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93 <-- 불법 상단 -->
추적 용병단은 일찌감치 도망자를 노렸다. 애초에 그러기 위해서 멀찍이 떨어져 있었기도 했다. 정확하게 측면에 있었던 용병단은 빠르게 산기슭을 내려갔다.
‘황금 고블린!’
화살비에서 상처 하나 없는 〈1제자 포낙서스〉의 망토는 드낙의 탐욕에 불을 질렀다. 전생에 게임을 제법 좋아했던 박호훈이었다. 단번에 포낙서스는 황금 고블린으로 보였다.
거칠게 뛰었기에 자연히 포낙서스에게 간파될 수밖에 없었다. 도망치는 방향이 추적 용병단이 있는 것과 많이 달랐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호다닥!
포낙서스는 흑마법사치고 달리기 속도가 제법이었다. 드낙이 혁대를 풀며 숏소드를 버렸다. 언제든지 찾을 수 있다고 여겼고, 지금은 무게를 줄일 필요가 있었다. 따르는 대장이 그렇게 혁대를 벗어버리고, 투척 단검과 숏소드를 버리자 이스핀도 혁대를 풀었다.
도렌도 냉큼 따라 했다. 추가적인 장비 없이 기본 장비만 가지고 뛰었다.
아무리 날래도 내리막길을 주르륵 내려오는 사람을 이길 수 없는 노릇이었다. 〈추적 용병단〉은 능숙하게 능선을 잡아서 내려오고 있었고, 포낙서스는 언덕을 오르고 있었다. 넘어갈 생각인 것이다.
‘젠장! 매복이 있었구나! 보통 놈들이 아니었다!’
포낙서스의 가슴은 철렁거릴 수밖에 없었다. 철두철미하게 준비한 정규군은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물론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병사 100인의 눈에 드낙이 활약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좌천 시킨 것뿐이었다. 절로 〈추적 용병단〉에 대한 경계심이 매우 높아졌다.
그의 왼손이 빠르게 움직였다. 오른손에는 〈서리아귀 배낭〉이 단단히 잡혀있었다. 푸른 마력이 잔상을 남겼다. 거리가 멀어진 마력은 검붉게 타오르면서 폭탄의 심지처럼 타들어가며 사라져갔는데, 멀리서도 확연하게 보였다.
‘저게 마법? 너무 불길한데?’
보기만 해도 기분이 뒤틀렸다. 드낙이 이 정도인데 이스핀과 도렌은 인상을 한껏 찌푸리고 있었다. 도렌은 속이 울렁거림을 느꼈다.
마법이 완성되자마자 검붉은 화염이 왼손에서 솟구쳐 올랐다.
포낙서스가 입을 달싹거렸다.
“〈일루전 운드(Illusion Wound, 환상 상처)〉.”
왼손에서 타오르던 검붉은 화염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유일하게 연기 한 줌이 잔류했다.
“억!”
도렌이 갑자기 소리를 내지르더니 척추를 꼿꼿이 세웠다. 그리고 그대로 나뒹굴었다. 갑자기 왼쪽 무릎에 통증이 크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구르는 그를 이스핀이 챙기려고 했지만 도렌이 고함을 질렀다.
“놈을 쫓아!”
이스핀이 씩 웃더니 그대로 드낙을 다시 따라나섰다. 도렌은 서둘러 무릎을 살폈다. 그곳에는 그 어떤 상처도 없었다. 대신에 탄내가 나지 않는 검은색 불꽃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어우씨!”
도렌이 깜짝 놀라며 손으로 탁탁 불꽃을 쳤지만 불꽃은 전혀 사라지지 않았다. 무릎 통증은 계속 화끈거리고 나타났다 사그라들기를 반복했기 때문에 움직이려고 하다가도 움직이지 못했다.
‘동료를 버린 건가. 독한 놈들!’
25명의 하수인을 한순간에 버린 포낙서스가 의리도 없이 자신을 계속 쫓아오는 두 명을 보며 욕을 퍼붓고 저주를 날렸다.
‘명예를 아는 것들이 더하는군!’
혀를 찼다. 당연히 다음 주문을 준비했다. 달리면서 수인을 맺는 것은 결코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주문을 외우는 것이 힘들 것이다. 자신의 이름을 손가락으로 그리면서 달리는 것이 어렵지 않은 것과 비슷했다.
“헉! 헉!”
숨이 턱까지 차올랐지만 주문을 완성하는 것은 금방이었다. 남은 마력을 모조리 토해냈다. 포낙서스는 〈악마 아카타베루〉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밴쉬 에로우(Banshee Arrow, 악령 화살)〉.”
문양을 그리면서 계속해서 이어지던 마력의 줄이 검붉게 타오르며 흑마법이 완성됐다. 꼬리를 물고 튀어나오는 유령의 머리가 다섯이나 되었고, 그것은 화살처럼 적을 향해 쏘아졌다. 모든 마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숫자가 많았다.
가장 선두를 달리는 드낙에게 세 발이 모였고, 이스핀에게는 두 발이 향했다.
