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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96화 (96/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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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일어난 드낙은 동네를 한 바퀴 뛰었다. 사람은 많이 없었지만 그래도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일을 준비하는 이들은 눈에 계속 밟혔다. 그것은 드낙이 한 걸음 더 뛸 수 있게 해주었다.

모두가 그렇게 하면 자신도 그렇게 하게 되는 인간의 공감능력은 여기서도 빛을 발했다. 의욕을 잃은 사람들에게 항상 있는 조언이 새벽에 지하철을 타보라는 것이거나 버스 첫차를 타라는 소리다.

남들이 열심히 하면 자신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줏대 없는 생각이 자리 잡히는 법이었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은 아니었다. 달릴 준비도 되지 않아서 주저앉아 숨을 고르는 이를 강제로 일으켜서 밀어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 사람의 앞에 절벽이 있는 줄도 모르고 그렇게 밀어버리고 다른 이들에게 조언을 하러 가버린다.

‘······’

촤아아악!

우물가에서 물을 몇 번 엎어 쓰고 드낙은 옷을 갈아입고 여관방의 창가에 옷을 걸어두고 집을 나섰다. 귀중품은 당연히 자신이 들고 있었다.

“단장님!”

이스핀이 손을 높이 들어 흔들었다. 〈피가득 술집〉의 건너편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침부터 이스핀과 만난 이유는 당연히 집 때문이었다.

“외청으로 가야 합니다. 내성에 집을 마련할 수는 없기에···”

“당연한 소리를··· 내성에 집을 두면 금화가 들 텐데···”

그럴 신분도 안 되었다. 신분이 안되면 연줄이라도 있어야 했다. 그게 아니라면 돈이 필요했다.

외청(外廳)은 외성벽과 내성벽 사이에 있는 〈외성지역〉에 관한 것을 결정하는 행정부였다. 물론 그 외에도 온갖 것들을 수행하기도 했기 때문에 일처리가 매우 늦었다. 드낙과 이스핀이 외청의 문이 열지도 않았는데 대기를 타는 이유도 그러했다.

경비병이 안에서 문을 열고 나와 문을 쇠고리로 고정했다. 상당히 큰 문이었기에 단단히 고정해야 했다.

문관은 집을 구매하러 왔다는 소리에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 듯했다.

“어디 구역을 생각하시오?”

“남쪽 아니면 북쪽 구역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문관은 이스핀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최소 금액이 은화 10닢이요. 돈은 있으신가?”

일종의 돈으로 만들어진 벽이었다.

“20명이 살 수 있는 큰집을 생각하고 있습니다만···”

그 말에 문관의 눈이 조금 커졌다. 엉거주춤 일어나기도 했는데, 당연히 집을 팔면서 이득을 챙기기 때문이었다.

“큰집이라면 다섯 채가 남아있소.”

“위치를 알고 싶습니다.”

이스핀은 능숙하게 과정을 밟아갔다. 당연히 그 모습에 문관은 상대가 집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다. 드낙은 그것을 최대한 주시하며 기억하려고 애를 썼다.

문관은 지도를 당장 들고 왔다. 외청에 대한 또 다른 지식이 쌓였는데, 의뢰나 그런 자잘한 것은 설렁설렁하던 놈들이 집에 대한 것에는 빛처럼 빨랐다.

‘얼마나 따가는 거지?’

하는 폼을 보면 금일봉 정도로 뜯어내는 것 같았다. 은화 1~2닢은 챙길 것 같았다. 제법 큰 양피지를 들고 온 문관의 안내를 받아서 2층 개인실에 두 사람이 들어갔다. 클래식한 가구들이 배치되어있었다.

“잠시만 기다리시오.”

문관은 양피지를 펼쳐서 고정한 뒤에 다시 방을 나갔다. 그리고는 찻주전자를 들고 왔다. 찻잔이나 찻주전자나 나무로 된 것이었지만 반듯했다. 문양 하나 없었지만 깔끔함이 있었다.

‘뜨겁지는 않네. 미리 끓여놓은 건가. 어제 건가.’

드낙은 살짝 입을 데었다. 별로 마시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떪은 맛도 살짝 났지만 그래도 향은 좋았다.

“크흠. 가장 좋은 집은 여기입니다.”

비싼 집을 이야기하려고 문관이 극존대를 하며 기분을 맞추어주었지만 눈에 보이는 검은 짓이었다. 그래도 이스핀은 문관의 행동을 저지하지 않았다.

“어떤 곳입니까?”

“대로에 있어서 여러 곳에 다니기 좋고, 사람들을 초대할 때도 구색이 삽니다. 50명이나 살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대저택입니다. 전에 살던 사람은 수도에 사업을 열어서···”

온갖 이야기를 했다. 으레 하는 주변 상권이나 조금만 걸어도 필요한 것을 모두 구매할 수 있고 대로에서 이루어지는 경비병들의 순찰이 서로 겹치는 곳이라 치안이 좋을 수밖에 없다는 것 등등.

