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9 <-- 소문 듣고 -->
자신의 경력이 부정당했으면서도 〈무쇠방패 베리븐〉은 크게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에 경력이라는 것도 하나하나 따지는 경우는 잘 없었다. 3년 혹은 5년이 지나면 거기서 거기였다. 드낙에게 싸움법을 〈사사받은〉 이스핀이 오히려 그들보다 더 잘 싸우는 면이 있었다.
물론 현실은 〈검술 실력〉 한 가지만으로 승패가 결정되지 않았다.
아무튼, 경력이라는 것도 적정 수준까지만 올라오면 되는 것이라 어느 정도만 인정해주겠다는 드낙의 말에 큰 거부감이 들지 않았다.
“외날도와 철퇴. 둘 모두 잘 씁니까?”
“아무래도 갑옷 입은 놈들을 자주 만나지는 않기 때문에 외날도가 더 능숙하긴 합니다.”
아직 〈추적 용병단〉에 들어오지 않았기에 드낙의 말은 정중했다.
탕탕!
원형방패를 외날도의 검면으로 크게 치며 소리를 낸 베리븐을 보며 드낙은 롱소드를 들어 올렸다. 들고 온 원형 방패를 쓰지 않자 베리븐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방패가 있고 없고는 큰 차이였기 때문이다.
“일단 가볍게 하겠습니다.”
“흡!”
드낙의 말이 무색하게 〈무쇠방패 베리븐〉이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방패가 워낙 컸기 때문에 자연히 하단을 노리는 것이 좋았지만 용병치고는 방패술의 기본이 잘 되어있었다. 무엇보다도 큰 방패를 팔꿈치를 접지 않고 쭉 뻗은 채로 달리는 것은 보통 단련으로는 보여줄 수 없었다.
‘굳이 기본 테스트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네. 큰 방패인데 쭉 뻗고 있군. 어디서 주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좋군.’
사람의 몸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무게에 상관없이 크게 무거웠기 때문에 큰 원형방패를 쭉 뻗은 채 달려오는 베리븐은 칭찬할 만했다.
〈손없는 센다빌〉처럼 실전으로 다져지거나 주워서 들은 것일 터였다. 혹은 상대했던 자의 자세를 통해서 깨달았다던가. 무엇이든 좋았다.
‘알고 있다는 것이 중요하지.’
방패 없이 저 돌진을 막는 것은 어리석었다. 시야가 방해되는 방패의 단점을 이용해야 했다. 상체를 숙일 필요도 없었다. 방패를 들고 있는 방향으로 움직이며 롱소드로 찌를 것처럼 방패의 윗부분을 긁으면 그만이었다.
캉!
외날도가 롱소드를 걷어냈다. 불똥이 튀었고, 사각으로 이동하는 드낙의 움직임을 놓친 베리븐이 멈추어 섰다.
‘고수!’
단 한합이었지만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것은 반복된 학습이나 다름없었다. 때때로, 고수는 소름이 끼칠 정도로 대응이 똑같기 때문이었다.
방패를 든 손이 아닌 다른 방향을 선택했다면 베리븐의 대응은 확실하게 좋아질 수밖에 없었다. 검이 부딪쳐도 상대가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패를 든 방향으로 움직임으로서 방패의 단점을 백분 살렸다.
경계심이 올라간 베리븐을 롱소드의 찌르기로 압박해들어갔다. 베기를 하는 것은 딱 정해져 있었다. 얻어맞기만 하는 베리븐의 인내심이 바닥났을 때였다. 그때마다 베리븐은 머리카락이 잘려나가야 했다.
“방패를 들었으면 저돌적으로 나오셔야죠. 제 공간을 압박하지 않으면 방패를 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방패는 방어를 위해서 만들어졌지만 그것이 사용되는 것을 보면 매우 공격적임을 알 수 있었다. 물리적으로는 상대의 공격을 막는 용도가 첫째지만, 전투의 흐름에서 본다면 상대가 검을 휘두르기 힘들고, 자신의 몸을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공간을 압박하는 것이 첫째였다.
가장 쉽게 말한다면 방패란 적이 원심력과 자신의 신체를 백분 활용해서 자신을 공격할 수 없게 하는 것이었다. 팔을 크게 휘둘렀는데 그 중간에 방패가 떡하니 들이밀어진다면? 제대로 휘두를 수가 없을 것이다.
“그게 쉽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저한테 데려오십시오. 술 한 잔을 대접해도 주머니가 넉넉할 겁니다.”
그걸 모를 〈무쇠방패 베리븐〉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항상 다른 법이었다. 방패를 든 방향으로만 움직이며 거리적으로 이점을 지닌 드낙을 잡는 방법 따위 리스크가 큰 방법뿐이었다.
