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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90화 (90/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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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임병사 불세벤〉이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을 찾았다. 그는 동굴을 중심으로 우측에 자리 잡은 완성된 진지를 둘러보고 있었다. 한 번 볼 때마다 부족함이 생기는 것이 〈진지〉라는 것이었다.

병사들이 죽어가도 그렇게 해야지 전투에서 승리할 수 있음을 게실리안 지휘관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가장 좋은 지휘관은 병사들에게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지휘관이라는 속설도 있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지휘관인 그에게 중요한 것은 병사들의 경계심을 최대한 유지시키는 일이었다.

“무슨 일인가?”

“예. 생각하지 못한 것이 생각나서 왔습니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높이가 낮은 임시 군막으로 들어섰다. 그곳에는 대충 가죽이 펼쳐져 있었다. 보이는 흙은 파헤친 흔적이 보였다. 달군 돌을 밑에 넣었기 때문이다. 여름임에도 밤에는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부는 숲언덕이었다.

언제나 몸의 체온이 유지되거나 땀이 나더라도 데워야 하는 것이 비박이고, 야영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일어났을 때 뼈가 쑤신다. 젊은 신병들은 처맞아가면서 억지로 하지만 중년이 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하는 게 정상이었다.

“무엇에 대한 건가?”

“전투 시작할 때, 〈추적 용병단〉에 대한 것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좌우익에서 물이 흐르는 골짜기를 올라오는 상단을 활로 크게 쏘아 무력화시키는 것이 이번 전략이었다. 강도들이 〈불법 상단〉에게 팔려고 한 군수물품이 대량이었고 그것을 이용하는 전략이었다.

상단의 인원은 강도마다 말이 달랐지만 대체로 20~50명 사이였다. 병사 100명이 활을 마구잡이로 쏘면 싸우지 않고도 이길 수 있었다. 병사들의 활 솜씨는 당연히 준수했다. 괜히 직업군인이 아니었다.

그 덕에 추적 용병단에 대한 것을 잊고 술을 마셨다.

“허, 깜빡했다니. 이거 정말 부끄럽군.”

황당한 일이었다. 지금이라도 그 거처를 정해야 했다.

“··· 그래서 제가 말을 해도 되겠습니까?”

“들어는 보겠소.”

불세벤이 입에 침을 발랐다. 그 습관은 제법 긴장하고 있다는 뜻이었고, 게실리안 지휘관도 자주 본 적이 있었다. 그는 귀족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 사람들의 모습이기도 했다.

‘불세벤의 의견은 들을만하지.’

특히나 이렇게 독대의 형식을 지닌 담화는 무조건적으로 어떤 상황이 있더라도 먼저 듣는 편이었다. 왜냐하면 〈두려움〉을 가진 채 나섰기 때문이다.

“아직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지만, 그 결과론적인 공적을 생각하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모든 일에는 끝이 있는 법이었다. 그것은 상과 벌로 나누어진다.

“추적 용병단의 모든 공적을 무(無)로 돌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크게 내어줄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들 용병단의 이름과 걸맞은 공적을 내어주면 되는 일 아니오?”

“병사들의 입을 단속하는 것은 불명예스러운 일이고, 가십거리로 떠들어지기 마련입니다.”

수도 출신의 불세벤이었다. 그리고 그가 출세를 위해 움켜쥐고 있는 밧줄은 게실리안 지휘관이었다. 그것은 〈파이룬 가문〉의 사람이 되었다는 뜻이 아니었다. 감히 평민 주제에 어디서 가문을 들먹이겠는가?

그가 쥔 밧줄은 언제든지 흔들릴 수 있었고, 썩어서 뚝하고 떨어질 수 있었다. 그것을 염려하는 것은 그의 신하로서 응당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도 생각해야 하는 바였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턱을 거칠게 문질렀다.

“이번 전투에서 아예 참가 시키지 말자는 뜻인가?”

“예.”

불세벤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음···”

게실리안 지휘관이 고민했다. 사실 고민할 것도 없었지만 체면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척을 하는 것이기도 했다.

‘좋지. 나쁠 것 없다.’

상황 자체는 완벽하다고 할 정도로 잘 이루어지고 있었다. 놈들의 숫자는 결코 왕국군을 패배시킬 수 없었다. 무엇보다도 〈화살〉을 통한 기습은 무시무시할 것이다.

‘드낙 용병단장에게서 기대할 무력이 오지 않을 공산이 크다.’

소수의 강자가 등장하더라도 게실리안, 자신이 있었다. 또한 화살비를 맞고도 움직일 놈이 있을지 궁금했다. 아주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기습 공격이 계획되어 있었다. 그것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병사들에게 돌아가야 할 공도 있으니.’

