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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04화 (104/1,239)

0104 <-- 일백야수 토벌 -->

선금을 선뜻 내주는 〈아크온 몽펠리에(Arcon Montpellier)〉는 보통 사람과는 달랐다. 확실히 귀족이었다. 그저 돈을 쓰는 것만으로 남들과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현대와 다를 것이 없었다.

드낙은 은화 5닢이 들어왔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알리고, 용병 공금을 통해서 짐을 꾸리도록 명령했다. 모든 일이 끝나고 배분을 할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준마를 빌리고, 제법 튼튼하고 예비 바퀴까지 묶여있는 질 좋은 짐수레를 미리 구해놓고 있던 〈만물 잡화점〉을 통하였기에 모든 준비는 그저 통보만 하면 알아서 준비가 되었다. 그 비용은 은화 1닢이었다.

짐수레는 그냥 대여하는 것이 아니라 구매했다. 장기적으로 그것이 좋았다.

말의 대여료가 비쌀 줄 알았기에 은화 2닢은 들 줄 알았지만,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며 여주인 소레가 특히 싸게 해주었다. 두 번째의 인연, 확실하게 밀어붙여 드낙과의 관계를 진작시키려고 한 것이다. 경험 있는 용병의 뒷바라지가 만들어낸 노하우였다.

‘필요한 것은 이번에 다 구매했으니, 다음부터는 돈이 더 적게 들어가겠지.’

식료품, 소모한 소모품의 충당 그리고 말의 대여만 들어갈 것이다. 이번에는 은화 1닢이었지만 다음에는 인원이 늘어나도 은화 1닢도 들어가지 않을 터였다.

알트온은 굳이 마차 뒤에 짐수레를 연결하고 용병들을 자신의 마차 안에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귀족이었고, 자신의 생활공간이기도 한 길쭉한 6두 마차 안에 용병들을 들여보내지 않았다.

느긋하게 〈세 개의 강가〉로 향했다. 3일이 걸려 〈봄녘 마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찍이 드낙은 이곳의 〈거친 술잔 술집〉에서 주인장인 〈술대장 클크〉에게 얻은 정보로 머리를 돌릴 수 있었다.

“삼엄하군.”

드낙의 말에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목책으로 둘러진 마을 입구는 단단히 막혀있었고, 장애물로 가득했다. 목책의 어떤 곳은 거칠게 뜯겨져 나가 있었다. 수복은 꿈도 못 꾸는 듯했다.

댕딩덩!

“기사님이다! 기사님이 오셨다!!!”

울림과 소리가 일정하지 않은 저급한 종소리가 울렸다. 여섯 필의 말이 이끄는 6두마차를 보고 기사를 떠올리지 않는다면 인생 헛산 놈밖에 없었다.

〈추적 용병단〉은 장애물을 치웠다. 늑대들은 냄새를 맡으면서 주위를 경계하는 모습을 보여서 다른 용병들의 간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당장 〈놈〉이 나타날 것 같았다.

드낙은 붉은색의 털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붉은털의 곰〉을 격퇴했다? 그러기엔 어려울 텐데···’

몬스터와 야수는 확실하게 카테고리가 분리되어있었다. 하지만 그 강함은 별반 차이가 나지 않았다. 특히나 사람을 잡아먹기 시작하는 야수 중에서도 〈일백야수(一百野獸)〉가 된다면 보통 용병단도 함정으로 잡는 것이 고작이었다.

함정을 파다가 걸리면 뭐··· 묘를 파는 게 더 생산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장애물을 치우자 빠르게 문이 열렸다. 마차에서 나온 아크온을 선두로 일행이 들어섰다.

“와아아!!”

모두가 환호성을 지르며 벌써부터 상황이 해결된 것처럼 굴었다. 기사가 가지는 무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었다. 드낙은 그 광경을 한 번도 못 봤기에 미심쩍어했다. 신뢰성 없는 정보와 전문가라는 거짓 딱지를 들고 있으면 고졸도 순식간에 유명 펀드매니저가 된다.

이런 곳에서 기사에 대한 맹신을 드낙이 믿을 리가 없었다.

촌장은 미리 마중을 나와서 고개를 깊이 숙였다. 아크온은 목례도 하지 않고, 그를 일으켜 세웠다.

“고생이 많으셨소. 일백야수가 된 붉은털의 곰은 내 검으로 베어 죽여 이곳에 데려와 원한을 풀겠네.”

“감사합니다! 이쪽으로 들어오시죠.”

아크온은 안내를 받으면서 뒤를 돌아보며 외쳤다.

“드낙 용병단장! 따라 들어오게.”

“예.”

드낙은 대답을 하며 다른 이들에게 빈집을 구해놓으라고 지시했다.

“예!”

