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3 <-- 강도소굴 -->
드낙은 어느 날을 기점으로 〈검은 꿈〉을 매일같이 꾸게 되었다. 매일 꾼다고 해도 〈검은 문〉이 없었기에 능력의 획득은 없었다. 검은 꿈을 꿀 때면 언제나 〈세파리아스 불파겐(Sepharias Bulpagen)〉이 있었다.
그는 드낙이 묻는 말에 형편없는 대답을 하기도 했지만, 대답은 곧잘 해주었다. 그 덕에 빈틈이 있다고 여긴 드낙은 매번 공을 들였다. 그것은 세파리아스에 대한 존경이 아니라, 〈동등한 입장에서의 교감〉이었다.
그렇기에 드낙은 그에게 반말을 했다. 존대는 결코 그와 동등한 입장을 만들지 않음을 잘 알았다. 부탁해서 비전을 줄 세파리아스가 아니었다. 그의 우직함은 존대와 존경보다는 동등함과 교감으로 얻어야했다.
그게 드낙의 판단이었다.
자신의 계획에 대해서 말하며 〈중앙 제국〉으로의 붉은 머리카락에 녹안(綠眼)의 기사를 찾을 수 있음을 말했다.
그 자세한 계획은 제법 탄탄했다. 그 덕에 드낙은 〈세파리아스 불파겐(Sepharias Bulpagen)〉의 지식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 때때로 세파리아스는 신경질적으로 변할 때도 있어서 전수받지 못할 때도 있었다.
〈망령 기사〉의 정신이 온전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
[일류의 흐름이라고 말해지는 전투 기법이 있다. 그 기본 수련은 바로 〈호흡〉을 깨닫는 것이다. 이것은 상승(常勝, 항상 이김)의 묘리(妙理)라고 불리며 무인의 최고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최소한의 기준이라고 여겨진다.]
〈일류의 흐름〉
〈상승의 묘리〉
무협지에서나 들을 법한 이야기였다.
“그것이 어떤 건데?”
[인간, 나아가 생명체인 이상 호흡하기 마련이다. 폐를 가진 놈이라면 〈이 흐름〉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가 없다. 모든 것은 결국 호흡이다.]
[숨을 내쉴 때에는 몸에서 힘을 주어도 그리 강하게 힘을 내지 못한다. 반면 숨을 들이켤 때는 몸 자체에 힘을 풀고 싶어도 풀어지지가 않지. 의식적으로 호흡을 하면 극명하게 알 수 있다.]
드낙은 숨을 크게 내쉬고 들이켰다. 확실히 들이킬 때 몸에 힘이 좀 들어가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작 강격(强擊)을 날릴 때는 호흡을 참지 않나?”
[평생 호흡하지 않고 싸울 수 있다면 배울 필요가 없긴 하다.]
세파리아스의 송곳에 찔린 드낙이 헛기침을 했다.
“어떻게 수련하면 되고?”
[별것 없다. 상대의 호흡을 감각적으로 볼 때까지 실전을 거듭하고, 대련을 거듭하면 익힐 수 있다.]
‘이런 무식한.’
운동에 대한 과학적 접근이 없는 세상이었다. 더군다나 호흡에 대한 수련은 괜히 〈상승의 묘리〉라고 추켜세워지는 것이 아니었다. 그만큼 배우는 것이 힘들었다. 찰나의 순간 공방이 오고 가는 공격 속에서 상대의 호흡까지 느끼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크게 흥분하거나 지치면 귀가 먹먹해지고 자신의 심장소리밖에 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거대한 폐활량과 끝없이 단련된 심장이 몸이 거칠게 움직이면서 미친 듯이 뛸 때면 마치 산 높이 올라간 것처럼 귀가 먹먹해져 버리는 것이다.
그런 경험을 몇 번 경험한 것이 드낙이었다. 심장이 미칠 듯이 터져나갈 때면 귀가 먹먹해졌다. 워낙 산을 타고 그래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심장의 뜀박질이 가지는 압박은 핏줄을 타고 귀를 때렸다고 표현할 정도였다.
그런 기이한 감각을 느낄 정도로 〈전투〉는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 표정을 읽은 것인지 세파리아스가 혀를 찼다.
[쯧쯧. 검으로 출세를 한다는 놈이, 상승의 묘리를 가르쳐주어도 그런 표정을 짓다니. 어리석다.]
“좋아. 그걸 알게 되면 어떻게 되는데?”
[전투가 손바닥 뒤집듯이 쉬워지지. 상대는 검을 섞는 순간부터 답답함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물론 그런 답답함도 실력 있는 놈이나 느낄 수 있다.]
“실력도 없는 놈은?”
[체격이 좋아도 삼합(三合)을 못 버틸 것이다.]
드낙은 믿지 못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자신만만한 소리를 한 세파리아스도 자신에게 패배했다. 물론 다구리였지만 승리는 승리다. 그 말에 세파리아스가 고개를 저었다.
[깨어났을 때, 난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때는 모든 것이··· 이상했다.]
드낙은 좀 더 파고들기로 했다.
“정확히는 어떻게 사용한다는 거야?”