드낙은 타이밍을 가늠했다. 어지럽게 움직이고 있었지만 쏘아지는 속력은 일관되었다. 허접한 마법이었고 못 피하면 병신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숲에서 달리는 것이 능숙한 드낙이었다.
타격 직전 단번에 나무 하나를 엄폐물 삼았고, 마법에 불과한 악령 화살은 나무에 두 발이 박혔다. 하나는 허공을 가르며 지나갔다. 지나간 악령의 머리는 점점 길쭉하게 변형되더니 힘을 잃고 그대로 바닥에 꽂혔다.
퍼석!
땅에서 제법 큰 충격음이 들리며 흙을 높이 터트렸다. 그것을 본 이스핀은 낭패한 표정을 지었다. 무식하게 그냥 방패만 믿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이런, 젠장!’
그대로 몸을 굴리려고 했지만 워낙 두툼한 몸을 가진 이스핀이었다. 구르기도 전에 방패를 악령 화살 하나가 두들겼다.
쾅!
충격이 전신으로 퍼져나가며 이스핀이 달리는 방향 반대편으로 튕겨졌다. 방패가 움푹 들어가 있었고, 뒹군 이스핀의 등이 나무에 부딪쳤다.
“허으으···”
등골이 부러질 것 같았다. 옴짝달싹도 못하는 이스핀은 그래도 수십 초 내에 몸을 추슬렀지만 이미 드낙과 포낙서스는 언덕을 넘어가서 보이지도 않았다. 맥이 탁 풀렸다.
“끙···끄응···”
힘을 어떻게든 내서 갑옷을 벗으려고 했지만 팔이 통증을 호소했다. 어디 부딪치면서 타박상을 입은 듯했다.
그 뒤로 족히 백 미터를 더 달리고 나서야 포낙서스가 걸음을 멈추었다. 헐떡거리는 숨은 진정되지도 않은 채로 그가 품을 뒤적거렸다. 수풀 속에서 날아온 화살 세 대가 정확하게 그를 덮쳤지만 망토를 거치면서 후두둑 떨어져내렸다.
휙!
품에서 작은 열매를 하나 던졌다. 그것은 땅에 떨어지자마자 거칠게 쩍 소리를 내며 갈라지더니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면서 성장하기 시작했다.
〈키메라(Chimera)〉였다.
‘저건 또 뭐야?’
드낙은 상대의 역량이 생각보다 높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뭔지는 몰랐지만 자신에게 위협이 될 것처럼은 안 보였다. 곧바로 온갖 것들을 토해내는 키메라를 지나쳐서 포낙서스에게 달려들었다.
마력을 모두 사용한 포낙서스가 몸을 데굴 굴렀다. 드낙의 롱소드가 허공을 갈랐다. 그의 발이 포낙서스의 망토를 밟았다.
“억!”
단번에 구르다가 멈춘 포낙서스가 내려쳐지는 롱소드를 피하기 위해서 아등바등 거렸다.
캉!
〈인비저블 쉴드(Invisible Shield, 보이지 않는 방어막)〉가 모습을 드러내며 균열이 조금 생긴 채 롱소드를 막았다. 연달아서 방패까지 내려쳐졌다. 거기에 갈색늑대 도노까지 아가리를 그의 목에 들이밀고 있었다.
“크르르! 앙!”
보호막에 침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을 보며 당황한 포낙서스는 망토의 고정대를 풀어버리고 데굴데굴 굴러서 키메라의 곁에 섰다. 구르는 사이에 그새 도노가 부츠 한 짝을 물어서 벗겨버렸다.
도노는 포낙서스가 키메라에게 도망치자 뒤로 물러섰다. 훈련의 결과였다. 덩치가 큰 놈에게는 견제만 한다는 것이 드낙이 도노에게 원하는 것이었다.
“키아으···”
동물의 주둥이가 나오다가 체액으로 범벅이 된 분홍색의 식물이 밀어내며 더욱 존재감을 발휘하기도 했다. 꼬리가 머리처럼 달려있었고, 다리는 아무 곳에나 달려있었고 버둥버둥거렸다.
“케엑!”
거칠게 기침하며 검은 진액을 토하기도 했다.
드낙이 롱소드를 한 번 손목 스냅을 이용해서 붕붕 휘둘렀다. 시간을 끄는 모습에 포낙서스가 아직 성장이 마치지 않은 키메라에게 명령했다.
“놈을 죽여라!”
“키아아!”
온갖 것들로 뒤엉켜있는 키메라가 마치 굴러가듯이 움직였다. 드낙은 날렵하게 피하며 롱소드로 가지치기를 하듯이 식물을 베어내고, 작은 뱀의 머리를 방패로 후려쳤다. 바닥에 보라색의 독이 묻었는데 치이익 거리는 소리와 함께 산화했다.
“우와아아아!!!”
멀리서 들려오는 함성 소리에 포낙서스의 심장이 철렁했다. 게실리안 지휘관이 병사들에게 환호성을 받는 소리였지만 워낙 우렁차서 추격대의 소리로 착각했다.
‘더 이상 지체하면 끝이다!’
