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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91화 (91/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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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낙은 곧 다가올 전투를 기다렸다. 〈추적 용병단〉은 전투에서 빠져야 했지만 그럼에도 드낙은 전투를 준비했다. 자신의 악운을 믿고 있었다.

‘어디서든 사건이 터졌다. 이번에도 터질 것이다.’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어찌 되었든 드낙에게 기회가 올 것이 분명했다. 드낙은 마을에 있었을 때부터 사건을 경험했고 이곳으로 오면서도 문제가 빈번히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 악운을 믿었다.

10일 동안 〈굴렁쇠 코뿔소 가죽 갑옷〉을 입고 매번 순찰을 나가 체력을 강제로 단련시킨 이스핀과 도렌은 이제 제법 그림이 나왔다. 게임처럼 레벨이 없었기에 단기간에 압도적으로 기량을 어느 정도 선까지 올릴 수 있었다.

‘도움이 될 것이다.’

드낙은 어느새 두 사람을 믿고 인정하고 있었다. 가르쳐주는 대로 받아들이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이스핀은 요령이 좋아서 도렌보다 노력을 안 하면서도 그보다 앞서나가고 있기도 했다.

드낙은 미리 폐기름을 먹인 가죽에서 활을 꺼내놔서 장궁으로 만들어놓기도 했다. 전투 준비를 마친 이후에는 몸을 끊임없이 스트레칭하며 열을 냈다. 언제든지 격렬하게 움직일 수 있도록 몸에 예열을 해놓는 것이다.

시간은 그렇게 계속 흘러갔다.

사박.

지나치게 눈동자가 새까만 용병이 가죽 주머니에서 마른 잎을 꺼내서 입에 넣었다. 입 주변에는 울긋불긋한 도드라기 같은 것이 나있었다. 씹으면서 보이는 이빨은 성한 것이 하나 없었다.

불쾌한 악취도 입에서 잔뜩 뿜어서 나왔다.

〈불법 상단〉의 규모는 26명으로 되어있었고, 짐수레는 없었지만 준마(駿馬) 15필을 대동하고 있었다. 말들은 모두 한 짐을 지고 있었기에 용병 중 누구도 말에 타고 있지 않았다.

유일하게 말위에 탄 채로 숲언덕을 오르고 있는 자는 〈1제자 포낙서스〉였다. 이름 없는 용병단에 소속된 25명의 용병들은 포낙서스의 하수인들이었다.

그들은 제법 공을 들여서 만들어진 〈흑마법사의 하수인〉이었다. 가족을 몰래 사고로 위장해서 죽이고, 홀로 남은 그들을 마약 성분이 있는 잎을 먹여 중독시키고 자신의 종복으로 삼았다.

‘〈검은 잎〉은 늑대인간으로서의 역량을 높여주고, 〈흑(黑)의 양피지(羊皮紙)〉의 효과를 증가시켜준다.’

흑마술 〈검은 잎〉이 가미된 새까맣게 죽어버린 것 같은 마른 잎은 마약 성분 또한 가지고 있었다. 감각이 무뎌지기 때문에 싸우고 있어도 늑대인간으로 변하지 않았다.

〈2제자 판데서스〉가 〈흑(黑)의 양피지(羊皮紙)〉의 일종(一種)인 〈엘프의 정신〉으로 절제하기도 힘든 것을 마약으로 너끈하게 해결한 것이다.

‘전투력이 낮아져도 상관없다.’

밑바닥에서의 전투는 사상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 죽음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초반에 모든 것이 결판난다.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 상대를 죽이는 〈1제자 포낙서스〉의 하수인들은 지금까지 승승장구 해왔다.

사박!

〈검은 잎〉을 먹는 용병들의 표정은 무표정했다. 그 무엇도 못 느끼는지 팔뚝에 들러붙은 숲모기가 길쭉한 주둥이를 들이밀어도 쫓지도 않았다. 씻지 않아 기름으로 번들거리는 피부에는 파리가 들러붙어서 손을 비비고 있었다.