도렌이 거침없이 대답했고, 이스핀을 비롯한 나머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군기가 없다고 할 수 있겠지만 용병단에 군기를 잡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애초에 전쟁은 군기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제법 많은 전쟁에서 승리한 미국의 고증이 흘러넘치는 영화를 본 뒤로 드낙은 그런 일본식 고정 관념에서 벗어난지 오래였다.

하사 앞에서 두 다리를 테이블에 얹어놓고 담배 피우며 작전 브리핑을 듣는 미군의 모습은 아침 메뉴를 못 외워서 정강이가 까이던 드낙의 현역시절에 대한 경험을 오물로 만들어버리기에 충분했다.

〈촌장 카레스〉는 40~50대로 보이는 자였다. 전에도 한 번 만난 적이 있었기에 드낙과 촌장은 악수를 하며 서로 근황을 나누었다. 그 사이에 안주와 술이 차려졌다.

척 봐도 무인으로 보이는 떡 벌어진 어깨와 통나무만 한 골반을 가지고 있는 아크온 몽펠리에였다. 차보다는 술이었다. 과일주보다 독주였다.

“이미 세 개의 강가에 있는 마을 다섯 개와의 연결도 끊겼습니다. 누구도 밖에 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겠지. 하지만 시기가 빠르군. 곰 녀석이 그렇게까지 대범해질 수 있다는 것은 인간이 마련한 싸움판에서 한 번 이겼다는 뜻이다. 아닌가?”

그 말에 촌장이 땀을 뻘뻘 흘렀다.

“예··· 예··· 사실은 마을끼리 돈을 모아서 제법 큰 용병단을 고용했었습니다.”

아크온이 혀를 차면서 술을 마시고 안주를 하나 양손으로 뜯어서 입에 털어 넣었다.

“〈일백야수〉가 등장한다면 무조건 문을 걸어 잠그고 기사를 기다리라는 것을 모를 리는 없을 텐데··· 그런 짓을 벌였기에 목책까지 물어뜯을 정도로 놈이 대범해진 것 아닌가?”

“죄, 죄송합니다. 하지만···”

아크온이 손을 들어 촌장의 변명을 막았다.

“아네. 나도 알아. 하루가 지나갈수록 궁핍해져 갔겠지. 그것을 모르는 게 아니네. 하지만 이미 그 방식이 잘못되었기에 한참도 전에 그러한 종류의 공문이 퍼졌지 않나? 망한 방법을 지금도 쓰고 있으니!”

할 말이 없었다. 가장 열심히 일해야 할 여름에 손발이 묶여있으니 미칠 노릇이었고 당장 눈앞에서 사라지는 이득을 버리기에는 그들은 결코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것은 독이었다.

‘돈에 눈이 먼 용병들도 마찬가지로 멍청하군.’

아크온은 술을 병째로 비워냈다. 이렇게 어리석은 이들을 앞으로 이끌어야 했다. 불쌍한 아랫것들을 위해서 검을 들었지만 그 답답한 짓거리를 눈앞에서 볼 때마다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것이 아크온의 입장이었다.

‘돈도 모으지 못하고 농사지은 것으로 일 년을 지내는 농가가 대부분인데···’

드낙은 〈봄녘 마을〉과 〈세 개의 강가〉에 있는 여섯 개의 마을의 마음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자신 또한 〈퇴역군인 락손〉이 아니었다면 화폐를 그렇게 쥘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것을 알아차렸을 때는 마을에서 장사를 하러 갔을 때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횃불 성채에 있었을 때였고, 그것을 뼈저리게 체감했을 때는 용병단의 배분을 할 때였다.

아무튼, 마을들의 판단은 결코 나쁘지 않았다. 빌어먹을 기사 놈은 2달이 넘어서 여기에 도착했기 때문이다. 인력이 없어서 였기도 했지만, 해도 해도 너무했다. 마치 스페인의 행정처리를 보는 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촌장은 사과하기 바빴다. 아크온이 유일한 대책이었기 때문에 반항 한 번 하지 못했다.

용병단은 27명으로 이루어진 제법 큰 규모였다.

“〈칼흉터 용병단〉이라고 불리는 용병단이었습니다. 인원은 27명이었고···”

촌장이 두런두런 돌아오지 못한 용병단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아크온이 드낙에게 물었다.

“아는 용병단이오?”

“예. 들어본 적 있습니다. 하지만, 야수 잡이에는 경험이 없는 용병단입니다.”

“그럴 리가!”

촌장은 소리를 질렀지만 이내 시무룩해졌다. 눈은 테이블을 보고 있게 되었다.

“계속해보시오.”

“인원이 많은 것부터 웃기지 않습니까? 야수를 잡는데 분명 몰이가 필요하지만 돈이 안되죠. 일용직을 고용했다고 쳐도 적정 인원이 있는 법입니다. 일용직이라면 촌장께서 못 알아차릴 리가 없죠.”