늑대인간까지 이렇게 쉽게 죽을 줄은 몰랐다. 게실리안 지휘관이 앞에 나서서 싸운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가 빠른 전투의 종료였다. 그 효력이 여기서 발휘되었다.
부욱!
포낙서스가 단번에 사람의 가죽에 뼈와 산양의 뿔을 빻아서 만든 양피지를 꺼내들어서 단번에 찢었다. 거대한 화염이 드낙을 향해 엄청난 속도로 토해졌다.
목표물이 된 것은 드낙이었고, 도노는 아니었다.
드낙은 그대로 도망쳤다. 롱소드를 쥔 새끼손가락과 약지로 트롤의 망토를 집어 들고 그대로 몸을 던졌다.
‘파이어볼 같다!’
그가 그렇게 전력으로 도망친 이유는 소설 속에서 본 〈파이어볼〉을 연상시켰기 때문이다. 화염구의 크기는 사람 머리보다도 컸기 때문이었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생각은 드낙을 배신하지 않았다.
쾅!
거대한 폭발이 일어났다. 화염이 드낙의 머리카락을 태웠고, 드낙은 큰 충격을 받으며 날아가야 했다. 시야가 반전하며 뇌가 순간적으로 시각 정보를 받아들이지 못했음에도 능숙하게 드낙이 낙법을 했다.
하지만 충격은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대단했다. 계속해서 굴러야 했다. 그리고 나무에 부딪쳤다.
키메라에 올라탄 포낙서스는 트롤의 망토를 쥔 채로 날아가는 드낙을 보며 인상을 가득 찌푸렸다.
“후우윽! 후으으!!”
놀라운 정신력으로 드낙이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온몸에 힘을 가득 쥐었다.
‘파이어볼을 직격한 것은 아니지만 단박에 일어나다니!’
포낙서스의 눈이 갈등으로 가득 찼다. 이미 〈스승님〉이 주신 스크롤, 키메라의 씨앗을 써버렸는데 트롤의 망토까지 잃는다면 어찌 될지 눈앞이 깜깜했지만 그래도 도망칠 수밖에 없었다.
스승의 질책도 살아서야 받을 수 있는 것이었다. 크게 본다면 법이 무섭지만 주먹이 가까우면 법도 무색한 법이었다.
포낙서스는 그대로 줄행랑을 쳤다. 몸을 일으킨 드낙이 몸을 나무 등치에 기대었다. 충격으로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숨도 가끔 뚝뚝 끊겼는데 폐가 놀랐기 때문이었다.
“후우···”
심호흡을 하면서 몸을 추스른 드낙은 전신이 사시나무 떨 듯이 덜덜 떨리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파이어볼〉의 위력은 드낙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주, 죽을 뻔했다.’
귀는 아직도 먹먹했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화기(火氣)는 드낙의 전신에 들러붙어서 뜨끈뜨끈했다. 그것은 결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사우나에 있는 것처럼 화끈거렸다. 바람이 불 때마다 좀 줄어드는 것 같으면서도 계속 지속됐다.
화르르르···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는 마력의 화염이 드낙이 방금까지 있었던 곳에 가득 타오르고 있었다. 작은 구덩이가 파여져 있었다. 그리 대단한 범위는 아니었다. 끽해야 다섯을 태워 죽일 정도였다.
‘무려 다섯.’
하지만 드낙의 판단은 〈무려 다섯〉이었다. 그만큼 단번에 다섯을 죽일 수 있는 파괴력을 지닌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도노가 다가와서 근처에서 머물렀다. 개처럼 손등을 핥지는 않았다. 심적으로도 안심을 되찾은 드낙의 안색이 나빠졌다.
긴장이 풀리면서 막아놓은 몸의 부하가 토해진 것이다.
“웁.”
죽음의 향기를 맡은 몸은 긴장이 풀리자마자 이상 증세를 보였다. 드낙은 헛구역질을 했다. 바들바들 떨리는 팔다리는 등에 기댄 것조차도 어렵게 만들어서 주저앉게 만들었다. 식은땀이 전신을 덮쳤다.
불어오는 바람에 몸은 오한까지 느낄 정도로 컨디션이 나빠졌다.
충격. 폭음. 화염. 죽음.
그것은 드낙을 처음으로 크게 무너뜨렸다. 하지만 드낙은 흙을 움켜쥐었다. 억지로 몸을 일으키다가 한 번 옆으로 쿵하고 넘어졌지만 그 충격 덕분에 더욱 육체를 일으켜 세울 수 있었다.
‘살아놓고서는 어디에 잡혀있을쏘냐.’
극복해야 할 것으로 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아니, 억지로 그렇게 생각했다.
드낙은 용병단장으로서 임무를 이행하러 움직였다. 〈트롤의 망토〉를 움켜쥐고 언덕을 다시 돌아가서 넘었을 때, 도렌의 부축을 받으며 오고 있는 단원들이 보였다.
“놓쳤다!”
그 말 한 마디에 두 사람이 서로를 보더니 낄낄 거리며 누가 뭐라고 할 것도 없이 주저앉더니 그대로 대자로 뻗었다. 드낙의 발걸음이 빨라졌다.
분명 시시껄렁한 것으로 다투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