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8 <-- 강도소굴 -->
그것은 키메라라고 말해도 될 정도로 변형된 인간의 모습이었다.
‘끔찍하다.’
환상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그것이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드낙에게 전달했다.
〈늑대〉와 〈인간〉의 뒤섞임은 정상 같지 않았다. 그것은 〈늑대 인간〉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마치 슬라임처럼 기괴하게 뒤틀린 덩어리였다.
‘불완전한 늑대인간의 형질···’
막대한 신체능력을 주지만 흥분하면 밤낮 구분 없이 발현이 되는 악질적인 형질이었다. 드낙은 거기에 그치지 않고, 환상을 몇 번이나 계속 경험하며 의심스러운 것을 재확인했다.
‘뭔가 있다.’
우악스럽게 늑대가 인간과 뒤섞이는 환상이 보여주는 그 자체의 현상은 인위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인간을 덮치는 늑대의 환상을 굳이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완성된 늑대 인간이 가지는 장단점만 보여주면 되기 때문이다.
〈검은 꿈〉은 이렇게 제법 전후 상황을 파악할 수 있게 도와주는 점도 있었다.
그 덕에 드낙은 알지 못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인위적이다.’
강제로 만들어졌다는 뜻이었다. 마법사의 실패작일 수도 있었고 사악한 주술사의 실험체일지도 몰랐다.
〈불완전한 늑대인간의 형질〉은 당연히 가지면 안 되는 것이었다. 흥분하면 밤낮 구분 없이 늑대인간이 되어버린다. 그것도 변신은 매번 모습이 달랐다. 털이 없거나, 주둥이가 길게 튀어나오지 않거나, 이빨이 날카로운 이빨로 다시 나오지 않는 등.
변신을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만 봐도 이미 제외 대상이었다.
한 가지 알 수 있었던 것은 그 또한 늑대인간의 형질을 받아들이는 것을 두려워했다는 점이다. 환상을 경험하며 그 답답함, 두려움··· 심장을 조여오는 압박감을 느낀 드낙이었다.
‘기분 참 더럽군.’
어찌 되었든 일종의 피해자를 보는 것은 썩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감정을 가지고 있는 이상, 남의 감정을 어느 정도 공유할 수 있는 이상 피할 수 없는 공감대 형성이었다.
〈불완전한 늑대인간의 형질〉
흥분하면 밤낮 구분 없이 변신. 변신할 때마다 모습이 다름. 이성을 잃기 쉬움.
‘선택하면 안 되는 능력이다.’
모든 면에서 쓰레기 수준이었다. 검은 문에서 빠져나온 드낙의 표정은 썩어있었다. 억지로 저 힘을 받아들인 〈2제자 판데서스〉의 끔찍한 감정이 그에게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씨발.’
욕을 해도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리고 드낙은 점점 〈검은 꿈〉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나중에 간다면 자신이 죽인 놈과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도 몰랐다.
‘지랄맞은 생각이야.’
고개를 털며 뺨을 챱하고 때린 드낙은 다음 검은 문으로 향했다.
사악! 사악! 사악!
끌려온 시체의 가죽을 섬세하고 날카로운 짧은 단검으로 포를 뜨는 판데서스가 보였다. 이내 검은 연기가 시야를 가리고 새로운 것을 보여주었다.
쾅!
사람의 뼈를 망치 한 번으로 박살을 내는 장면이었다. 그 부서진 뼈들은 인피 위에 올라갔다. 뼈와 함께 진흙도 함께했다.
샥! 샥! 샤악!
검은 산양의 뿔을 갈았다. 고운 가루가 소복하게 그릇에 쌓였다. 그것을 뼈와 진흙이 있는 곳에 골고루 뿌리고 그 위에 다시 인피를 놓아서 나무망치로 퉁퉁퉁 쳐대었다.
진흙이 인피로 빠져나와도 계속해서 두드렸다. 인피는 점점 넓혀졌고, 얇아졌다. 그렇게 제법 큰 인피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곳에 판데서스는 갈색의 염료를 묻혔다.
‘아! 양피지!’
놈의 수작질을 보고 그제서야 드낙이 깨달았다. 〈불길한 양피지〉 혹은 〈구역질 양피지〉라 불리는 양피지의 제작법이었다.
