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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103화 (103/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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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은 목검을 쥔 채 폭풍처럼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것을 막아내고 있는 것은 이스핀이었다. 하지만 이스핀은 형편없이 상단을 허용하고 있었다.

‘머리 방어가 전혀 안 되네.’

이스핀이 쓴 투구가 또 한 번 덜컹거렸다. 인간의 시야는 단점투성이였기에 머리를 한 대 맞아도 또 한 번을 허용했다. 하지만 누구도 비웃지 않았다.

실전에서 머리를 공격당하는 것은 보기 힘든 일이기 때문이다. 방패가 앞을 가로막는 것은 물론이고, 매번 상황이 다르다. 그런 상황에서 상대의 양팔에 들려진 무기를 지나쳐 머리를 공격할 수 있는 것은 고수였다.

그런 고수를 만났다면 이 자리에 서있는 게 아니라 쓰러져 죽어 야지에서 짐승에게 뜯어먹혔을 것이다.

한 합으로 결정되는 머리의 타격을 대련을 통해서 경험으로 축적 시켜주는 것은 〈무쇠방패 베리븐〉에게도 값진 경험이었다. 그조차도 상단의 공격에는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헉! 헉!”

머리를 계속 맞았기에 호흡을 관리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1분도 되지 않아서 이스핀이 제 호흡에 지쳐서 뒤로 물러나며 엉덩방아를 찧었다. 현기증이 몰려왔다.

“으흐!”

헛구역질을 하고 싶어도 버텼다. 주변에서 자신을 보고 있는 눈 때문이었다. 쪽팔리게 헛구역질이라니···이스핀에게는 결코 못할 일이었다.

짝짝짝.

박수소리에 드낙의 시선이 돌아갔다. 그곳에는 떡 벌어진 어깨를 하고 전사를 위한 골격을 지닌 기사가 있었다.

“실례지만···”

드낙의 말을 끊고 아크온이 입을 열었다.

“아크온 몽펠리에라고 하오. 게실리안 파이룬님의 소개로 이렇게 찾아왔소.”

직접적으로 듣지 않았지만 드낙이 〈자유기사〉임을 상단 방어 대련을 보며 다시 한 번 확인한 아크온이었다. 극단적인 하대는 쓰지 않았다.

“아! 반갑습니다. 그분은 잘 계십니까?”

“지휘관이라는 책무가 어찌 좋게만 지내겠나. 눈 밑이 검은 것이 언제 과로로 쓰러질지 모를 정도네. 파하하!!”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린 아크온이 집안으로 들어서려고 할 때, 뒤에서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여기 드낙이라는 평민이 있다고 들었다!”

드낙은 아크온의 떡 벌어진 어깨 때문에 대문을 볼 수가 없었다. 옆으로 걸음을 옮기기도 전에 대문에 잠겨있던 자물쇠가 툭하고 바닥에 떨어졌다. 얼굴에 비해서 두툼하고 큰 로브를 입은 중년인이 안으로 들어섰다.

“누구십니까?”

드낙의 물음에 마법사 차림을 한 중년인이 입을 열었다. 그의 입술은 꿈찔거리기만 했는데도 소리가 크게 들려왔다.

“알버트 스펜서다.”

“헉!”

“미치잉, 마법사!”

도렌은 경악했고, 미치광이 마법사라고 말하려던 이스핀이 괴상한 소리를 내며 마법사라고 소리를 질렀다. 다른 용병들도 마찬가지였다. 〈횃불 성채〉에서 술을 마시다 보면 안줏거리로 한 번은 나오는 자였다.

“마법사님께서 이런 누추한 곳에는···”

드낙이 그에게 말을 하기도 전에 성질급한 아크온이 헛기침을 하면서 나섰다. 드낙의 사이에 몸을 움직이며 그를 가렸다.

“먼저 온 손님이 있는데 마법사께서는 좀 기다려주시오.”

“전날에 예약한 것에 대한 것을 이야기해야 하니 선약은 내가 먼저요.”

기사의 말에도 마법사는 거침없이 대꾸했다. 하지만 말다툼은 오래가지도 않았는데, 서로가 서로에 대한 강함을 짐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맞다이에서의 전투력이 아니라 사회적 영향력이었다.

