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2 <-- 미끼를 물고 -->
〈왕국 야영지〉는 50명의 병사를 수도에서 지원받은 상태였다. 당연히 강도들의 토벌이 주목적이었다. 총원 100명에서 150명으로 늘어난 것은 흑마법사와 강도들의 유착관계가 발견되었기 때문이었다.
‘아주 박살을 내버리겠다는 것이 수도의 판단이다.’
그 판단 때문에 죽어나가는 것은 게실리안 파이룬이었다.
하찮은 쥐새끼라도 흑마법사가 관여되면 소 잡는 칼이 들어 밀어지기 마련이었다.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은 정찰 후 포위해서 모조리 말살하는 전략을 수립하고 있었기에 왕국 야영지는 여전히 병사가 많았다.
두두두···
〈남부 황금 평야〉는 수도로 향하는 길이었는데, 그곳에서 올라오는 마차 한 대가 야영지를 지키는 병사의 눈에 들어왔다.
말이 6마리였고, 마차의 크기도 컸다. 마차의 양쪽 끝 모서리에는 황금으로 도색된 검과 방패 장식이 걸려있었다.
마부의 복장마저도 고급 옷감을 쓰고 있는 것이 눈으로 보였다. 무식하게 딱딱한 옷감이라면 보여줄 수 없는 모습을 옷이 보여주고 있었다. 바람에 자연스럽게 흔들리는 옷은 고급스러움의 증거나 다름없었다.
“몽펠리에 가문의 마차요!”
마부가 거리가 가까워지자 소리쳤다. 병사들은 그럼에도 말의 눈을 창으로 겨누었다. 알아서 적당한 거리에서 말들이 멈추었다. 겁이 많은 말들은 덩치는 좋아도 전투마로 쓰이지 못하고 마차를 끄는데 쓰이는 이유가 확연하게 보였다.
마부가 마차의 문을 열기 전에 병사들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신호를 보내기도 했다. 측면에 있는 병사는 6두 마차의 길이에 감탄하고 있다가 마부의 끄덕임에 서둘러 시선을 돌렸다.
키는 180cm 언저리에 불과했지만 마차 문을 옆으로 빠져나와야 할 정도로 떡 벌어진 어깨는 비현실적이었다. 기사는 마차 안에서 병사의 키만 한 〈자이언트 해머〉를 양손으로 꺼내 한 손으로 잡고 투구를 다른 손 옆구리에 낀 채 웃음을 지었다.
척!
병사들이 경례를 올렸다. 소리가 날 수 있게 무기를 대각선으로 하늘을 보게 만들면서 갑옷을 쳤다. 그 모습에 흡족한 웃음을 띤 기사가 고개를 끄덕이자 병사들이 손을 내렸다.
“〈아크온 몽펠리에(Arcon Montpellier)〉다. 게실리안 파이룬님을 뵈러 왔다.”
게실리안 지휘관과는 다르게 거침없이 병사들을 하대했다.
“바, 바로 안내하겠습니다.”
긴장한 병사가 목소리를 처음에 떨며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 아크온이 병사를 말렸다.
“미리 언질을 넣어라. 느긋하게 가도 괜찮으니, 여기서 기다리겠다. 연락도 없이 찾아왔으니.”
“예!”
병사는 빠릿하게 대답하고는 열성적으로 달렸다. 잠시 후, 아크온 몽펠리에는 게실리안 파이룬과 마주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만나자마자 서로의 가문을 추켜세워주었다.
“오크 분쇄기라 불리는 몽펠리에 가문의 사람을 만나다니, 대단한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메디오 지방, 북부의 가문이라 불리는 파이룬 가문을 만나 대단한 영광입니다.”
훈훈하게 잘 알려진 가문의 좋은 말들이 계속해서 오고 갔다. 그다음에는 서로의 근황을 나누었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철저하게 정보를 차단했지만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
같은 귀족에게는 모든 정보를 아낌없이 주었다.
“흑마법사의 활동이라니···”
그가 혀를 내둘렀다. 그리고 그 속에 있는 〈추적 용병단〉에 대한 것도 들었다. 흑마법사와 싸워서 살아남은 용병단장은 상당히 흥미가 갔다.
그것에 대해서 상세하게 말해주며 게실리안 지휘관은 아크온 기사에게 당부했다.
“조심하십시오. 놈들의 간악함은 널리 알려져 있지 않습니까.”
“말씀 감사합니다. 허나, 파이어볼을 스크롤로 찢는 저급한 흑마법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키메라는 위협적으로 보이지만 묘사되는 난잡함을 보니 기사에게는 위협적으로 보이지는 않습니다.”
자신감을 표출했지만 속내는 달랐다.
‘병사라도 몇 빌려야겠군.’
