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5 <-- 강도소굴 -->
〈2제자 판데서스〉는 조용히 다가올 전투를 기다렸다. 그때 강도가 달려왔다.
“두목님! 병사들이 빠졌습니다!”
“좋다! 때가 왔다, 형제들이여!”
여러 갈래의 동굴은 필연적으로 전력의 감소가 이루어지는 순간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말려 죽이기에는 형편없는 전투력을 지녔기에 그런 판단을 했다고 하더라도 이내 바꿨을 것이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길목을 지키는 토벌대의 숫자가 급감한 것이다. 판데서스가 원형의 큰 방패를 들어 올리고, 한손 철퇴로 쾅쾅 쳐대자 다른 강도 수십 명이 소리를 내질렀다.
“〈말다리 스서데판〉! 말다리 스서데판! 말다리 스서데판!”
강도들은 〈2제자 판데서스〉의 진짜 이름을 알지 못한 채 그들 두목의 이름을 목청껏 소리 질렀다. 그 모습에 판데서스가 크게 함성을 질렀다. 아주 대범해 보였지만 속은 타들어가고 있었다.
‘어떻게 토벌단이! 빨리 도망쳐야 한다!’
완벽했을 터였다. 강도들의 고혈(膏血)을 짜내며 〈뒷구멍 강도단〉이라 불리면서 길에서 떨어진 곳에 자리를 폈다. 토벌단이 들어온다면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1주일도 한참 전에 소규모 강도단이 몇몇 토벌당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 뒤로 조용해졌기 때문이다.
‘폭풍전야(暴風前夜)였다. 그때 이미 도망쳤어야 했어.’
후회가 막심했다. 그 전조현상을 못 알아차리다니. 멍청했다. 그리고 자연동굴 하나 발견해서 시시덕거리며 이곳에 터를 잡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도 아쉬웠다. 적어도 탈출구를 만들어야 했었다.
납치한 여자를 다루는데 시간을 허비했다.
‘젠장.’
분명 〈스승님〉에게 크게 혼날 것이고, 고문을 당할지도 몰랐다. 두려움이 마음속에서 크게 튀어나왔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죽는 것보다는 나았다.
〈2제자 판데서스〉이자 〈말다리 스서데판〉이 생각한 〈양동작전〉은 즉흥적으로 이루어진 것이었다.
토벌군이 다른 통로의 진압을 위해 향했을 때, 그때를 노려서 탈출하는 것이었다. 제대로 된 방법이었다. 하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는 즉흥성이 가지는 하자가 존재했다.
‘적어.’
판데서스와 함께 있는 강도의 숫자는 23명에 불과했다. 〈뒷구멍 강도단〉의 총 숫자는 85명에 달했다. 하지만 그중에 23명만 이곳에 있었다. 18명의 강도는 토벌당하는 중이었고, 10명의 강도는 다른 길에 있었다.
〈선임병사 불세벤〉과 마주하고 있는 강도의 숫자는 34명이었다.
그 모든 상황을 그가 알 수는 없었다. 적어도 85명 중에 23명만 있다는 판단에서 움직여야 했다. 그가 주먹을 단단히 쥐었다.
‘하지만 해야 한다.’
〈말다리 스서데판〉은 허벅지가 기괴하다고 할 정도로 굵었다. 척 봐도 힘이 느껴졌다. 하체의 기형이라고 여겨질 정도였다. 팔근육은 적은 것이 아님에도 너무 굵은 허벅지 때문에 앙상해 보일 정도였다.
그 기괴한 체형은 멀리서 보면 극명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제법 넓은 동굴이었지만 구불구불해서 그를 항상 가까이서 본 강도 몇몇은 자신도 모르게 숨을 깊게 들이켰다.
“허업···”
왜 〈말다리〉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놈들의 병력이 빠졌을 때가 기회다! 토벌군이라도 이곳은 우리들의 산언덕이다! 우리들의 골짜기다! 죽여버리자!”
“죽이자!!!”
“죽이자!!!!”
손을 잃기 전에는 거대한 산채의 두목이었던 〈손없는 센다빌〉보다는 작았지만 〈2제자 판데서스〉는 장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특히나 상체가 굽어있었는데, 2m에 달하는 신장 때문에 항상 상체를 굽어서 다른 이들을 봤기 때문이다.
이런 강도들의 생각은 확실하게 현재 토벌군의 허점을 찌르는 것이었다. 하지만 토벌군은 결코 바보가 아니었다.
