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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의 전사-87화 (87/1,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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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벌은 손쉽게 끝이 났다. 장비부터 차원이 다른 싸움이었다. 토벌군과 맞서 싸운 강도들의 총 숫자는 85명이었으나 인내심이 없었고, 규합도 제대로 되지 못한 상태에서 이루어진 전투였다.

기습을 통해서 놈들이 하나로 뭉치는 것을 사전에 방해했기에 상황 자체도 토벌군에게 좋았다. 동굴의 울퉁불퉁한 지반에 적응하지 못한 신병의 발목이 부은 것이나 종유석에 머리를 박거나 기타 등등의 실수로 생긴 경상자만 10여 명이었다.

사망자 하나 없었기에 분위기 자체는 굉장히 좋았다.

강도 85명 중 60명이 투항했고, 포획되었다. 또한 여자와 어린이 70명이 포승 당했다. 여자들은 피해자일 수도 있었지만 그것을 〈판단할 수가 없어〉 1차적으로 심문을 통해서 가려내야 할 것이다. 그 뒤에는 2차적으로 신전으로 향할 것이다.

총 130명이 포로로 잡혔다.

대승이었다. 하지만 분명 희희낙락해야 할 병사들의 분위기는 딱딱했다. 횃불만 조용히 어둠을 밝히고 있었고 소리 하나 나지 않았다.

무더운 여름, 시원한 언덕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쐬고 있는 병사들의 수군거림은 때때로 뭉개져서 드낙에게 들리기도 했다.

드낙이 죽이고 목을 자른 시체는 그 자리에서 아직까지도 병사 여럿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시체는 피가 말끔하게 빠진 채 소금에 단단히 절여졌다. 입속 구석구석 소금을 넣은 작업이 이루어지고 난 뒤에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에게로 향했다.

〈선임병사 불세벤〉 그리고 몇몇 소수의 베테랑 병사와 드낙이 군막 안에 있었다. 모든 과정을 설명한 드낙이 입을 다물자 침묵이 내려앉았다. 모두 게실리안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었다.

“늑대인간··· 문헌으로도 본 것이 전부지만 조금 이상하군. 그들의 변신은 털부터 나는 것이 보통이네. 털이 나고 주둥이가 앞으로 나오지.”

열이면 열 그러했다. 하지만 이 판데서스와 스서데판이라는 두 가지의 이름을 지녔던 두목은 주둥이부터 나왔다. 명백한 돌연변이인 것이다. 그리고 항상 돌연변이는 불길함을 지니고 있다.

초록숲에서 선명한 새하얀 털을 지닌 갈색늑대를 본 것 같은 이질감.

‘모종의 음모가 느껴진다.’

단순한 토벌전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다. 그것도 힘 약한 양민만을 노리는 강도단이었다. 그 꼬리는 자연스레 〈강도와 거래하는 상단〉으로 향했다.

“이거 일이 정말로 이상하게 돌아가는군.”

게실리안 지휘관이 고민했다. 그것은 그가 손을 대기 힘들 정도로 더러운 맛이 났기 때문이다.

‘보통 일이 아니다.’

기사라고는 자신 하나였다. 그것도 자신은 귀족으로 지휘관의 역량을 높이는데 집중했다. 결코 기사라고 당당하게 말할 것은 아니었다. 그는 〈지휘관〉이었지 선봉을 자처하는 기사가 아니었다.

강도단의 선봉을 맡은 것은 그들이 전혀 위협이 되지 않아서였다.

“〈돌연변이 늑대인간〉은 제대로 된 놈이 아니었네. 머릿속에 들짐승이 들어간 것처럼 인간의 모습일 때도 흥분하니 짐승소리를 냈지.”

늑대인간에 대해서 크게 건질 내용은 없었다. 그저 〈불완전한〉 놈이라는 것만 알 수 있었다. 그다음은 〈불길한 양피지〉였다. 보기만 해도 구역질을 하게 만드는 끔찍한 물건이었다. 단순히 토를 하게 만들어서 불길하고 끔찍한 것이 아니었다.

끔찍한 감각에 휩싸이기 때문에 그러했다.

“보통 물건이 아니니··· 본 적이 있는 사람 하나 없는 것은 당연하지만···”

곱게 접혀진 양피지는 줄로 묶여져 있었다. 드낙을 제외하고 모두가 문양을 보자마자 토악질을 했기 때문이다. 마법으로 보호받는 게실리안 지휘관은 안전했다. 일종의 정신에 간섭하는 사악한 물건이었다.