승률이 낮다면 아예 손절하는 놈들이 흑마법사란 족속들이었다. 〈왕국 야영지〉를 노렸다는 정황이 포착된 이상 자신도 조심해야 했다. 병사 100명이 있는 야영지를 노렸다는 소리가 아닌가? 비록 실패했지만 다른 계획도 준비하고 있다는 반증이나 다름없었다.
“아크온 몽펠리에님. 자신감도 중요하지만 혈혈단신으로는 위험한 상황입니다.”
“흠! 그럼 만약을 위해서 병사라도 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열 명이라도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게실리안 지휘관의 말에 기대감을 가지며 아크온이 말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완곡한 거절이었다.
“〈남부 황금 평야〉의 안전을 위해서 저도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태라···수도에서 병사 오십을 더 받을 정도로 압박이 심합니다.”
“수도에서 병사를 그렇게나 주었습니까? 하루만 있다가 바로 출발해서 몰랐는데, 허어···”
병사 50명은 보통 숫자가 아니었다. 제법 돈을 버는 시민 5천 명이 있어야지 유지되는 병사의 숫자였다. 일반 농가는 끽해봤자 군량미를 받쳐주는 것에 불과했고, 만약 일반 농가의 곡물을 팔아서 병사 50명을 꾸리려면 2만 명은 있어야 했다.
유지하는 것과 병사를 초기 육성하는 값은 크게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또한 일반 농가의 수익이 크게 낮은 것도 한 몫했다. 산업 자체가 높은 수준의 소득을 창출해내지 못했다.
대부분이 농사를 지으니, 값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무엇보다도 악독할 정도로 계급이 쥐고 있는 돈의 차이가 컸다.
“확실하게 싹을 지우고, 만에 하나 북부 지방에 상황이 발생한다면 곧바로 동원하게 한다는 것이 수도의 판단입니다.”
그 말에 아크온이 고개를 끄덕였다. 동시에 게실리안 지휘관이 짊어지고 있는 짐이 가지는 책임감을 느낄 수 있었다.
‘보통 힘든 것이 아니겠지.’
영향력이 있어야 갈 수 있는 곳이었고 경쟁에서 패배해서 이곳의 지휘관으로 부임하지 못했지만 실패하면 말짱도루묵이었다. 기사로 활동하며 경험을 쌓는 것이 되려 나을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20km를 밟다가 사고 나는 것과 40km로 서행하다가 사고 나는 것의 차이였다. 목적지에 빨리 도착할 수 있지만 삐끗하면 크게 손해를 보는 것이 지휘관이었다. 27살에 지휘관을 맡고 있는 파이룬의 눈 밑은 검게 변해있었다.
고생하고 있다는 증거였다.
“건투를 빕니다.”
“감사합니다. 아크온 몽펠리에님께서도 하시는 일 잘 풀리시길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서로 술 한 잔을 가볍게 나누며 몸을 일으키는 아크온 기사에게 게실리안 지휘관이 조언을 해주었다.
“〈횃불 성채〉에 방문해서 〈추적 용병단〉을 찾으십시오.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특히나 용병단장 드낙은 키메라 하나 정도는 감당할 수 있는 실력자입니다.”
“대단한 믿음을 가지고 있으시군요. 제가 모르는 것이 있습니까?”
“그것을 말하는 것은 무례할 수가 있어서···”
대답을 회피했지만 그 회피하는 행동 자체가 말해주는 바를 아크온이 모를 리가 없었다. 귀족이 말을 아끼고, 상대를 존중하는 것은 상대가 비슷한 수준일 때뿐이었다.
‘자유 기사인가.’
가문의 힘을 받지 못하는 기사를 좋게 말하는 단어가 〈자유기사〉였다. 말이 자유기사지, 사냥개처럼 부려지는 것이 보통이었다. 명예 하나 쥐지 못한다. 그래도 돈은 쥘 수 있었다. 대부분의 자유기사들은 명예를 쥐지 못해서 무리하다가 죽는 것이 보통이었다.
‘좋군.’
백작가문이든 남작가문이든 면대면에서는 서로 극존대를 하는 것이 보통이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훈훈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병사들은 아크온의 떡 벌어진 어깨와 두툼한 골반 그리고 무지막지한 허벅지를 보며 혀를 내둘렀다. 전신갑주(全身甲冑, Full Plate Armor)를 둘렀기에 더욱 비대했다.
“〈버팔로 나이트(Buffalo Knight)〉라고 소문이 자자하던데 정말로 엄청나군···”
“마차도 한 손으로 들어 올린다던데.”
“몸이 약하면 머리가 고생한다고, 아주 힘이 장사라서 거칠 것이 없다고 하던 것이 거짓이 아니었네.”
힘의 대명사인 아크온 몽펠리에는 몸이 강하면 머리가 고생하지 않는다는 명언을 만들어낸 기사였다. 머리가 나쁘면 욕먹는 것이 보통의 상식인데 그것을 부쉈기에 인기가 많았다.