결국 짧은 눈싸움 끝에 이 주변에 대한 영향력이 적은 〈몽펠리에 남작 가문〉의 아크온이 눈을 돌려야 했고, 드낙에게로 눈이 향했다.

‘당연히 기사가 나한테는 중요하지.’

〈백인야수〉를 잡기 위해서 온 기사일 것이 분명했다.

드낙에게 우선순위는 당연히 기사였다. 마법사에게서 받아낼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판단은 그 반대가 되어야 했다.

‘불만을 가지고 찾아왔구나. 하지만 크게 분노한 것 같지는 않다. 하지만 만에 하나를 생각해서 아크온 경이 있을 때, 먼저 처리를 해야 한다.’

적당히 중재하기보다는 기사가 의뢰를 하러 직접 왔다는 것을 보았기에 함부로 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죄송하지만, 일이 일찍 끝나는 마법사님과의 이야기를 먼저 해도 되겠습니까?”

“음! 불쾌하긴 하지만 내 이야기는 제법 길어질 것이니 기다리도록 하겠소.”

드낙은 자신이 사과할 일이 아니었지만, 아크온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하며 다른 용병들에게 말했다.

“저들이 대련하는 것이라도 구경하고 계시겠습니까?”

“좋지.”

아크온이 알아서 뒷마당으로 향하자 용병들이 죽을 상을 지었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었기에 순순히 따라갔다.

‘기사가 의뢰를 하러 올 정도라니. 제법 거물이군. 이제 의뢰 하나 했다던데.’

〈마법사 알버트 스펜서〉가 눈을 좁혔다. 괴짜라고 불릴 정도로 오만하고 남의 눈치를 안 보고 살아가는 그였지만 멍청하지는 않았다. 이미 〈추적 용병단〉에 대한 정보를 얻을 만큼 얻은 상태였다.

알코올이 그리 강하지 않은 과일주가 올라왔다.

“그냥 물이나 한잔 가져오게.”

용병단을 찾아온 기사를 보고 나서는 태도가 조금 바뀌었다. 드낙은 속으로 그를 비웃었다. 마법을 손에 들고 있어도 결국 인간은 인간이었다. 그것이 드낙이 손에 쥘 송곳이기도 했다.

‘결국에는 인간.’

“제작 의뢰 때문에 오신 것 맞으시죠?”

“맞다. 건방지더군.”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원하던 것은 파이어볼 때문이었습니다.”

“흥. 그것은 되었다.”

본래라면 더 혼쭐을 낼 생각을 가졌지만 알버트 마법사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실력이 좋은 것을 들었지만 기사가 찾아올 정도일 줄이야. 자유기사인가? 그렇게는 보이지 않는데.”

드낙은 웃으며 말했다.

“그저 실력 좋은 용병일 뿐입니다. 그러니 기사님도 찾아오시는 것이겠죠.”

“명예보다는 돈이라는 소리군. 실력도 없는 놈이 그런 말을 하는 것만큼 꼴사나운 것도 없지만···”

물을 한 모금한 알버트가 자신의 목적을 밝혔다.

“〈파이어볼〉 정도를 막을 수 있는 항마력 장비를 만들어주겠다. 물론 마법이 부여될 물건은 네가 가져와야 한다.”

드낙은 다음 말을 기다렸다. 금화 몇 닢에 마법사가 움직일 리 없었다. 척 봐도 오만함이 몸과 마음에 베여있었다.

‘다른 목적이 분명 있을 터.’

“몬스터의 부산물을 가져와라. 희귀하면 희귀할수록 좋겠지.”

“굳이 저를 선택하신 이유가 있습니까?”

“모르는 게 상책이다.”

알버트는 거기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 자신의 오만함이 이제야 독이 되어서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있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나 다름없었다. 결국 그 내막에 대해서 모르는 〈추적 용병단〉에게 의뢰를 해야 할 지경이었다.

알아도 드낙은 고개를 끄덕였을 것이다. 이것은 징검다리에 지나지 않았다. 목적지는 더 멀리 있었다. 빌어먹게도 정말로 그러했다.

