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강철의 전사-92화 (92/1,239)

0092 <-- 불법 상단 -->

늑대인간들은 제법 가파른 골짜기를 말처럼 뛰었다. 바위를 뛰어넘고, 손으로 짚으면서 점프를 했는데 마치 새가 나는 것처럼 보였다. 믿을 수 없는 민첩성에 병사들의 원형진이 더욱 들러붙어서 조밀해졌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그 진형에서 한 걸음 툭 튀어나와있었다. 그는 방패와 롱소드 대신에 클레이모어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있었다.

선두를 자처할 수밖에 없었다.

“불세벤! 전투가 시작되면 병사들의 지휘는 너에게 맡긴다! 방패를 내리는 순간 모든 것이 끝장임을 명심하라!”

“명을! 받듭니다!”

“크르아아!!!”

나무에 순식간에 올라가서 굵은 나뭇가지를 쥔 늑대인간이 거칠게 포효하더니 나무를 박차며 그대로 뛰어들었다. 마치 투척된 창처럼 쏘아졌다. 나무는 그대로 기울어지더니 뿌리가 조금 튀어나오며 출렁거렸다.

쾅!

병사의 이빨이 까드득 소리를 냈다. 잇몸에서 피가 주륵 흘러내렸다. 온몸에 힘을 줘도 밀리는데 단단하게 그 발을 발로 받쳐주고, 등에 밀착한 전우의 숨결이 귀에 거칠게 들려왔다.

“차아아앙!”

1열과 2열의 병사가 늑대인간을 저지한 사이에 3열에 있던 창병의 장창이 늑대인간의 목을 베면서 지나갔다. 얕았다.

“이 개새끼가! 똑바로 안 해!!”

2열에 있던 도끼병이 어렵게나마 도끼를 방패에 얹어서 톱질하듯이 휘적거렸다. 늑대인간이 방패를 잡으려 했기 때문이다. 손이 베인 늑대인간이 크게 한 걸음 다가왔다. 다시 한 번 창이 찔러졌다. 피가 튀었다.

“커흐엉!”

호랑이 같은 소리를 내자 관절이 울렸다. 식은땀이 주륵 흘려내렸지만 누구 하나 물러서지 않았고, 되려 악을 질러대었다. 늑대인간들은 강렬한 인간들의 저항에 주춤거렸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사람 두 명의 어깨를 합친 것처럼 떡 벌어진 어깨에서 나오는 완력은 장식이 아니다. 아무개는 잇몸에서 피가 흐를 정도로 몸에 힘을 줘서 버텨냈다.

그들은 군인이었다. 오직 전투를 위해서 양성되는 인간이다. 늑대인간들은 한 번도 병사와 싸워본 적이 없었다. 싸우더래도 3명 이하의 소수 인원이며 작은 마을에 배치되는 〈징집병〉 혹은 〈자경단〉의 성격을 지닌 병사가 전부였다.

새벽 수련이 하루의 시작인 것이 기사였다. 당장 게실리안 지휘관만 봐도 새벽 수련이 습관이 되어있다. 하물며 병사들은 어떻겠는가? 윗물이 새벽에 일어나는데 아랫물이 늦잠자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

그저 지휘관이 일찍 일어나 새벽 수련하는 것만으로도 병사들은 새벽에 일어나서 새벽 단련을 해야 했다.

비록 육체는 완전한 늑대인간과 구별이 안 간다고 하더라도 이성보다는 본성으로 가득 채워진 〈불완전한 늑대인간〉들이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가 쥐를 몰았는데 쥐가 미친 듯이 저항하며 고양이의 코를 물어뜯은 격이었다. 혼비백산할 일이었다. 그러지 않은 것은 늑대인간이 지닌 흉포한 성질 때문이었고.

“억!”

늑대인간이 찔러지는 창을 말도 안 되는 동체시력으로 낚아채서 당겼다. 창병은 잡히자마자 소리를 내며 당황했지만 곧바로 창을 놔버렸다. 아주 잘한 일이었다. 인간은 후방에 아주 취약했고, 만약 창병이 그대로 창을 잡고 버텼다면 도미노가 무너지듯이 앞으로 넘어졌을 것이다.

