 그의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
목에 손을 가져다 대자 온기는 느껴졌지만 맥은 잡히지 않았다.
“젠! 젠!!”
확인하지 못한 단원인 젠을 찾았다. 들려오는 소리는 없었고, 시체도 발견할 수 없었다.
‘도망쳤구나!’
드낙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순찰자 출신이었기에 그래도 믿음이 갔던 녀석이었다. 빤스런 할 줄은 몰랐다.
“젠이 도망쳤다.”
“개새끼가···”
이스핀이 욕지거리를 내뱉다가 끙끙 앓았다. 스쳤다고 생각했던 팔뚝은 피로 가득했다. 가죽 방어구는 쓸모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이 찢겼다. 곰에 긁힌 부분이었는데 상처는 실처럼 가늘었다. 말 그대로 스쳤다.
하지만 그 주위로는 피멍이 팔 안쪽까지 나있었고, 힘을 주고 있지 않았음에도 딱딱할 정도로 부어올라 있었다.
“아흐흐으으···”
드낙이 손으로 콕 눌렀는데 이스핀이 눈물을 찔끔 흘러냈다. 어마어마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일백야수 〈붉은털의 곰〉이 얼마나 근력이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서둘러 약을 듬뿍 팔뚝에 발랐다. 그리고 붕대로 감았다.
“사, 살살···어흐흐···”
이스핀이 벌벌 떨었다. 그만큼 팔의 붓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였고, 피멍으로 가득했다.
“어쩌다가 이렇게 된거냐?”
“도렌, 저 멍청한 새끼가 곰이 보고 있는데도 물러나지 않아서! 진짜 개새끼가. 넌 씨발 진짜!”
이스핀이 고통 때문에 욕을 내뱉었다. 드낙이 도렌을 보자 도렌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바닥이 진창이라, 미끄러져서···"
“이 씨발, 내가 다시는 너 새끼 안 도와준··· 아흐··· 단장님 죽겠습니다. 살살 붕대를 감아주십시오.”
“잡화점에서 구한 붕대다. 신관님이 반나절을 기도한 붕대야. 이번에 짐수레 품목을 구매하면서 서비스로 얻은 건데 단단히 묶어야지 축복의 효과가 있다. 워낙 미미한 거라 피부에 달라붙지 않으면 소용이 없단다.”
그러자 이스핀이 입에 천을 물었다. 스스로 재갈을 문 것이다. 드낙은 거침없이 붕대를 감기 시작했다. 축복이라니 별 수 없었다. 고통을 감수하는 수밖에. 그걸 보는 도렌은 고개를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