[상대가 호흡을 내쉬고 있을 때는 강한 힘을 낼 수 없다. 고로 어딜 치든지 가드를 풀게 만들고, 빈틈을 만들 수 있으며 급소를 찔러도 너의 힘을 못 이겨낼 것이다. 그렇다고 숨을 참아서 무호흡으로 강한 힘을 낸다면 호흡이 흐트러진다.]
호흡이 흐트러진다는 것은 지구력의 크나큰 손실을 의미했다. 시작부터 거칠게 숨을 쉬면서 달리는 사람과 호흡을 절제하며 달리는 사람이 달릴 수 있는 거리는 큰 차이가 나는 것과 같았다.
“흠.”
‘상승의 묘리라.’
무협지 냄새가 풀풀 났지만 이론적으로는 가능해 보였다. 하지만 까마득한 미래에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지금 당장 쓸만한 것은 없어? 비전이라던가.”
[너에게 줄 건 없다.]
“왜 그렇게 안 주려고 하는 거야? 이야기라도 들어보자.”
[이미 허락 없이 12가지의 비전을 가지고 있잖나.]
결국 종착지는 명예였다. 그는 자신을 위해서 비전을 묘에 새겨 그를 위로해준 친구들의 비전을 훔친 드낙을 좋게 보고 있지 않았다.
“그건 락손 때문이야. 몰랐다고.”
[알게 된 순간부터 쓰지를 말았어야지.]
드낙으로서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결국에는 평행선을 달리는 이야기였다. 그때, 연기가 자욱하게 일어났다. 무엇 하나 구분할 수 없게 되며 드낙은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검은 꿈〉에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끝난 것이다.
*
〈왕국 야영지〉에 도착한 드낙의 보고로 토벌전이 시작되었다. 시작되었다고 해서 모든 병력이 움직이는 것은 아니었다.
〈5일 길〉이라 불리는 드낙의 경로는 오로지 은닉성을 위한 길이었다. 병참 따위 개뼈다귀로 줘버린 군사학의 ㄱ자도 모르는 길이었다.
그렇기에 사전 준비가 필요했다. 드낙은 〈6곳의 고지 확보〉만 준비했지만 정보를 획득한 게실리안 지휘관은 그 사이에 〈3곳의 보급구역〉을 지정했다.
즉, 〈5일의 길〉에서 3곳에 보급구역을 두어 군량을 모으고, 6곳의 고지를 소수로 확보한 채로 병사를 은밀하게 〈뒷구멍 강도단〉이 있는 곳까지 향하는 전략이었다.
〈추적 용병단〉은 순찰대로 임무가 변경되었다. 드낙이 지정한 고지 확보 6곳에 대한 순찰을 맡았다.
‘킁. 아무것도 안 할 줄 알았는데.’
까라면 까야 했다. 공식적으로는 공을 하나도 못 세우겠지만, 많은 이들이 〈추적 용병단〉에 대한 입소문을 퍼뜨릴 것이다. 그때가 된다면···
‘용병단은 날아오를 것이다.’
시간은 끊임없이 흘러갔다. 기사는 뭐가 그렇게 바쁜 건지 〈일백야수〉가 된 〈붉은털의 곰〉에 대한 토벌이 시작되었다는 소문 하나 들을 수 없었다. 드낙에게는 다행이었고, 〈세 개의 강가〉 주변에 사는 이들에게는 불행이었다.
경장갑을 입은 병사가 간편한 차림새에 활과 대거를 소지한 채 고지에서 몸을 숨겼다. 강도 하나 보이지 않았다. 애초에 드낙이 만든 〈5일의 길〉에는 강도 하나 본 적이 없는 곳이었다.
6곳의 고지를 확보한 채로 숨죽이고 있는 것만으로도 쓸데없는 걱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순찰을 도는 〈추적 용병단〉도 느긋하게 걸어 다녔다. 갈색 늑대 도노의 후각을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지겨운 시간 속에서 빛을 발한 것은 대련이었다.
드낙은 세파리아스에게서 들은 상승(常勝)의 묘리(妙理)를 익히고 싶어 했고, 도렌과 이스핀은 산을 잘 타고 기습도 곧잘 하지만 전투 경험이 적었다. 서로가 이득이었다.
“이스핀! 방패를 더 내려! 발에 검이 박히고 싶나!”
“죄송합니다!”
바닥을 쿡쿡 찌르는 드낙의 롱소드에 이스핀이 기겁을 하며 발을 빼며 소리 질렀다. 여기도 빈틈, 저기도 빈틈인 이스핀은 하루하루가 성장 그 자체였다. 도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스핀보다는 나았지만 더욱 형편없는 것도 있었다.
무기의 거리 감각이 형편없었다. 때문에 간담을 서늘하게 해주었다. 약자들과의 대련을 통해서 드낙은 일류의 흐름에 대해서 대충 가닥은 잡을 수 있었다. 물론 실전에서 사용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는 것을 한 번 더 실감했다.
D-day가 다가왔다.
