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82 <-- 강도소굴 -->
이스핀의 고민은 잠깐이었다. 도렌을 보며 입을 열었다.
“이건 내 생각이야. 굳이 동의해달라고는 말 안 한다. 그냥 듣기만 해.”
도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이스핀의 생각을 듣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항상 자신보다 더 괜찮은 생각과 행동을 했던 이스핀이다. 고민을 토로하기에도 동갑내기였기에 좋았다. 덩치가 큰 이스핀에게 매번 겁먹은 것처럼 소심해도 도렌은 제법 고집이 있었다.
그 고집은 곧 자존감이기도 했고, 이스핀이 도렌을 부하처럼 다루면서도 때때로 형제로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뒷골목의 논리대로라면 도렌같은 소인배는 밟히는 것이 정상이었지만 제법 평등한 〈추적 용병단〉에서는 아니었다.
새로운 곳, 새로운 만남, 새로운 리더. 그것은 이스핀의 피비린내 나는 잔혹함을 희석시킨 덕이고, 도렌도 나서야 할 때는 나섰기 때문이었다.
“이번 같은 큰 이득은 앞으로 다시없을 거다.”
“대장이 수익 구조를 바꾼다는 소리야?”
이스핀이 고개를 저었다. 겉으로든 속으로든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드낙은 자신을 신뢰 있는 리더로 보이게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말했던 것을 오직 이득을 위해서 바꾼다? 어리석은 선택이었고, 드낙은 절대로 그러지 않을 것이다.
“아니. 대장은 그럴 사람이 아닌 걸 너도 잘 알잖아.”
이스핀의 말에 도렌의 고개가 당연하다는 듯이 자연스럽게 끄덕여졌다. 맨 처음 짐수레에 식료품 등의 공동 용품을 준비할 때도 돈 하나 걷지 않은 드낙이었다. 그렇게 하면서도 허세 한 번 부리지 않았다.
겉으로 보이는 인간성 하나는 아주 좋은 것이 드낙이었다. 그리고 강도들과 산적을 상대로 보여주는 잔인한 면모는 모순적이었지만, 모순적이었기에 치명적으로 매력적이었다.
“그럼 왜?”
“너도 〈피가득 술집〉에서 귀동냥을 해서 잘 알잖아. 보통 용병들은 의뢰 하나에 은화 1닢 정도밖에 못 얻어. 한 달 내내 돌아다녀도 은화 2닢을 바짝 버는 정도야.”
근본 없는 평민에게는 제법 큰 수익이었다.
“이번에 받을 돈이 특수하다는 것이라는 거네.”
“그래.”
이스핀이 밥을 한 입 먹으면서 다시 입을 놀렸다.
“이번에 돈 받고 나면 용병단은 제법 크게 될 거야. 입소문만큼 무서운 것이 없어. 용병계에 소문이 쫙 퍼지겠지. 실력 있는 용병도 드낙에게 오려고 할 거다.”
그렇게 말하며 이스핀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때가 되면 우린 자연히 밀려나겠지. 지금처럼 측근처럼 보일 수도 없을 거다. 인원이 많아지면 경력도 서로 다다를 테고, 공동 분배는 자연히 사라질 거다. 용병단에 소속된 용병이 수십 명이 될 수도 있는데, 이제 의뢰 하나 한 너랑 나랑 베테랑 용병이 같은 돈을 받으면 어떻게 되겠냐?”
“용병단이 제대로 안 돌아가겠지···”
도렌은 이성적으로는 그렇게 판단했지만 속은 쓰릴 수밖에 없었다.
“먹을 때 많~이 먹어둬라. 다음에는 이런 날도 없을 거다.”
그것이 이스핀의 생각이었다. 도렌은 확실히 이스핀이 매우 현실적인 생각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또한 하나를 배웠다.
‘나를 먼저 생각하고, 좁게만 보지 말고 많은 것을 생각해야 해.’
도렌이 〈추적 용병단〉에 대해서만 생각했다면 이스핀은 더 많은 것에 대해서 생각했다. 다른 용병들, 의뢰의 특수성, 앞으로 용병단이 어찌 될지 등.
그들은 그 뒤로 별말이 없었다. 도렌이 매우 깊은 생각에 빠져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도렌은 자신의 걱정을 털어버렸다. 보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려고 애를 썼다. 그는 드낙에게 인정을 받고 사랑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이스핀의 생각대로 앞으로가 그렇게 된다면 이번 의뢰에서 받을 돈을 굳이 드낙에게 돌려주며 적게 받는다고 말하면 안 되었다.