‘판데서스 놈. 엉덩이 붙이고 재미를 보니까, 이제는 마중도 안 나오는구나. 괘씸한 놈이···’

기슭에 도착한 포낙서스는 잠시 휴식을 가졌다. 말을 타고 오면서 다리는 안 아팠지만 엉덩이가 아팠기 때문이다.

‘스승님은 너무 나만 믿으신다. 판데서스를 더욱 채찍질해서 다른 일을 맡도록 만들어야겠어. 이러다가 판데서스가 흑마법을 전수받게 된다면 금방 따라잡힌다.’

1제자인 자신이 2제자 혹은 더 이상 제자라고 할 수 없게 될 수 있었다. 포낙서스는 가죽 배낭을 열었다. 배낭의 입구는 마치 아귀의 주둥이처럼 이빨과 잇몸이 안에 보였다. 차가운 한기가 그 안에서 느껴졌다.

안에서 얼음 하나를 꺼내서 입에 물었다. 밤에는 쌀쌀해도 낮에는 한여름 그 자체였다. 얼음을 또 하나 꺼내서 얼굴에 이리저리 묻혔다.

“하으. 좋다.”

천국이 따로 없었다. 〈서리아귀 배낭〉은 포낙서스의 수준으로는 만들 수 없는 것이었다. 그의 스승이 주는 선물이었다. 그가 가장 애지중지하는 마법 물품이기도 했다.

짭조름하고 향신료를 여럿 뿌린 고급스러운 육포를 입에 물며 십여 분을 휴식하고 나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물 흐르는 골짜기〉가 금방 모습을 드러냈다.

골짜기의 입구에는 강도의 모습을 한 놈들이 테이블 하나를 두고 도박질을 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저 개새끼들.’

바로 그의 빈정이 상했다. 단단히 혼을 내줘야겠다는 생각을 하자 손과 발이 괜히 근질거렸다. 살아있는 놈들을 때렸을 때의 쾌감은 한 번 맛보면 알게 모르게 다시 찾게 되고 결국 그 쾌감에 빠져들게 된다.

그 또한 그것을 피할 수는 없었다. 본래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불화살이 하나 하늘로 쏘아 올려졌다. 〈불법 상단〉은 그것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강렬하게 내려쬐이는 햇빛과 타오르는 불화살은 처음 쏘아지는 것을 보지 못하면 모르는 것이었다.

포물선을 그리며 상단의 뒤로 내려꽂혔다.

휘익!

‘이게 무슨 소리지?’

〈1제자 포낙서스〉가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바짝 마른 풀떼기에 꽂힌 화살이 불에 타오르는 것을 볼 수 있었다.

포낙서스가 급히 쭈그려앉아서 망토를 똘똘 말았다.

다다닥!

화살이 사정없이 그들을 공격했다.

“히히힝!”

준마들이 소리를 지르며 고통에 벌떡 일어났다. 등에 짊어진 짐들이 떨어졌다. 크고 작은 가죽 주머니, 묶여진 목함이 바닥에 떨어졌다. 피를 줄줄 흘리면서도 말들이 사방팔방으로 뛰어갔다.

말의 고삐를 쥐고 있는 용병이 그대로 끌려가다가 줄을 손에서 풀었고, 머리를 나무에 부딪쳤다. 소리 하나 못 내고 그대로 용병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윽.”

용병들은 머리를 보호하며 화살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화살비는 금방 그쳤다. 100명의 병사가 1200발의 화살을 모조리 쏘는 시간은 결코 길지 않았다. 한 명당 12발을 쏘면 그만이었다. 〈명중하기 위한 화살〉을 쏘는 양궁 선수와는 다르게 쏘는 것이 병사들의 활 쏘기였다.

남들보다 더 빨리 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소리였다. 적에게 반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화살은 생각보다 살상력이 높지 않았다. 그렇기에 최대한 많이 단시간만에 쏘는 것이 정석이었다.

1200발의 화살 중에서 용병들에게 맞은 화살의 숫자는 300발에 불과했다. 단순한 징집병이 아니라 정규군이라고 생각했을 때 얼핏 보면 적어 보이지만 엄청난 명중률이었다.

