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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89화 (89/1,239)

0089 <-- 불법 상단 -->

악마는 아무래도 꺼림칙했다. 그것이 무엇이든 제한 없고 대가 없는 힘은 드낙에게 의심만 줄 뿐이었다. 그는 이미 〈검은 꿈〉이 있기도 했다. 이것 또한 그러한 종류의 힘이었지만 적어도 적을 죽여야지 얻을 수 있었기에 시련으로 느껴졌고, 보상을 받는 거라 생각하게 했다.

결국 〈악마 아카타베루와의 연결〉은 할 수가 없었다.

‘판데서스는 〈악마 숭배자〉였다.’

또한 눈동자를 통해서 판데서스와 아카타베루의 연결고리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문양의 힘이 〈악마 아카타베루〉에게서 받은 것임을 깨달았다. 하지만 거기에서 의문점인 것은 마력을 운용할 줄 아는 판데서스였다.

‘마법을 알고 있었다면 〈검은 문〉으로 발현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또한 그것은 또 다른 의문을 야기했다.

‘마법을 모르는데 마력 운용은 할 줄 알았다.’

그 모순 속에 깃든 진실은 드낙의 눈앞에서 신기루처럼 아른거렸다. 잡힐 듯 잡히지 않았다.

짝!

그것은 그것이다. 드낙은 정신을 고쳐잡고, 결정을 앞두었다. 〈불완전한 늑대인간의 형질〉은 부작용이 심했다.

〈구역질 양피지 제작 방법〉, 〈문양 제작〉 3종류, 〈악마 아카타베루와의 연결〉 모두 악마와 연관이 있었기에 제외되어야 했다.

그렇게 한다면 남은 것은 오직 두 가지뿐이었다.

〈판데서스의 마력운용〉과 〈판데서스의 마력〉이었다. 여기서 드낙은 신중했다.

단순히 생각하자면, 드낙에게는 마력이 있었다. 만인(萬人)이 가지고 있는 것이 마력이었다. 반면 마력운용은 소수의 사람만 손에 쥐고 있는 권력이었다.

이득을 생각한다면 〈판데서스의 마력운용〉을 손에 넣는 것이 좋았다. 희귀하기 때문이다.

‘거짓말은 먹으면 먹을수록 점점 커져가서 이내 먹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린다.’

기사의 비전. 그때의 일로 직접적인 손해는 없었다. 하지만 드낙은 그 외에도 수많은 거짓말의 그릇된 말로를 잘 알고 있었다. 언젠가는 들키기 마련이었다.

마력운용을 손에 넣는다고 해도 그것을 당장 마법으로 쓸 수 없었고, 그 마력운용을 어디서 배웠는지에 대한 거짓된 스토리도 만들어야 했다. 그 스토리에 이 세상 마법사들 특유의 의식, 약속이 결여되어 있다면?

‘마법사들의 적이 되겠지.’

그것은 곧 기득권에 대한 반역이었다. 그렇다고 〈판데서스의 마력〉을 얻으면 손에 넣는 것이 없었다. 진퇴양난이었다.

[뭘 그렇게 고민하는지 이해가 안 되는군.]

“뭐?”

갑자기 〈세파리아스 불파겐(Sepharias Bulpagen)〉이 말을 걸었다. 그것은 드낙에게 있어서 제법 놀라운 일이었다. 인사조차도 먼저 해야 받아주는 방침을 고수하던 자였기 때문이다.

[뭘 그렇게 겁을 먹는지. 대가 없는 힘이 코앞에 있지 않느냐?]

“미친 소리를. 그것을 어떻게 믿나?”

[초월의 힘은 곧 존재의 격이다. 놈의 강함은 외계(外界)의 것이다. 너를 굴복시키지 않는 이상은 그 어떤 것도 하지 못해. 악마 숭배자들 모두 그렇기에 악마를 따르는 것이다.]

매우 설득력이 있는 말이었다. 왜 악마 숭배자가 되었겠는가? 악마가 호구처럼 호의를 가득 베풀기 때문이었다. 대가 없는 막대한 힘! 그저 다리 힘만으로 곧게 서있는 사람 3명을 넘어갈 수 있는 신체능력은 물론이고, 이성을 잃을 돌연변이 늑대인간임에도 최소한의 이성을 가지게 해주었다.

평범함과는 궤를 달리하는 강력한 힘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드낙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신전에게 들키면 끝장이잖아.”

드낙은 자신이 가진 〈구역질 양피지〉를 모두 태워버릴 생각도 하고 있었다.

[신전의 인력은 만성 부족이다. 살면서 본 적이 있느냐? 끽해야 성채와 도시에 거주하며 병들고 다친 이들을 치료하는 것으로도 삐걱거리는 세력이다. 신성력의 힘은 결코 낭비되어서는 안 되는 힘이다. 고작 검문으로 쓰일 리가 없지.]