밤을 야영지에서 지내고, 곧바로 〈횃불 성채〉로 향했다. 6두 마차가 호위병력 없이 홀로 질주해도 언덕에서 숨어서 지켜보는 산적들은 덤비지도 못했다. 저렇게 비싸 보이는 마차 속에 강철을 두른 기사가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어렸을 때 몇 번이나 봤기 때문이다.
검문을 위해 복작거리는 사람들의 옆을 지나는 마차가 속도를 줄인 채 지나갔다.
“몽펠리에 가문의 문장이다.”
눈썰미가 있는 상인의 말에 모두 그 문장을 주시했다. 망치가 곧추서있고, 넝쿨이 휘감은 형상이었다.
병사들이 보이자 마부가 우렁차게 소리쳤다.
“몽펠리에 가문의 마차요!”
“정지!”
병사들이 마차를 멈추어 세우는 사이에 뒷짐을 지고 있던 베테랑 병사가 서둘러 복장을 바로잡고 뛰어왔다. 그가 도착하고 나서야 마부가 병사들에게 고개를 한 번 끄덕이며 신호를 주며 문을 열었다.
아크온 몽펠리에가 밖으로 나와서 병사들의 경례를 받았다. 무기는 들고 있지도 않았고, 투구만 옆구리에 척 걸친 채 오른손에 쥔 패를 건넸다. 금으로 된 양손으로 쥐어도 남을 정도로 큰 귀족패였다.
“화, 확인했습니다.”
“여기에 10년 전에 왔는데, 아직도 경비대장이 세베긴인가?”
수습 기사 시절, 성에 대한 실전 지식을 쌓기 위해서 복무했던 경험이 그에게 있었다.
“예! 그렇습니다!”
“한 번 보고 가야겠군.”
그렇게 경비대장과 해후도 하고, 성주를 만나서 점심 식사까지 했다. 늦은 오후가 되어서야 북부 지역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응?”
철로 된 대문에 잔뜩 모여있는 애들이 아크온의 눈에 들어왔다.
“뭘 그렇게 보고 있느냐?”
“늑대요!”
자신을 보지도 않고 소리를 지르는 어린애를 보며 아크온이 미소 지었다. 아크온이 철문을 탕탕 두드리자 아이들이 소리를 빽하고 질렀다.
“도망쳐야 해!”
“꺄아!”
호다닥!
정신없이 뛰어갔다.
반대로 뛰던 녀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려가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애들을 향해 양주먹을 꼭 말아 쥔 채 다시 되돌아갔다.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비싸 보이는 전신갑주를 입고 있는 아크온을 보고 물으면서 알아서 문을 열어주는 이는 〈수염 도렌〉이었다. 늑대들에게 주기 위해서 고기를 꺼내고 있는 와중에 대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들었다.
“용병단에 왜 왔겠는가? 의뢰를 하러 왔지. 그건 그렇고 〈추적 용병단〉이라더니 그새 이름을 바꾸었는지 사람들이 다 〈늑대 용병단〉이라고 하더군. 제법 헤맸어.”
추궁하는 투였지만 눈치 없는 도렌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냈다.
“아··· 늑대를 부려서 늑대 용병단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만, 정식 이름은 추적 용병단입니다.”
“바꾸는 것이 좋을 거네.”
실없는 도렌의 엉뚱한 말에 할 말을 잃은 아크온이 짧게 대꾸했다.
“예···”
도렌이 문을 열어주자 아크온은 자기 집안에 온 것처럼 거침없이 들어왔다. 그리고는 마당에 우리에 있는 늑대들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사람을 물면 어쩌려고··· 위험한 것 아닌가?”
“단장님 말에 껌뻑 죽습니다. 개처럼 짖거나 하지는 않아서 위협적으로 보여도 물지는 않습니다.”
조용히 자신을 노려보는 늑대를 보며 아크온이 괜히 강철로 둘러싸인 손가락을 우리 안에 쑥하고 넣어보았다. 늑대는 노려볼 뿐 어떤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이 녀석 봐라?’
상남자 같은 모습에 괜히 호감이 갔다. 그때 으르렁거림을 들을 수 있었다. 성인남자가 누워있는 것처럼 덩치가 큰 갈색늑대 도노였다.
“저놈은 왜 밖에 있는 것인가?”
“단장이 가장 애지중지하는 녀석입니다. 예전부터 함께 다녔고, 우리에 있는 늑대들은 최근에 데려왔습니다.”
“그렇군. 덩치부터 차이가 나는 것을 보니, 아주 잘 먹였군.”
도렌은 시종처럼 친절하게 굴었다. 소인배나 다름없는 모습에 아크온은 도렌에게 시선 하나 주지 않았다.
“드낙 용병단장은 어디에 있는가?”
“뒷마당에서 대련 중에 있습니다.”
“그으래?”
아크온이 발걸음을 빨리했다. 목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