‘드낙 단장의 그릇이 큰가? 마음이 단단해서 영향이 없다니. 실로 탐이 난다.’

마법으로 보호받는 게실리안 지휘관은 드낙의 강함을 이번에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는 드낙을 자신의 밑으로 넣고 싶었다. 특별하였지만 굉장히 희소하지는 않았다. 사람의 정신력은 매번 매상황마다 달라지기 때문에 누구든지, 하찮은 나무꾼조차도 때때로 사악한 존재를 앞에 두고 절망하지 않는다.

그 때문에 드낙을 크게 대단하게 여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한 단계 더 좋게 생각했다. 온갖 것들이 득실거리는 〈남부 왕국〉에서는 그런 강고한 정신은 분명 도움 되는 스펙 중에 하나였다.

‘시간에 쫓기는구나. 아쉽다.’

게실리안 지휘관이 한숨을 내쉬었다. 게실리안 지휘관이 양피지를 집어 들어 목함에 넣었다. 그다음에는 당초 목표였던 〈강도 거래 상단〉이었다.

“전의 거래하는 강도들은 거래장소를 여러 곳으로 말했지만, 〈뒷구멍 강도단〉은 규모가 있는 곳답게 상단이 직접 이 골짜기로 온다고 합니다. 정확하게 날짜를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3일에서 5일 사이에 반드시 온다고 합니다.”

때를 잘 맞췄다고 하기에는 상황이 질척했기 때문이었다. 단순한 일이 아니었으므로 긴 판단을 놓고 움직여야 했다.

“이대로 그대로 진행한다면 생각보다 강력한 적을 상대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선임병사 불세벤〉은 병사들의 소모를 걱정했다. 정규군은 국가를 위해서 존재하며, 기득권을 위해 살아간다. 겉으로는 시민을 위해서 살아간다고 말해지지만 실상은 달랐다. 그렇기에 병사들의 정신사상을 위해서 싸우다 죽던 병들어 죽던 죽은 병사에 대한 예우가 대단했다.

그 때문에 섣불리 병사들을 전투에 내모는 것은 〈지휘관〉 혼자서 결정할 일이 아니기도 했다. 강도단 토벌 같은 가벼운 일에는 상관없었지만 이제는 달랐다.

〈돌연변이 늑대인간〉과 〈불길한 양피지〉만으로도 이미 병력을 뒤로 물리는 것이 정상이었다.

베테랑 병사들의 생각도 비슷했다. 예정을 벗어나는 것은 곧 도박이었다.

‘그러면 안 되는데.’

드낙은 당연히 반대였다. 이미 〈검은 문〉을 볼 생각에 기대감이 부풀어 올라 있었다. 남들에게는 하등 얻을 것이 없는 강적과의 싸움이었지만 드낙에게는 큰 보상이 기다리고 있었다. 또한 게실리안 지휘관은 내심 일을 계속 진행시키고 싶을 것이다.

‘나를 대우해주는 것을 보면, 난 확실히 기사급이다.’

이제 와서 그렇게 판단한 것은 매우 늦은 감이 있었지만 그래도 드낙은 이제야 자신의 강함을 똑바로 척도 할 수 있었다. 그것은 곧 자신감이 되었다. 돌연변이 늑대인간을 비전을 쓰지 않고, 거침없이 달려든 것 또한 자신의 강함에 대한 올바른 척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한 말씀해도 되겠습니까?”

드낙이 나서자 다른 이들이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오면 안 되는 일이었지만 이번 토벌전에서 매우 역할이 컸다. 그 공을 인정받아서 왔는데, 처음에는 분위기를 살피고 가만히 입다물고 있어야 했다.

‘공 좀 세웠다고 미쳐날뛰는구나.’

‘게실리안 지휘관님의 밑으로 들어갔나? 그래도 마음에 들지 않는군.’

남자들의 세계는 지독함과 잔혹함이 가득했다. 자신들이 맞으면서 걸어온 길은 다른 놈들도 똑같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다. 그것은 곧 신고식 따위로 불리며 악습으로 점점 물들어가지만 그때도 나 몰라라 생각하는 이들도 많았다.

남자가 남자를 생각하는 것만큼이나 쪽팔리는 것도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피해자든 가해자든 방관자든 입장의 차이가 없었다.

‘어쩌라고.’

드낙은 이곳에 오래 몸담을 것이 아니라 단기적인 목표만을 이루면 그만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총대〉를 매는 일이었고 게실리안 지휘관으로서는 쓰기 좋은 말 그 자체였다. 고개를 끄덕이는 그를 보며 드낙이 입을 열었다.