“··· 그래도 악마는 믿을 수 없다. 세상일은 어찌 될지 모르잖아.”

[부정하지는 않겠다.]

“왜 날 도와주려는 거지?”

[빌어먹을 정도로 느릿느릿하니까. 나라면···]

세파리아스는 이내 입을 다물었다. 자신과 드낙의 차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말해봤자 소용없는 것이었다. 세파리아스의 모습이 검은 연기에 휩싸여 사라졌다.

‘지 할 말만 하고 가네. 썩을 놈이.’

당연히 그의 조언을 그대로 받아들일 드낙이 아니었다. 세파리아스는 드낙의 그릇을 아주 크게 보고 있었는데,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큰 한 걸음을 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드낙은 그런 리스크 따위 얻고 싶지 않았다.

공무원 대란. 안정직을 최고로 치는 나라에서 나고 자란 박호훈이었다. 칼밥을 먹으며 출세하겠다는 대담한 결정과는 모순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큰돈은 제법 팍팍 쓰면서 버스비와 10원 하나라도 챙기는 범인(凡人)의 태도 그 자체였다. 또한 악마에 대해서 좋은 생각을 하고 있지 않기도 했다.

그 또한 악마를 믿을 수 없다는 것에 부정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욱 그러했다.

‘안 그래도 검은 꿈 때문에 불안한데, 여기에 악마까지 섞는다?’

함부로 선택할 수 없었다. 결국 드낙은 이번 검은 꿈에서 그리 즉효성이 뛰어난 것을 손에 얻지는 못했다. 단점과 리스크를 얻고 싶지 않다는 방침 때문이었다.

〈판데서스의 마력운용〉을 손에 넣었다. 드낙은 마력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자신에 한정된 흐름이었다. 〈자신(自身)〉의 밖에 있는 마력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마법의 영역인 듯했다.

손발이 잘린 것이나 다름없었지만 그것 외에는 선택할 수가 없었다.

꿈에서 깨어난 드낙은 곧바로 〈악마의 문양〉이 새겨진 양피지를 화덕에 넣어 태워버렸다.

〈오크 전사〉를 상상하며 새벽 수련을 마쳤다. 이스핀은 아직 자고 있었고, 도렌만이 그와 함께 개인 수련에 매진하였다.

포획된 강도단은 그대로 동굴에 묶였다. 병사들은 나무로 간이 감옥을 만들지는 않았다. 당장 상단이 나타날 수도 있었다. 3일 내지는 5일 내에 온다고 말한 것을 곧이곧대로 믿기에는 이 세상의 시간감각은 형편없었다.

“뒤에 더 바짝 들어!”

“앞이 내려갔는데 무슨!”

아침부터 나뭇가지를 쳐낸 통나무를 병사 6명이서 옮기고 있었다. 그리 크지는 않았지만 골짜기를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밑에 있는 사람은 죽을 노릇이었다. 가면서도 몇 번씩이나 위치를 바꾸고 있었다.

동굴 속에 통나무를 박아놓고, 그곳에 바짝 사람을 붙여서 묶어놓을 생각이었다. 이리저리 엮어야 하는 감옥보다 편했다.

이스핀은 대충 세안을 하고, 드낙을 따라나섰다. 〈추적 용병단〉은 노역에 동원되지는 않았지만 주변 순찰을 맡았다.

퍽! 퍽!

나무 삽이 흙을 걷어내며 수풀 따위를 뿌리째 뽑아내는 병사도 보였다. 위장을 위해서 수풀을 다른 곳에 옮겨심기 위함이었다. 화공에 취약하다는 점이 있었기에 자주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모두가 열 일하고 있었기에 〈추적 용병단〉은 빠른 걸음으로 밖을 나섰다.

전체적인 순찰을 빠르게 돌지는 못했다. 드낙이 제안한 〈5일 길〉에 〈3곳의 보급 구역〉을 두었던 군대였다. 그 보급에는 〈굴렁쇠 코뿔소 가죽 갑옷〉 또한 있었다. 이스핀과 도렌은 그런 갑옷을 입고 있었다.

“허억! 허억!”

“정지.”

드낙이 숲언덕의 험지를 손으로 짚으면서 올라간 뒤에 걸음을 멈추었다. 뒤따라서 올라온 이스핀과 도렌은 거칠게 숨을 내뱉었다.

“전투도 할 수 있을 것처럼 말하더니, 숨넘어가겠습니다.”

드낙의 말에 이스핀이 변명하듯이 말했다. 억지로 숨을 고르게 했다.

“그렇게, 안 무겁습니다.”

“후우욱. 후욱.”

도렌은 대답할 기력도 없었다. 언덕을 타고 바람이 크게 불었다. 땀이 식혀지며 시원함을 느꼈다.