“또한, 상단을 호위하며 돈벌이하던 놈들이었습니다. 제가 들어서 압니다.”

아크온이 한숨을 쉬었다.

“상처 하나 못 줬겠군. 길로 다니던 놈들이 무슨 일백야수를···”

독한 술을 벌써 3병째 마시는 아크온 때문에 촌장은 시간이 지날수록 소극적으로 변했다. 술 마신 기사와 말다툼이라니? 지나가는 개도하지 않을 짓이었다.

“마을의 희생자는 많은가?”

추궁 뒤에는 위로가 이어졌다. 드낙은 아크온이 술에 전혀 취하지 않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아주 계획적으로 이루어지는 화법을 구사하고 있었다. 호탕해 보여도 귀족은 귀족. 배운 것이 많았다.

“예··· 고아가 된 이들도 많습니다.”

촌장은 구구절절 희생자들을 이야기했다. 가난한 순서대로 마을 사람들은 희생되었다. 아크온은 촌장의 희생자가 하나씩 이야기될 때마다 깊게 애도해주었다. 형식적이었지만 효과는 좋았다.

아크온은 촌장의 집을 잠자리로 가지게 되었다. 촌장이 집째로 내주었고, 그는 다른 집에서 하루를 보낸다고 했다. 그는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다. 촌장과 함께 밖으로 나온 드낙은 몰래 자신을 지켜보는 아이들을 볼 수 있었다.

‘저들 중에 고아는 몇 명이나 될까.’

괜히 감성적으로 변한 드낙이었다. 기사를 기다리며 휴식시간이 길어서일까, 냉정하게 아이들을 볼 수 없었다. 괜히 삐딱하게 눈을 돌리며 아이들을 외면한 드낙은 용병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저녁을 미리 준비하고 술이 돌아가는 용병들은 화덕에 앉아서 킬킬거리며 음담패설을 나누었다. 드낙이 있을 때와는 차원이 다른 더러움이 묻어났다. 도렌은 그저 듣기만 하면서 웃기만 했다.

제법 취기가 돈 이스핀은 불만을 가지고 분배에 대해서 말했다.

“귀족도 알아주는 용병단인데, 분배도 똑같이 나누어 받는 게 정상 아닌가? 은화 다섯 닢을 받아도 이번에 오면서 은화 1닢을 공금으로 썼는데, 한 닢 넘게 공금으로 지정된다고 치면 고작 동화 500닢밖에 내 손에 안 들어오잖나. 이게 말이 되냐고.”

“단장은 은화 1닢을 가져가고 말이지.”

'나이도 열다섯밖에 안 되는 놈이···'

아무리 강해도 기습적인 칼침에는 영웅도 죽는 법이었다. 도적 30명 상대로 승리를 이끌었네마네 그런 소리에도 베리븐은 꿈쩍도 안 했다.

〈무쇠방패 베리븐〉은 좋다고 수긍하며 힘을 보태주었다. 중견 용병인 그는 이 용병단이 전에는 동등한 분배를 받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흔적이 분명하기에 다시 그렇게 바꾸고 싶어 했다.

“혼자서 어떻게 기사를 보조하겠냐고. 우리가 있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는데 자기만 많이 가져가는 건 좀 아니지. 따로 더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니고.”

온갖 궤변이 난무했다. 하지만 취기가 조금 올라왔기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도렌은 여기서 주도적으로 나갈 수 없었다. 애초에 그럴 성격도 아니었다.

“용병단 꾸리기에 좋은 집도 내가 구해다 줬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시골 촌놈이···”

이스핀은 돈 때문에 드낙을 안 좋게 보게 되었다. 전투가 아니라면 드낙이 하는 일이 많이 없다고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금도 보면 이상해. 그 어떤 기준도 없지. 말 그대로 단장 마음대로 언제든지 걷을 수 있지. 의뢰비도 받고 다시 빼앗듯이 가져갔다며?”

추적 용병단에 들어오면서 베리븐과 동기인 셈인 〈명사수 젠〉은 베리븐과 관계를 형성하고 있었고, 소속감을 위해서 이스핀의 말에 추가로 불평을 내놓았다.

“그렇지. 그렇지.”

고개를 끄덕이던 이스핀이 웃음을 지었다. 이렇게 뒷담화를 한 번 쫙 풀어보니 마음이 맞는 소리를 하는 이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쿵쿵쿵.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이스핀이 벌떡 일어나서 문을 열어주었다.

“단장님! 오셨습니까! 저녁 준비 다 하고 먼저 먹고 있었습니다!”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며 싱글싱글 웃었다. 도렌은 그런 이스핀을 보며 속으로 쓴맛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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