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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08화 (108/1,239)

0108 <-- 일백야수 토벌 -->

드낙은 고민했다.

‘무엇부터 상대해야 할까.’

〈변종 키메라 포낙서스〉는 아크온 혼자서는 상대하기 힘들었다. 촉수 때문이었고, 계속해서 촉수가 돋아나기 때문에 누구는 그 촉수를 계속해서 잘라내야 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는 버거울 것이고, 이내 실수를 하게 될 것이다.

결국 그도 인간이기 때문이다. 괴물과 호각을 보여주는 시간은 제한적이었다.

‘기사가 전력 이탈을 하면 모든 것이 끝이다.’

또한 기사의 부상은 드낙에게 있어서는 매우 민감한 문제였다. 그런 위험을 방치한다는 것은 큰 도박이었고, 그런 도박을 하기에는 드낙은 신중한 타입이었다. 제법 겁도 많았고, 리스크에 대한 부담을 안고 싶지 않았다.

결국 기사를 도와서 빠르게 키메라의 심장을 베어내야 하는 것이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다른 면에서 보면 또 아니었다.

‘용병들은 〈일백야수〉를 막지 못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 명씩 죽거나 큰 부상을 당할 것이다. 그다음에는 드낙과 아크온의 차례였다. 운이 좋다면 곰과 키메라가 싸울 수 있었지만, 인간을 먹고 털이 붉게 변한 〈붉은털의 곰〉이었다.

포낙서스의 이성이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이상 어부지리를 얻는 것도 어려웠다. 그런 사인도 오가지 않았기에 크게 다친 척 물러날 수도 없었다.

결국에는 용병들이 버텨주느냐, 기사가 버텨주느냐의 차이였다. 드낙의 입장에서 용병들은 못 미더웠다. 고로 곰 사냥을 먼저 해서 곰을 지치게 만들거나 부상을 입히게 한 다음에 키메라를 잡는데 도와줘야 했다.

‘곰보다는 키메라가 우선이다.’

일백야수를 막타 못 치는 것은 상관없었다. 그런 녀석보다는 〈변종 키메라〉가 생성할 〈검은 문〉이 더 대단할 것처럼 보였다.

또한 순서를 생각해보면 그게 맞았다. 용병들이 감당할 수 있도록 곰에게 타격을 주고, 키메라를 막타쳐야 했다. 그 상황이 가장 이상적이었다.

‘문제는··· 아크온이다.’

걱정거리는 아크온이 호기를 잡아 키메라를 홀로 잡는 것이었다. 무식하게 굵직하고 긴 포낙서스의 목을 비전을 이용해서 때리는 것을 보면 가능한 일이었다. 그 공격력은 무시무시했다.

‘괜히 기사가 아니란 거지.’

기사의 유일한 약점이 있다면 종족이 인간이라는 것이었다.

“포위해! 눈이 마주치면 도망칠 생각만 하고!”

드낙은 그렇게 소리치며 곰에게 큰 상처를 줄 기회를 노렸다. 하지만 드낙이 간과한 것이 있었다. 대부분의 인간은 이기심을 가지고 있고, 간사하다는 것이었다.

‘저런 곰에게 맞으면 그대로 즉사다.’

엉덩이를 보고 있는 베리븐은 공격을 하지 못했다. 그저 소리를 지르며 자신이 일인분하고 있다는 것을 주변에 보여줄 뿐이었다. 경험이 있다는 것은 반대로 위험한 상황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는 것이었다.

‘이건 미친 짓이야. 기사가 잡을 일백야수를 왜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거야?’

치졸하게 붉은 곰의 몸체를 이용해 드낙이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반대로 드낙도 자신이 보이지 않게 만들었다.

이 상황 자체가 경험 있는 용병에게 말도 안 되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겁 없는 용병이라도 저렇게 완전히 변이가 된 〈일백야수〉를 토벌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전에 덫으로 잡으면 잡았지 무기로 직접적으로 베어 죽이는 것은 미친 소리였다.

젠은 화살을 쏘았지만 가죽을 뚫지는 못했다.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는데, 털 때문에 화살이 단단히 들러붙었기 때문이었다. 마치 박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몸을 크게 출렁일 때만 화살이 떨어졌지만 그래도 공격이 먹히고 있다고 생각했다.

늑대가 물어도 안 뚫리는 가죽이 화살에 뚫리겠는가? 그것도 호랑이털처럼 굵은 털이 가득 나있었다.

드낙은 여분의 횃불에 거침없이 불을 붙여 곳곳에 던지며 시야를 확보했다.

“안 달려들고 뭐 해!”

그리곤 홀로 뒷다리의 가죽을 베어내며 롱소드에 피를 묻히며 소리쳤다. 뒷다리를 자르면서 반대편으로 빠져나왔기에 엉덩이 쪽에 있는 베리븐에게는 직접적인 눈총을 주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일 생각이 없었다.

“이건 미친 짓입니다! 물러나야 합니다!”

