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00 <-- 소문 듣고 -->
어둠 속에 타오르는 검은 불꽃은 주위를 밝혔다. 그것은 실로 기괴스러웠다. 새까만 색상의 불꽃이 토해내는 빛이라니. 모순적이었으며 낮도깨비처럼 섬뜩함을 주기에 충분했다.
“멍청한 놈.”
온몸이 검은색으로 문신이 되어있었고 전신에 금장신구를 주렁주렁 달고 있는 〈흑마법사 게페락스〉가 머리를 땅에 처박고 있는 〈1제자 포낙서스〉에게 욕을 했다.
“네가 무슨 짓을 한지는 알고 있겠지? 흑마법을 쓴 것도 용서하지 못할 일인데, 키메라까지 동원해?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짓을 한 것이냐?”
“살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살려주십시오!”
포낙서스가 머리로 땅을 찍었다. 피가 튀었다. 하지만 게페락스의 노기는 사그라들지 않았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
“계획을 그렇게 흩트려놓고 살기를 바라다니. 흐, 흐하하. 내가 요즘 조용히 있었더니, 아주 날 하룻강아지로 보고 있구나. 그놈들이 범처럼 보였겠지.”
“겨, 결단코···”
쿵!
발을 구르며 게페락스가 소리를 질렀다.
“시끄럽다!”
그 외침에 포낙서스가 벌벌 덜며 미친 듯이 머리를 바닥에 찍어대었다. 피가 계속해서 튀었다. 게페락스가 몸을 일으키자 포낙서스가 기겁하며 뒤로 물러났다.
“흐으으···흐윽!”
끝없는 고문을 당하며 모든 것이 굴복당했었던 포낙서스였다. 그는 이런 상황에 끔찍한 트라우마를 가지고 있었다.
“계획을 위해서는 혼란을 잡을 놈들이 있어서는 안 된다. 〈왕국 야영지〉의 지휘관은 미래가 창창한 놈이지. 그놈을 위해서 마련된 안배를 네가 망쳐놓았다. 괜히 강도들에게 식료품을 비롯해서 다양한 것을 건네준 것이 아니다.”
“살려주십시오··· 살려주십시오···”
손을 비비며 애걸하는 포낙서스를 보며 게페락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저런 멍청한 놈이라도 흑마법사에게 있어서는 필요한 인력이었다. 멀건 수프와 감자 몇 알로 삶을 살아가는 궁핍한 농가의 자식이라도 흑마법사의 수하는 되지 않는다.
그것은 선천적인 성품에 의해서 결정되는 것이었다. 고문도 소용없었다. 마력을 통해서 악마의 힘을 토해내는 〈흑(黑)의 양피지(羊皮紙)〉의 문양만 봐도 구역질을 하는 것이 대다수의 인간이었다.
무언가에 보호받지 않는다면 99%가 그런 성정을 지니고 태어난다. 악마와 친하게 지낼 수 있는 인간은 극소수에 불과했다.
모든 면에서 하류인생을 살아야 할 〈1제자 포낙서스〉가 그의 제자가 된 이유는 단순히 악마의 힘에 잘 적응했기 때문이었다.
‘죽일 수도 없으니···’
포낙서스보다 재능이 좋았던 〈2제자 판데서스〉는 보다 안전한 곳에 배정했는데, 그대로 죽어버렸다. 이렇게까지 운이 안 좋으면 장사 접고 다른 지방으로 가는 것이 옳았다. 하지만 지금만큼 상황이 좋았던 적이 없었다.
‘작년 겨울, 〈횃불성채〉는 유례없는 몬스터 침공을 받고 내성벽까지 밀렸다. 지금이 기회다.’
〈왕국 야영지〉에 대한 수작질이 박살이 나버린 이상, 남은 방법은 한 가지였다.
금장신구에서 푸른 마력이 물처럼 흘려내려 포낙서스의 피부에 들러붙었다.
“으! 으악!”
무릎 꿇고 엎어진 채 손을 싹싹 빌던 포낙서스가 벌떡 일어나려다 다리에 쥐가 나서 그대로 옆으로 엎어졌다.
화르르···
검붉은 불꽃이 포낙서스를 뒤덮기 시작했다. 끔찍한 고통이 그를 엄습했지만 소리 하나 낼 수 없었고, 움직일 수도 없었다. 거친 숨소리와 피부가 타는 소리가 났다.
끔찍한 화상의 고통에 눈이 까뒤집어져서 기절한 포낙서스를 향해 〈흑마법사 게페락스〉가 자신의 손가락을 포낙서스의 입에 물렸다. 다른 손은 얼굴을 전체적으로 덮었다.
주문을 읊는 소리가 검은 동굴 속에서 울려 퍼져나갔다. 소리는 들리지 않을 정도로 작았는데, 동굴에서 울리는 소리는 광광 울려대었다.
후두둑···쿵!
아슬하게 들러붙어있던 종유석이 바닥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덜덜덜덜!