‘흠···’

“마법 장비에 대한 제약이 두렵지 않습니까?”

“내가? 왜? 노망난 마법사들이 던전 만들어놓은 굴만 발견해도 수두룩하게 출토되어서 암시장에서도 곧잘 팔리고 있을걸? 변명거리는 얼마든지 지어내면 그만이다.”

마법사가 당당하게 나오는 이유는 굳이 귀족이 아니더라도 운 좋게 마법 장비를 하나 들고 있는 놈들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저 딱 잡아떼면 그만이라는 소리였다.

과학수사 같은 수사가 있을 리 없었으니, 드낙도 그 말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가 아니면 못 잡는 것이고 기득권인 마법사를 저격하는 놈들이 있을 리가 없었다.

“정말로 그게 끝입니까?”

“본래는 좀 괴롭혀주려고 했지. 흐흐. 부산물은 무엇이든 상관없다. 몬스터면 된다.”

“예. 알겠습니다.”

그것을 어디에 쓸 것이냐라는 질문은 입에 내걸지도 못했다. 그 정도로 눈치가 없는 게 아니었다. 신분의 격차는 모든 분야에서 격차가 굉장했고, 오만한 마법사의 앞에서는 입조차도 함부로 놀리면 안 되었다.

드낙은 짧은 순간에 알버트 스펜서의 오만함을 잘 캐치해냈다. 그리고 그런 조심스러움은 마법사를 만족시켰다.

‘감옥에서 매질이라도 시키려고 했지만 넘어가야겠군.’

몬스터 부산물을 건네준다면 드낙이 준비해온 물건에 마법 부여를 해주면 그만이었다. 만약 드낙이 그것을 고자질한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그는 마법사였고, 기득권층이었다. 겉으로 보이는 처벌만 받고 속으로는 양고기를 썰며 스테이크를 먹을 것이다.

마법사가 떠나갔다. 체격에 비해서 로브가 기이할 정도로 부풀어 올라있는 모습은 드낙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마치 폭탄을 가득 짊어진 채 걸어 다니는 테러범과 비슷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올라가시죠.”

교대하며 대련해도 10차례를 대련한 용병들이 목검을 내려놓았다. 아크온 몽펠리에가 대차게 웃으며 말했다.

“역시 싸움은 개싸움이 가장 재밌군! 좋은 볼거리였소. 파하하!”

악의 하나 없이 즐거웠다고 말했지만 용병들의 표정은 좋지 않았다. 드낙이 내어준 과일주를 마시며 밍밍하다고 투덜거렸기에 새로운 술을 가져와야 했다. 제법 독한 놈이었다.

“크. 이게 술맛이지.”

술의 독함을 즐기는 아크온을 보며 드낙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게실리안 지휘관님을 통해서 오셨다면 의뢰를 하러 오신 것 맞습니까?”

“그렇소. 누구한테 말할 것은 아니지만, 흑마법사를 겪어봤으니··· 지금 어디에서 무슨 일이 터져도 이상하지 않지. 그렇기에 내가 이렇게 찾아온 것이오.”

상황이 상황이었다. 〈일백야수(一百野獸)〉가 된 것이 가죽털만 봐도 알 수 있는 〈붉은털의 곰〉이었다. 보통 야수가 아니었다. 전신이 붉은 털이었고, 그것이 목격된 것만 해도 한 달 반이 넘었다. 지금은 길목이 폐쇄되어 있을 정도였다.

‘이빨이나 눈 다른 부위도 붉게 물들었을 수도 있다.’

그런 상황만이라면 아크온도 홀로 갔겠지만, 흑마법사 때문에 뒤통수가 살살 간지러웠다. 간악한 놈들이었기에 최소한의 호위 인원을 데리고 가고 싶은 것이다.

“정확히 의뢰 내용이 뭡니까?”

“단장만 알고 있으시오. 일백야수가 된 붉은털의 곰을 사냥하는데 다른 놈들이 끼어들지 않게 해주는 것이 그대 추적 용병단의 임무네.”