“계획에 없는 일은 저희가 상대하려는 놈들 또한 마찬가지일 겁니다. 오늘의 일을 생각해보십시오. 돌연변이 늑대인간은 도망을 선택했습니다. 애초에 〈그 정도 수준〉이라는 겁니다.”

병사들이 겁낼 정도의 적이 결코 아니라는 말이었다. 해봤자 강도, 소수의 돌연변이 늑대인간 정도일 것이다.

“거침없이 버려도 되는 강도단으로 적당히 일을 꾸미고 있었던 것이죠. 그리고 연결고리만 보면 엄청난 음모일 겁니다. 아주 흥미로운 사악한 계획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것을 얻는 대가는 피 한 줌이 전부일 겁니다.”

“적의 전력이 낮다고 보는 건가?”

드낙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렇습니다. 적은 강도단으로 위장해서 약탈물을 가져가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무기고, 화살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위장하기 위해서는 진짜로 강도들을 쓰는 것이 좋습니다. 이번 〈뒷구멍 강도단〉 또한 두목을 제외하고는 뭣도 모르는 강도들 아닙니까?”

“놈들도 강도 내지는 산적이나 도망자일 확률이 높다···”

게실리안 지휘관이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절호의 기회나 다름없었다. 그들이 가진 정보는 대단할 것이지만 그들의 수준은 형편없을 것이다.

“상단을 지휘하는 놈을 생포할 수만 있다면, 못해도 그들이 가진 소지품을 확인할 수만 있다면 보통 공적이 아닐 겁니다. 산적 같은 놈들을 여럿 죽이고 얻는 것치고는 보상이 크지 않습니까?”

드낙이 그렇게 물으면서 고개를 숙인 뒤에 자리에 앉았다. 제법 파격적인 의견 피력이었다.

거칠고, 날 것 그대로였다. 그것은 제법 게실리안 지휘관과 베테랑 병사들의 마음에 쏙 들었다. 물론 내색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말씀하시니, 뒤로 돌아가자고 한 제가 겁쟁이가 된 것 같습니다.”

〈선임병사 불세벤〉만 만족하지 못했다. 웃음소리가 군막에서 퍼져나갔다. 불세벤이 웃으면서 능숙하게 말했다.

“강도단이 거래를 위해 모아놓은 군수물자가 제법 있습니다. 활은 물론이고 화살도 충분합니다. 수거한 것까지 합친다면 500발은 될 겁니다.”

그것으로 결정은 났다.

“뭔가를 꾸미고 있는 놈들이다. 이대로 내버려 두는 것은 직무 유기라고 할 수 있다. 피를 쏟아내며 책임을 움켜쥔 것이 바로 군대이며 병사다.”

원탁회의는 그 이외의 것을 논하다가 이내 파(破) 해졌다. 몇몇 병사들은 술 한 잔을 걸치러 갔고, 드낙은 그대로 자신의 군막으로 향했다.

“오셨습니까.”

이스핀과 도렌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안주도 제법 준비해놓고, 술도 4병 준비해놨다. 아주 제대로 뒤풀이를 할 생각인 듯했다.

적당히 이야기를 하다가 서서히 취하면서 말소리가 점점 커져갔다.

“전 이 의뢰 마치면 바로 이사부터 할 겁니다.”

도렌의 가족은 무려 8명이나 되었는데 자신이 셋째고 집이 미어터질 지경이라고 했다.

“횃불 성채에 빈집이 제법 많지 않습니까?”

“그런 곳은 치안이 불안합니다.”

이스핀이 드낙의 물음에 한 잔 걸치며 제법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 이야기를 들은 드낙은 〈정보꾼 메르인의 집〉이 제법 좋은 곳임을 알게 되었다. 그 주변에 빈집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곳은 은화 5닢은 줘야 합니다. 그 돈은 돌고 돌아서 경비병들한테도 제법 가기 때문입니다.”

“아하···”

도시에서의 생태는 드낙이 모르는 것이 많았다. 신나게 이야기하던 것도 잠시 하나둘씩, 그대로 잠에 빠져들었다. 화덕이 조금 불길을 토해내며 쌀쌀한 공기를 태웠다.

〈검은 꿈〉은 여전했다. 세파리아스 불파겐은 드낙에게 인사조차 건네지 않았다. 드낙이 고개를 까딱거리자 그제서야 고개를 까딱인다.

‘검은 문이 많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검은 문이 있었다. 그것은 곧 〈돌연변이 늑대인간〉이 가진 특출남이 많다는 뜻이었다.

드낙이 거침없이 검은 문 하나로 향했다.

환상이 그를 덮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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