포낙서스의 몸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이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크게 떨어대었다. 그러나 게페락스는 머리를 움켜잡은 채 주문을 계속 읊어대었다.
“극! 그윽! 거, 걱!”
코에서 선홍빛의 피가 흘러내리고, 입에서 찢긴 내장 조각과 피, 위액이 울컥거리면서 튀어나왔다. 피부에 땀처럼 피가 맺히더니 주륵 흘러내렸다. 포낙서스의 몸이 점점 붕괴하기 시작했다.
풍선처럼 부풀어진 포낙서스의 몸에 게페락스가 바늘로 피부를 따면서 악마의 문신을 새기기 시작했다.
*
“이스핀! 형이다!”
아침부터 기숙사의 철문이 덜컹덜컹 거렸다. 하지만 누구 하나 나오지 않았다. 다섯 명의 뒷골목 건달들 중에 얍삽하게 생기고 앞니가 툭 튀어나온 쥐새끼 같은 상(相)을 한 건달이 말했다.
“자물쇠를 딸까요?”
바로 뒤통수를 얻어맞고 발로 차였다.
“미친 새끼가, 무슨 빈집 털러 왔어?”
“병신.”
"처맞는 짓을 아주 골라서 해라.”
욕을 한 바가지를 퍼부었을 때, 〈큰도끼〉의 눈에 저택의 입구에서 나와서 설렁설렁 걸어오는 애새끼가 보였다.
“얼굴에 젖살도 안 빠진 놈이 손님이 보여도 천천히 걸어오네.”
“용병단 참 잘 돌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 말에 큰형님인 큰도끼가 소리를 꽥 질렀다.
“야이, 개~새끼야! 빨랑빨랑 안 튀어오냐? 손님 보고 그딴 식으로 걸어오냐!”
“내장에 피도 안 마른 놈이, 뱃가죽이 칼에 갈라지고 싶어서 환장을 했네. 큰형님 기다리시는 거 안 보이냐!”
쾅쾅!
거칠게 철문을 두드렸다. 그 소란을 보며 드낙이 걸음을 멈추었다.
‘내가 얼마나 돈을 퍼주면 저딴 놈들까지 오는 거지?’
기도 안 찼다. 저급한 욕설로 드낙의 분노를 얻기에는 너무 저급해서 상대할 가치도 못 느꼈다. 되려 피곤함만 스며들었다.
되돌아가서 롱소드를 챙겼다. 검을 차고 오자 놈들의 기세가 한풀 꺾여 대화를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드낙은 뭐라고 알아듣지 못할 정도로 아우성치는 다섯 놈들을 볼 수 있었다. 그때 이스핀이 팬티 바람으로 뛰어오는 것이 보였다.
“다, 단장님! 제가 아는 사람들입니다!”
뒷목골 출신의 이스핀이었다. 손을 씻었다고 해도 그것이 다 지워질 수는 없는 법이다.
“이스핀! 네 밑에 놈들 교육 좀 제대로 시켜라!”
소리를 지른다고 드낙과 이스핀의 대화를 못 들은 건달이 호통을 쳤다.
“알아서 잘 돌려보내세요.”
“예!”
이스핀이 고개를 숙이자 그제서야 건달들이 상황을 파악했다. 눈칫밥이 중요한 뒷골목이었다.
“너보다 어린 것 같은데··· 혹시, 싸워서 졌냐?”
농담을 던지는 〈큰도끼〉를 보며 이스핀이 한숨을 내쉬었다.
“〈추적 용병단〉의 단장님이다. 무슨 일로 왔냐?”
“왔냐? 지금 큰형님보고!”
큰도끼가 가오를 잡으려는 건달 하나를 밀면서 조용히 시켰다.
“당연히 이 용병단에 들려고 왔지. 단장이라는 놈이 어린 것을 보아하니, 왜 그렇게 돈을 퍼주는지 알겠다. 네가 힘 좀 써봐라. 잘해서 이 용병단을 먹어버리자.”
이스핀은 고개를 저었다.
“나도 여기서 가장 막내인데. 무슨 힘이 있다고. 그리고 첫 만남부터 아주 개박살을 해놓고 뭘 들어오겠다는 거야?”
“이런 씨. 막내라고? 〈들개〉의 꼴이 말이 아니군.”
큰도끼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형님. 경비대가 오고 있습니다. 신고를 받은 것 같습니다!”
“이런 씨.”
북부 구역에 건달처럼 보이기만 해도 잡혀가는 게 이 바닥이었다. 하물며 뒷골목 생활을 자주 하면서 몇 번이나 끌려간 〈큰도끼〉였다. 아무 짓도 안 해도 그저 북부 구역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질을 당할 것이다.
“저녁에 정식으로 찾아뵙는다고 말해줘! 비싼 거 들고 간다!”
호다닥!
그 외에도 도렌의 친구들도 문을 두드렸다. 적어도 예절은 가지고 있었기에 기초 테스트는 볼 수 있었다. 통과하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다. 늑대까지 몇 마리 더 사역할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에 실력 없는 놈들은 들어올 수 없었다.