화살이 전신에 박힌 용병들이 어기적거리며 도망치고 엄폐하고 있었다.

두려운 점이라면 그들은 마약에 단단히 중독되어 있어서 고통을 대단히 크게 느끼지 못해 크게 소리를 지른 용병이 하나도 없었다는 점이었다.

〈트롤의 가죽〉을 베이스로 염료를 오른쪽 대각선으로 한 번 바르고, 왼쪽 대각선으로 발라 트롤의 피부 패턴을 가리고 망토의 안쪽에는 〈트롤의 힘줄〉을 #형태로 들러 붙여 그물처럼 만든 망토를 둘러쓴 포낙서스가 눈만 빼꼼 내밀면서 주위를 훑었다.

양쪽에서 병사들이 중갑옷을 입은 채 무기를 높이 들고 내려오고 있었다.

‘젠장.’

X됐다는 생각이 가득했다. 무엇보다도 우측에는 전신갑주(全身甲冑, Full Plate Armor)를 입고 양볼에서 정확하게 쭉 내려와 목을 보호하는 특징적인 모습을 지닌 〈파이룬 투구〉라 불리는 투구를 쓰고 있는 기사가 보였다.

‘기사다.’

보통 기사도 아니었다. 명문가 출신이다. 명문가가 무서운 이유는 돈이 썩어날 정도로 넘쳐나기 때문이었다.

‘도망쳐야 한다.’

〈1제자 포낙서스〉는 결코 기사를 잡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기사의 무서움은 뼈저리게 알고 있기도 했다.

“일어나라! 하찮은 것들아! 여기서 내 체면을 이렇게 무너뜨릴 생각이냐!”

“으으···”

무릎 관절에 정확하게 틀어박힌 화살에도 아랑곳없이 용병이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 덕에 포낙서스는 조금 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자신의 모습이 몸을 일으켜서 다시 뭉치는 하수인들 덕에 가려졌기 때문이다.

왼손이 흉악한 악마의 문양을 그렸다. 푸른 마력이 반짝 빛났고, 손가락이 지나간 자리에 마력이 자리 잡았다. 그 문양은 계속해서 반복되었고, 마력이 덧씌워졌다. 이윽고 흑마술이 완성되었다.

문양은 단번에 마력을 집어삼키고 검붉은 연기를 한 번 토해냈다. 그 연기는 곧장 포낙서스의 코와 입으로 들어갔다.

“스읍···”

그것을 단번에 들이킨 포낙서스가 순간적으로 현기증을 호소했다. 비틀거리며 완전히 넘어졌다. 손으로 바닥을 짚으며 다른 손으로 양피지를 꺼냈다. 그는 반푼이 판데서스와는 달랐다.

판데서스의 〈흑(黑)의 양피지(羊皮紙)〉가 그저 지니고만 있어도(물론 문양에 대한 지식이 존재해야 했다) 효과가 나타나는 것에 반해서 포낙서스의 양피지는 달랐다.

즉효성이 매우 뛰어나기에 더욱 효력이 높았다.

“나의 신이시여. 나를 도와주소서. 내가 그대의 다른 모든 것이 되겠습니다.”

포낙서스는 악마 아카타베루의 시선을 느꼈다.

부욱!

찢긴 양피지가 단번에 유황색으로 타올랐다. 그리고 검붉은 가루와 검은 재가 용병들에게 들러붙었다.

“으극! 캬칵!!”

용병들이 부들부들 떨었다. 기괴하게 팔이 꺾였는데 이상하게 팔이 발등에 닿을 정도로 길어졌다. 〈검은 잎〉의 효과로 불완전함에도 보다 완전한 늑대인간의 모습을 갖추기 시작했다.

검은 털이 뭉텅뭉텅 나왔다. 주둥이가 늘어나고 인간의 이빨이 뽑혀져 나오며 선홍색의 피가 침과 뒤섞여서 주르륵 흘러내렸고, 동시에 날카로운 육식동물의 이빨이 튀어나왔다.

어딘가 모를 곳에서 날아온 화살이 변신을 하고 있는 늑대인간들의 밑에 숨어있는 포낙서스의 목을 노렸다. 망토의 틈을 정확하게 지나갔다.