진흙과 장작, 돌 따위로 장애물을 굳건하게 세워놓았다. 〈신병〉은 모두 게실리안 지휘관과 함께 갔기 때문에 길목을 지키는 이들은 베테랑 병사와 2~3년 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엄폐물을 두고 장창이 턱 얹어져 있었고, 엄폐물이 없는 중앙에 놓은 길에는 방패병이 자리 잡았다. 방패병은 두 개의 병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무기의 차이였다. 도끼병과 숏소드병이었다.
도끼의 손잡이 끝부분의 십자형(+)으로 방패틈을 유연하게 막을 수 있는 도끼 방패병은 뒷열에 있었고, 숏소드병은 앞열에 있었다. 양옆 창병과 함께 있는 방패병도 좌우로 3명씩 총 6명이 떨어져 나가 있었다.
밀집된 곳이라고 해봤자 3열이 고작이었고, 보통은 2열을 유지하고 있었다.
얇아 보였지만 〈2제자 판데서스〉는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다.
‘정병(精兵)이다.’
움직임 하나 없었다. 그것은 마치 강철로 만들어진 병사를 보는 것과 같았다. 인간은 움직이지 않는 것을 매우 힘들어한다. 한치의 움직임도 보여주지 않고 자세를 고수하는 병사들의 피부는 분명 차가운 감촉일 것이다.
병사들의 숫자는 20명이었다. 강도 23명과 별반 차이가 안 났지만 현실에서의 체감은 달랐다. 촘촘하게 뭉쳐있는 병사들의 숫자는 적어 보였고, 간격이 넓은 강도들은 자신들이 많아 보이게 느껴졌다.
“우와아아아아으아아앙!!”
강도 하나가 거침없이 앞으로 튀어나와서 가슴을 뽐내며 소리를 지르며 고개를 이리저리 움직였다. 명백한 조롱이었다. 병사들의 반응이 없자 더욱 강도들이 날뛰었다. 모두 난리를 치면서 자신들의 두목인 〈말다리 스서데판〉이 나서길 기다렸다.
판을 깔아주려는 것이다. 하지만 정예병을 상대로 선봉을 설 〈2제자 판데서스〉가 아니었다. 그의 〈스승님〉에게서 들은 바로는 〈한 명의 정예병과 싸워도 최소 세 명과 싸우는 것이 정예병과의 싸움이다.〉라는 말이었다.
합격술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때, 강도들의 소란에 다른 길목에서 강도 10명이 횃불을 성성이 들고 나타났다.
“말다리! 말다리! 말다리!”
그 외침에 병사 중 다섯이 그쪽으로 향했다. 이 이상 좋을 것이 없었다.
“공격하라!! 공격해!”
큰 키답게 솥뚜껑만 한 손으로 강도들의 머리를 잡고 밀었다. 거침없는 그 행동에 강도들이 병사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에게도 병사가 다섯이나 빠지는 게 보였기 때문이다.
“숫자는 우리가 더 많다!”
〈2제자 판데서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설렁거리며 걸어가며 주춤거리는 강도의 머리를 후려패고, 엉덩이를 걷어찼다. 철봉을 허공에 휘두르기도 했고, 방패로 등을 밀기도 했다.
“어이쿠!”
엉덩이를 거세게 걷어차인 강도가 허둥지둥 달려들었다.
푹!
창 하나는 피했지만 그 틈을 노리지 않고, 좌측 엄폐물에서 대기하던 방패병이 그대로 깎은 나무창을 던져 어깨에 맞혔다.
“으아아악!”
맞자마자 몸을 펄떡거리면서 그대로 움츠러든 강도는 움직일 생각도 못 했다.
“뒤로!”
창병들이 뒤로 물러났고, 그 사이에 방패병이 자리 잡았다. 빈틈이 많았지만 별 수 없었다. 진흙과 장작 그리고 돌 따위로 쌓여진 엄폐물을 발로 밟은 강도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단단해 보이던 엄폐물이었는데 실상은 전혀 아니었다.
진흙이 전혀 마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쑥하고 발이 들어가면서 강도의 시선이 아래로 향했고, 동시에 방패병이 한 걸음 나서며 숏소드로 목을 쉽게 취했다. 땅이 꺼지는 듯한 감각에 자신도 모르게 눈을 내린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한 합도 못 겨룬 채 강도 8명이 단칼에 목을 내주었다. 이 일, 저 일을 겪은 정예 병사들의 전술은 창의적이었다.
그 충격적인 소모 때문에 좌우익의 제법 붕괴된 엄폐물에 접근하려는 강도가 하나 없었다. 목이 베인 강도가 여덟이다. 그것도 칼 한 번 휘두르지 못 했다. 살인은 곧 저지력이었다.