“저···”
〈석궁사수 베드리〉도 얼굴을 비추었다. 그는 술을 몇 병 사들고 왔는데 문전박대를 당했다. 이스핀은 네가 여기가 어디라고 오냐고 고함을 지르기도 했다. 기본 테스트를 치를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래도 면식이 있다고 될 거라고 생각한 건가. 웃긴 놈이네.’
전투에서 화살 하나 쏘지 못한 놈이다. 애초에 용병질할 놈이 아닌 것이다. 실력이 있더라도 공격을 못하는 놈을 영입하는 것은 병신 짓이었다.
고급술을 가져온 뒷골목의 건달들을 문전박대할 수 없었다. 드낙은 처음 보인 그들의 무례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았다. 말해봤자 알아들을 놈들도 아니었다. 그게 〈저런 놈들〉이었다.
“바로 테스트하겠습니다.”
꼴에 들은 것은 있는지 무기를 미리 챙겨온 건달들이었다. 〈큰도끼〉는 가장 막내부터 보냈다. 자신이 가장 마지막에 테스트를 볼 생각이었다.
“억!”
자신이 쥔 버클러에 턱을 맞고 그대로 쓰러진 막내를 통해서 드낙의 싸움 스타일을 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나머지 3명도 줄줄이로 3합을 버티지 못했다. 검만 막는다는 느낌으로 나온 놈은 사타구니가 걷어차였고, 그걸 보고 그곳만 보호하려던 놈은 검면으로 머리를 얻어맞아야 했다.
‘주먹이랑 단검만 잘 다루는 놈들이라서 그런지 형편없네.’
자기랑 어울리는 무기를 들고 오지 않고, 용병 행세를 하고 왔다. 실패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것은 〈큰도끼〉 또한 마찬가지였다. 오히려 이놈이 더했다.
보스처럼 위에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하는 놈이었다. 동생들보다 못할 수밖에 없었다.
“끄응. 아그그···”
손목을 맞아 도끼를 떨어뜨리고 끙끙거렸다.
“기본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서 실패입니다.”
“내, 내일! 내일 다시 하겠소!”
〈큰도끼〉의 깡다구는 칭찬할 만했지만 드낙은 냉정했다. 인성도 안 된 것들을 들이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재시험은 1년마다입니다.”
“이런 씨···”
씨부렁거리는 건달들을 도발하고 싶지 않았다. 뇌에 똥만 든 것들이었다. 상종 안 하는 것이 속 편했다. 드낙은 이스핀보고 그들을 돌려보내라고 했다.
당연히 입구에는 경비병들이 여럿 있었다. 그들이 손짓하면서 소리쳤다.
“큰도끼! 네가 진짜 미쳤구나! 경비조장님이 위에서 까였다! 널 보고 싶어서 아주 안달이 나셨다!”
1년마다 은화 3닢을 거침없이 낼 수 있는 사람들만 사는 곳이 북쪽 외성구역이었다. 이리저리 설켜있는 인연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었다.
“씨팔.”
큰도끼는 그대로 포승 되어서 끌려갔다. 북쪽 지역에 살지도 않는 놈일뿐더러, 잘 알려진 건달이었다. 잡혀가는 것이 정상이었다.
‘이렇게 인재가 없나?’
〈무쇠방패 베리븐〉같은 중견 용병은 많이 찾아오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서 모두 잘 싸우는 것도 아니었기에 기본 테스트에서 탈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간합과 실전적인 것을 아우르는 무기술의 기본을 아는 이들은 의외로 적었다.
입으로 의뢰를 수행했는지 검을 놓치는 놈도 있었다.
그 덕에 2군은 오직 〈무쇠방패 베리븐〉만 있었고, 3군에는 이스핀과 도렌을 포함해서 3명으로 꾸려졌다. 머리통 용병단의 〈막내 쎈〉처럼 돈 때문에 순찰자를 포기하고 용병이 된 경우와 똑같은 길을 걸은 〈명사수 젠〉이었다. 나이는 24살이었다. 스스로 대머리처럼 머리를 깎은 자였고, 대거와 활을 사용했다. 투척 무기로는 평범하게 투척 단검이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추적 용병단〉은 다섯 명이 되었다. 당초 예상한 인원수는 8명이었지만 형편없는 것들이 많아서 들이지 않았다. 그 대안으로 늑대를 여럿 데려올 생각을 가진 드낙은 단련 일정을 짜고 홀로 횃불 성채를 벗어날 준비를 했다.
〈갈색 늑대 도노〉를 대동하고 야산으로 향했다. 드낙과 함께하며 체중이 20kg 전후였던 갈색늑대 도노는 45kg이 넘게 될 정도로 체중이 올라가 있었다. 원래 그렇게 자라야 할 정도인데 영양상태 때문에 못 자란 것이다.
성인 하나는 잡아먹을 정도로 덩치가 있었다.
‘한 다섯 마리면 되겠다.’
그 정도면 구색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