“기본은 있으시군요. 보통은 여기서 까발려질 것인데. 대단하십니다.”
가볍다고는 해도 확실한 공방을 백합을 나누어도 지친 기색이 없는 베리븐을 보며 드낙은 최소한의 기준을 통과한 것을 축하해주었다.
“이게 기본입니까? 여기 못 들어올 놈들이 수두룩하겠습니다.”
무기를 내린 베리븐이 허탈한 웃음을 했다. 드낙이 이번에는 방패를 집어 들었다. 테스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번에는 제법 험하게 가보겠습니다.”
꿀꺽.
베리븐이 침을 삼켰다. 드낙의 원형방패는 결코 크다고 할 수 없었다. 상체를 전부 가리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시중에 파는 버클러처럼 작지도 않았다. 주문 제작한 느낌이 드는 방패였다.
“롱소드로 싸우면 불만이 있을 수 있으니 리치가 비슷한 숏소드로 하겠습니다.”
“전 상관없습니다만. 하하하.”
드낙은 그 말에 빙긋 웃으며 롱소드를 천으로 쓱 한 번 닦고, 검집에 넣었다. 애지중지할 수밖에 없는 특별한 롱소드였다.
‘비전을 쓸 것도 없다. 호흡으로 죽인다.’
〈상승(常勝)의 묘리(妙理)〉. 〈일류의 흐름〉이라 불리는 비전 다음으로 기사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 기사들 사이에서도 윗줄과 아랫줄을 결정짓는 또 다른 흉기.
〈세파리아스 불파겐(Sepharias Bulpagen)〉에게서 이론만 들은 드낙은 끊임없이 상상하며 지금까지 만난 적수들의 호흡을 흩트리는 시뮬레이션을 해왔다. 그리고 쉐도우 복싱을 하듯이 수많은 연습을 했다.
‘실전이나 다름없어.’
이스핀과 도렌에게도 제법 대련하면서 감각을 익혔기에 베리븐에게 쓸 생각이 든 것이다.
방패를 적당히 내민 드낙과는 달리 〈무쇠방패 베리븐〉은 최대한 자신에게서 멀어지게 쭉 뻗었다. 큰 방패의 이점을 최대한으로 가져가겠다는 심산이었다.
멀리서 베리븐의 호흡을 가늠하는 것은 쉬운 일이었지만 전투 중에는 호흡의 변화가 일어나기 때문에 힘든 점이 있었다.
‘실전으로 다져진 반듯한 기반을 가진 중견용병.’
두 사람의 간격은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 드낙의 날카로운 눈은 베리븐에게 섬뜩함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기세가 섬뜩하다.’
기세 또한 칼처럼 서늘했다. 볼에 채 빠지지 못한 젖살과 솜털이 양볼에 송송 있는 드낙의 얼굴과는 다르게 쏘아지는 기세는 전사 그 자체였다. 당연히 선수(先手)를 뻗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방어를 도모하고 역습을 생각할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반면 드낙은 딴생각을 하고 있었다. 오만함이라고 말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자신감이 넘쳐났다.
‘돈에 대한 감각은 자꾸만 낮게 잡아도 정도를 모르고 낮게 들어갔다.’
이놈의 세상은 정말이지 하층민에 대해서 지독했다. 사람 목숨을 생각보다 쳐주지도 않았고, 용병단으로 하나로 묶였음에도 남의 등처먹을 생각만 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 덕에 드낙은 계속 분배를 낮췄지만 그래도 많았다.
자신이 생각하는 최저한은 다른 이들이 보기에는 최대한으로 보일 정도였다. 그래도 그 배분이 드낙이 자신의 양심을 버리지 않을 수준이었다. 최소한의 기준이었다.
‘그 실패와 실수를 용병 영입에서 메꾼다면 길이 보인다.’
남들이 보기에는 호구짓이었다. 그래도 변하기에는 상황이 좋지 않았고, 그러고 싶지도 않았다. 야만적이고, 인간같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드낙이 보여준 그 관대함에 끌릴 자들은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애송이부터 베테랑까지 다양할 것이다. 실수를 하나의 홍보 수단으로 만들었다.
스윽.
작은 움직임에도 베리븐이 방패를 고쳐잡았다. 사각을 노리는 드낙에게 쉽게 사각을 내어줄 그가 아니었다. 큰 방패의 단점은 그도 잘 알고 있었다. 그래도 큰 원형 방패를 쓰고 있었다. 그 장점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체격은 비슷하지만, 방패 싸움을 하면 내가 이길 수밖에 없다.’
베리븐은 서로 간의 방패를 들고 있었기에 〈방패싸움〉으로 끌고 들어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드낙이 원형 방패로 가려진 입에 웃음이 걸렸다.
