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4 <-- 기다림 -->
〈1제자 포낙서스〉 그를 잡아내는 것은 못했지만 그래도 전투를 하면서 얻어낸 정보는 많았다. 〈일루전 운드(Illusion Wound, 환상 상처)〉를 맞으며 가장 먼저 고꾸라졌던 도렌은 고통이 경감되자 걸어서 이스핀을 만났고, 말다툼을 하며 언덕을 넘어가려고 했다.
“무식한 놈아! 그냥 가만히 있어. 괜히 가서 걸림돌만 된다.”
이스핀은 괜히 가서 걸림돌이 되면 안 된다고 했고, 도렌은 무조건 가야 한다고 했다. 뭐 아는 것이 없는 도렌이 가장 무식했다.
“나중에 가서 빌빌거린다고 안줏거리가 되고 싶은 건 아니겠지?”
‘이 녀석이?’
도렌은 이스핀의 자존심을 긁었다. 남자의 자존심은 가장 건드리면 안 되는 것이기도 했다. 결국 이스핀이 부축을 받으면서 걷기 시작했다.
열이 머리를 채운 것이다.
충격에 빌빌거리는 이스핀을 부축하면서도 전투를 하려고 했으니, 얼마나 무식한지 알 수 있었다. 무식한 놈이 용감하다는 말이 괜한 것이 아니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스핀도 도렌의 말에 넘어갔다는 점이었다. 돌아오면서 그 이야기를 들은 드낙은 헛웃음을 냈다.
가슴이 간질거렸다.
“상태가 호전된 도렌은 몰라도, 이스핀은 오면 안 되는 상황을 왜···”
가슴으로는 이해가 되었지만 나오는 말은 질책이었다. 하지만 그 말에는 가벼움만 가득했기에 도렌과 이스핀은 히히덕거렸다.
놈을 놓쳤지만 〈추적 용병단〉은 그렇게 분위기가 나쁘지 않았다. 흑마법사가 보여준 마법 때문이었다. 누구라도 당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2미터에 조금 못 미치는 이스핀이 무슨 공처럼 날아갔기 때문이다.
그 상황에서 살았다는 것만으로도 큰 축복이고, 큰 성과였다.
드낙은 특히 더했다. 비록 스크롤이었지만 적의 흑마법사는 〈파이어볼〉을 보여준 것이다. 그것을 보고하는 것만으로도 〈추적 용병단〉은 할 일을 다한 것이다. 굳이 이 분위기를 끊고 싶지 않았다.
‘하물며 〈키메라(Chimera)〉까지 봤다.’
살아있는 것이 용했다. 놈이 겁이 많아서 그렇지 드낙은 죽을 수도 있었다. 마무리를 하지 않고 도망가서 천만다행이었다.
“여기도 엄청 싸웠나 봅니다.”
피로 가득한 싸움터를 보며 이스핀이 혀를 내둘렀다. 장대 곳곳에 늑대인간이 걸려있고, 피를 빼내고 있었다. 가죽을 벗겨내는 것은 내일이나 할 것이다. 머리는 당연히 잘려 있었다.
‘엄청난 격전이었겠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도 병사들에게 듣고 싶었다. 분명 큰 경험이 되고, 값비싼 지식이 될 것이다.
“곧바로 게실리안 지휘관님에게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병사는 묻고 따지지도 않고 용병단을 안내했다. 전투가 끝나고 그들이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도망자를 쫓고 있었음을 알고 있었다.
병사들의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늑대인간 25마리와 싸워서 병사 다섯만 죽은 것은 큰 승리였다.
“음.”
게실리안 지휘관은 이번 전투에서 사망한 병사들의 사후처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흰 천으로 온몸을 단단하게 조이는 것은 아주 고된 일이었다. 시체의 관절은 굳기 때문이었다. 처참하게 늑대인간에게 팔이 날아간 병사도 있었다.
그 팔을 반드시 찾아야 했고, 시간은 제법 늦어지기도 했다. 가장 힘겨운 것은 척추째로 목이 물어뜯겨진 병사였다. 이제 6년째 복무를 하고 있는 베테랑 병사 세르닉의 죽음은 많은 병사들을 슬프게 만들었다.
그래도 산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이었다. 사후처리를 하고 있는 곳 군막 너머에서는 술을 기울이며 웃는 병사도 많았다.
나중에는 사람이 천에 둘둘 말린 것처럼 보이게 한 뒤에는 관을 임시적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 과정은 매우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남부 왕국 수도〉로 향하여 다른 관으로 옮긴 뒤에 제대로 된 장례식이 시작될 터였다.