창을 빼앗아 그대로 바닥에 버려버린 늑대인간이 재차 달려들었다. 순식간에 도끼가 손을 패버렸지만 늑대인간의 몸이 방패를 두들기며 거칠게 아가리가 안으로 들어왔다. 창병은 그때 대거를 뽑아들고 최대한 밀어주고 있었는데, 그 아가리 속에 대거를 냅다 던져버렸다.

“캭!”

혀가 잘리며 피가 흥건하게 쏟아져 나왔다. 뒤로 물러가는 늑대인간을 느낀 고개 숙인 방패병이 그대로 고함을 지르며 방패를 대각선 위로 올리며 달려들었다.

뻑!

턱을 맞고, 그대로 방패에 가슴 상단부를 맞은 늑대인간은 터프하게 그 공격을 버텨냈다. 도끼병이 서둘러 자신의 방패를 위로 올려 내려쳐지는 늑대인간의 팔을 막았다.

텅!

무릎이 단번에 꺾였다.

“우븝.”

혀를 깨물 정도로 강력한 압박이었다. 그리고 절로 자신과 함께 조를 맞추며 항상 함께 다녔던 〈사슴눈 패님〉이 버티고 있는 것이 용했다. 늑대인간의 발은 그전부터 계속 방패를 걷어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곳곳에서 싸우는 병사들 또한 늑대인간의 압도적인 신체능력에 밀려나가고 있었다. 늑대인간은 개개인 모두 제각각의 공격법으로 나서고 있었다.

물러났다 달려들며 방패를 걷어차거나 몸통 박치기를 하는 놈이 있는가 하면 그냥 방패에 들러붙어서 그 뒤에 있는 사람을 노리는 늑대인간도 있었다.

“캬하하하!”

말 그대로 압도적인 스펙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싸움의 구도는 인간들에게 매우 불리했다.

“세르닉! 자리 바꾸자!”

그저 방패가 두들겨지기만 했는데도 거친 숨을 내뱉고 있자 방패와 도끼로 무장한 병사가 앞의 방패병에게 소리쳤다. 세르닉은 자존심이 긁히는 듯한 기분에 휩싸였지만, 창병까지 뒷목을 잡고 당겼기 때문에 별 수없이 물러나야 했다.

“크헤악!”

이성이 완전히 무너져 울음소리밖에 내지 못하는 늑대인간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물러나지 않으려는 세르닉과 앞뒤를 바꾸려는 도끼병 사이에 난입했다. 운이 좋게 타이밍을 맞추어 들어왔다.

창병의 찌르기가 가슴을 찔러베었다. 조금 속도가 누그러진 사이에 도끼병의 도끼가 그대로 투척되었다. 급했기 때문이다. 어깨 한 쪽에 정확하게 틀어박혔다.

늑대인간이 되어도 〈검은 잎〉 마약 성분이 피를 타고 계속 흐르고 있었기에 고통이 무뎌져 있는 늑대인간은 거침없이 뛰어들었다. 세르닉에 들러붙었다. 세르닉은 버티려 했지만 불가능했다.

방패가 손에 잡히자 그대로 몸과 함께 바닥에 엎어져야 했다. 순식간의 일이었다. 도끼를 투척했기에 무기 없는 도끼병이 방패를 들어 올렸다. 손을 더듬으며 대거를 뽑았다.

“우-오오오!!!”

도끼병이 소리를 내질렀지만 늑대인간의 주먹 한 방에 뒤로 크게 밀렸다. 1열을 받쳐주는 방패병은 체격이 좋고, 맷집이 단단한 것에 반해서 도끼병과 창병은 그러지 못했다.

“개자식아!”

밟혀진 방패 때문에 숏소드만 쥐고 일어나며 늑대인간의 아랫배를 벤 세르닉은 고통 때문에 반사적으로 휘둘러지는 늑대인간의 팔에 머리를 맞고 그대로 목각인형처럼 크게 균형을 잃고 엎어졌다.

도끼병과 창병 그리고 검병까지 3인 1조로 구성되는 세부적인 조직에 있어서 그것을 보고 가만히 있을 이들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복수를 할 수 없었다.

“정렬! 뛰쳐나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선임병사 불세벤〉이 도끼병의 투구를 검면으로 후려치며 나가려는 것을 멈추어세웠다.

까드득.