‘이스핀이 옳아. 나, 개인에 대한 이득을 버려서는 안 돼.’
*
드낙과 〈사년병(四年兵) 울라스〉는 일체 사적인 잡담이 없었다. 울라스는 〈이스핀과 도렌〉이 함께 다니게 결정되는 것에 반대를 할 수 없었다. 그들을 자신과 떨어뜨려놓은 드낙의 은근한 견제에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했다.
당연히 속으로 기분이 나쁠 수 없었다. 계집애처럼 논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여우 같은 놈.’
반대로 드낙 또한 울라스와 할 말이 없었다. 그는 첩자였다. 겉으로는 지원병이었지만 실상은 달랐다.
드낙은 결코 인격이 아주 좋은 사람이 아니었고, 성인이라고 말할 것도 안 되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성인의 말에도 걱정을 하게 되는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렇기에 울라스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딱딱하게 굳은 분위기에서 강철처럼 차갑게 임무만 수행했다. 골짜기를 정찰하고, 능선에 몸을 숨기며 산언덕과 숲언덕을 지나갔다.
워낙 체력이 강한 드낙과 울라스였기에 오후 3시경에 포인트 두 곳을 돌았고, 하나의 포인트를 추가로 돌았다.
때때로 강도들을 만나기도 했다.
“어이! 여기도 많아!”
놈들은 여럿이서 뭉쳐 다니며 산에 나는 먹을 것과 약초를 캐고 있었다. 바위틈도 꼼꼼히 챙겨 보았고, 썩은 나무에서 자라는 버섯들을 보며 위치를 기억하려고 주위를 둘러보거나 더럽긴 해도 원색의 천을 나무에 두르기도 했다.
‘이상한데.’
드낙의 관찰력이 그들을 자세하게 훑었다. 울라스는 그들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 반면에 드낙은 면밀하게 하나하나 모두를 관찰했다.
강도의 숫자는 8명이었고, 모두 등에 큰 바구니를 짊어지고 있었다. 그곳에는 온갖 것들을 채집한 것이 가득했다.
“헉! 헉!”
힘겹게 땅을 파서 뿌리채소를 캐기도 했다. 두툼한 것을 부러뜨려서 챙긴 다음에는 다시 묻었다. 낙엽을 손으로 모아서 탁탁 두드리며 몸을 일으키는 모습도 보였다.
“······”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는 이내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거리가 멀어지면서 웅얼거림으로 변했고, 이내 소리가 끊겼다.
드낙이 미소를 지었다.
‘찾았다.’
“돌아갑시다. 〈뒷구멍 강도단〉은 여기에 있습니다. 3번 만에 찾다니, 게실리안 지휘관도 기뻐할 겁니다.”
“예? 아직 아무것도 알아낸 것이 없습니다.”
드낙은 빨리 손짓했고 이내 울라스가 굳은 표정으로 그 뒤를 따라갔다. 드낙의 뒷모습을 보며 굳은 표정이 이내 일그러졌다.
‘미친 애새끼가 말이라도 하고 가자고 하던가.’
드낙은 혹여나 강도들에게 들킬까 빠르게 이곳을 빠져나갔다.
“대체 뭘 보고 그렇게 판단한 겁니까?”
“모두가 모인 상태에서 한 번에 말하겠습니다.”
두 번 말하는 것은 딱 질색이었다. 울라스는 그 뒤로 묻지를 못했다. 드낙과 각을 세우는 것에 대해서는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에 알아서 물러났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녁 준비를 모두 마치고 나서 해가 저물고 난 뒤에 이스핀과 도렌이 토굴에 들어왔다.
“벌써 다 준비하셨습니까?”
“예. 할 말이 있으니 일단은 먹으세요.”
드낙이 부드럽게 말했다. 식사는 언제나처럼 간단했으며 양만 넉넉했다.
“〈뒷구멍 강도단〉이 있는 곳을 확인했습니다. 내일에는 그곳으로 은밀하게 향할 루트를 계획하겠습니다.”
“어떻게 알아내셨습니까?”
울라스였다.
“강도 8명이 산과 숲에 나는 먹을 것을 채집하는 것을 봤는데, 솔직히 말해서 너무 많이 채집하고 있었습니다. 8명이 먹기에는 지나친 양이었죠. 산에 나는 채소는 뜯어도 며칠은 가겠지만 상하기 마련입니다.”
“흠.”
“오늘같이 더운 날에 움직였다는 것은 다른 날에도 움직인다는 소리죠.”