〈지휘관(指揮官) 게실리안 파이룬(Gesilian Faerun)〉이 이끄는 100명의 병사들이 골짜기를 타고 1열로 주르륵 길게 나열하여 걷고 있었다. 〈추적 용병단〉의 모습은 없었다. 근처 고지나 능선에서 병사들을 호위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다.
드낙은 그들의 모습을 보며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평소에는 시시껄렁한 잡담과 여자 이야기밖에 안 하는 놈들이었지만 그래도 일백(一百)이 한 줄로 쭉 가는 것은 장관이었다. 무엇보다도 중세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영화 속의 한 장면이나 다름없었다.
“대단하지 않냐?”
이스핀의 말에 도렌이 받았다.
“일백 명이란다. 일백 명. 엄청나.”
사람으로 드글드글한 것을 드낙은 많이 보았기에 그들의 장면 그 자체에 가슴이 떨렸다면, 이스핀과 도렌은 규모에 감탄하고 있었다.
드낙은 그 이야기를 듣고 새삼 이 세상의 군병력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부국강병이라는 말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여기저기 문제가 산재한 국가였다.
‘큰 병력을 동원할 수 없겠지.’
그렇기에 기사 전력이 발달된 것일지도 몰랐다. 괴물을 잡는데 평범한 병사보다는 똑같은 괴물을 양성하는 것이 옳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마법 물품〉이 있다면 호랑이에 날개를 달아주는 격이었다.
다른 생각에 빠져있던 드낙에게 이스핀이 말했다.
“이제 저희도 가야 하는 것 아닙니까?”
드낙의 견제가 울라스의 입으로 게실리안 지휘관에게 도착했을 때, 울라스는 추적 용병단에서 다시 빼내진 상태였다. 노골적인 처사였다. 이를 통해서 드낙에게 굴욕을 주고 싶었겠지만 그는 무덤덤했다.
그리 화낼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갑시다.”
해가 노을빛으로 가득 물들이고 있었다. 저 언덕만 넘으면 〈뒷구멍 강도단〉이 있는 동굴 입구로 향할 수 있는 골짜기로 진입한다. 당연히 초병에게 걸릴 것이다. 흉갑을 입고 중무장을 한 병사들의 이동속도를 생각했을 때, 먼저 타격을 해야 하는 것이 〈추적 용병단〉이었다.
‘생각 같아서는 추가금이라도 받고 싶다.’
뒷구멍 강도단의 색적, 루트의 수립(울라스가 많이 도와줬지만), 순찰, 첫 진입까지. 아주 〈추적 용병단〉을 뽕을 뽑았다. 짜증 나지만 사람의 역량을 잘 보는 사람이 게실리안 지휘관이었다.
죽음이 만연한 세상이라서 사람 목숨이 값싼 세상이었다. 드낙이 원할 정도의 돈은 받지 못했다. 성폭행 15범을 저질러도 사회로 다시 나갈 수 있는 인권이 아주 잘~발달된 현대는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라면 큰돈을 받는 게 당연했다.
하지만 이곳은 아니었다. 죽으면 그놈의 책임이었다. 정규군은 조금 달랐지만 적어도 용병은 그랬다.
드낙이 아니었다면 이런 의뢰도 은화 2닢이면 그만이었다. 중산층으로 2달을 살 수 있는 돈을 위해서 목숨을 거는 것이다. 그는 지금 받은 돈으로 만족해야 했다.
초병을 제압하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 강도단 몇이 털려도 자신의 일은 아니라 생각하는 〈뒷구멍 강도단〉이었다.
“낄낄낄! 병신 새끼. 넌 오늘 팬티까지 나한테 줘야 할 거다."
카드를 탁하고 테이블에 놓아서 보여주며 테이블 중앙에 있는 동화에 강도의 손이 올라갔다. 그리고 그 손이 덜덜덜 떨렸다. 다른 두 명 또한 마찬가지였다.
쿵하는 소리와 동전이 쫘르륵거리며 떨어지는 소리가 퍼져나갔다.
“응?”
홀로 주변을 보고 있던 강도가 소리가 크게 들리자 고개를 돌렸다. 그는 다른 강도들이 카드놀이를 할 때 망을 보고 있었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제법 돈을 받았다.
“헉!”
바들바들 떨면서 소리 하나 내지 못하고 있는 강도가 셋이었다. 모두 목에 화살이 박혀있었다. 관통하지는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목이 움직이지 않는 강도 셋의 목을 노리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드낙이 두 발을 쏜 것이고, 도렌이 한 발을 쏘아서 맞춘 것이었다.
“꺽!”
마지막 놈이 몸을 돌렸을 때, 갈색 늑대 도노가 정확하게 몸에 올라타며 뒷목을 물어뜯었다. 순식간이라 강도는 반항조차 하지 못했다. 상황을 정리한 〈추적 용병단〉은 동굴 입구 두 곳을 점령했다.
군대가 도착했고, 게실리안 지휘관이 흡족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 눈동자는 전공에 눈이 멀어 있었고, 흉악했다.
“여자, 아이, 남자 가릴 것 없이 반항하면 죽여라! 선한 이들의 등을 처먹고, 재물을 탐했던 놈들이다!”
“우와아아아아!!!!!”
그들은 둘로 쪼개져서 동굴로 진격해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