텅!

“헉!”

투명한 막이 그 화살을 막았다. 하지만 포낙서스는 그대로 펄떡 뛰며 뒤로 뒤집어졌다.

왼손으로 문양을 그리며 발현시킨 흑마법 〈인비저블 쉴드(Invisible Shield, 보이지 않는 방어막)〉에 균열이 난 것이 그의 눈에 보였다. 그 균열은 서서히 검은 연기가 불똥을 튀기며 수복시키며 사라져가더니 이내 투명해져서 완전히 보이지 않게 되었다.

수풀에 숨은 드낙이 혀를 찼다. 단궁의 위아래에 부착물을 붙여서 장력을 높인 그의 활이 지닌 힘이 조금만 더 좋았더라면 뚫었을지도 몰랐다.

‘무슨 수작질을 하나 했더니, 방어 마법이었구나.’

망토로 몸을 꽁꽁 싸맨 포낙서스가 소리를 내질렀다.

“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

엉금엉금 기면서 바닥에 떨어진 〈서리아귀 배낭〉을 움켜쥐고 그대로 포낙서스가 도망쳤다.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는 말처럼 도망이 모든 전술 중에서도 제일이었다.

“아우우우우!!!”

늑대 인간이 제법 그럴듯하게 하울링을 하자 다른 늑대인간 24마리가 똑같이 포효했다. 주둥이가 하늘로 솟구쳤다. 밤이 아닌데도 늑대인간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흑마법의 실험작으로 태어난 기구한 존재이기 때문이었다.

외관만 늑대인간처럼 보이는 키메라들이었다.

그 사이에 게실리안 지휘관은 찢어진 병사를 하나로 모았다.

“결집하라! 결집!”

병사들이 하나로 모이자 불세벤이 능숙하게 원형진을 만들었다. 튀어나온 병사를 뒤로 오게 만들고, 너무 뒤로 온 병사를 앞으로 보내기도 했으며 자신의 위치를 잘 모르는 신병 때문에 얽혀있는 열도 정렬했다.

그 사이에 게실리안 지휘관은 선두에서 방패를 바닥에 찍고, 롱소드를 바닥에 꽂았다. 그리고 등에 짊어진 클레이모어를 상체의 혁대를 풀어 손에 집었다. 혁대와 연결된 검집 채로 바닥에 버리며 대검을 뽑아들었다.

‘낭패다.’

검은털이 온몸을 뒤덮고 늑대의 머리를 지닌 늑대 인간 25마리를 감당할 수 있을지 없을지 게실리안 지휘관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병사들의 피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때문에 게실리안의 표정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물론 〈세 개의 거울 투구〉 때문에 그 표정을 볼 수 있는 이는 하나도 없었다.

‘다행이라면 화살을 퍼부었기에 늑대인간 중 제대로 움직이는 놈은 몇 없다.’

그래도 게실리안 지휘관은 쓴맛을 느꼈다. 주동자가 도망을 치고 있었기 때문이다.

“후우우. 후우.”

팔뚝에 소름이 돋은 채로 2미터가 조금 넘는 큰 키를 지니게 된 변신한 늑대인간들을 마주하는 병사들은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심호흡하는 베테랑 병사도 제법 있었다.

‘제기랄. 평지에서 저런 괴물과 싸워야 한다니.’

‘일이 어떻게 이렇게 되냐. 그때 늑대인간의 시체 때부터 뭔가 있어 보였는데.’

게실리안 지휘관이 그 긴장을 풀게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애초에 긴장을 풀려고 노력하지도 않았다. 대신 병사들에게 책임을 상기시켜주었다.

“강철의 전사들아! 시민들에게 약속한 그날의 맹세를 잊지 마라! 훈련소를 나오며 굳건하게 외쳤던 그날을 기억해라! 도망치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게 될 것이다! 전우의 피로!”

“평화를!”

게실리안 지휘관이 다시 외쳤다. 병사들이 화답했다.

“전우의 피로!”

“평화를!”

병사들이 악을 썼다. 그 속에는 〈신병 로벤〉 또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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