“우! 워! 억!”
방패병이 소리를 딱딱 끊어서 외치며 숏소드의 검면으로 방패 윗부분을 후려쳤다. 쩡쩡 울리는 철소리가 매우 위협적으로 피부에 닿았다.
그 사이에 밀집된 중앙길의 강도들과 병사들은 티격태격 거리면서 아웅다웅 거릴 뿐이었다. 창병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병사들이 방패로 막고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자신감을 얻은 강도가 조금이라도 빈틈을 보이면 방패로 상체를 후려쳐서 넘어뜨리고 방패 아래로 보이는 다리를 검으로 베었다. 때로는 아예 앞으로 크게 나서기도 했다.
아주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그것은 혼자일 때나 위험한 일일뿐이다.
“꺼억!”
뒤에 있던 방패를 쥔 도끼병의 도끼가 그대로 허벅지에 도끼를 박아 넣었다. 크게 앞으로 나간 병사가 피가 질척하게 무릎에 흠뻑 튀자 능숙하게 다시 뒷걸음질을 차분하게 실행해서 돌아왔다.
“이 새끼들아! 다 죽고 싶은 거냐! 달려들어라! 달려들어!!”
〈2제자 판데서스〉는 싸우고 3분도 지나지 않았는데 1/3이 죽자 미칠 노릇이었다. 이 정도로 전투를 못할 놈들인 줄은 몰랐다. 그 외침에 순간적이고, 일시적이지만 강도 7명이 떼처럼 크게 접근하게 되었다.
“버텨어!”
강도들의 숨결이 방패 하나를 두고 느껴졌다. 버티지 못하면 밀릴 것이고, 밀리면 자연히 진형이 붕괴될 것이다. 그것은 곧 죽음이며 패배를 의미했다. 매번 단련과 훈련에 매진하는 병사들이었고, 군적에 있는지도 2년 이상이었다.
반대로 강도들 또한 언덕을 타고 내리며 단련된 다릿심을 가지고 있었다. 팽팽한 힘겨루기가 이루어졌다.
“두모옥!”
강도들은 〈말다리 스서데판〉을 찾았다. 하지만 그는 그들을 돕지 않았다. 그들의 어깨를 쥐고, 등을 밟더니 강하게 다리에 힘을 주고 그대로 점프했다.
〈말다리 스서데판〉이라고 불리는 〈2제자 판데서스〉였다. 어마어마한 다릿심 하나로 크게 뛰어졌다. 이미 손에는 철퇴 하나밖에 들고 있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 방패를 버렸기 때문이다. 그 모습은 병사나 강도들에게나 모두 보였다.
일시적으로 싸움이 멈췄을 정도였다.
강도들의 표정이 검게 죽어갔다. 누가 보더라도 알 수 있었다. 뒤돌아보지 않는 저 등을 보라. 도망치는 것이었다.
“야, 이 개새끼야! 네가 그러고도 두목이냐!!”
강도 하나가 거칠게 소리를 내질렀지만 그 뒤는 좋지 않았다. 강도들보다도 압도적인 전투에서의 경험을 가지고 있는 병사들이었다. 그들보다 먼저 무기를 휘둘렀다. 충격에 빠진 강도들이 너도나도 신체 곳곳에 상처를 입어야 했다.
“씨발!”
어깨가 베인 강도가 무기를 마구잡이로 휘두르더니 뒤로 엉덩방아를 찧고는 씩씩 거리더니 이내 무기를 버리고 벽으로 향했다. 포기한 것이다. 싸우다 죽느니 잡혀서 몇 년 노동하는 것을 선택한 것이다.
“후욱! 훅!”
〈2제자 판데서스〉의 이동속도는 대단했다. 쭉쭉 뻗어나갔다. 보폭이 매우 길었고, 다릿심도 뛰어났다. 말이 평지를 달리는 것처럼 보일 만큼 빠르게 동굴을 주파해나갔다.
노을빛이 환하게 그를 맞이했다. 뛰쳐나온 판데서스가 숨을 고르면서 허둥지둥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었다. 어디로 도망갈지 확인하기 위해서 눈을 크게 뜨고 빛을 받아들였다. 동공이 크게 확장되며 주변이 빠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어! 어어어!”
도렌이 나무 국자를 쥔 채 판데서스를 가리키며 감탄사를 연달아서 내뱉었다. 수프를 만드는데 강도가 뛰쳐나온 적은 처음이었고,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스핀은 역시나 뒷골목 출신답게 단번에 반응했다.
하지만 판데서스는 그대로 반대편으로 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