“그러면 아크온 경이 죽는다!”

텅텅텅!!

방패를 두들기며 곰이 보지도 않는데도 위협만 하고 있을 뿐이었다.

전형적으로 이 위기만 모면하면 된다는 마인드였다. 대다수의 인간들이 괴물을 마주 보고 하는 행동이기도 했지만 실전을 쌓은 용병이 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반대로 그 정도로 경험을 쌓았기에 두려워하는 것이기도 했다.

‘젠장. 덤비고 싶어도···’

눈총을 받았지만 베리븐은 죽을 맛이었다. 상단 호위하면서 트롤만 만나도 모두 도망치기 바쁜데, 이런 미친 명령을 내리는 단장은 처음이었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었다. 드낙은 거침없이 가죽을 베었기 때문이다.

실력을 가지게 되면서 얻어지는 모순을 이겨내고 실력을 보여줘야 했지만 〈무쇠방패 베리븐〉은 그러지 못했다. 시끄러운 소리에 붉은털의 곰이 고개를 돌려 그를 노려보자 베리븐이 두 걸음 물러섰다.

‘개새끼.’

그 모습에 드낙은 놈에 대한 모든 기대를 버렸다. 도렌과 이스핀은 엉덩이가 보이자마자 달려들었지만 곰이 더 빨랐다. 놈이 그대로 베리븐을 향해 덤볐다.

베리븐은 상체를 다 뒤덮고 튀어나올 정도로 큰 원형 방패를 가지고 있었지만 맞서지 못하고 그대로 땅을 굴렀다.

그것이 패착이었다. 곰은 덩치에 비해서 너무나도 빨랐고, 베리븐의 가죽 팔방어구가 아가리에 난 이빨에 걸렸다.

“으, 으아아악!!”

베리븐이 소리를 내질렀다. 그 순간 드낙은 자신에게 기회가 왔음을 느꼈다. 베리븐을 구하기는 커녕 일백야수의 왼쪽 뒷다리로 달려들었다.

베리븐은 인형처럼 끌려나갔다가 야수가 고개를 털자 그대로 좌우로 덜렁거리듯이 나뒹굴었다. 바닥에 질질 끌리면서 좌우로 움직였기 때문에 손가락이 역으로 꺾여서 부러졌다. 무릎과 돌이 부딪치자 끔찍한 타격음이 들려왔다.

강렬한 고통에 베리븐이 눈을 뜨지 못했다.

부러진 손가락 때문에 철퇴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말도 안 되는 힘이었지만 곰이었기에 가능했고, 〈일백야수〉가 되면서 더욱 강력해진 근육 때문에 손쉽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내 가죽 팔방어구가 힘을 못 이기고 뜯겨졌고, 베리븐은 인형처럼 벽에 날아가 처박혔다.

그 사이에 드낙은 모든 힘을 모아서 롱소드를 양손으로 휘둘렀다. 방패마저 버렸고, 그 공격은 뒷다리의 힘줄을 끊어내는데 성공했다.

“끄워어어엉!!!!”

고통에 재빨리 몸을 돌렸지만 허벅지에서 피가 쏟아져 나왔다. 이스핀과 도렌은 마른침을 삼키며 언제든지 몸을 굴릴 준비를 했다.

“현상 유지! 출혈로 놈을 죽인다! 도노!!”

드낙이 도노를 부르며 다른 늑대들도 불렀다. 그리고 그대로 키메라가 있는 곳을 향해 뛰어들어갔다. 그 사이에 다른 용병들은 계속해서 왼쪽으로 빙글빙글 돌았다.

“크아아아!!!!”

고통에 처음에는 난동을 부리듯이 뛰어들었지만 베리븐을 아가리로 털어서 내던지는 사이에 왼발의 힘줄을 끊어낸 드낙 덕분에 달리는 속도도, 힘도 줄어들어 있었다.

이스핀과 도렌의 눈이 빛났다. 다른 용병들과는 다르게 용병 의뢰가 드낙과 함께하는 것이 전부였다. 탈도 많았지만 그래도 드낙이 원하는 바를 수행하려고 노력하는 점은 분명 칭찬받아 마땅했다.

‘할 만하다!’

왼쪽에 몰려만 있으면 뒤로만 가도 공격을 피할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놈을 계속 쉬게 두어서는 안 되었고, 숨을 고르게 해서는 안 되었다.

“뭐라도 던져서 괴롭혀야 해!”

도렌의 외침에 이스핀이 서둘러 묵직한 돌을 양손으로 들어 올려 머리를 향해 던졌다.

퍽!

둔탁한 소리를 내며 주춤하던 〈일백야수〉 〈붉은털의 곰이〉 으르렁거렸다. 움직이려 했으나 드낙에게 입은 선명한 롱소드의 상처가 주는 고통이 컸다.