이빨 가는 소리가 들렸지만 불세벤은 무시했다. 늑대인간은 세르닉이라 불리는 검병 혹은 방패병을 머리채로 들어 올렸다. 피를 철철 흘리는 아가리에 들러붙은 도끼를 빼내고 그 입으로 정신을 잃은 세르닉의 목을 물었다.

크게 털었다. 흉측하게 척추가 딸려 나오며 상체는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충혈된 눈으로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는 도끼병의 눈시울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러나 자리를 떠나는 일은 없었다. 그 두명까지 죽는다면 원형진은 더욱 약화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100명의 병사들은 25마리의 늑대인간을 하나 죽이기도 힘들어했다. 그러나 계속해서 상처를 입히며 최대한 전투를 오래 끌어 나갔다. 지구력은 인간이 가장 으뜸으로 내세우는 것이었다. 죽는 병사는 있었지만 아주 소수였다.

그 사이에 원형진에서 툭 튀어나온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은 늑대인간과 홀로 싸우고 있었다.

〈그라벤 윈드물레(진흙 풍차, Graben Windmuhle)〉.

찌르기에는 매우 취약한 비전, 그라벤 윈드물레는 파이룬 가문의 가장 잘 알려진 비전이었다. 약점이 확실하지만 약점을 알고 들어봐도 당한다는 점이 베스트다. 손잡이가 길쭉한 양손검일 때만 사용할 수 있는데, 풍차처럼 돌리기 위해서는 그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손의 힘이 가장 중요하였기에 손잡이가 충분히 길지 않으면 손가락 하나 자르기 힘들기 때문이다.

풍차처럼 돌리는 무협에서나 볼법한 단점투성이에 리얼리티 하나 없는 이 비전의 흉악함은 선방후공(先防後攻)의 형식이기 때문이다. 정확히는 짧은 공격과 긴 공격. 두 가지 버전으로 나뉘어있었다. 하나는 반원을 그리는 것이고 다른 것은 완벽한 원을 그리는 것이다.

여기서 선방은 상대가 공격했을 때 방어하고 그다음에 공격을 하는 것이 아니었다. 무식한 코뿔소처럼 들어가서 상대가 공격하지 않더라도 무기를 후려쳐서라도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기 때문이었다.

게실리안 지휘관이 빠르게 두 걸음을 앞서나가며 늑대인간의 팔꿈치를 클레이모어의 검면으로 후려팼다. 그리고 그가 무릎을 굽히고, 왼발을 살짝 뒤로 빼면서 몸의 높이를 확 낮추었다. 투구를 늑대인간의 다른 팔이 훑고 지나갔다.

휘릭!

대검이 아래로 떨어지며 반월을 그리는 사이에 게실리안 지휘관의 왼손이 반원을 그리며 떨어지는 대검과는 반대로 위로 올라가 손잡이를 잡을 준비를 했다.

늑대인간은 팔꿈치를 맞고, 헛스윙을 했기 때문에 게실리안을 공격할 수단 하나 없었다. 발로 차기에는 헛스윙을 하면서 무너진 균형을 잡아야 했다.

풍차처럼 한 바퀴 돌아가는 대검이어야 했지만 반원을 그리는데 끝나야 했다. 흙을 긁으면서 늑대인간의 발과 부딪치면서 힘을 읽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끊임없이 비전을 단련한 기사답게 팔꿈치 위쪽의 근육, 손목의 스냅과 손아귀의 힘 그리고 서로 다르게 잡은 양손의 원이 되며 보태는 회전력까지.

그 힘은 보통이 아니었고 발을 반절 잘라냈다.

“크아아!!”

소리를 지르며 발을 빼려고 했지만 왼손을 위로 미리 올린 게실리안 지휘관의 손이 더 빨랐다.

콰득!

대검이 그대로 땅을 찍었다. 날카로운 대검의 끝에서 두툼한 검신이 발을 완전히 반토막 내었다. 그 사이에 다른 늑대인간 두 마리가 게실리안 지휘관을 노렸다.

“〈볼케이노(Volcano)〉.”

양쪽 어깨 방어구에서 시뻘건 불이 한 번 솟구쳐서 측면과 후면의 허공을 불길로 뒤덮었다. 늑대인간의 상체 가슴부터 얼굴까지 모조리 뒤덮었다.

풀 플레이트 아머에 내장된 〈다수 마법〉이었다. 기사의 전방을 제외한 전방위를 타격하는 마법의 종류였고, 다수를 상대하면서 사용하는 마법이기도 했다.