“아쉽지만 저희가 찾는 것은 20명 정도가 거주할 수 있는 곳이라··· 분명 좋은 곳이지만 너무 크다고 생각됩니다."

문관이 아쉬워했다. 은화 80닢짜리 집이었다. 그중에 20닢은 자신의 주머니로 들어갈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하층민은 결코 오를 수 없는 외청의 문관 자리였다. 벌어들이는 수익 자체가 달랐다.

“아. 그러시다면··· 한 곳밖에 없소.”

이스핀이 처음 이야기한 내용을 문관은 전혀 모른다는 듯이 말했다. 그야 그럴 것이 아주 개호구로 알고 설렁설렁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다. 집 이야기가 나왔을 때, 아침잠이 깼을 것이다.

북쪽에서도 성벽에 붙어있는 집이었다. 당연히 대저택이다.

“성벽과 붙어있어서 밤에도 도둑이 들 수가 없는 곳이오. 외성벽은 하루 종일 순찰이 이루어지지기에 아주 좋은 곳이기도 하오.”

북쪽 구역에 사는 사람들 그리고 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가장 첫째로 생각하는 것이 치안이었다.

“철조망으로 울타리가 쳐져 있어서 넘기도 어려울뿐더러··· 기숙사로 사용되었던 곳이기에 개인실이 많다는 장점도 있고.”

“개인실의 숫자가···”

이스핀이 양피지에 적힌 숫자를 읽었다. 글자는 읽지 못했다.

“넉넉하게 스물다섯 곳이오.”

드낙이 지도를 살폈다. 집에는 대략적이나마 구조가 적혀져 있었다. 1층은 대개 공용실이었다. 식당부터 강당까지 다양한 방들이 1층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당도 있었고, 우물도 바로 박혀있었다.

“전에 뭐 하는 곳이었습니까?”

“기숙사로 쓰였소. 검술부터 글자까지 가르치던 〈욜 메릉의 학원〉에 등록한 시민들의 자식들이 거주하던 곳이었지.”

“아. 몇 년 전에 문을 닫았던···”

이스핀의 말에 문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나갔다.

“욜 메릉의 사설 학원은 30년 넘게 유지되어왔지만 큰 벌이가 되지 못한 것인지 그가 은퇴하면서 싹 정리해버렸소. 그 덕에 기숙사도 당연히 문을 닫아야 했소.”

“저곳은 얼마입니까?”

“기숙사로 쓰인 건물을 무엇에 쓰겠소? 외청에 판매하는 수밖에 없어서 다른 곳보다는 제법 괜찮은 가격이오.”

이스핀이 뒷말을 기다렸다.

“은화 50닢이오. 대저택 치고는 이 정도면 괜찮은 가격이오.”

“무슨 소리입니까? 아까 그 대저택이 은화 80닢에 팔리는데. 그것도 외청이 가진 것도 아닌데도 그 정도에 팔립니다. 고작 30닢밖에 차이가 안 나는 것은 이상합니다.”

“생각하시는 가격이?”

문관이 말하지도 않은 북부구역의 〈중앙 대저택〉에 대한 값을 정확하게 이스핀이 짚자 속으로 깜짝 놀랐다.

“북부 성벽에 들러붙어 있어서 오기도 힘든 곳 아니오? 좋은 것이라고는 〈북부 구역〉에 속해있다는 것이고. 창고로도 쓰지 못할 집이지. 마당에 따로 창고를 또 지을 바에는 차라리 〈남쪽 구역〉으로 가는 것이 좋고. 애초에 창고는 남쪽이니 다르게 쓸 리가 없는데 집을 허물고 다시 지으려면··· 하하."

이스핀이 웃으면서 싸늘하게 말했다.

“누가 여길 구매하겠소? 다른 사설 학원이 지어진다는 소문이 안 퍼지면 어림도 없지.”

문관은 반박하지 못했다. 실제로 몇 년 동안 팔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만히 놔두면 아무것도 안 들어오는데 은화 20닢에 합시다. 저도 시세를 전혀 모르는 것은 아니오. 이 정도가 가장 적당한 것이오. 팔리지 않는 곳이 은화 20닢이면 충분하지 않소?”

“기본 시세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만 해도···”

말이 기본 시세지 실제로는 말놀음이었다. 자신의 손에 들어가는 은화가 적다는 소리였다.

“몇 년 동안 묵혀둔 것인데···”

몇 번 실랑이를 오고 갔다. 이스핀은 너무할 정도로 문관에게 기숙사로 쓰인 건물의 하자에 대해서 말했다. 상인과 귀족이 거들떠도 안 보는 곳임을 부각시켰다.

