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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05화 (105/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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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녘 마을〉에서의 하룻밤.

드낙은 검은 꿈을 꾸었다. 어느 순간부터 매일 밤마다 꾸게 변해버렸기 때문이다. 언제나처럼 〈세파리아스 불파겐(Sepharias Bulpagen)〉의 모습이 드낙의 눈에 들어왔다.

[어리석은 놈.]

세파리아스는 드낙을 보자마자 비난했다.

“내가 왜? 차근차근 밟아가다가 제국에 사람을 보낸다니까?”

[너 같은 놈은 차라리 장사를 하는 게 낫다.]

그 말에 드낙이 혀를 찼다. 장사라니, 전국민이 공무원에 자식을 밀어 넣던 지옥 같은 시절에 학생이었던 그였다. 본능적으로 리스크를 생각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장사는 아무나 하는 줄 알아?”

그 물음에 세파리아스는 대답하지 않았다. 드낙을 보기도 싫은지 검은 연기가 그의 전신을 휘감았다.

‘기반이 중요한 용병보다는 내가 상인을 하는 것이 제국에 줄 놓는 시간이 단축되니 원하는 걸 모를 줄 알고?’

드낙은 세파리아스에게서 이론만 받은 〈상승의 묘리〉이자 〈일류의 흐름〉을 다양한 사람을 생각하며 연습하며 〈검은 꿈〉에서의 시간을 보냈다.

다양한 상대와 대련을 하면서 얻은 데이터를 드낙은 정확하게 분석하며 체계적으로 습득하고 숙련했는데, 지금에 이르러서는 거의 맹신(盲信)하고 있을 정도였다.

‘대(對) 기사전에서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괜히 〈상승(常勝)의 묘리(妙理)〉라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상대의 호흡을 통해서 전투의 진행을 송두리째 뿌리 뽑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위력을 확실하게 체감하면서 드낙은 아쉬움을 느꼈다.

‘내가 완벽하게 쓰기에는 부족함이 많다.’

절륜하다고 말할 정도로 검술이 뛰어나지 않았기에 〈일류의 흐름〉은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었다. 상대보다 세 수를 앞서나가야 쓸 수 있는 것이 〈일류의 흐름〉이었다. 드낙이 쓰는 것은 억지에 불과했다.

‘기술 없는 정수는 게 알 없는 게장이지.’

용병들에게는 통할 수 있겠지만, 기사에게는 어림도 없었다. 드낙은 스스로 자신의 부족함을 깨달았다. 아직 〈기사〉라고 불리기에 부족했다. 더 많은 경험이 필요했고, 더 많은 죽음이 필요했다.

드낙의 눈에 광기가 번들거렸다. 그것은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찌꺼기로 만족할 수 없었고, 손없는 센다빌의 실전 무기술로도 충당할 수 없는 갈증이었다.

작은 양심이라도 남아있어 보일 것 같이 아이들의 시선을 외면했던 모습과는 다르게 괴물이나 다름없는 감정을 드낙이 검은 꿈에서 품었다.

검은 연기가 불길하게 드낙의 다리 밑으로 지나갔다.

새벽부터 봄녘 마을을 떠날 준비를 했다. 그동안 아크온 기사는 새벽 단련을 하고 있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새벽 단련을 하는 것이 기사라는 족속이었다.

피에서 피로 대물림되는 무(武)의 연결고리였다.

물론 용병단장인 드낙 또한 몸을 단련했다. 잡일은 그를 제외한 추적 용병단의 몫이었다.

“시발.”

마을에서 제공해주는 생필품을 들어 올리며 이스핀이 욕을 내뱉었다. 그가 가오를 잡자, 나이 많고 경력 많은 베리븐도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옆에서 지켜보면 똥폼 잡는다고 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진지했다.

“젠장.”

비록 면전이 아니라도 강한 남자라고 할 수 있는 드낙에게 거침없이 불만을 표시하는 이스핀을 보고 베리븐이 꼬리 말린 강아지처럼 군다면 자존심이 긁혔다.

근육과 검으로 살아가는 남자에게 자존심이라는 것은 자신의 사타구니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었다. 그렇게 이스핀과 베리븐은 욕을 하면서 짐을 옮겼다.

새벽 단련을 끝낸 드낙이 늑대 여섯 마리를 대동하고 짐마차에 다가왔다. 이스핀과 베리븐의 흉흉한 표정과 기세가 순식간에 바뀌었다.

짐마차에는 까마귀 카이야가 자리를 잡고 과일을 쪼아먹고 있었다.

“언제나 봐도 어떻게 저럴 수가 있는 거지.”

드낙과 늑대들을 보며 〈명사수 젠〉이 혀를 내둘렀다. 늑대만해도 일인으로 의뢰를 완수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술에 취했지만 전날의 기억을 모두 가지고 있는 젠이었다. 자신이 저런 용병단장에게 불만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놈의 입방정.’

