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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06화 (106/1,239)

0106 <-- 일백야수 토벌 -->

동굴은 제법 컸다. 그곳으로 시체를 끌고 간 흔적은 이어졌다. 동물이기에 흔적을 지울 생각을 하지 않았다. 여기까지의 추적은 너무나도 쉬웠다. 하지만 어눅어눅한 날씨 상황 탓에 동굴 내부는 한 치 앞을 볼 수 없었다.

늑대들은 코를 킁킁거리며 주위를 계속해서 두리번거렸다. 괜히 다른 용병들도 주위를 살폈다. 꺼림칙함이 스며드는 탓에 이스핀은 가슴을 긁었다. 기분 좋은 느낌은 결코 아니었다.

“안에 새끼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식량을 옮겼다는 것이니까요.”

잠깐의 휴식시간, 드낙을 시작으로 이야기가 오고 갔다. 가장 궁금한 것은 〈시체를 옮긴 이유〉였다. 드낙은 새끼가 있다고 여겼다. 그렇다면 붉은털의 곰이 두 마리라는 소리였다.

“살아있는 놈도 사냥 연습용으로 써먹을 수 있겠지.”

아크온은 섬뜩한 말을 하기도 했다. 태생이 귀족이었지만 기사로 임관되고 나서는 못 볼 꼴을 보면서 명예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

흉악한 소리였지만 모두 무덤덤하게 말하고 들었다. 동굴의 입구는 매우 넓었지만 안으로 한 걸음 들어갈수록 높이와 너비가 확 줄어들어갔다. 이내 가파른 내리막길이 드낙의 앞에 보였다.

잘못하면 훅 내려갈 뻔했다. 천천히 걸음을 옮긴 것이 다행이었다. 그만큼 동굴의 내부는 어두웠다. 밤눈이 좋은 것도 한몫했다.

“가파른 내리막길입니다. 조심하세요.”

드낙이 손을 올려서 다가오는 이들을 막았다. 경사로 치면 30도가 넘었고, 시체의 피와 기름 때문에 진창이 되어있어 뭣도 모르고 내려갔다간 올라오는데 힘들 수밖에 없었다.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절벽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내려갈 준비를 철저하게 하는 것이 좋겠네.”

“예.”

드낙은 능숙하게 추적 용병단을 이끌고 필요한 물품을 가지러 다시 되돌아갔다. 마차는 여전히 그대로였다. 말의 시체에 달라붙은 독수리가 물끄러미 용병을 보고 있었는데, 검은 까마귀 카이야가 독수리의 꽁지를 부리로 쪼아 뜯어내더니 나 몰라라 하고 드낙에게 날아 어깨에 앉았다.

독수리는 펄쩍 뛰더니 날아올랐다.

“덩치도 작은 놈이 겁도 없이 독수리한테 장난을 치네.”

도렌이 신기한 듯이 말했다.

“단장님 믿고 까부는 거겠지.”

이스핀이 툭 말하며 짐수레로 먼저 향했다. 필요한 것을 챙겼다. 말뚝, 밧줄, 식량, 식수 등등 동굴에 필요한 것들을 챙겼고, 만에 하나라도 문제가 있을 수 있었기에 곡괭이도 들었다.

“곡괭이가 왜 있지?”

드낙이 물었고 이스핀이 으쓱했다.

‘〈만물 잡화상〉 이 새끼들···’

필요할 때야 있기야 있겠지만, 황당함을 감출 수는 없었다.

‘매몰되었을 때 곡괭이가 필요할 수 있었지만··· 굳이?’

필요 없는 것은 과감히 돌려주기로 했다. 분명 목록을 확인했는데도 드낙이 놓친 듯했다. 아니면 그때는 필요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몰랐다.

곡괭이 때문에 공구도 하나 챙겼다. 들것이 많았고, 그것은 대부분 단원들이 짊어매었다.

“비가 올 것처럼 보이는데, 한 방울도 안 떨어지네.”

“밤부터 엄청 내리겠지.”

도렌의 말에 젠이 대꾸했다. 빨리 일을 마치고 싶었다.

다시 동굴에 도착하자 아크온이 내리막길을 계속 주시하고 있었다. 마법 투구에서 보이는 아래는 불길함이 가득했다.

“조금 이상하군.”

추적 용병단이 도착하자 아크온이 이상한 점을 말했다. 가장 먼저 시체를 대량으로 옮긴 흔적이다. 일백야수는 그래도 야수. 시체를 저장하지 않는다. 차라리 잔뜩 먹어서 체중을 늘리고, 지방층을 쌓아올린다.

“새끼라면 응당 소리를 한 번은 낼 법한데 그것도 없고.”

왕복 40분이 걸렸는데, 그 사이에 인기척 하나 없었다.

“자리를 비운 것이라면···”

추측이 이어졌지만 마음에 와닿는 것은 없었다.