‘흉악하군.’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자신의 피로 문양을 그렸다. 피는 그 어떤 매개체도 없었는데 바짝 타들어가면서 연기를 뿜었다. 드낙은 절로 마른침을 삼켰다. 문양이 하나 만들어지자 그 문양이 있던 자리에 큼지막한 눈알이 희번덕 거리며 튀어나와 주위를 훑었다.
판데서스와 눈이 마주친 눈동자는 눈을 껌뻑하고 감았고, 어느새 사라져버렸다. 오직 문양만이 그 자리에 있었다.
드낙은 척추가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그렇게 판데서스는 문양을 3개 넣고, 양피지를 재단했다.
〈구역질 양피지 제작법〉이 두 번째 검은 문의 능력이었다.
‘꺼림칙해.’
드낙은 별로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큰 눈동자가 튀어나와서 주시를 했기 때문이다.
그다음 연달아서 3개의 검은 문은 모두 〈문양을 그리는 법〉이었다. 그곳에서 드낙은 판데서스의 강함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명마의 힘〉 〈엘프의 정신〉 〈전사의 기술〉이라는 이름의 문양. 탐나던 놈의 하체 힘은 〈구역질 양피지〉에 새겨진 〈명마의 힘〉이었다.
‘그것은 저항하던 것이었군.’
으르렁거림, 세차게 고갯짓하던 머리는 이성을 잃으려는 것을 막으려는 행동이었다. 〈엘프의 정신〉이 그것을 도왔을 것이다. 고등한 정신이 아니라 냉정함을 주는 능력이 〈엘프의 정신 문양〉이었다.
‘검술은 별로던데.’
〈전사의 기술 문양〉에 대해서는 의심이 꽃피웠다. 그리 잘 싸우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비전도 하나 없는 놈이 검술에 힘을 투자했다는 것이 우스웠다.
안타까운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라는 점이었다. 여기서 문양을 단단히 외우고 나가는 것이 아닌 이상 쓰기 불가능했다. 그리고 그 판단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았다. 〈검은 꿈〉에 계속 머무를 수 없기 때문이다.
‘아니지. 이미 두 장을 가지고 있으니. 그거 보고 베끼면 되잖아?’
애초에 외울 필요가 없었다. 판데서스가 가졌던 〈구역질 양피지〉 3장 중 2장은 드낙의 손에 있었기 때문이다. 무슨 문양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랐다. 그리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하학적인 문양은 외우기 힘들다는 면도 있었다. 거기서 거기였다.
후우웅!
청량감이 느껴질 정도의 바람이 불어왔다. 검은 연기 속에서 빛을 발하는 푸른 빛깔의 발광체가 움직였다. 그것은 잔상을 남겼는데 하나의 사람 모습을 만들었다.
푸른빛의 발광체는 그렇게 계속 인체의 모습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그 속에서 드낙은 어떤 흐름을 볼 수 있었고, 그 흐름은 혈액과는 전혀 달랐다. 언제든지 다르게 움직일 수 있고, 마음대로 꺼낼 수 있었으며 다채롭게 흐르게 할 수도 있었다.
‘마력.’
정확히는 그 마력을 운용하는 방법이었다. 〈판데서스의 마력운용〉을 얻을 수 있는 검은 문이었다.
‘매력적이다.’
마력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하지만 운용 방법을 몰랐다. 명상도 제법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드낙은 마법사가 되고 싶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을 어떻게 다루는지 전혀 몰랐기에 포기한 것이다.
마법사가 되려면 돈이 많아도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철저한 혈통 그리고 가문으로 결정되는 길이었다. 〈횃불 성채〉에 마법사의 상점이 있었지만 그곳에 마법사가 살 리가 없었다.
〈남부 왕국 수도〉에서 본다면 이곳은 변방 중의 변방이었다. 현대에서도 균형 발전을 말하면서 실행하지 못하는데 그런 말조차 안 나오는 이런 세상에서 수도가 가지는 의미는 실로 대단했다.
그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인 격차를 의미하였다.
‘마력 운용.’
반드시 가져야 할 능력이었다. 만약 자신이 향후 마법사를 죽였을 때, 마법을 가질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바로 선택하지는 않았다.
그다음의 문에는 〈판데서스의 마력〉을 획득하는 것이었다. 본신의 마력에 더해지는 셈이다. 판데서스의 마력이 많은지 적은지는 분간할 수 없었다.