남자란 것들은 그놈의 자존심이 문제였다. 열다섯 짜리 애가 튀어나오면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상황을 만드는데 물꼬를 틀고, 노까지 저었던 것이 이스핀이었다. 그 정도로 이스핀은 덩치와는 다르게 여우 같았다. 단번에 용병단에 그에 대한 불만의 씨앗을 심었다. 젠의 눈이 베리븐에게 향했다.

그는 드낙을 보면서도 큰 생각을 하고 있지 않는 듯했다.

툭.

이스핀이 그런 젠의 옆구리를 건드렸다.

“왜?”

나이로 치면 7살 위에 있는 것이 젠이었다. 이스핀은 17살이었고, 젠은 24살이었다.

“아, 난 또 쓸데없는 말을 할 줄 알았지.”

“무슨···”

이스핀은 일부러 소리를 내며 마지막 짐을 올려서 손으로 탁탁 털며 젠에게 웃음 지었다.

“남자는 입이 꿰맨 것처럼 과묵해야 상남자 아니겠어?”

“······”

줄을 잘 서라는 말이었다. 그제서야 젠은 이 빌어먹을 좁은 판에서 들개 싸움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젠은 오지랖이 넓지도 않았고, 베리븐과 크게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도리어 질투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는 유일한 2군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스핀이 치워주면 오히려 좋지.’

사내정치와 다름없었다. 아니, 오히려 그것보다 더 음흉했고, 더 직접적인 피를 불러일으키는 일이 곧 생길 것이다. 드낙은 그것을 예상하지 못했지만, 이스핀은 드낙이 자신에게 기회를 준 것이라 여겼다.

‘올라갈 수 없다면 위에 놈을 내려오게 만들면 그만이지.’

〈큰도끼〉에게 〈들개〉라고 불렸던 이스핀이었다. 들개처럼 소속 없이 다니며 다른 뒷골목 녀석들과 형제를 먹고 다녔던 이스핀이었다. 이런 종류의 싸움은 이골이 났고, 본능적인 것이나 다름없었다.

“가자!”

마부가 말들을 재촉했다. 채찍은 쓰지 않았다. 애초에 그렇게 훈련되지 않은 준마도 아니었고, 성격도 모두 좋은 몽펠리에 가문의 말들이었다. 또한 빨리 갈 일도 아니었다.

“와아아아!!”

마을 사람들의 환호소리가 드낙에게 들려왔다. 그는 그들을 이해할 수는 있었지만 납득할 수는 없었다.

2개의 마을을 더 지나고, 〈세 개의 강가〉의 중심부에 도달하기 전에 6두마차가 멈추어 섰다. 먹구름이 깔려있어서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것 같았다.

“날씨가 왜 이러지.”

도렌은 불안한 기색으로 계속 주위를 둘러보았다. 정신 사나웠지만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정도에 차이가 있겠지만 그들 모두 날씨 탓을 하면서 불안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스핀! 젠! 후방을 지켜라! 나머지는 앞으로.”

드낙의 말에 크게 대답하지 않는 이스핀과 젠이 후방을 지켰다. 드낙이 앞으로 나가서 상황을 파악했다. 뒤에서 마차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크온도 마차가 멈추자 나온 것으로 보였다.

나무가 엎어져있었고, 그 뒤에는 폭풍이 휩쓸고 간 것처럼 짐마차가 부서져 있었으며 말의 시체가 방치되어서 뱃가죽에 파리와 구더기가 가득했다. 내장부터 썩었기에 뱃가죽이 벌레가 들끓는 것이다.

“짐수레가 못해도 다섯입니다. 마차도 하나. 쪽수 하나만 믿고 여기까지 왔군요.”

드낙의 말에 아크온이 주위를 훑었다. 그는 투구를 쓰고 있었다. 〈늑대의 눈〉이라 불리는 후각을 시각화해서 보여주는 마법이 담긴 투구였다.

“썩은 내가 가득하군.”

투구의 기능으로 청량하게 해독되는 공기를 흡입하면서 아크온이 시각화된 후각 정보를 보며 말했다.

“한여름임에도 근육의 부패가 안 된 것을 봤을 때, 채 3일이 안 지났습니다.”

용병들은 드낙의 말에 무식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아크온이 감탄하며 말했다.

“사냥꾼의 일을 배웠는가?”

“병행했습니다.”

무엇과 병행했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엎어진 나무를 지나가서 부서진 마차 잔해를 확인했다. 피로 가득했고, 좁쌀 같은 날파리가 문짝을 듣어내자 가득 올라왔다. 드낙이 손을 휘저으며 눈을 찌푸렸다. 숨도 쉬지 못한 채 뒤로 물러났다.

피만 있었고, 시체는 보이지 않았다.

베리븐은 척척 앞서나갔다. 그리고 소리쳤다.

