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4 <-- 강도소굴 -->
함성 소리는 골짜기를 한 번 가득 메웠지만 금방 사라졌다. 그들은 정예병이고, 함성으로 기세를 한 번 돋는 것만으로도 사기가 유지되었다. 계속해서 소리를 지를 필요는 없었다. 침묵으로 이루어진 병사들이 안으로 들어갔다.
〈신병 로벤〉은 긴장한 것이 역력했지만 그를 위해서 베테랑 병사 여럿과 함께하고 있었다. 호흡이 벌써부터 흐트러진 것을 본 베테랑 병사 하나가 로벤의 어깨를 잡고는 강하게 흔들었다.
“윽.”
“정신 차리고. 호흡이 흐트러지면 오래 못 간다. 낙오되면 널 지켜줄 사람이 남아야 하고, 그것은 곧 전투력의 감소다.”
바로 코앞에서 사람을 죽여야 하는 것이 병사였다. 보통 정신무장으로는 하기 힘든 일이었다. 인간은 생각보다 싸이코도 많았지만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사람을 죽이는 것을 힘들어하는 이들도 많았다.
신병 로벤은 의식적으로 길게 호흡하면서 끊임없이 들었던 〈병사의 조언〉을 속으로 읊었다. 병사에서 병사로 이어지는 조언들은 주옥(珠玉)같은 말들이 많았다. 그것은 대부분이 용기를 스스로 낼 수 있고, 거침없이 적을 죽이기 위한 것이기도 했으며 자신의 정신을 지키는 〈정신무장〉의 형태가 많았다.
‘군적(軍籍)에 이름을 남기고, 신분이 편입된다는 것은 다른 이를 위해서 손에 피를 묻히는 것이다. 그것이 힘들다면 돌아가서 흙을 만져라.’
‘피를 두려워한다면, 전우가 죽을 것이다. 피를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네가 죽을 것이다. 판단은 오직 네 몫이고 그 판단은 입에 담지 않아도 주변으로 퍼져나갈 것이다.’
‘받은 만큼 일해라. 넌 세금으로 먹고 자고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라. 봉급은 네 선임이 주지만 그 봉급은 시민이 바치는 것이다.’
‘기사처럼 명예를 가져라. 적어도 그 명예는 현실적인 사람들에게 개소리로 들리겠지만 네 정신을 지켜줄 것이다.’
······입을 달싹거리는 〈신병 로벤〉의 호흡이 차분해졌다. 오히려 그는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적이다!”
단 한 번의 함성소리는 동굴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지만, 병사들의 일관화된 발소리는 동굴을 웅웅 울렸다.
쿵. 쿵. 쿵.
오른손잡이가 많은 인간 종족에게 있어서 발을 크게 울리는 것은 항상 〈왼발〉이었다. 오른손으로 무기를 사용할 때, 최고의 파괴력을 내기 위해서는 왼발이 앞으로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동굴 두 곳으로 오십 명씩 흩어진 병사들이 내는 일관된 발소리가 울려 퍼지며 동굴에 인기척이 펄쩍 뛰었다. 강도들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속에는 어린아이의 울음소리와 여자의 비명소리도 섞여있었다.
선두는 당연히 전신갑주(全身甲冑, Full Plate Armor)를 입고 사각형이 기본에 밑에만 날카롭게 튀어나온 방패를 왼손에 쥐고, 오른손에는 롱소드를 뽑은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이 있었다. 그는 등에 클레이모어를 짊어지고 있었다.
투구는 시야를 굉장히 차단시킨 형태였으며 양볼과 턱 밑으로 철이 크게 밑으로 추가적으로 내려와있어서 목을 한 번 더 보호하고 있었다.
고개를 돌리는 것조차 힘든 이 투구는 〈마법 투구〉였다. 파이룬 가문의 일원인 게실리안이었다. 당연히 〈마법 물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당연했다. 〈세 개의 거울 투구〉라 불리는 마법 투구는 양쪽 측면 그리고 후방에 대한 시야가 거울을 통해서 작게 볼 수 있었다.
전방을 보면서 양측면과 후방을 볼 수 있는 마법 투구였다. 당연히, 내구력은 물론이고 충격을 줄여주는 등의 다양한 스펙 업도 이루어져 있었다.
귀족인 그가 선두에 설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정지!”
쿵, 쿵, 쿵!
“악!”
악 소리와 발을 세 번 구르며 정지한 병사들이 주위를 훑었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이 동굴이 생각했던 것보다 깊다는 것을 인지했다. 그들의 앞에는 세 갈래의 통로가 있었기 때문이다. 병력의 분산은 있을 수 없었다.