드낙은 마력을 느낄 수도 없었고, 확인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남은 검은 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드낙이 움찔했다. 〈검은 연기〉 속에서 보이는 또 다른 뭔가를 봤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눈이었다.
〈문양〉에서 보았던 눈과 흡사했다. 지나치게 동글동글하고 말끔한 흰자위와 짙은 색채를 지닌 검은 눈동자. 그것이 검은 연기 속에서 잔뜩 자리 잡고 있었다.
연기가 제법 있는 곳에서도 어렴풋이 보였다. 그 눈은 마치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뭘 망설이는 거냐?]
〈세파리아스 불파겐(Sepharias Bulpagen)〉이 주저하는 드낙을 보며 비아냥거렸다. 그는 드낙과 제법 말이 트고, 서로 동등하게 반말을 하면서 관계를 구축하고 있었지만, 드낙을 좋게 보고 있지 않았다. 조금씩 관계의 진전이 이루어질 뿐이었다.
“눈. 저 눈을 본 적이 있나?”
[그게 무슨 상관이지. 애초에 이 꿈조차도 평범한 사람은 주저하며 사용하지 않을 꿈이다. 아닌가?]
부정하기 어려웠다. 현대 문화에서 강제로 거세된 박호훈이기에 거침없이 검은 꿈을 사용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본다면 그저 눈이 보인다고 검은 문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은 모순이었다.
‘말이야 쉽지.’
내로남불, 내로남불 하는 이유가 뭔가? 인간으로서는 그렇게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노력해야 하고, 그런 상황 자체를 만들면 안 되었다. 하지만 세상 살면서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자신도 똑같이 그렇게 행동하면서도 다른 이들의 모순성을 비하하고 비난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말은 언제나 쉽기 때문이다.
“······”
고민에 빠진 드낙은 쉽게 발걸음을 옮기지 못했다. 하지만 이내 검은 문으로 향했다.
‘이것저것 따질 때냐. 단점 없는 강력함을 얻어야 하는 것이 지금 내 상황이다.’
좀 아닌 것 같아서 하지 않기에는 생각한 것보다 드낙이 처한 상황은 좋은 상황이 아니었다.
검은 연기가 드낙을 덮쳤다. 환상이 그를 뒤흔들었다.
‘허윽.’
거대한 존재감이 그의 전신을 압박했다. 드낙은 순간적으로 〈압박감〉을 제외하고 모든 감각을 상실했다.
[재밌구나. 선신(善神)을 쫓다 죽은 망국의 대공과의 인연을 여기서 보다니.]
그는 알 수 없는 말을 지껄였다. 악마 어(語)였기에 드낙은 정신 파동이었음에도 무엇 하나 제대로 들을 수 없었다. 감각 없이 드낙의 입이 마비된 것처럼 웅얼거렸다. 애새끼처럼 침을 흘렸지만 드낙은 그 감각조차도 느낄 수 없었다.
압박감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무엇 하나 손에 쥘 수 없었지만, 그럼에도 드낙은 자신의 머릿속에 들어온 정보를 확인할 수 있었다.
손발이 저릿하고 땀이 흥건했다. 머리가 아련해지는 것이 당장 기절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는 어느새 검은 문에서 튕겨져 나와서 대(大)자로 뻗어있었다.
‘〈악마 아카타베루〉.’
그와 연결고리를 갖는 것이 검은 문이 주는 능력이었다. 〈악마 하수인〉으로서의 길이었다. 영혼을 빼앗긴다던가 그런 것은 전혀 없었다. 말 그대로 〈악마 아카타베루〉를 알고 있고, 그 연결고리를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상당한 힘을 얻을 수 있었다.
마력.
신체능력.
기술.
지식.
경험.
그 외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획득할 수 있었다. 알고 싶다면 자연히 알 수 있었다. 막강한 힘이었다. 그렇기에 드낙은 그것이 그 어떤 대가를 바라지 않음에도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에 호구는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선물을 건네주는 이도, 대가를 바라며 건네주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 살가죽이 벗겨지고 내장이 도려내져서 죽을 뿐이었다.
‘정말로 단점이 없나?’
악마와의 연결고리가 가지는 의미를 드낙이 좇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