“가죽 갑옷이랑 그렇게 차이도 안 나는데, 왜 이렇게 쉽게 지치죠?”

도렌으로서는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중량으로 치면 고작 5~7kg정도 전신에 짊어진 것이 전부다. 어깨에 집중되는 배낭도 아니고, 갑옷이었다.

움직이는데 불편함이 하나 없었다. 출발할 때만 해도 무게감이 적당히 느껴질 뿐이었다. 근데 험지 한 번 오르는데 숨이 끝도 없이 올라갔다.

“그래서 적응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니, 근데 왜 저희들은 겉옷을 두벌이나 입어야 합니까?”

“체인 메일을 입혀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그렇게 한 겁니다.”

이스핀이 고개를 저으며 손을 올려 말했다.

“그것이 아니라, 대장님. 대장님은 그냥 입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거야, 전 실력이 있으니까···”

“하하하!”

도렌이 갑자기 크게 세 번을 웃었다. 그러다가 이내 크게 변명했다.

“아! 그게 아니라 이스핀이 매번 저보다 지가 잘 났다고 해서···”

“넌 세 벌은 입어야 해!”

부쩍 친해진 두 사람이었다. 그때 늑대 도노의 코가 크게 벌름거리며 킁킁 냄새를 맡았다. 드낙, 이스핀, 도렌이 모두 몸을 낮추었다. 까마귀 카이야는 군막에서 잠을 자고 있었기에 이 자리에 없었다.

〈갈색늑대 도노(Dono)〉는 느긋하게 움직였다. 인간들을 배려해서였다. 사위를 살피며 한참을 가야 했다. 족히 1.5km를 이동했을 때, 드낙은 한 무리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들은 산에 나는 것들을 캐고 있었다. 대부분이 어린애들이었다.

‘밖에서 놀다가 사달이나자 도망쳤던 것이군.’

문제는 그리 멀리 가지 못한 것이다. 6살 난 어린이가 한 명 무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나이가 많은 맏형처럼 보이는 이는 제법 굵은 나뭇가지 하나를 쥐고 있을 뿐이었다.

“뒤로 돌아가세요.”

시끄럽게 떠들며 장난치는 놈들은 자신들이 제법 멀리 온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것은 사실이었지만 재수 없게 늑대의 후각에 걸렸다.

돌팔매로 새를 잡았는지 밧줄에 묶어놓은 새의 피 냄새. 그것 하나로 그들은 색적당했다.

단번에 앞뒤로 달려들었다.

“도망쳐!”

“꺄아악!”

“이쪽이야!”

“욘을 챙겨!”

나뭇가지 하나를 쥐고 맏형 노릇을 하는 놈이 이스핀에게 달려들었다.

“이 나쁜 놈들!”

퍼걱.

“컥!”

둔탁한 소리와 함께 나뭇가지를 휘두르지도 못하고 그대로 방패에 맞아서 뒤로 고꾸라졌다.

드낙은 달리기가 빠른 놈들부터 잡았다. 베지는 않았다. 검면으로 머리를 후려쳤다. 어찌나 우정이 돈독한지 함께 도망쳤기 때문에 모조리 다 잡혔다.

“아악!”

늑대 도노에게 다리가 물린 애들도 있었다.

그가 이처럼 잔혹한 이유는 이 세상에는 법이 없기 때문이었다. 법은 오직 기득권을 위한 것이었고, 복수는 전통으로 말해졌다.

현대에서도 법치주의를 채택하고 있음에도 복수가 판을 친다.

드낙은 자신의 안전을 위해서라면 애들조차도 죽일 정도로 정신무장을 하고, 각오를 잡고 있었다. 그것에는 그 어떤 여지도 없었다. 잡혀서 노예로 부려지며 자연스럽게 원한은 군대와 영주 그리고 기득권으로 향할 것이다.

놓아준다면 재수 없게 〈추적 용병단〉이 표적이 될 수 있었다. 〈위선자〉는 어떤 측면에서 봤을 때 더 지독한 법이었다.

밧줄로 묶인 어린애 6명을 끌고 그대로 복귀했다. 그들은 눈물 콧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드낙은 알 바가 아니었다. 그는 어떻게든 이번 장기간 의뢰에서 빛을 내야 했다. 작은 공적이라도 움켜쥐어야 했다.

"복수할 거다! 여기 있는 놈들 내가 다 죽일 거라고!”

혈기가 왕성한 놈은 병사들에게 얻어맞아 피떡이 되어야 했다.

1주일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기습〉을 위해서 진지를 새로 구축하고, 완벽하게 엄폐한 채로 적을 기다렸다. 밤에는 밖의 횃불조차 피우지 않았다. 동굴에서 달구어진 돌만 지급되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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