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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98화 (98/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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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아에 대한 실력 검증은 굳이 필요 없었다. 남자 3명이 있는 용병단의 밥을 해주러 왔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억척스러운지 짐작이 갔다.

실제로 남자 3명의 식대를 동화 50닢으로 하루를 책임졌다. 그녀가 얼마나 가져가는지 몰랐지만 썩 괜찮은 일당을 얻는 듯했다. 드낙은 품삯을 깎을 생각도 했지만, 괜히 불똥이 활화산처럼 타오를까 봐 하지 않았다.

재료비를 묻는 순간 그 이후의 관계에 금이 갈 것이다. 세아가 양보를 했을지 몰랐다. 하지만 그 걱정은 이스핀의 노련함과 도렌의 멍청함으로 지워졌다.

“이렇게 많으면 돈을 벌긴 벌어요?”

도렌같이 뭔가 빈틈이 많아 보이는 얼굴과 기운을 지닌 사람이 걱정하는 투로 말하는 것은 썩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거기다가 세아보다 4살이나 어렸다.

“신경 꺼. 전에 일하던 곳보다 일당이 좋으니까.”

당연히 좋은 소리가 나오지 못했다. 그 이야기를 하면서 툴툴거리는 모습을 보며 드낙이 걱정을 덜었고, 자세한 비용을 묻고 싶은 마음을 가졌지만 이스핀의 말이 이어졌다.

“좀 시비 거는 걸로 보일 수는 있겠다. 그래도 일당 동화 10닢이면 높은 수준이니. 덮치지 않는 이상 나가지는 않을걸? 엉덩이 정도는 만져도 될지도 모르겠다.”

이스핀은 그렇게 말하자마자 드낙에게 뒤통수를 처맞아야 했다.

“미친놈이. 그런 짓하면 바로 제명이다.”

불같이 화를 내며 당장 주먹을 휘두를 것 같은 모습에 이스핀이 매우 당황했다.

“죄, 죄송합니다.”

드낙이 식사를 마저 하자 이스핀이 지뢰를 밟은 것을 크게 후회했다.

‘동화 10닢이 많은 거라니.’

왔다 갔다 하면서 식사시간에만 식재료를 들고 찾아오는 것이라고 해도 만 원이면 정말 낮은 값이었다. 그것으로 만족하고 있다는 소리에 드낙이 눈살을 찌푸렸다. 최소한의 공리(公利)가 이루어진 현대와는 다름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아무리 깨달아도 이 무식한 세계는 양파껍질처럼 계속 깨달음의 연속이었다.

‘그래도 도시인데. 돈이 그 정도로 안 풀린단 말이야? 그럴 리가 없는데.’

눈에 증거가 있어도 드낙은 자신의 현대인으로서의 경제 지식을 믿었다. 돈을 더 벌려면 돈을 푸는 것이 많기 때문이었다. 그것에 모순점은 〈현실〉에 대입하면서 발생하는 것인데 그걸 몰랐다.

수박 겉핥기 식의 현대지식이 가지는 병폐였다.

없는 놈은 말 그대로 하루에 3천 원 벌어도 좋다고 일하는 세상이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하면 용병 배분이 너무 좋은데. 그냥 1군을 아무도 지정하지 않아야 할지도···’

돈에 있어서는 정말 민감해하는 이스핀 때문에 드낙이 착각한 것이었다. 애초에 드낙은 용병 생활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할 말이 없었다. 〈머리통 용병단〉과 함께한 것도 아주 짧았기 때문이다.

‘불만이 생겨도 별 수 없지. 차근차근 줄이는 수밖에.’

용병단에 늑대도 들여야 했다. 〈마브로스 리꼬〉라 불리는 몬스터로 분류되는 〈검은 늑대〉는 이용할 수 없었다. 그들과는 〈친구〉가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갈색늑대 도노처럼 한 급 낮은 늑대만 부릴 수 있었다.

친구가 명령하면 바로 주먹이 나가는 것처럼 검은 늑대는 사역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친구를 사역한다면 어금니가 드낙의 목에 꽂힐 것이다.

‘1군은 대련으로 나와 동수를 이루는 놈으로 해야겠어.’

자신이 은화 1닢을 분배 받을 때, 동화 700닢을 가져가는 1군에 대한 기준을 높게 잡기로 했다. 자연히 불만이 생기겠지만 드낙은 세아를 보며 다시 한 번 돈의 흐름을 확인했다.