무엇보다도 드낙을 이번 전투의 주역으로 만들어서도 안 되고, 보여서도 안 되었다. 이번 전투에는 병사들의 눈이 있었다. 뜸을 들이자 불세벤이 총대를 더욱 고쳐매었다.

“좌우익에 숨어있는 병사들과 〈추적 용병단〉이 어찌 호흡을 함께 맞출 수 있겠습니까? 더욱이 화살은 흉악한 무기입니다. 괜히 척후 용병단이 공적에 눈이 멀어 화살이 빗발치는 곳으로 들어간다면 병사들이 활 쏘는 것을 멈출 것입니다.”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온다는 소리로군.”

이 모든 의견은 따로 보고서로 작성되지도 않을 것이다. 나중에 문제가 된다면 증언에 서게 될 것인데 그런 상황 자체도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드낙을 위해서 누가 법정에 게실리안 파이룬을 세울 것인가.

그저 불세벤의 입으로 병사들에게 퍼지게 될 이야깃거리를 만드는 과정에 불과했다.

“전투에 있어서 아직 〈추적 용병단〉은 실적이 없으니, 이번 전투에 직접적으로 참가하는 것은 어렵다고 판단하겠네.”

“예. 제가 전하겠습니다.”

추적 용병단은 해질녘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제법 먼 곳까지 순찰을 나가고 있었다. 몸이 근질근질했다. 다가올 전운(戰雲)은 실전을 여러 번 경험한 드낙의 피부로 확실하게 전해져오고 있었다.

“선임병사께서 무슨 일로 저희를 기다리셨습니까?”

드낙의 입에서 나온 말은 고왔지만 속내는 불안했다. 불세벤과 그는 썩 좋은 관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서로가 원하는 바가 일치하지 않았다.

불세벤은 병사이며, 게실리안 지휘관의 유일한 선임병사였다. 일종의 중간관리직 혹은 말단 간부였다. 그 입장에서 드낙은 언젠가 사라질 〈용병 나부랭이〉였다.

반면 드낙은 이번 장기간 의뢰에서 최대한 〈군〉 혹은 〈기사와 인연이 있는 자〉의 눈에 들어야 했다. 용병계에서 인지도를 높이는 것보다는 귀족 혹은 그들과 줄을 대고 있는 자들에게 인지도가 높아야 하기 때문이다.

‘길은 잘 찾았다.’

우연이었지만 그래도 길을 잘 잡은 것이 드낙이었다. 이번 일이 끝나면 〈붉은털의 곰 토벌〉에 있어서 길잡이로 고용될 공산이 컸다. 토벌에 온 기사는 결코 〈왕국 야영지〉에 있는 게실리안 파이룬을 무시하고 지나가지 않을 것이다.

불세벤은 군이 가져가야 할 공적의 총량을 야금야금 뜯어먹으려는 드낙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 전투에 있어서 임무를 내어드리지 않은 것 같아서 말입니다.”

“아! 저도 걱정이 있었습니다.”

드낙은 안으로 들어서려고 했지만 불세벤이 거절했다. 그렇게 오래 이야기할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드낙과 근황을 나눌 것도 없었다.

“〈추적 용병단〉은 앞으로도 계속 밖의 순찰에 전념하시면 됩니다. 적을 발견하면 수가 얼마나 되는지 대충 가늠해서 오시면 됩니다.”

모두가 불세벤의 뒷말을 기다렸다.

“전투에서 도망가는 자들을 잡아들이는 것이 〈추적 용병단〉의 임무가 될 것입니다.”

“예?!”

이스핀이 깜짝 놀라 하였다. 그럴 수는 없었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불세벤은 두말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바로 자리를 뜰 수는 없었다. 뭐라고 해도 드낙의 무위 때문이다.

‘언제고 얼굴을 마주할 날이 오겠지.’

무례하게 할 말만 하고 떠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었다. 드낙은 작지만 떠오르는 별이었다. 괜히 게실리안 지휘관의 입에서 거론된 것이 아니다.

“많이 놀라셨을 겁니다. 하지만 이해해주십시오.”

불세벤은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를 구구절절 설명했다. 납득되는 것과 납득이 되지 않는 같잖은 것들이 쭉 나열됐다.

〈큰방패 이스핀〉은 납득하지 못한 표정과 태도를 유지했다. 도렌은 불세벤의 기세 때문에 불만을 가진 표정을 짓지 못 했다.

“하하. 괜찮습니다. 그렇게 결정되었다면 그렇게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의외로 드낙은 순순히 그것을 받아들였다. 정계로 치면 좌천이었다.

“대장!”