관이 완성된다면 이름이 새겨질 것이고, 그곳에 다른 병사들이 제각각 단검으로 할 말을 새길 것이다. 모두 칭찬일색일 터였다. 그리고 그들의 유족은 그 관을 받게 될 것이다.
“지휘관님. 추적 용병단이 도착했습니다.”
야지에서 보고가 이루어졌다. 모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남부 왕국의 특성상 지휘관에게 요구하는 FM 때문이다. 물론 그것을 지키고 말지는 오직 귀족인 그에게 달려있었다. 하려면 잠자는 것도 어려울 정도로 일이 많은 국회의원과 비슷했다.
안 한다면 언제든지 안 할 수 있었다. 그가 다섯 개의 관을 지키고 있었기에 더욱 엄숙한 분위기가 이 주변에만 있었다. 군막을 넘어가면 또 달랐지만.
숨막히는 분위기가 이 주변에는 있었다. 보고를 받기에는 제법 조용했다.
“저희는 바로 주동자를 쫓았습니다. 화살 하나 박히지 않은 멀쩡한 몸으로 빠르게 도망쳤습니다. 무기는 하나 없었지만, 저희는 그를 잡아내지 못했습니다.”
드낙이 도렌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는 그 눈총을 감지를 못했고, 드낙이 턱짓을 하고 나서야 입을 황급히 열었다.
“열심히 달려가는데, 갑자기 무릎이 아팠습니다. 굉장히요. 그리고는 전 그대로 고꾸라졌습니다. 몇 번이나 굴렀었고, 정신을 차리고 다시 뛰려고 해도 검은색의 불길이 제 무릎에 들러붙어있었습니다.”
“그것은 손으로 쳐도 꺼지지 않았고, 바람이 불어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십분?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에서야 다시 뛸 수 있었습니다.”
도렌의 증언이 이루어졌다. 〈검은색 불꽃〉은 분명 흑마법사의 특징이었다. 이스핀은 자신의 구겨진 방패를 보여주었다. 철판이 구겨진 부분에는 사람의 얼굴이 박혀있었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그 방패에 새겨진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봤다.
다닥다닥 붙여진 흑마력이 찌꺼기처럼 남아있었다. 손으로 그 부분을 훑었다. 검은 진액이 나왔다. 당연히 그 진액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법적으로 방어가 이루어지고 있는 게실리안 지휘관이었다.
푸른 마력과 부딪치면서 사그라들어 이내 사라졌다.
‘확실하군. 흑마법이다.’
“전 악령 같은 머리가 달려드는 마법에 당했습니다. 맞자마자 멀리 날아가야 했는데, 한 발도 아니라 몇 발이나 되었습니다.”
〈밴쉬 에로우(Banshee Arrow, 악령 화살)〉의 저지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낮은 수준의 흑마법임에도 사람 하나 골로 보내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흑마법의 공격력은 대단한 수준일 수밖에 없었다.
그 뿌리가 악마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드낙은 키메라와 파이어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게실리안 지휘관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키메라라니···”
생생하게 말해지는 외관 묘사에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키메라는 쉽게 만들 수 없었다. 더군다나 씨앗같이 작은 것에서 사람보다 큰 키메라가 되었다는 것은 믿을 수 없는 일이었다.
‘허어···’
어디에서든지 뿌리기만 하면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벌어질 것이다. 평범한 키메라도 만들려면 상당한 노력 그리고 기반이 필요했다. 그 그림자를 본 이상, 흑마법사들이 당장이라도 어디서 사고를 낼 것 같아서 불안한 마음이 가득 차올랐다.
“살아남은 것이 용하군. 수고했네. 아주 큰 정보를 얻었네. 가서 쉬게.”
“예.”
추적 용병단이 물러가자 게실리안 지휘관은 당장 〈선임병사 불세벤〉을 자신의 군막으로 호출했다. 자신은 그 길로 군막에서 긴 양피지를 쫘라락 펼쳐내어 적당한 선에서 자르고 보고서를 써 내려갔다.
양피지의 숫자는 2장이었다. 하나는 자신의 가문에게 보내질 것이었다.
〈흑마법사 준동의 움직임〉. 〈상당한 기반이 메디오 지방 북쪽에 있음〉. 〈신전의 개입 필요〉. 〈가문 내에서의 호위 요청〉. 그 외에 흑마법사에 대한 것과 키메라의 특징에 대해서 써 내려갔다.