현대에서도 낙수 효과는 실패한 이론이라는 것이 증명되었는데, 하물며 이런 세상에서 밑에 사람들에게 은화를 쥐여줄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동화 500닢만 줘도 남을 놈들이다.’

너무 이스핀과 도렌을 생각하는 것이었고, 너무 용병단과 이 세상의 돈에 대해서 무지했다. 현대인의 우월감 때문에 포기하지 못한 인도적인 기준도 있었다.

‘그것까지 생각하면 절대 출세할 수 없다. 돈은 최대한 가져가야 해. 당장 돈 쓸 곳도 많다.’

독하게 해야 했다. 남을 사람은 남고, 갈 사람은 가더라도 그러려니 해야 했다. 서로의 의견이 부딪치는데 겁을 먹어서는 안 되었다. 예전의 박호훈이 아니었다. 지금은 드낙이다. 귀족조차도 관심을 가지는 체스판의 말 정도는 되었다.

“세아 씨. 설거지 끝나면 면담 한 번 하겠습니다.”

음식을 치우던 세아가 크게 움찔했다. 그녀와 드낙의 나이 차이는 6살이나 났지만 드낙의 카리스마는 남달랐다. 실전도 실전이고, 직책도 직책이었고, 세파리아스 불파겐의 찌꺼기도 핥아먹었다.

“예! 최대한 빨리할게요.”

“쉬엄쉬엄하세요.”

날이 지날수록 세아의 드낙 공포증은 심해지고 있어서 드낙은 그녀에게 더욱 상냥하게 대할 수밖에 없었다. 겁먹은 이를 보고 더 겁을 먹게 되는 경우였다.

“무슨 면담을 하시려고 그러십니까?”

웬일로 도렌이 세아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이스핀의 눈이 활처럼 휘고 광대뼈가 음흉하게 튀어나왔다.

“청소까지 맡겨보려고. 착실하게 하는 모습을 보니 한 번 믿어보려고.”

“혼자서 하기엔 많지 않습니까?”

“적당히 알아서 하라고 해야지. 너무 돈 쓰기 싫어. 알아서 잘 할 것 같고, 보이는 대로 조정도 하면 혼자로도 충분해.”

드낙은 그렇게 말하며 화제를 돌렸다.

“오늘 아침 대련에서 모두 낙제점인 거 알지? 적어도 하단 방어는 완벽했으면 한다. 하체가 베이면 끝이니까.”

“예. 압니다.”

이스핀은 잔소리로 받아들였고, 도렌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자괴감마저 가지고 있었다. 비록 스승이 없었지만 그래도 4년간 숏소드를 쥐었기 때문이다.

“그럼 저희는 가보겠습니다.”

“한 번 뛰고 오겠습니다.”

“그래.”

과일을 조금 먹고, 이스핀과 도렌이 가죽 배낭을 짊어지고 뛰러나갔다. 도렌은 홀로 남을 드낙을 뒤돌아서 보더니 이내 고개를 돌려 이스핀과 맞추어 달리기 시작했다.

드낙은 세아와의 면담을 가졌다. 조금 탁한 금발을 손으로 만지작거리면서 세아가 1층 응접실로 들어왔다. 따로 용도를 가지지 않은 방 중에서 가장 넓은 곳이었다. 세아는 드낙의 앞에서 처음 보여줬던 활발함이 하나 없었다. 척 봐도 긴장하고 있었다.

“이렇게 부른 건 맡은 일을 제법 잘 하시길래, 다른 것도 부탁하려고요.”

“어떤···?”

“청소입니다.”

세아가 입을 열기 전에 드낙이 손을 올려 막으며 자기 할 말을 이어나갔다.

“압니다. 혼자서 하기에 많다는 것을요. 그냥 알아서 최선을 다해주시면 됩니다. 거주하는 개인 방과 식당, 부엌 그런 곳들만 최대한 청결 유지하시고. 그 외에는 쉬엄쉬엄 조금씩 청소해주시면 됩니다.”

“그게··· 제가 사실은 다른 일도 하고 있어서요.”