너무 쉽게 허락하자 이스핀이 크게 소리쳤다. 불세벤이 인상을 찡그리며 노려보아도 이스핀은 기세를 낮추지 않자 드낙이 이스핀을 나무랐다.

“어디서 소리를 그렇게 지르는 것이냐? 대우를 해 줄 때, 더욱 행실을 조심해야 하거늘. 내가 그렇게 우습게 보이나?”

“겨, 결단코 아닙니다! 저는···”

드낙이 손짓을 하자 이스핀이 고개를 크게 숙인 채 말을 못 했다. 그는 진실되게 이 용병단이 좋았다. 뒷골목에서 등에 단검이 박힌 뒤로 손을 털었던 그는 이번에 특히나 소속감을 크게 느낀 곳이 〈추적 용병단〉이었다.

자유분방함은 물론 겉으로나마 대우해주고 앞으로는 달라지겠지만 그럼에도 자신이 한 말을 큰돈을 앞두고도 바꾸지 않은 드낙을 깊게 존경하고 있었다.

“용병 단원들에게 잘 대해주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언제 들짐승처럼 물어뜯을지 모릅니다.”

이스핀의 눈이 붉게 달아올랐다. 어깨를 덜덜 떠는 것이 그 큰 덩치 때문에 더욱 확실하게 보였다. 불세벤이 혀를 차며 그리 말하자 드낙이 입을 열었다.

“선임병사께서도 제 용병 방침에 불만을 가지고 계셔도 제 앞에서 그렇게 무례하게 말씀하는 것은 잘못된 거라 생각합니다. 아닙니까?”

기회가 되어서 이스핀을 물어뜯은 불세벤이 고개를 숙였다. 이대로 각을 세우면 당연히 게실리안 지휘관은 드낙이 보는 앞에서 불세벤에게 경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불세벤은 능숙하게 대처했다.

“실언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저도 말이 심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드낙은 불세벤의 사과를 받으면서 스스로 말한 것에 대해서도 불세벤이 앙금을 가지지 않도록 사과했다. 적어도 끝에는 좋게좋게 가려는 것이었다. 서로 사과했으니 그만이었다.

그 처세술은 실로 드낙과 제법 잘 어울렸다. 물론 이스핀에게 사과는 하지 않았다. 그의 위치는 용병단원이었다.

“심한 말을 해서 미안하네. 〈큰방패 이스핀〉.”

대신 불세벤이 드낙의 사과를 받으며 그에게 할 말이 없어 대신 이스핀에게 사과하며 끝을 냈다. 불세벤은 〈추적 용병단〉에게서 그대로 몸을 돌려 걸음을 옮겼다.

“이스핀. 생각을 하고 말을 해라. 네 눈에는 〈선임병사〉라는 직함이 하찮은 것으로 보이나?”

드낙의 분노가 절로 느껴졌다. 그는 보통 남자가 아니었고, 〈세파리아스 불파겐(Sepharias Bulpagen)〉의 찌꺼기를 받은 자였다. 보통 기세가 아니었다.

그 기세를 마주한 이스핀은 깡을 부렸다. 겁이 났지만 드낙에게서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입을 다물 줄 모르는 놈을 내 옆에 계속 둘 수는 없는 노릇이다.”

드낙은 그 말을 하고 군막으로 들어갔다. 도렌은 엉거주춤했다. 이스핀을 위로하고 싶었지만, 그는 결코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상남자 중의 상남자가 이스핀이었다.

자신이 줬으면 줬지, 남의 배려를 받는 것은 죽어도 싫어하는 놈이었다.

도렌은 머리를 긁었다. 이런 상황은 그에게 너무 어려웠고, 이스핀의 어깨를 탁탁 두 번 치고 들어갔다. 이스핀은 한숨을 뻑뻑 쉬다가 드낙이 그를 부르자 그제서야 군막 안으로 들어갔다.

술 한 잔이 돌고, 오늘도 순찰하며 잡은 동물들이 손질되어 올라갔다. 거기에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보급품에 동화를 제공해서 받아낸 빵들로 식사 자리는 풍부했다.

하루 뒤, 〈추적 용병대〉는 〈불법 상단〉을 확인했다.

드낙의 숲에서 익숙한 눈은 적들의 규모를 단번에 잡아냈다. 30분 만에 추적 용병단은 능숙하게 몸을 숨겼다.

〈불법 상단〉의 규모는 고작 22명~27명이었다.

형편없는 숫자였고, 모두가 예상하는 바였다. 제대로 된 길을 사용하지 않는 놈들이었기에 당연했다. 물건을 강도들에게 구매해서 가야 했으므로 인원은 많아서도 안 되고, 너무 적어서도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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