그 사이에 불세벤은 열다섯의 병사를 준비시켰다. 그들은 야밤임에도 출발했다. 한 시가 급했다. 횃불과 기름으로 밤길을 방향을 단단히 잡고 움직일 것이다.
“수고했소.”
그것으로 장기간이었던 〈언덕 삼거리 치안 도움 혹은 확보〉에 대한 의뢰를 〈추적 용병단〉은 마칠 수 있었다. 드낙은 굳이 〈붉은털의 곰〉을 잡는데 자신을 불러달라고 하지 않았다. 그러지 않아도 반드시 인연이 닿을 것이다.
‘할 만큼 다 한 것도 아니고, 정말 잘했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결코 나를 잊지 못할 것이다.’
드낙이 웃음 지었다.
관을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고, 거리도 멀었기에 일주일을 소모해서 〈왕국 야영지〉에 다시 도착할 수 있었다. 〈선임병사 불세벤〉은 〈추적 용병단〉의 용병단장인 드낙에게 결산 양피지를 내어주었다.
그가 한 공적이 양피지에 쓰여 있었다. 당연히 모두 정확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값은 제대로 맞추었다. 오히려 웃돈을 더 얹어주기도 했다. 〈흑마법사〉에 대한 정보를 획득했기 때문에 게실리안 지휘관이 인심을 쓴 것이다.
물론 인심 쓴 것은 게실리안 지휘관이였고 쓰인 것은 세금이었다.
원래라면 은화 49닢에 동화 1710닢을 받았겠지만, 양피지에 쓰인 것은 은화 60닢에 동화 1710닢이었다. 나랏돈이니 거침없이 웃돈을 얹은 듯했다.
‘흐흐.’
자신의 몫으로 여겨 나누지 않은 금화 1닢에 은화 20닢과 동화 550닢. 거기에 〈검은 산골 마을〉에 있을 은화 27닢과 동화 390닢. 〈세파리아스 불파겐(Sepharias Bulpagen)〉의 무덤에서 얻은 은장신구까지.
용병이 되자마자 돈이 넝쿨에 주렁주렁 걸려서 손에 들어오는 기분이었다.
‘마법 방어구.’
파이어볼의 섬뜩함을 느낀 드낙이었다. 그는 그것을 막을 것이 필요했다.
“앞으로 어떻게 됩니까?”
드낙의 말에 불세벤은 무엇 하나 말해주지 못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었다. 드낙은 용병이었기 때문이다. 자신과 소속이 다른 이에게 속내를 말해줄 수 없는 노릇이다.
별다른 추가 정보를 얻어내는 것 없이 〈왕국 야영지〉를 떠났다.
늙은 당나귀가 짐수레를 끌었다. 도렌이 뒤에서 밀어주고 있었고, 강렬한 햇빛이 내리쬐는 길을 〈추적 용병단〉이 걸어갔다. 멀리서 보이는 횃불 성채가 그들을 반겨주고 있었다.
“정말 길었다.”
“드디어 끝났네.”
도렌과 이스핀에게는 자신들의 집이 있는 곳이었다. 검문을 통과하고, 곧바로 외청(外廳)으로 향했다. 돈 받을 생각에 이스핀은 콧노래를 부르기까지 했다. 물론 도렌과 교체해서 짐수레를 밀어야 했다.
돈 받는 것에 그 어떤 문제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을 쓴 사람은 〈선임병사 불세벤〉이었지만 찍혀진 인장은 파이룬 가문의 것이었기 때문이다. 단지 가문의 인장을 확인한다고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었다.
전자 시스템이 없었기에 하나하나 대조해야 했다. 신참 녀석인지, 일머리 제대로 없는 문관이 걸려서 한참 뒤에서야 돈을 받을 수 있었다.
돈은 정말로 균등하게 배분되었다. 뒤풀이를 위해서 당연히 식당 하나를 잡았는데, 이스핀이 당당하게 추천한 곳으로 향했다.
“여깁니다. 여기 주변에 전부 1층뿐이라 2층으로 올라가면 경치가 그렇게 좋습니다.”
“오.”
도렌이 추임새를 넣었다. 식당 자체는 오래되어 보였고, 사람도 많이 찾지 않는 곳이었다. 그리 벌이가 좋은 동네에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떡대 이스핀〉! 정말 오랜만이군!”
카운터를 보며 이쑤시개를 씹고 있는 사장이 몸을 일으켜서 그를 반겼다. 간판 하나 없는 식당이었다. 아는 사람만 온다고 보면 되었다. 뒷골목 때 인연을 가졌는지 떡대라는 별명이 이스핀의 이름 앞에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