약간 탁한 금발을 세아가 귀 뒤로 넘겼다. 특히나 선이 좋은 턱 선까지 드낙의 눈에 자연히 들어갔다. 하지만 드낙은 무덤덤했다. 담배든 술이든 여자든 먹거리든 맛을 봐야 원하는 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드낙은 무한 경쟁 사회에서 자기 한 목숨 살겠다고 버둥거리며 살았기에 인생을 즐긴 것이라곤 게임, 드라마, 영화, 예능 그런 정도였다.

“어떤 일입니까?”

“네? 아. 네. 이곳저곳··· 일감이 필요한 곳에 어디든지 찾아가서 해서요.”

드낙이 시간을 정확하게 물었지만 대중이 없었다.

“좋아요. 알겠습니다. 어쨌든 청소를 제대로 맡아주시겠다면 동화 3닢을 더 드리겠습니다.”

현대로 치면 곧바로 고용노동부에 신고할 일이었지만 세아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건 잡아야 한다는 표정이었다.

“할게요.”

용병이 한 달 수입이 은화 1닢이다. 다른 직종은 동화 500도 되지 않았다. 적어도 〈검은 산골 마을〉에서는 그랬다. 그런데 드낙이 준다는 돈을 한 달로 치면 총 390닢이 세아의 주머니로 들어갔다. 하루에 13닢이었다.

‘크게 줄였는데도 그냥 알겠다고 하네. 대체 얼마나 돈이 안 풀리고 있는 거야?’

도시라는 것을 생각했을 때, 드낙의 예상이 빗나갔다. 이 정도로 돈을 원할 줄은 몰랐다. 하루에 13닢이면 하루 일당이 만 삼천 원이다. 위에서 얼마나 돈을 쥐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체감했다.

그건 끔찍함이었다. 자신이 사회의 밑바닥에서 살았기에 절로 불만과 분노가 쌓였다. 또한 충격과 공포를 느꼈다. 상황이 자신을 호구로 만든다는 착각마저 가질 정도였다.

‘그래도 사람인데, 너무 적게 줄 수는 없는데··· 내 기준이 너무 높긴 높네.’

하루에 1만 3천 원을 받고 행복하게 일하는 세아를 볼 생각을 하니 떨떠름했다. 그 표정을 읽은 세아가 겁을 먹어서 부탁하지도 않은 또 다른 일을 자신이 하겠다고 나섰다.

“빨래도 할게요. 그러면 괜찮으시죠?”

“네? 빨래까지요? 전 상관없지만, 괜찮습니까?”

“예! 그 정도쯤이야!”

세아가 팔을 걷어붙이며 웃어 보였다. 끝이 조금 떨리는 것이 억지웃음이었다. 드낙은 오해가 있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람이란 것은 간사하기 마련이었다.

“뭐, 좋습니다. 그 외에 불편한 점이 있습니까? 작업하는데 필요한 것이 있다면 지금 말하세요.”

“네?! 불편한 점 하나 없어요!”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몸을 일으켜서 문을 열어주었다. 그 모습에 세아의 볼이 조금 붉게 물들었다.

“면담은 그럼 이걸로 끝내겠습니다. 내일부터···”

“지금 바로 청소할게요.”

세아가 문을 열어준 드낙에게 고개를 숙인 뒤에 얼굴이 빨개져서는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갔다.

드낙은 근육을 유지하고, 비전에 대한 감각을 확인하거나 어레인지한 비전을 연습하기도 했다. 그 기묘함은 봐도 뭔지 몰랐다. 2D와는 다르게 3D. 거기에 상대에 따라서, 공격하는 부위에 따라서 검의 위치가 바뀌고 축도 변하는 것이 비전이었다.

뭣도 모르고 동작만 배워도 어떤 적에게 어떻게 그리고 어떤 식으로 써야 할지 모르기에 훔쳐도 까막눈이나 다름없었다. 알파벳을 훔쳐배워도 그것을 활용하지 못하는 것과 같았다.

‘마음 급한 놈이 올 때가 되었는데.’

이제쯤이면 소문이 퍼졌을 것이다. 〈추적 용병단〉에 대한 소문은 동종업계가 가장 빠르게 얻을 것이 분명했다.

철컹, 철컹!

닫힌 철문을 흔드는 소리에 드낙이 민감하게 반응했다.

“누구요!”

“추적 용병단장 드낙님을 보러 왔습니다! 안 계십니까!”