“좀 더 기다릴까요?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드낙의 물음에 아크온이 되려 반문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나?”

“저라면 지금 내려가서 확인하겠습니다. 짐승 상대로 뭐가 두렵습니까? 안에 새끼만 있다면 죽이고 나와서 곰을 기다리면 됩니다.”

“마찬가지 생각이네.”

말뚝이 박혀졌다.

퍽! 퍽! 퍽!

수십 번을 내려치며 밧줄을 묶은 말뚝이 단단하게 박혔다. 내려가야 하기 때문에 내려가는 방향과 정반대되는 곳으로 기울어져 박혔다. 마무리로 발로 강하게 땅을 밟고, 쿵쿵 뛰어서 다졌다.

그 외에도 두 곳에 더 비상용 말뚝을 박고 밧줄 끝에 돌을 묶어서 내리막길 멀리 던졌다.

탁! 주르륵.

땅이 얼마나 피와 시체 기름 때문에 진창이 되었는지 힘을 얻은 돌은 주르륵 미끄러졌다.

“횃불은 내려가서 다시 붙이지. 동굴에 불이 나면 안 되니까.”

“예.”

내려갈 때가 되자 드낙은 도노를 비롯한 늑대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상대할 수 없는 상대가 나타난다면 여기로 오지 말고, 숲으로 도망쳐라. 그리고 놈들이 내려오지 않는다면 잠들지 못하게 만들고, 내려간다면 따라서 내려와라.”

“크르.”

도노는 걱정하지 말라며 소리를 작게 내며 콧등으로 드낙의 손을 밀었다.

“한 번에 3명씩 내려가겠네.”

어두컴컴한 곳으로 내려가는데 3명이 동시에 내려가기로 했다. 반대는 없었다.

아크온이 선뜻 중앙을 맡았고, 드낙과 베리븐이 양쪽 동굴 벽에 박아놓은 밧줄을 허리에 한 번 휘감고 밧줄을 앞뒤로 쥔 채 슥슥 거리면서 능숙하게 나아갔다.

아래에 도착하자마자 드낙은 횃불부터 붙였다. 그리고는 원형 방패의 손잡이를 팔뚝에 고정시키고, 손으로 횃불을 잡았다.

주위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시체는 있었지만 해골은 없었다.

‘최근에 여기에 자리를 잡았군.’

오래 살아온 동굴이 아니라는 뜻이다.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인간에 대한 겁이 사라져서겠지.’

“물건을 내려보내겠습니다!”

이스핀은 밧줄을 당겨서 다시 회수해 물건을 묶고 내려보냈다. 무게가 충분히 있도록 여럿을 묶었기에 울퉁불퉁한 내리막길에서도 빠르게 바닥까지 내려올 수 있었다.

음식이 뭉개져도 중간에 멈추지 않는 게 중요했다. 걸린다면 더 골치 아팠다. 그리고 개밥처럼 밥을 먹어도 상관없는 것이 남자들이기도 했다.

물건 다음에는 나머지 사람이 내려왔다. 모든 인원이 내려와서 주변을 훑었다.

“으···냄새.”

도렌이 코를 찌푸렸다. 입으로 숨을 쉬는 것 같아 보이자 드낙은 천을 투구의 양쪽에 끼워 고정시키며 호흡기를 보호하며 도렌에게도 해주었다. 다른 이들 또한 깨끗한 천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추적 용병단의 뒷바라지에 고용된 세아 덕분이었다.

“방치된 시체가 너무 많습니다.”

드낙은 꺼림칙함을 또 한 번 그리고 더 확실하게 느꼈다. 뭔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샘솟았다. 여기에는 아크온도 동의했다.

“살육에 눈이 멀어서 닥치는 대로 죽이는 건 상관없지만, 수집까지 한다? 이상하군. 우리가 찾는 〈붉은털의 곰〉이 아니다. 다른 놈이야.”

아크온 몽펠리에는 단번에 이 동굴의 주인이 〈붉은털의 곰〉이 아님을 간파했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그헤헤헤.”

기괴한 웃음소리가 천장에서 들려왔다. 드낙이 방패와 함께 횃불을 들어 올렸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제한적인 불빛이 그들보다 높은 곳에 있는 머리통을 보여주었다.

사람의 머리였다. 드낙은 그 얼굴을 알고 있었다.

“흑마법사?”

파이어볼 스크롤을 찢어서 사용하고, 키메라를 부리는 흑마법사였다. 〈1제자 포낙서스〉의 얼굴이었다.

“흐, 흑, 흑! 흑마법사! 캬, 킥! 극! 아! 악마! 나는, 악마다!”

입이 바르르 떨리면서 말을 했다. 대부분 알아들을 수 없거나 단어만 정확하게 귀에 들려왔다. 가래가 들끓는 소리가 뒤섞였기 때문이었다.