그때, 어둠 속에서 화살 한 발이 날아와서 병사의 방패를 두드렸다. 곳곳에 횃불이 잘 마련되어 있었기에 목표물이 된 병사는 능숙하게 방패로 막았다.
텅.
그다음에 방패를 내리자마자 뒤에 있던 병사가 방패를 위로 쭉 뻗으면서 아랫부분을 앞에 있는 병사의 방패와 조금 닿게 했다. 오랫동안 방패를 올리기 위해선 방패의 무게를 분산시킬 필요가 있었다.
‘화살. 보통 강도단은 가지고 있기보다 죄다 팔아버렸을 텐데··· 확실히 관련이 있겠군.’
“이곳에 진지를 짓고, 천천히 놈들을 토벌한다.”
드낙은 매우 꼼꼼했다. 다른 출입구가 없다는 것을 진작에 보고했었다. 여기에는 〈갈색 늑대 도노〉와 〈까마귀 카이야〉의 빠른 기동력을 사용했다. 온갖 자연굴을 뒤지고 다녔다. 물이 흐르는 골짜기였기에 또 다른 퇴로는 없었다.
굳이 탈출구를 만들기 위해서 힘들게 노력할 강도들도 아니었다. 몇 년간 안전했는데 앞으로도 안전할 것이라 생각했고, 철두철미하게 탈출구를 만들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헬스장에 다니면 몸이 좋아 진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헬스장에 안 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말려 죽이면 될 뿐.’
오십의 병사 중 20명이 다시 밖으로 향했다. 밖에서 대기하던 드낙은 병사들에게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제법 큰 자연동굴인가 보네.’
〈선임병사 불세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두 갈래의 길목을 마주했다. 공사는 금방 시작되었다. 각각 20명씩 총 40명의 병사들이 나무를 해오고, 돌을 주워 담아왔다. 골짜기 자체에 물이 흐르고 있었기에 물도 퍼 와서 질척하게 진흙으로 만들어 돌과 나무를 통해 벽을 대충 만들었다.
5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그동안 강도들이 소리를 지르고, 화살을 날렸지만 일체 대응 하나 없었다. 다치는 병사도 몇 있었지만 죽지는 않았다. 흉갑과 투구를 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목을 맞출 정도로 강도 중에 명사수가 없기도 했다.
게실리안 지휘관은 공사가 완료되자 병사 20을 놔두고 가장 오른쪽의 길목으로 들어섰다. 그곳에서도 제법 반항이 거세었지만 우직하게 들어오는 병사들을 막을 수는 없었다. 화살이 바닥에 떨어졌고, 병사는 그것을 밟고 거침없이 지나갔다.
함정 하나 없었다. 대신 생활의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밧줄로 엮어서 만든 빨랫줄에는 동굴의 습기를 없애기 위해서 제법 큰 화덕이 밑에 자리잡고 있었고, 그 앞의 그릇에는 껍질이 탄 뿌리작물이 여럿 담겨 있었다.
동굴은 더 이상 갈라지지 않았다. 천장을 뚫고 가고 있는 길이 있었지만, 그 어떤 처치도 되어있지 않아서 강도들이 이용할 거라고 여겨지지 않았다.
“놈들이 온다!”
“젠장, 뭐라도 해야 해!”
동굴의 끝에는 50명이 넘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있었다. 그들의 주위에는 도망치면서 챙긴 온갖 물건들로 가득했다. 20명이 남자였고, 나머지는 여자와 애들이었다.
“투항하라! 그리하면 목숨만은 살려주마.”
“꺼져라! 개 같은 귀족 새끼야!”
크게 흥분한 강도는 죽음에 대한 공포와 코앞까지 다가온 전투의 흥분감, 병사들이 내뿜는 철내음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다.
‘화살을 쓸 필요도 없겠어.’
게실리안 지휘관은 고작 27세에 불과했지만, 전투 경험이 많았다. 〈보장된 안전〉은 곧 다양한 경험의 축적으로 이어졌다.
“전진. 달려드는 놈은 죽이고, 웅크린 놈은 포승하라.”
게실리안 지휘관과 병사 30이 다가오자 강도들이 온갖 것들을 투척하고, 마지막 남은 화살을 쏘았다. 그것은 모두 합쳐도 채 30발이 되지 않았다. 공사하는 모습에 안달이 나서 많이 써버렸기 때문이다.