“단장님! 여기에 시체를 끌고 간 흔적이 있습니다!”

드낙은 그곳으로 향했다. 아크온은 그저 지켜볼 뿐이었다. 드낙의 시선은 가장 먼저 바닥을 향했다. 시체가 한두 구 옮겨진 것이 아닌 흔적이었다.

손으로 흙을 집어서 비볐다. 농도가 다른 흙과 확연히 달랐다. 조심스럽게 깊이를 파며 그 농도의 다름이 어디까지 가있는지 확인했다.

‘적어도 30구 이상.’

특이한 것은 말들의 시체는 그대로인데 사람 시체만 옮겨졌다는 것이다. 몸을 일으킨 드낙이 끌고 간 곳을 바라보았다. 시체가 끌고 수풀과 풀을 누워놓았기에 숲으로 만들어진 동굴의 입구처럼 되어있었다.

불길했다.

“그럼 가야지, 뭘 고민하는가? 센!”

“예. 도련님.”

제법 늙은 마부를 아크온이 부르자 마부가 수염까지 난 아크온을 도련님이라고 말했다. 아크온은 크흠하고 기침하며 말했다.

“마차 안에 들어가 있어라. 밖을 볼 수 있으니 무슨 일이 생기면 아낌없이 마법을 발동해라.”

“예.”

〈마부 센〉이 마차 안으로 들어갔다.

“용병도 몇 놔둘까요?”

“그럴 필요는 없네.”

드낙은 전투 준비를 했다. 비가 올 것 같아서 활을 꺼내고 싶지 않았다. 습도가 있는 날에 쓰면 활의 수명이 말 그대로 끔찍하게 망가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돈을 아끼자고 전투에서 활을 쓰지 않는 것은 어리석었다.

활을 꺼내서 부착물은 허리띠 뒤쪽에 걸고, 활은 어깨에 메었다. 방패와 숏소드, 롱소드를 모두 챙겼다. 갑갑해서 착용하지 않았던 가슴 혁대를 어깨에 두르고, 투척 단검 세 자루를 끼워 넣었다.

화살통까지 허리띠에 고정하고 나서야 드낙은 주위를 살폈다.

모두 뭐라도 하나 더 챙겨갈려고 했다.

아크온은 거침없이 움직였다. 작전이라고 할 것도 없이 우직하게 나섰다. 그의 투구로 보이는 후각정보는 가야 할 길이 어딘지 알려주고 있었다. 피냄새와 3일 이상이 지나서 생긴 썩은내를 따라가면 되었다.

드낙은 향하면서 작전을 짰다.

“일백야수는 기사 혼자서 맡는다. 우리는 다른 잡것들이 끼어들지 않게만 하면 된다.”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고, 도렌처럼 대답을 하기도 했다.

“조를 나눈다. 나랑 가장 멀리 위치할 1조는 베리븐과 이스핀이다. 전투가 시작되면 최대한 반대편으로 향해서 위치를 확보한다. 너희들이 감당하지 못할 놈이 오면 튀어라. 우리와 합류해서 막아낸다.”

드낙의 눈이 도렌으로 향했다.

“도렌과 젠은 측면에서 자리 좋은 곳에 매복하고 있어라. 지나가거나 다가오는 놈이 있으면 덮쳐버려.”

“예.”

드낙은 갈색늑대 도노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늑대들은 내 통제가 있어야만 적을 공격하기 때문에 내가 그 외의 곳을 막겠다. 위험하면 늑대들을 보내서 도와줄 테니, 걱정 말고.”

드낙이 흔적을 찾을 필요도 없었다. 아크온은 거침없이 투구가 말해주는 피와 썩은내를 따라갔고, 〈추적 용병단〉은 그의 뒤를 따라갔다.

‘기사라서 그런지 체력이 대단하네.’

약간 뛰는 것처럼 걷는 아크온의 보폭은 경쾌하고 길었다. 그만큼 풀 플레이트 아머의 편의성이 높기도 했다.

수백 미터를 이동했고, 포식의 흔적이 있는 곳에 닿았다.

피가 크게 튀어있었고, 살점과 내장의 찌꺼기가 널브러져 있었다. 씹혀져서 부러진 뼈가 있었지만 〈머리〉는 찾을 수 없었다.

“흠. 여기서 하나를 먹었군. 다른 시체도 계속 옮겼나 본데···”

아크온이 주변을 훑어보았다. 드낙이 손을 멀리 가리켰다.

“자연동굴이 보입니다.”

당첨이었다.

“눈썰미가 대단하군. 사냥꾼 일을 배우면서 이름 하나 얻었을 것 같을 정도야.”

“네. 〈깊은 숲의 사냥꾼〉이라 불렸습니다.”

“그거 굉장히 멋진 이름인데. 자신이 지은 것은 아닌가? 하하.”

드낙이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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