약간 늦은 점심때에 찾아온 것을 보니 제법 사회경험이 있는 용병이었다. 마당에 있던 드낙이 철문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수염에 조금 하얀 털이 난 용병이 있었다. 장발에 야성적인 모습이었다.

베테랑 용병답게 손때가 묻은 장비들은 절로 믿음이 갔다. 주렁주렁 뭘 그렇게 많이 가지고 있는 것 또한 드낙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상체를 완전히 가리고 튀어나와있는 원형 방패를 등에 짊어지고 있었다.

무기로는 외날도와 철퇴를 쓰고 있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용병단에 들어가고 싶어서 왔습니다.”

“그새 소문이 퍼졌군. 들어오십시오. 용병을 충원할 생각을 하고 있긴 있으니.”

“예.”

장발 용병의 이름은 〈무쇠방패 베리븐〉이었다. 나이는 38살로 중견 용병이었다. 베테랑 용병 중에서도 역량이 한껏 올라간 상태라고 보면 되었다.

“베테랑 용병이 제 밑으로 들어와서 명령 수행 잘 할 수 있겠습니까?”

“못할 건 뭡니까? 보니까 균등하게 의뢰금을 배분한다던데.”

드낙은 고개를 저었다.

“그걸로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돈을 줬다 뺏으면서 〈용병 공금〉도 만들고, 3등급으로 나누어서 차등 지급하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물론 돈에 대한 것은 투명성 있게 진행할 겁니다.”

“그 투명성이 뭘 말하는 겁니까?”

용병이 단어를 물었다.

“아, 투명성이라는 것은 궁금할 때마다 언제든지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볼 수 있다는 겁니다. 양피지 값으로 용병 공금이 좀 나가겠지만 돈 관리는 질척거리게 비벼대면 문제밖에 안 되지 않습니까?”

베리븐은 쉽게 엉덩이를 떼지 않고, 이것저것을 드낙에게 물어보았다. 그리고는 당장 자신의 경력을 말했다. 하지만 그것은 드낙에게 신뢰성을 주지 못하는 것이었다.

“증거가 있는 경력만 인정합니다. 용병생활 10년이든 20년이든 중요하지 않습니다. 증명할 수 있는 경력을 제시하세요.”

“그 증명할 수 있는 경력이 대체 뭡니까?”

“이야기만 들어놓고 의뢰금 배분을 많이 했는데 정작 의뢰하면서 제대로 활약하지 못하면 어찌 되겠습니까?”

“언제나 활약할 수는 없는 법이죠.”

“그래도 정도가 있는 법. 경력을 저에게 증명할 수 없다면 용병경력 햇수만 어느 정도 생각하겠습니다.”

베리븐의 표정이 잔뜩 구겨졌다. 하지만 박차고 나가지는 않았다. 중견 용병이었기에 누구보다 알 수 있었다. 이 용병단은 적어도 돈으로 장난질하지 않는다는 것을. 〈애송이 용병〉에게 돈을 줬다 뺐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용병 공금〉이었고 제대로 사용됐다.

그렇다면 있던 불만도 그냥 귀싸대기 처맞더라도 집어넣어야 했다. 그게 베리븐의 생각이었다.

‘돈만 제대로 받는다면 3군으로라도 올 용병들이 차고 넘칠 것이다.’

드낙은 전혀 모를 것이다.

이 세상이 적어도 돈에 있어서 얼마나 끔찍한지. 인간 같지 않은 것들이 살가죽을 뒤집어쓴 채 칼로 무엇을 먹는지. 어떻게 사는지. 전혀 몰랐다. 현대인이 무엇을 알겠는가? 〈검은 산골 마을〉은 퇴역군인 락손이라는 존재 때문에 비정상적일 정도로 치안이 좋았을 뿐이었다.

〈산버섯 마을〉에서 머리통 용병단이 얼마나 경계심이 높았는지.

〈큰마을 두둔의 큰통〉에서 지역 유지가 사람 하나 그냥 죽이는 것도 어렵지 않음을 겪었음에도 조금만 환경이 달라지자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평범한 인간이었다. 수학 문제집의 답안지를 보면 고개를 얼쑤 끄덕이다가도 시험에서 똑같은 종류의 문제를 보고 얼굴이 흙빛이 되는 그런 인간이었다. 그렇다고 전혀 학습능력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한 걸음씩 탈출지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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