‘좋다. 처음부터 당첨이다. 이런 용병만 3명이든 4명이든 왔으면 좋겠네.’
드낙이 단번에 호랑이처럼 뛰어들었다. 베리븐이 방패로 막으려고 했지만 날숨과 동시에 튀어나온 드낙의 공격이었다. 방패가 부딪쳤다. 무호흡으로 최대한의 힘으로 막았지만 그것을 유지할 수는 없었다.
숨을 내뱉는 순간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흐!”
내뱉었던 숨을 들이켜는 순간 모든 것이 결정 났다. 가드가 풀리며 드낙의 숏소드를 막으려는 외날도가 숏소드의 가드에 고정된 채 밀려나가 숏소드의 검날이 목에 가까워졌다.
“져, 졌습니다.”
진땀이 주륵 하고 흘러내렸다. 자신이 왜 그렇게 허무하게 당했는지 〈무쇠방패 베리븐〉은 전혀 알지 못했다. 방패가 부딪치고, 가드가 풀렸다. 외날도와 숏소드가 부딪치며 거부할 수 없는 힘을 느꼈다.
그게 전부였다.
“큰 원형 방패를 앞으로도 쓰실 거라면 외날도보다는 부무장으로 대거가 더 적합할 겁니다. 단검은 뭐, 기본이니···”
드낙은 외날도와 한손 철퇴가 서로 겹치고 있는 것을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큰 원형 방패와 외날도는 어울리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철퇴보다 못한 것이 확실했다.
몸에 산소가 없는 채로 두합을 교환했기에 경미한 과호흡 증세를 보이며 헐떡거리는 베리븐이 물었다.
“어떤 면에서 외날도보다 철퇴가 좋습니까?”
“저지력에서 차이가 심하죠. 큰 방패를 들고 있는 상대는 가까이서 상대하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방금처럼요. 그냥 한 방에 모든 것을 끝장내는 것이죠. 큰 방패를 들고 있다는 것부터 장기전을 노린다는 의도를 가지고 있으니까요.”
드낙이 큰 방패를 잡으며 말했다.
“자잘한 상처조차도 상체가 튀어나올 정도로 큰 원형 방패는 대부분 알아서 잘 막아냅니다. 둥근 이 부분을 정확하게 내려칠 놈도 여간해서는 보기 힘들죠. 아닙니까?”
“맞습니다. 공격을 당해도 흘려서 되레 역습하기 좋은 형편이 찾아옵니다.”
“그렇기에 이렇게 큰 방패를 쓴다면 상대가 단기전을 노렸을 때 그것을 끊어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죽이는 것보다 우선시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전투에서의 패배는 곧 자신의 죽음입니다.”
“확실히··· 철퇴를 쓴다면 달려들어도 파괴력으로 물러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드낙이 주저앉아있는 베리븐을 일으켜 세웠다.
“2군입니다. 배분은 0.5입니다. 제가 은화 1닢을 받을 때, 동화 500닢을 받을 겁니다.”
“예. 감사합니다.”
“생활은··· 기숙사에서 해야 하는데, 괜찮습니까?”
“여관에서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오겠습니다.”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 식대는 동화 10닢인데, 〈용병 공금〉에서 빼니까 신경 안 써도 됩니다.”
“예.”
드낙은 이것저것 말해주었다. 그리고 여자문제는 결코 기숙사에서 불거지지 않도록 당부했으며, 세탁과 청소를 맡게 된 세아에게 자신이 선택한 개인방의 위치 그리고 잘 부탁한다고 인사도 하라고 했다.
“알겠습니다.”
“〈추적 용병단〉에 온 걸 환영한다. 〈무쇠방패 베리븐〉.”
드낙은 그날 저녁, 베리븐을 소개했다. 그리고 이스핀과 도렌은 3군으로 배정되었다. 1군은 앞으로 찬찬히 하는 것을 보고 알짜배기들만 올라서게 할 것이다. 그리고 〈공석(空席)〉으로 두는 것만으로도 용병단원들의 열정을 끌어올릴 수 있었다.
이스핀과 도렌은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속으로 삭혀야 했다. 경력 18년의 중견 용병이 2군으로 들어왔음에도 드낙에게 매우 정중했기 때문이었다.
‘단장님이 말했던 게 정말이구나.’
노력을 하지 않으면 계속해서 그와 멀어질 것이다. 그것은 결코 거짓이 아니었다. 또한 드낙은 경험이 없었지만 무력 하나는 정신 나갈 정도로 높은 수준이었다.
현대인의 다양한 문화는 현실적인 검술을 만났을 때, 무시무시한 괴물을 토해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대련을 통해서 〈무쇠방패 베리븐〉의 기를 팍하고 줄여놨다.
덤비면 좋은 꼴을 못 본다는 것을 경험 많은 베리븐이 모를 리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