발이 잘린 늑대인간의 목을 취하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잘린 발의 방향으로 돌아가서 힘이 깃들지 않은 팔을 잘라내고 목을 쳐내면 그만이었다.

서걱!

귀찮게 구는 늑대인간의 손을 베었다. 이성이 없고, 무기 들지 않은 늑대인간은 기사에게 있어서 허수아비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게실리안 지휘관의 속은 검게 타들어가고 있었다. 병사들이 죽어가고 있기 때문이었다.

붕붕붕!

세 번을 돌아가던 대검의 원심력이 가지는 파괴력은 상상이상이었다. 그렇게 3번 돌아갈 때까지 달려들지 못한 늑대인간의 팔이 말끔하게 잘려나갔다. 단두대가 아니라면 늑대인간의 굵은 뼈를 잘라내는 것은 불가능했음에도 170cm가 넘는 검신이 원을 세 번 그리며 만들어내는 파괴력은 그것을 가능하게 했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병사들에게서 상처 입은 늑대인간을 빠르게 처리해나갔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갔다.

모든 싸움이 끝나고, 마지막 남은 늑대인간이 게실리안 지휘관의 대검에 아주 잔인하게 죽었다. 병사들이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늑대인간에게는 불행이었지만 전우를 잃은 병사들을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병사 다섯 명이 죽고, 중상을 입은 병사가 셋입니다.”

불세벤의 말에 게실리안 지휘관은 깔끔하게 추적하는 것을 포기했다.

“추적은 포기한다. 중상을 입은 병사들의 치료가 먼저다.”

그의 기분이 아주 저조하였기에 평민인 불세벤을 배려하지도 않은 반말이 튀어나왔다.

“늑대인간 25마리를 상대로 다섯 명만 죽은 것은 대승입니다.”

불세벤이 27살의 젊은 지휘관을 위로했지만 게실리안 파이룬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았다. 자신의 역량은 결코 이런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남들의 기준은 소용없었다. 자신의 프라이드가 더 중요했다.

이것은 병사들의 죽음 그 자체에 책임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평민들의 죽음을 깊게 애도하는 귀족은 없었다. 게실리안 파이룬은 평민과 귀족으로서가 아니라 병사와 지휘관에 대한 판단을 하고 있었다.

‘늑대인간으로 변할 때 진지로 후퇴했어야 했다.’

엄폐물과 장애물을 지어놓고 쓰지 않았다. 왜냐하면 〈주동자의 추적〉을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군사학을 전공하고 수많은 명사(名士)에게서 경험을 사사받은 게실리안 지휘관은 곧바로 복기를 하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자신에게 욕망으로 만들어진 눈이 있다면 당장 그 눈을 베어내고 싶을 지경이었다. 가장 화가 나는 것은 피해 없이 늑대인간을 죽일 수 있었다는 점 때문이었다.

‘병사로 공을 사려고 한 것이나 다름없다. 꼴사납다.’

병사 다섯의 목숨으로 만든 빠르게 시작한 전투였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그들이 죽었고 중상자가 나왔기에 추적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급하면 급할수록 돌아가야 했던 전투인 셈이다. 적의 숫자, 강함.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 병력을 뒤로 물리지 않았다.

욕심 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욕심을 채우지도 못했다.

‘병사 수천을 죽이고 적에게서 승리했다고 뽐내고 다닐 생각이냐. 정신 차려라.’

게실리안 지휘관이 주먹을 부르르 떨며 죽은 병사들의 모습을 눈에 새기기 위해서 걸음을 옮겼다. 병사들은 늑대인간 대부분을 죽인 게실리안 지휘관이 지나가자 환호성을 질렀다.

모든 병사가 게실리안 지휘관이 고전하던 자신들을 구했다고 생각했다.

“와아아아!!!”

투구 속에서 게실리안 지휘관은 전혀 웃지 않았다. 그러나 몸에 밴 사교성이 그의 팔을 들어 올리게 만들었다.

“우와아아아아!!!”

더욱 환호성이 울렸다. 하지만 게실리안 지휘관은 그 환호성에 마음을 던지지 않았다. 오늘 있었던 전술적 실수를 결코 잊지 않기 위해 속으로 자신을 다그쳤다.

그에게는 야망이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