울라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정할 수 없는 근거였다.
“그다음으로는 그렇게 채집해도 성에 안 차서 덜 자란 버섯이 있는 곳을 나무에다가 표식을 여럿 해두었습니다. 자라면 또 오겠다는 것이지요. 이게 무슨 말입니까?”
드낙이 도렌에게 턱짓을 했다. 마치 선생님 같았다.
“아! 음. 많이 먹어서··· 그런 건 아닙니까?”
“입이 많기 때문에 식량 소비가 크다는 뜻입니다. 사냥으로 감당이 안 된다는 것이죠. 힘들게 땅을 파서 뿌리채소도 캐지 않았습니까. 못해도 30명 이상이라는 소리고, 〈뒷구멍 강도단〉일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규모가 크다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강도단인지 토벌하고 나서 불법 거래를 하러 오는 상인과 거래를 하는 방식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면 되었다. 30명이 넘는 강도를 포획해서 모조리 심문해서 얻은 것이 있었지만 부족하다고 느낀 게실리안 지휘관은 매우 신중한 자였다.
〈왕국 야영지〉의 남쪽에서부터 산행을 시작해서 산언덕과 숲언덕을 통해서 완벽하게 병사를 숨기며 움직여야 했다. 소규모의 강도단의 행동반경이 드문 곳을 선별해야 했기에 길 또한 이리저리 움직였다. 올곧지 않았다.
그렇게 3일을 가야 했으므로 사전에 병사들과 군량을 옮겨놓고 길게 계획해야 했다.
드낙은 이번에도 2개 조로 움직여서 3일을 정찰하며 데이터를 모았다.
〈왕국 야영지〉에서 산행으로 느려진 이동 속도로 총 5일에 걸리는 〈길〉이 완성되었다. 3일은 드낙에게 있어서 매우 짧은 데이터 수집 기간이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이제 좀 돌아가서 보고를 하고 싶다는 생각만 하게 될 정도로 긴 시간으로 여겨졌다.
마지막으로 〈3번째 포인트〉에 대한 염탐은 4명 모두가 동원되었다. 드낙은 처음에는 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괜히 스스로의 결정에 혹시나 싶어서 가게 되었다.
‘정말 있잖아!’
〈남부 황금평야〉로 가는 길목의 정반대에 있는 언덕 뒤편에는 화전을 일구고 있었고, 언덕과 언덕 사이에 만들어진 깊은 물이 흐르는 골짜기에는 자연동굴 입구가 여러 곳에 있었다. 직접 뚫은 동굴 입구도 있었다.
기득권을 등처먹지 않으면서 약자들만 털고 다녔으므로 토벌이 몇 십 년 동안 이루어지지 않았고, 순찰대에게 멍청하게 걸린 강도만 죽을 뿐이었기에 〈뒷구멍 강도단〉은 여기에 아주 마을을 지어놓고 있었다.
‘아!’
드낙이 가리킨 곳으로 시선을 옮기자 그곳에서는 〈공개 처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무엇을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물이 흐르는 골짜기의 제법 평탄한 곳에 사람이 수십 명 모여있었다.
여자도 있었고, 늙은이도 있었으며, 어린이도 있었다.
단상에 오른 자들은 모두 입에 재갈이 물려져 있었다. 멀리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고개를 세차게 움직이는 놈이 있었는데 그는 아예 머리에 천이 뒤집어써졌다. 그리고는 물을 엎어 썼다. 숨쉬기 아주 힘겨울 것이다.
그들은 모두 목이 매달려 한 명씩 죽어나갔고, 그 사이에 그 옆에 함께 있는 남자가 크게 손짓하며 뭔가를 말하고 있었다.
“대체 뭐라고 말하는 건지.”
모두가 궁금해하는 것이었다. 드낙은 그 모습을 보며 생각보다 〈뒷구멍 강도단〉이 감정적이지만 사법 체계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강도단에 소속된 이들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이 곧 〈합의된 처벌〉임을 알 수 있었다.
염탐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이곳에 오래 있는 것은 그리 좋은 선택이 아니었다.
‘결국 확률의 싸움이지.’
“빨리 돌아갑시다.”
“예.”
추적 용병단과 베테랑 병사 울라스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험지에 익숙해진 이스핀과 도렌은 숨은 거칠어졌어도 드낙에게서 뒤처지지는 않았다. 물론 드낙이 사정을 봐준 것이기도 했기에 드낙은 숨 한 번 흐트러지지 않았다.