도렌이 엉덩이를 숏소드로 쿡하고 찌르고 뒤로 도망쳤다. 곰이 뒤쪽을 보며 앞발을 휘둘렀지만 허공을 갈랐다.

“이봐! 괜찮아!”

젠은 베리븐에게 다가갔다. 코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었다. 다른 손으로는 심장이 있는 곳에 손을 올리며 쓰러진 상체를 세워주었다. 이내 젠이 손을 놓으며 뒷걸음질 쳤다.

“빌어먹을.”

베리븐은 즉사했다. 곰에게 어그로가 끌렸을 때, 누구라도 곰의 시선을 끌어줬어야 했다. 무거운 철퇴와 큰 원형방패를 들고 있었기에 곰의 근력에서 나오는 폭발적인 스피드를 이기지 못했다.

땅바닥에 좌우로 한 번씩 부딪치고, 뒤이어서 날아가 벽에 부딪친 것뿐인데도 죽어버린 것이다. 인간의 몸은 때때로 연필에도 죽을 정도로 연약했다.

세워준 상체가 허무하게 다시 바닥에 엎어졌다. 그제서야 베리븐이 죽은 이유가 젠의 눈에 들어왔다.

‘미친.’

등에 있는 가죽 보호대에 돌이 박혀 있었다. 그것 때문에 척추가 부러지면서 죽은 것이다. 울퉁불퉁하고 5cm도 안 되어 보이는 작은 돌이었지만 곰의 근력은 그것을 척추에 박히게 만들게 했다.

젠은 서둘러 일어났다. 이스핀과 도렌이 양 사이드로 움직이며 곰의 왼쪽 발과 엉덩이만 집중적으로 괴롭히는 모습이 보였다.

‘이건 내가 아는 용병 의뢰가 아니야.’

기사들이 하는 일이었다. 의뢰 내용도 일백야수를 기사가 잡는 사이에 다른 놈들이 들이밀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신들이 일백야수를 잡고 있었다.

사람 100명 이상을 잡아먹은 야수를 용병이 상대하는 것은 말도 안 되었다. 그런 의뢰를 받는 용병은 없다.

‘씨발.’

중견용병이 한 방에 죽었다. 상황이 도망칠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그저 위기를 모면하려고 했는데 운이 나빴다.

‘내가 미쳤다고 이딴 의뢰를 할 것 같아?’

애송이 용병들은 천지를 분별하지 못하고 만용을 부리고 있었다. 젠은 베리븐이 엎어져있는 바닥에 있는 밧줄을 집어 들었다.

보통 용병이 하는 일은 상단 호위, 마을 자경단 대체, 고블린 같은 소형 몬스터를 토벌하고, 야수는 덫으로 잡는 것이 보통이었다. 혹은 현상금 사냥꾼짓을 한다.

그 이상은 모두 기사의 몫이었다.

젠은 베리븐의 품을 뒤져서 가죽 주머니를 챙기고, 무기도 집어 들어 혁대에 걸었다. 방패를 짊어지지는 않았다.

‘너희들끼리 잘 해봐라. 난 살아야겠다.’

밧줄을 쥐고 그대로 허리에 휘감은 다음에 젠이 동굴 밖으로 가기 시작했다. 도렌과 이스핀은 곰에게 집중하고 있었기에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위로 올라온 젠은 그대로 뛰어가서 짐마차에서 식량과 식수를 챙겼다. 수많은 마법이 내장된 마차 안에 있던 〈마부 센〉은 그것을 볼 수 있었지만 문을 열지 않았다. 그저 그 광경을 지긋이 바라보았다.

“헉! 후욱. 후···”

젠은 숨을 고르며 짐수레를 더욱 꼼꼼히 뒤졌다. 여분의 화살과 투척 단검 같은 무기들을 혁대에 걸 수 있는 대로 걸었다. 그리고 값어치 나가는 것을 찾았지만 대부분 생필품이 고작이었다.

작은 냄비를 두 개 밧줄에 묶어서 어깨에 짊어졌다.

‘무겁다.’

젠은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짐마차의 준마까지 짐수레에서 끊어내고 짐을 말 엉덩이에 실었다.

“흣차!”

말을 타려고 했지만 몇 번 실패했는데, 말을 타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 고리를 잡고 떠나려고 했지만 젠은 걸음을 멈추었다.

겁이 났다.

말을 데려간다면 만약 살아남았을 때 추적할 것이 분명했다. 기를 쓰고 쫓아올 것이다.

‘말은 포기하자. 너무 비싸다.’

드낙의 용맹한 모습이 떠올랐다. 간이 쪼그라들었다. 말위에 얹어놓은 짐을 다시 손에 들었고, 어깨에 메었다. 그가 떠나자 잠시 뒤에 마부 센이 풀을 뜯어 먹는 말의 고리를 잡아 다시 짐수레에 묶고는 재빨리 마차에 다시 들어갔다.

“쯧쯧. 이래서 용병들이란.”

그는 도망자가 나올 줄 알았다는 듯이 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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