드낙이 손을 꿈찔거렸다. 예상보다 너무 기사가 후한 의뢰를 했기 때문이었다. 아크온은 드낙이 〈자유기사〉임을 단단히 믿고 있었다. 상단에 대한 방어대련을 하는 것부터가 냄새가 풀풀 풍겼다.

‘명예를 주지 않을 수는 있지만 자존심이 상하지. 나, 스스로 일백야수를 잡을 수 있다.’

용병은 만에 하나를 위해서 대동하는 것일 뿐이었다.

“단순 호위 임무라고 봐야 합니까?”

“내가 죽으면 일백야수를 못 잡을 수도 있으니, 단순한 호위 임무라고는 보기 힘들군.”

그 말에 드낙이 웃음소리를 냈다. 괜히 호승심이 달아올랐다. 아크온의 입꼬리가 흉악하게 올라갔다. 무인(武人)인 그가 드낙의 웃음소리에 깃들어진 호승심을 못 느끼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그러나 드낙은 놀라운 속도로 호승심을 지워버렸다.

“좋습니다. 그럼 의뢰금을 올리는 게 맞겠군요. 보통 의뢰와는 조금 다르지 않습니까?”

“평균적인 의뢰가 은화 1닢이니, 은화 3닢을 주지.”

보통 용병단이라면 크게 기뻐할 것이다. 하지만 드낙은 아니었다. 자신을 포함해서 용병 다섯의 한 달 식대만 은화 1.5닢이었다. 앞마당에서는 텃밭을 일구자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는데, 용병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식대를 줄이는 것은 〈용병 공금〉을 줄이게 만들어서 자신들에게 이득이었기 때문이다.

특히나 여관 생활을 전전하며 많은 돈을 모으지 못한 〈무쇠방패 베리븐〉이 가장 열성적이었다.

“두당 은화 1닢을 쳐주십시오. 절대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렇게 하면 다른 것을 내놓아야 할 것이네.”

눈칫밥이 이래서 중요했다. 드낙은 냉큼 대답했다. 이 세상은 마법 장비와 기사의 비전 때문에 귀족들은 악랄한 것 같아 보이면서도 명예를 중시하는 면이 강했다. 정확히는 공적에 대한 욕심이 대단했다.

“제 이름 따위 무엇 중요합니까? 당장 애들 먹는 것, 입는 것도 한 달에 은화 2닢이 나갑니다. 너무 일을 쉽게 봤다가 아주 크게 데였습니다.”

스스로 자신의 상황이 안 좋다고 뻥카를 치자 아크온 몽펠리에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드낙에 대한 게실리안 지휘관의 무력 판단을 기본 잣대로 보고, 그에 상응하는 자존심을 드낙이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정말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고 느꼈다.

“그렇다면 은화 5닢으로 하지.”

말을 마친 아크온이 강철 글러브를 손으로 벗었다. 드낙은 단번에 특이한 곳에 굳은살이 있는 그 손을 볼 수 있었다. 아크온은 목 밑으로 손가락을 넣어서 뒤적거리더니 줄 하나를 잡아당겨 가죽 주머니를 꺼냈다.

그리 많은 동전이 들어있지 않았다.

“이건 금화 주머니고···”

덜렁거리는 가죽 주머니를 뒤로하고 또 하나의 가죽을 꺼내서 은화 다섯 닢을 꺼냈다. 드낙은 냉큼 그것을 챙겼다.

“출발은 언제 하시겠습니까?”

“내일 새벽에 나갈 수 있는가?”

“당장 준비하겠습니다.”

드낙이 몸을 일으키자 아크온이 말했다.

“마차를 이 저택 앞마당에 두어도 되겠는가? 가능하다면 개인실도 내어줬으면 하는데···”

“네. 그리하십시오.”

청소하는데 제법 시간이 걸렸고, 드낙이 스스로 청소를 하자 아크온은 수고비까지 내어주었다. 은화는 아니었지만 그의 마부는 동화 100닢을 건네주었다. 그들이 그처럼 돈을 아낌없이 주는 이유는 단순했다.

드낙이 쓸만하다는 것을 게실리안 지휘관이 보증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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