과일부터, 돌멩이와 약탈한 단검과 대거 등등이 던져졌지만 모두 방패에 박혔다. 방패의 틈은 뒤에 있는 병사들의 무기로 단단히 틀어막혀있었기에 들어오지도 못했다.
“이, 으! 으아아아!!!!”
강도 하나가 달려들었다. 그러자 다른 강도들도 소리를 지르며 뛰었다.
퍽!
가까이 온 강도는 간합을 한참을 잘못 봤다. 그저 인원 수로 협박하며 강도를 대상으로 강도짓을 했던 〈뒷구멍 강도단〉이었다. 무기를 휘두르기에는 너무 가까이 왔고, 앞에 선 병사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정확하게 방패가 순간적으로 앞으로 들이밀어지고, 다시 병사에게 회수되었다.
그것은 아주 찰나에 불과했다. 몸을 사각 방패에 얻어맞은 강도가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억!”
뒷머리에 피가 흐를 정도로 큰 돌부리와 부딪쳤다. 넘어진 강도의 가슴을 밟으면서 또 다른 강도가 덤벼들었다.
쿵!
롱소드와 방패가 부딪쳤다. 이 강도는 자신의 리치를 알고 있었다. 병사들 뒤에서 순식간에 움직임이 일어났다. 투척 공격이 끝났기 때문에 근접전을 위한 포메이션 전환이었다.
“창병! 앞으로!”
앞열의 병사의 방패틈을 메우려고 앞으로 와있던 도끼병이 뒤로 움직였다. 그들이 지닌 한손 도끼의 손잡이 끝부분은 십자형(+)으로 되어있어서 방패의 틈을 메꾸기에 아주 적합했기 때문이다.
도끼를 쥔 병사와 창을 쥔 병사가 교체되는 사이에 롱소드를 쥔 강도는 굿을 하는 무당처럼 신명나게 방패를 후려쳤다.
“우아아아아!!!”
자신의 힘에 겁을 먹었다고 판단했는지 소리도 우렁차게 지르던 강도의 목이 그대로 창에 꿰였다. 한순간이었다. 방패를 쥐고 있는 방패병이 계속해서 오른손으로 숏소드를 이리저리 내보였기에 그곳에 집중하고 있었기에 창의 날카로운 찌르기에 반응하지 못했다.
“꺽.”
그대로 창에 꿰여서 앞으로 끌려오자 방패병이 거칠게 방패로 몸을 후려쳤다. 목과 창을 분리하기 위해서였다. 피가 콸콸 쏟아지면서 강도의 무릎이 꿇려지며 상체는 뒤로 넘어갔다.
십수 명의 강도가 허무하게 목숨을 잃자 남은 4명의 강도가 뒷걸음질 치며 무기를 버렸다. 또한 단 두 호흡만에 강도 5명을 벤 게실리안 지휘관의 압도적인 살상력도 시각적으로 아주 부각되었기 때문에 사기가 박살이 났다.
“엎드려라! 팔은 허리로! 다리는 서로 꼬아라!”
퍽!
“악!”
말을 제대로 듣지 않는 놈은 그대로 머리에 방패 모서리가 박혔다. 발로 옆구리가 차이는 강도도 있었는데 걷어차인 이유는 그냥 덩치가 제법 커서였다.
“엉엉. 엉엉엉.”
울고 있는 아이조차 엎드리지 않으면 주먹으로 후려쳐맞았다. 병사들에게 있어서 방심은 금물이었다. 아이조차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음을 그들은 잘 알았다.
그저 울고만 있던 아이의 배를 발로 걷어찬 병사는 거침없이 아이를 포승했다. 아이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입만 뻐끔거리며 태아처럼 웅크렸다. 하지만 그 모습은 되려 반항하는 것처럼 보였다.
서걱.
목이 그대로 베어졌다. 그 사이에 게실리안 지휘관의 외침이 들려왔다.
“반항하는 자는 죽여라! 사정을 봐주지 마라! 이들은 역적이고, 반란군이며 시민의 안전을 물어뜯는 들짐승이다! 인정을 주지마라!”
피범벅이 된 〈신병 로벤〉은 손을 덜덜 떨면서 강도의 뒷목을 강철 부츠로 밞은채 그를 묶었다. 그는 귀를 막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자신의 의무를 이행해야했다.
입에서 끈쩍한 침이 흘러나왔지만 그는 그것을 깨닫지도 못했다. 눈을 깜빡이지도 않아서 눈이 점점 붉게 충혈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