누구도 사지 않을 것이기에 지금 자신들이 말하는 가격에 내놓는 것이 최선이라고 설득했다.

“좋소. 그렇게 하리다.”

결국 문관이 손을 들었다. 20닢이면 자신의 손에 은화 6닢 정도는 들어왔다. 2년이나 묵혀둔 기숙사라 〈대저택〉이라고 말하기도 부끄러운 곳이었다. 겉으로 보면 대저택이지만 구조가 아예 달랐다.

귀족이나 상인들이 아예 살지 않을 곳이었다.

집값은 대중으로 정하는 것이라 문관의 몫이었다. 물론 비싼 것을 아주 제대로 싸게 판다면 윗사람이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기숙사로 쓰여지고 2년동안 누구에게도 안 팔려진 이곳은 애물단지였다.

‘변명거리를 넣을 수 있으니 은화 14닢에 팔았다고 해야지.’

철거조차도 돈이 들기 때문에 건드리지도 않는 곳이기도 했다.

“북부 지역세는 1년에 은화 3닢입니다.”

“지금 계산하겠습니다. 그게 서로 편하고 좋을 겁니다.”

이스핀의 말을 들은 드낙이 은화 3닢을 내어주었다. 그 자리에서 양피지에 이번 연도 지역세를 냈다는 것이 쓰였고, 한 장은 드낙이 다른 한 장은 문관이 가졌다. 영수증인 셈이었다. 구역 중에서는 가장 비싼 곳이었다.

그래도 자주 집을 비워야 하는 드낙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짐을 옮겼다. 먼지가 가득해서 청소도 해야 했지만 그것은 하루 미루기로 했다. 도렌의 집으로 가야 했기 때문이었다. 대충 자신이 잠잘 곳만 먼지를 털어내고 장을 보러 나섰다.

‘남의 집에 가는데 빈손으로 갈 수는 없지.’

이스핀은 술을 사러 갔고, 드낙은 시장과 상가를 돌아다니며 양념된 고기를 구매했다. 5kg을 동화 100닢에 샀다. 어마어마한 양이었지만 남매 8명에 부모님에 이스핀과 자신을 생각하면 최소 12명이었다. 1명당 400g을 먹을 수 있었다.

그 정도면 딱 넉넉한 정도였다. 다른 음식도 있었기에 조금 넘치는 정도였다.

도렌의 집은 외성 구역에서 3등 하는 〈서쪽 복합구역〉이었다. 말이 3등이지 가장 많은 인구가 거주하는 곳이기도 했다.

“2층 집에서 사네.”

이스핀과 드낙은 도렌이 말해준 집을 보며 생각보다 도렌의 가족이 잘 사는 집임을 깨달았다. 엄청나게 욱여넣어서 살 거라는 것과는 달리 2층 집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부모님이 뭐 하는 분이시지?’

궁금증도 일어났다. 애 8명 두고 2층 집에서 산다라··· 보통 일은 아닐 것이다. 상인일지도 몰랐다.

“실례합니다!”

문을 두드리자 우당탕 소리가 들려왔다.

“왔다! 용병들이 왔어!”

“무기를 들어!”

어린이의 앳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단장님! 좀 일찍 오셨네요.”

“노을 지면 오는 거지.”

드낙이 안으로 들어가며 도렌에게 양념고기를 건넸다. 제대로 향신료와 간이 된 것이었다.

“이, 이런 걸 다···”

양손 가득 술병을 들고 온 이스핀도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조금 작아서 고개를 숙여야 했다.

살림 냄새가 가득 풍기는 가정집이었다. 1층은 벽은 보이지 않았고, 부엌부터 거실까지 하나의 방으로 넓게 되어있었다.

벽이 있던 부분을 철거한 흔적이 보인 것을 보니, 살면서 고친 듯했다.

“안녕하십니까. 추적 용병단의 용병단장 드낙입니다. 여기는 용병단원 이스핀입니다.”

대가족의 눈이 모두 드낙과 이스핀을 향하고 있었다. 머리가 확 벗겨진 도렌의 아버지가 먼저 나서서 드낙의 인사를 고개 숙여 받으며 악수까지 했다.

“반갑습니다. 저는 도렌의 아버지 되는 사람입니다. 도르겐이라고 합니다.”

앙상한 손목을 보니 농사일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아들한테 이야기는 많이 들었어요. 정말 잘 오셨어요. 가만히 걷다가도 넘어지는 애라서 걱정이 많아서···”

“엄마.”

도렌이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 자신의 어머니의 팔뚝을 쳤다.

‘이런 화목한 가정도 있네.’

사람 사는 것이 똑같다고 하지만 정말로 다른 가족이 있기 마련이었다. 드낙은 눈앞의 화목한 광경을 보며 속으로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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