얼굴만 그렇게 인간이었고, 나머지는 모두 괴물이나 마찬가지였다. 기린처럼 길쭉한 목은 피부랄 것이 없어서 근육과 살, 뼈가 보였다. 파리들과 구더기가 들러붙어있었다.

“척 봐도 실패작이군.”

아크온의 말에 포낙서스가 괴성을 질렀다.

“크아아아아!!!!!”

“흑마법사도 자신의 몸에 실험을 저렇게 합니까?”

드낙의 물음에 아크온은 코웃음을 쳤다.

“흑마법사의 노예겠지. 제자니 뭐니 하면서 이것저것 귀찮은 것을 시키다가 실험체로 만들어버리는 게 보통이다.”

“끔찍한 놈들.”

괴성을 지르며 괴로워하는 〈변종 키메라 포낙서스〉는 머리를 자학적으로 벽에 박았다. 어찌나 세게 박는지 땅이 울릴 정도였다.

“저러다 죽는 것 아닙니까?”

“키메라의 핵(核)은 머리가 아니네. 놈의 가장 두꺼운 부분인 몸체 내부에 있는 심장이지. 인간과는 달라. 저 머리는 부속품에 불과하고, 시선을 모이게 만드는 페이크에 불과하지. 많은 이들이 그에 속아서 키메라에게 죽음을 당하지.”

아크온은 상세히 설명해주었다. 덩치가 큰 키메라를 손쉽게 상대하기 위해서는 용병들의 도움이 필요했다.

‘흑마법의 사용 여부를 모르니··· 용병들의 참전은 필수적이다.’

“붉은 털의 곰이 아니니, 용병들도 나서줘야겠다. 추가금을 내어주지. 의뢰 내용에는 없었으니까.”

“예. 전투준비! 베리븐은 도렌! 이스핀은 젠과 함께해라! 무리하지 말고, 키메라를 야금야금 뜯어먹는다는 생각으로 움직여라! 부상당하는 놈은 돌아가서 술값을 내는 거다!”

“휘유!”

이스핀이 휘파람을 불었다. 객기나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다른 이들의 긴장이 확 풀어졌다.

‘키메라의 심장은 반드시 내가 노린다.’

지금 상황은 드낙에게 있어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저렇게 큰 키메라다. 죽이면 분명 〈검은 문〉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드드드드!

동굴의 바닥에 울렸다. 시체가 덜렁덜렁거리면서 움직이자 용병들의 안색이 급격하게 나빠졌다. 인형처럼 시체가 주르륵 당겨지더니 이내 출렁거리며 이리저리 휘적거리며 들어올려졌다.

땅속에 숨어있는 촉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시체는 둔기처럼 내려쳐졌다. 용병들이 너도나도 몸을 굴렀다. 크기가 제법 크고 길었기 때문에 막는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그건 드낙도 마찬가지였다.

유일하게 아크온만이 사람 몸길이만 한 전투망치로 촉수를 후려쳐서 곤죽으로 만들었다. 그의 떡 벌어진 어깨를 촉수가 내려쳤지만 공격은 방패를 내려친 것처럼 기울어져서 바닥을 쳤다. 아크온은 발로 촉수를 밟고 전투망치를 내려쳤다.

“파이어 블래스트(Fire Blast)!”

화염이 1차적으로 전투망치의 뒤에서 튀어나와서 앞을 쭉 뻗어나가며 부채꼴을 만들어냈다. 그 뒤로는 폭발이 일어났다. 전투망치의 윗부분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퍼걱!

촉수를 내려쳤고, 끔찍한 화상이 뒤를 이었다. 키메라에게 들러붙은 마법의 불꽃이 몸통을 태우고 있었고, 작은 폭발의 여파로 촉수 여럿이 힘을 잃고, 충격에 바닥에 내려앉았다.

그 사이에 동굴 위에 있던 종유석 하나가 떨어지면서 촉수에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쿠구궁!

흙이 튀었다. 그대로 촉수가 관통되었다.

“그아아아악!!!!”

턱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포낙서스의 입이 쩍 벌어지며 괴성을 뱉었다. 촉수의 끝에 연결된 시체들까지 한 번 내려친 것에 불과했지만 용병들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다.

드낙은 낭패한 표정을 지으며 외쳤다.

“둘씩 뭉쳐서 다녀라! 안 그러면 빠르게 촉수를 무력화시키지 못해!!”

하지만 용병들은 드낙의 명령을 무시했다. 서로 각기 자신의 앞에 있는 촉수를 무기로 내려쳤다.

‘이 병신 같은 새끼들이?’

2명이서 하나의 촉수를 조져야 빠르게 촉수를 무력화할 수 있는데, 어리석었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명령을 무시했다는 것에 드낙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하지만 정예병이 아니라면 일반 병사조차도 진형이 무너지면 곧바로 패주한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용병들의 판단은 인간의 본성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그것은 드낙에게 있어서 알 바가 아니었다.

합격술에 대한 확실한 훈련을 가르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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